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8화. 욕망의 히든 던전(2)

보스 방 문을 열면서 이신우는 단단히 경고했었다.
“최길영 씨, 윤지나 씨. 당신들이 할 수 있는 건 전혀 없어. 혹시나 도와보겠다고 절대 나서지 말라고. 그저 걸리적거릴 뿐이야. 내 말 알아들었나?”
그러나 그가 그렇게 엄포를 놓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혹시라도 귀속 아이템이 나오면 골치 아파진단 말이지.’
히든 던전을 독식하는 경험은 그에게도 처음이었고 던전의 보스란 놈은 원래 높은 확률로 귀한 아이템을 떨어뜨리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런 물건은 보스 전투에 참여한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귀속 아이템이 되기 쉬웠다.
그러니 자기 외에 단 한 놈이라도 전투에 참여했다간 그와 아이템을 나눠야 하는 아까운 상황이 벌어질 테니 기를 쓰고 그것을 막은 것이다
헌데 지금 눈앞에 나타난 보스라는 녀석은…
“대체 뭐야 저게?”
커다란 보스 방 안에 있던 것은 거대한 파이어 서펀트도 무시무시한 창과 함께 폼 잡고 있는 리자드킹도 아니었다.
거기에 있던 것은 기묘한 청색 비늘을 가진 왜소한 리자드맨 한 마리였다.
녀석의 비늘이 기름을 바른 듯 묘하게 번질거렸다.
“뭐야 이게, 시발!”
내심 귀한 아이템을 기대했던 신우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제기랄! 고작 2층의 히든 던전이라 제대로 된 보스가 나오지 않은 건가? 빌어먹을!”
“에… 쉽게 던전 클리어하게 됐으니 좋은 것 아닌가요?
“좋긴 개뿔이! 내가 독식할 아이템 없어졌…….”
“네?”
길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는 재빨리 헛기침을 했다.
“엇흠! 보스를 상대로 이 몸의 화려한 전투를 보여줄 기회를 잃어버려서 아쉽다는 뜻이야.”
“아, 그렇군요.”
“쳇, 하여간 잔챙이가 나왔으니 빨리 없애버리고 그만 돌아가도록 하지.”
“히히, 이신우 헌터님. 우리 수익분배는 제대로 해주시는 거죠?”
“젠장, 몇 번을 말해. 알았다니까!”
청색의 리자드맨이 슬그머니 몸을 돌려 이쪽을 바라볼 때까지도 그는 그렇게 시시덕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놈의 입가가 꿈틀대며 움직인 것을 산하는 똑똑히 보았다.
‘저 자식… 방금 이쪽을 보고 웃었어. 설마 저건…….’
신우가 귀찮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앞으로 나왔다.
“제길, 어찌 됐건 빨리 처리하고 여길 나가도록 하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절대 손대지마.”
그래도 혹시 모른다.
저런 허접한 녀석이라도 귀속 아이템이 나올지…
그때를 대비해 다시 한 번 경고한 신우는 마나 블레이드를 폼 나게 꺼내 들었다.
“네가 뭐 하는 놈 인진 모르겠다만 반항할 생각 말고 곱게 죽어라. 이 몸은 아주 바쁘시거든.”
“씨이익~”
그 순간 모두들 보았다.
그 리자드맨이 이신우와 일행을 바라보며 소름 끼치게 징그러운 웃음을 짓는 것을.
동시에 놈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우왓!”
당황한 신우가 뒤로 물러나자 그의 앞가슴에 긴 상처가 생겨났다.
청색 비늘의 리자드맨은 리자드맨 종족이 흔히 드는 창이나 칼 등의 무기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방금 그 공격은 놈의 손톱이 만들어낸 강력한 일격이었다.
“이, 이놈이…….”
조금 당황한 신우가 서둘러 찢어진 상의를 벗어 던졌다.
미희에게 쿨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지 그는 거추장스런 방어구는 전혀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 그래도 꼴에 보스라고 한 가닥 숨겨둔 것이 있었구나. 좋아, 이번엔 절대 방심하지 않고…….”
거기까지 말하던 신우의 눈에 괴물의 얼굴이 들어왔다.
