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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욕망의 히든 던전(3)

청색 리자드맨의 식사는 꽤나 오래 걸렸다.
녀석은 마치 미식가처럼 맛을 음미하며 그 표정엔 묘한 감동까지 서려 있었다.
공포에 찬 얼굴로 그걸 지켜보던 길영과 지나의 앞에서 산하가 손가락을 튕겼다.
“주목! 정신들 차려.”
“네… 넷!”
“지금부터 살 방법을 알려주지. 사실 아주 간단해. 그냥 저놈을 죽여 버리면 끝나.”
“……예?”
길영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항변했다.
“그, 그게 말이 돼요? 형님도 보셨잖아요. B랭크인 이신우 헌터가 그대로 잡아먹히는 거.”
“그랬지.”
“혀, 형님이야 저희보다 경험이 많으시지만, 그래도 이신우 헌터보다 약한 건 사실이잖아요.”
“하… 이눔 자식이 맨날 형님, 형님 하면서도 날 은근 우습게보고 있었네. 얌마, 이미 죽어빠진 놈보다 내가 더 약하다는 게 말이 되냐?”
“네?”
산하가 히죽 웃음을 지었다.
“강자란 힘센 놈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놈을 말하는 거야. 뒈진 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지금 괴물 뱃속에서 X으로 변하고 있는 녀석이 나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웃기지 좀 마.”
“…….”
궤변이었다.
그러나 지금 산하의 눈을 보고 있자니 그 궤변이 기묘하게 믿고 싶어졌다.
그건 지나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20년 전 게이트에서 싸우던 놈들은 다 저런 것들이었어. 매번 다른 놈들에 정체도 모르고 능력도 모르는 놈들이었지. 항상 임기응변을 써서 살아남았고, 공격할 기회를 잡았다면 죽을 기세로 물고 늘어져야 최소한 동반 자살이라도 가능했어.”
“도, 동반 자살은 좀…….”
“말이 그렇단 얘기야. 나라고 죽고 싶겠냐? 지금부터 방법을 얘기할 테니 잘 들어.”
산하의 눈이 지나를 향했다.
“당신, 우선 그 방호구부터 벗어버려. 딱 봐도 움직이기 불편하겠네.”
“…그래서요?”
“몸을 가볍게 하고 저 자식 주변을 치고 빠지면서 최대한 귀찮게 만들어. 대신 놈한테 잡히면 절대 안 돼. 할 수 있겠어?”
“그걸… 경험도 없는 제가 어떻게 판단해요?”
“아까 놈의 움직임을 봤잖아. 판단 못해? 그럼 여기서 죽는 거야.”
“큭…….”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민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장담은 못하겠지만… 괴물의 몸이 커진 뒤엔 속도가 느려진 것 같았으니 아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 전에는 자신이 없어요. 몸이 작았을 땐 굉장히 빨랐거든요…….”
“좋아, 그럼 대처 가능할 거야. 빠듯하겠지만, 뭐 어떻게 하겠어. 살려고 노력해 보라고.”
“무, 무슨 소리예요? 몸이 커지기 전의 속도에는 반응할 수 없다니까요?”
“내 능력. 그새 잊어버렸어?”
산하가 손가락을 빙빙 돌리자 그 궤적을 따라 붉은 기운이 맴돌았다.
“아… 디버프.”
“게다가 저 녀석, 우리 이쁜 B랭크 헌터님을 통째로 삼켰잖아. 무게는 훨씬 늘어났겠지. 거기에 더해서 녀석을 최대한 느리게 만들어 볼 테니 그다음은 알아서 잘 해보라고. 그것도 감당 못하면 별수 있어? 여기서 다 죽는 거야.”
“알겠… 어요.”
“그리고 길영이 너.”
산하는 지나가 벗어든 방호 슈트를 집어 길영에게 내밀었다.
“이거 입어라. 사이즈가 안 맞아도 입을 수 있는 데는 다 껴입어.”
“어, 하지만 이렇게 입으면 움직이기 너무 불편…….”
“임마, 네가 움직이는 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래? 넌 쨔샤, 말 그대로 방패야. 고기 방패.”
“으힉!”
“죽지만 않을 정도로 다칠 생각 하고 있으라고. 뭐… 아프긴 무지하게 아플 것 같다만.”
“아우~ 왜 저만 그래요.”
“뭐긴 임마. 너 포지션이 탱커라며? 버티는 계열이 네 장기 아니야?”
최길영이 두려운 얼굴로 우물쭈물하자 산하가 그의 등을 툭 쳤다.
“머리는 꼭 피하고. 가능하면 방호구 겹쳐 입은 곳으로 맞되 맞는 순간 거기에 힘을 팍 줘. 알지? 때릴 걸 알고 맞는 거랑 갑자기 맞는 건 전혀 다르다는 거.”
“아우… 진짜 이거 괜찮을까요?”
“글쎄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냐. 저 자식 힘은 최대한 약하게 만들어 놓겠다만 그게 널 못 죽일 거라곤 장담 못하지. 그 누가 알겠어?”
“히, 히이잉…….”
울상이 된 길영에게 산하는 차가운 시선으로 말했다.
“넌 분명히 내 경고를 들었었어. 하지만 그걸 무시하고 모두를 이곳으로 끌어들이는 데 앞장섰지. 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받는 거다. 무서우면 여기서 그만둘 테냐? 그럼 모두 죽는다, 다 너 때문이야.”
“…….”
한참을 고개 숙이고 있던 길영은 곧 입술을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형님 말씀이… 맞아요. 윤지나 씨, 미안해요. 내가 우겨서 여기 들어온 거니까 전 죽어도 할 말이 없어요.”
“……아니에요. 굳이 말하자면 저도 돈 욕심이 났으니까요. 산하 씨, 전 괴물 주변을 뛰어다니며 귀찮게 만드는 거고 길영 씨는 어떤 역할이죠?”
“말했잖아, 고기 방패.”
산하가 음산하게 미소 지었다.
“윤지나 씨 당신이 제대로 해준다면 녀석은 체력이 빠진 상태에서 결국 몸이 무거운 길영이를 노리게 될 거야. 그때 넌 놈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야만 해. 그러면서 녀석을 꽉 붙잡아 주면 더 좋지.”
“그, 그러면요?”
“뭐겠냐, 이놈이지.”
산하가 자신의 무기가 들어있는 통을 쿵 두들겼다.
그 무지막지한 대검을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X으로 변하고 있는 헌터 녀석 말도 어느 정돈 맞아. 확실히 이 무기는 내 딸리는 기본 스펙을 커버하기 위해 만든 거야. 로켓 분사 장치로 파워를 올리고 검날엔 내 옛날 동료가 걸어둔 마법인지 뭔지가 작동 중이라 공격 순간, 검의 무게가 다섯 배는 무거워지지.”
“흐… 흐익…….”
“어지간한 놈은 맞추기만 하면 필승이었어. 물론 그것만으론 안 되는 놈도 허다했다만 그래도 이놈 덕분에 살아남았던 거다. 그러니 한번 믿어보라고, 이 필살의 한방을.”
잠깐의 침묵이 흐르는 동안 저쪽에서 쩝쩝대는 식사의 마무리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그게 끝나면 놈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를 악문 지나와 길영이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뒤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거…….”
“응? 백미희 씨?”
“이거… 너, 이걸 써 이걸…….”
“……?”
미희가 달달 떨고 있는 팔로 입고 있던 옷을 벗어들고 있었다.
딱딱거리며 부딪히는 이빨 사이로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 구룡… 그룹의 호신 의류… 그 방호복에 덧대 입으면… 당연히 훨씬 더 단단한…….”
“아하!”
길영이 그 옷을 받아들었다.
미희는 졸지에 속옷만 입게 되었지만 지금 그딴 걸 따지는 병신이 있다면 그냥 죽어버리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일 것이리라.
방호복 두 개에 구룡의 호신 의류까지 칭칭 둘러싼 괴상한 꼴의 길영의 앞으로 지나가 나섰다.
그녀는 지금 방호복 안에 입는 기본 의류 한 가지만 걸친 상태라 괴물의 손톱에 걸린다면 그 순간 갈기갈기 찢기고 말 것이었다.
“후우웁!”
“키야아아악!”
괴물은 이신우의 몸을 먹어치우며 어느새 원래대로 작아져 있었다.
놈이 번개처럼 날아들었을 때 미리 준비를 한 지나가 재빠르게 옆으로 굴러 몸을 피했다.
그리고…
“핫!”
“키익!”
그녀가 손에 든 삼단봉으로 리자드맨의 몸을 찔렀다.
그러나 그 공격은 슬쩍 건드린 수준에 불과해 타격은 전혀 주지 못했다.
“캬아아아옥!”
“히, 히익!”
황급히 몸을 빼낸 지나가 재빨리 괴물의 거리에서 벗어나자 삼단봉이 찌른 부분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청색 리자드맨은 뭘 한 건지 모르겠단 얼굴로 그녀와 자신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윤지나! 힘은 실리지 않아도 좋으니 비늘이 없는 곳을 노려.”
“어, 어디로요?”
“뻔하잖아. 눈알 아니면 ‘거길’ 쳐.”
“거기가 어디예요?”
“젠장할… 다리 사이 말야!”