놈은 손톱에 걸린 이신우의 살점과 피를 정성 들여 꼼꼼히 핥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손마디 하나마다 혓바닥을 내밀어 핥으면서도 놈의 시선은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 기묘한 웃음기가 스며있다는 걸 알아채자, 신우는 자기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뭐, 뭐 저런 놈이 다 있지. 저건 그간 봐왔던 몬스터의 눈빛이 아니야. 마치 지성이 있는 것 같은…….’
이신우는 몬스터의 숨통을 끊을 때마다 그것이 도살장의 동물 도축과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이 괴물은 오히려 신우가 바로 그 동물이고 자기가 도살자라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던 것이다.
화가 난 그가 벌컥 고함을 질렀다.
“빌어먹을 도마뱀 주제에! 사지를 찢어 버리겠어!”
마나 블레이드가 한층 더 강렬한 빛을 발했다.
동시에 그의 손에 시퍼런 광채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싸이 블래스트 6연타를 먹여주마, 죽어라!”
“키이익!”
염동력 덩어리가 무더기로 날아왔으나 여유롭게 전부 피해낸 청색 리자드맨은 그저 쉿쉿거리며 상대를 흘겨보았다.
거기에 광분한 그가 고함을 치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망할 파충류 새끼! 반드시 죽여서 포를 떠먹을 테다!”
방 한가운데서 둘이 격돌하고 마나 블레이드가 폭풍처럼 번쩍였지만 청색 리자드맨은 그 모든 공격을 막아내며 여전히 혀만 날름거렸다.
허나 그때였다.
“이건 몰랐지, 괴물아!”
마나 블레이드가 순식간에 길어져 리자드맨의 어깨를 꿰뚫었다.
끔찍한 비명과 함께 괴물이 뒤로 도망치자 이신우의 통쾌한 웃음이 이어졌다.
“어떠냐, 이 비린내야. 오늘 네 엿 같은 비늘을 벗겨서 내 전리품으로 삼고 말겠다.”
“키야아아악!”
갑자기 방안을 시끄럽게 울리는 괴물의 괴성.
그것은 바로 분노, 그 자체였다.
청색 리자드맨이 분노에 가득 찬 비명을 지르자 놈의 온몸에 난 비늘이 일제히 위를 향해 일어섰다.
그리고 그 작은 몸집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어… 산하 형님?”
“왜.”
길영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저 녀석 아주 많이 화난 것처럼 보이는데요. 몸이 점점 커져요.”
“그런가 보네.”
“호, 혹시 우리가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요?”
“무려 B랭크이신 어느 헌터님께서 가만히 있으라잖냐. 우린 할 수 있는 게 없지~ 아! 네가 할 일은 하나 있어.”
“뭐, 뭔데요?”
“내 가방 열고 팝콘이나 가져와.”
“……네?”
멍한 표정의 길영 너머로 이젠 헐크처럼 우락부락해진 리자드맨의 공격에 맞서 신우는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 이 자식! 이 빌어먹을 괴물이 내가 누군 줄 알고 건방지게!”
“키아아악!”
“고작 2층에서 나온 히든 던전 보스 주제에 감히… 감히 35층을 클리어한 이 나를 이기려 들어? 어딜 감히, 너 따위가!”
“캬아아아악!”
몸집이 커진 괴물의 공격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져 신우는 그저 전력으로 그 공격을 막아내기 바빴다.
그러나 놈의 발톱과 부딪힐수록 마나 블레이드의 칼날은 점점 흐릿해졌고 동시에 이신우의 체력과 정신력도 점점 떨어졌다.
그리고 결국 한계가 찾아왔다.
“우아아아악!”
날아온 괴물의 공격을 혼신의 힘으로 맞받아친 신우가 비명을 지르며 저 멀리 나가떨어지자 일행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오직 강산하만이 입안 가득히 팝콘을 씹으며 옆에 있던 길영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얌마, 누가 일반 맛 꺼내 오래? 카라멜로 바꿔와, 쨔샤!”
“혀, 형님… 이신우 헌터님이… 지고 있어요오.”
“그래서 뭐? 쟨 어차피 못 이길 놈이었어.”
“네?!”