그 말과 동시에 강산하의 손에서 희미한 붉은 촉수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청색 리자드맨은 자신의 능력이 감소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눈치였다.
“후우~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자, 간닷!”
“키아아악!”
지나가 괴물의 정면으로 달려가자 놈 또한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허나 그녀는 번개처럼 바닥에 굴러 놈과 엇갈린 후, 뒤도 안보고 그대로 도망쳤고 놀란 괴물은 괴성을 지르며 그녀의 등을 쫓아갔다.
술래잡기 같은 한바탕 달리기가 계속되던 어느 순간 갑자기 놈의 뒤통수를 뭔가가 후려쳤다.
“끄엑!”
“마, 맞췄다. 이 자식아!”
길영이 던진 삼단봉이 녀석에게 직격한 것이다.
애초에 그의 역할엔 공격이 없었으니 이런 식으로 적의 주의를 끈 것은 길영의 기지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키아아아아옥!”
청색 괴물이 분노의 고함을 치며 길영에게 날아들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번쩍인 순간. 그는 바로 몸을 수그려 거북이처럼 바닥에 엎드렸다.
“흐아아악!”
“키이익! 키이익! 키아아아악!”
길영의 등으로 무지막지한 손톱 세례가 쏟아졌으나 두 겹의 방호구와 미희의 호신 의류가 그의 몸이 찢겨지는 것을 간신히 막아주고 있었다.
그저 등판에 내리 찍히는 무지막지한 충격에 길영의 얼굴만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중이었다.
“캬아아아앗!”
“욱! 커헉!”
분노한 리자드맨의 발이 엎드린 길영을 무시무시한 기세로 걷어차자 그는 저 멀리 벽으로 날아가 그대로 처박혀 버렸다.
허나 그때 어느새 뒤에서 돌아온 지나의 삼단봉이 괴물의 한쪽 눈알을 후려갈겼다.
“이, 이얏!”
“캬아아아아아악!”
눈을 붙잡고 놈이 괴성을 지른 순간 지나의 발차기가 괴물의 다리 사이를 올려 찼다.
“끄옭!? 옭홁홁홁…….”
바람 빠지는듯한 비명과 함께 녀석의 무릎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놈의 뒤통수로 윤지나의 삼단봉 세례가 쏟아졌다.
“주, 죽어! 죽엇!”
연달아 성공한 공격에 한껏 흥분한 기세.
그러나 그것은 치명적인 오판이었다.
“크르르르악!”
“아, 아악!”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손이 지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뒤로 넘어진 그녀를 놈이 끌어당기며 입에서 누런 침이 흘러나왔다.
“아, 안 돼!”
“이야아앗!”
리자드맨의 입이 지나의 발목을 베어 물려던 순간 검은 스카프가 놈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느새 벽에서 달려온 길영이 두르고 있던 백미희의 스카프를 벗어 놈의 입을 뒤에서부터 틀어막은 것이다.
식사를 방해당한 괴물이 격노의 괴성을 질러댔다.
“키아아악! 크아앙악! 캬오오오옥!”
“이 자식! 그 손 놔! 놓으라고!”
걷어차인 충격에 내상을 입은 듯 길영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괴물의 입을 막는 동시에 놈의 목을 졸라댔다.
두 사람과 한 마리가 한 덩이로 엉켜 있을 때 드디어 바닥에 끌리는 무시무시한 물건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좋아… 훌륭하다, 너희들. 20년 전의 싸움도 항상 이런 식이었지.”
먹이를 앞에 둔 맹수 같은 얼굴로 강산하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의 등에는 예의 그 무식한 양손 검이 매달려 질질 끌려오는 중이었다.
그걸 본 청색 리자드맨의 얼굴에 경악이 떠오르자 길영이 꼴좋다는 듯 웃어댔다.
“넌 이제 뒈졌어, 이 괴물아! 널 인절미로 만들어 줄 쇳덩이가 저기서 다가오고 있다고!”
“키이이이아아아앗!”
녀석이 절망적인 몸집으로 바둥거렸다.
그러나 길영의 끈덕진 움직임에 녀석은 자리를 피할 수가 없었고 멀리서 달려오는 산하의 눈빛이 도살자처럼 불타올랐다.
바로 그때였다.
“우왓, 이 자식!”
놈의 몸에 난 비늘이 일제히 위로 곤두섰다.
아까처럼 몸을 부풀리려는 것일까?
허나 그게 아니었다.
놈의 비늘이 전부 은색으로 변하며 동시에 온몸이 무시무시하게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그걸 보던 백미희가 경악에 차 부르짖었다.
“서, 설마 경질화(硬質化)! 저런 능력까지 있었다니!”
놈과 엉켜 있던 길영과 지나가 비통하게 부르짖었다.
“아,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