길영의 놀란 얼굴을 뒤로하고 산하는 직접 배낭에서 팝콘을 꺼내며 투덜거렸다.
“저 괴물은 원종(源種)이야. 저 리자드 어쩌고 하는 괴물의 기원이 되는 최강종이라고. 당연히 평소보다 몇십 배는 더 강한 놈인데 그걸 상대로 어설프게 싸우니 저 모양이지. 어이그~ 제 실력 나오기 전에 재빨리 처리했어야지.”
“으아~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해. 시체 하나 생기는 거지.”
“이봐! 살려줘, 살려달라고!”
신우가 바닥을 빌빌 기며 이쪽을 향해 소리쳤다.
“날 살려! 당장 날 살리라니까!”
“아깐 우리더러 손끝 하나 까딱 말라며?”
“이 도움도 안 되는 벌레 같은 것들! 당장 엉덩이 쳐들고 일어서서 날 돕지 못하겠-”
- 와작!
그건 무슨 과자 부서지는 소리 같았다.
공중으로 뛰어오른 리자드맨이 이신우의 등판을 짓밟더니 그의 머리통을 붙잡고 통째로 씹어 버렸다.
- 으저적, 으적 으적…
경악이 가득 찬 침묵이 감도는 동안 리자드맨의 광기 어린 식사는 계속되었다.
마나 블레이드는 이미 그 칼날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고 신우의 머리를 잃은 몸통만 부들부들 떨리는 중이었다.
“이… 이신우 씨?”
조금 당황한 듯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룡 그룹의 회장의 귀하신 딸, 백미희의 목소리였다.
“이신우 씨? 지금 거기서 뭐 하는 거죠? 날 지켜야 할 것 아니에요?”
“…….”
망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그러나 구룡 그룹의 철없는 아가씨는 그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뭐… 하는 거예요? 당신 B랭크 헌터잖아요. 내가 나름 엄선해서 고른 사람인데 거기서 그러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빠, 빨리 날 지켜줘야죠. 저 흉측한 괴물한테서 날…….”
청색 리자드맨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신우의 남은 몸을 잘근잘근 씹어 삼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놈의 탐욕스런 시선은 이미 이쪽에 고정된 상태였다.
괴물의 입에서 누런 침이 겔겔겔 흘러넘쳤다.
“지금… 대체 뭐하자는 거야! 뭐가 이따위로 밖에 일을 못햇! 네가 그러고도 B랭크얏!”
히스테릭한 미희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이신우! 이 새끼야! 거기서 왜 그러고 가만히 먹히고 있는 거야?! 이제 저 괴물을 날더러 어떻게 하라고, 이 개새끼야!”
그 한심한 꼬라지에 산하는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고 미희의 흉악한 목소리만이 그 커다란 방안을 가득 메웠다.
“이봐, 당신들! 빨리 나를 지켜! 나를 지키라고! 그러면 우리 구룡 그룹에서 나중에 엄청난 사례를 해 줄…….”
“이 멍청한 여자야, 이제 그만 좀 닥쳐. 네 잘난 돈이 지금 널 여기서 살려줄 수 있을 것 같아?”
“뭐, 뭐가 어째! 너 감히 내가 누구라고 함부로-”
“니가 누구긴, 시펄! 돈 많고 곧 뒈질 예비 시체 1호지, 이 골빈 년아.”
강산하가 백미희의 뺨을 쫙 소리 나게 갈겼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붙잡고 멍한 표정이 된 그녀를 뒤로 하고 산하는 하얗게 질려있는 길영과 지나에게 다가갔다.
“길영아, 내가 여기 들어오기 전에 분명히 경고했지. 후회하지 않겠냐고.”
“네, 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됐는데, 이제 어떻게 할래? 그냥 이대로 죽을 테냐?”
“아, 아니요…….”
“그럼 살고 싶어?”
“무, 물론이에요, 형님.”
“윤지나 씨 당신은 어때?”
그녀 또한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산하의 얼굴에 이제야 슬쩍 미소가 돌았다.
“그럼 좋아. 20년 전에 했던 것처럼, 목숨을 걸어 목숨을 따는 도박을 이제 시작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