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7화. 욕망의 히든 던전(1)

팩트 폭력을 당한 신우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만 껌뻑거렸다.
“솔직히 말해봐. 지금 헌터라는 놈들, 던전의 돈 되는 것들에만 정신 팔려 인류를 지키네 마네 하는 건 솔직히 관심도 없지?”
“…….”
“뻔하다, 이놈들아. 쯧쯧. 빨리 길이나 뚫어. 지루해 죽겠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산하 앞에서 신우는 뭐 하나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땀만 뻘뻘 흘렸다.
그리고 백미희는 속으로 쓰게 혀를 찼다.
‘이신우… B랭크의 젊은 유망주 중 하나라더니 언변에 영 문제가 많군요. 대중 앞에 나설 상품으로선 이건 좀 곤란한데.’
아울러 그녀는 신우에게 계속 엿을 먹이고 있던 산하를 힐끔 쳐다보았다.
‘강산하라고 했지. 입담도 좋고 사연도 좋고 외모도 괜찮아. 문제는 실력인데, E랭크 정도론 화젯거리가 안 될 거란 말이지. 그럼 고가 장비로 밀어줄까?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그녀가 계속 머리를 굴리는 동안에도 일행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신우는 이젠 단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는 듯 굳어진 표정으로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만 묵묵히 썰어댔고 산하는 마나 블레이드의 기묘한 검날에 잠깐 눈길을 주다 곧 고개를 돌려버렸다.
2층의 구조는 1층과 별다를 것 없었고 시체 바퀴와 늌크를 갈아버리던 신우는 곧 2층의 마지막, 3층 출입구에서 위엄 있게 등장한 두 마리 대장 늌크를 단칼에 베어 버리고 주변에서 작은 버섯 하나를 찾아 뽑아 들었다.
“이번엔 운이 좋네요. 보시죠, 백미희 아가씨. 이것이 바로 소문의 난바 버섯입니다. 페니실린의 수백 배 효과가 있는 항생제의 재료죠. 이 작은 버섯 한 송이가 대략 천만원까지도 갑니다.”
“우오오~ 당연히 이거 수익 분배해주시는 거죠?”
“그렇게 침 흘리지 말아. 약속한 대로 해줄 테니까, 쯧…….”
아깝긴 꽤나 아까운 모양인지 신우의 눈자위가 푸르르 떨렸다.
“더 심층으로 갈수록 몬스터들이 떨어뜨리는 물건도 많아지고 이렇게 채집, 채광하는 경우도 많지요. 덕분에 귀중품 회수에 특화된 포지션도 있답니다. 자, 이제 만족하셨습니까?”
“대충이요.”
“그럼 이제 돌아가도 되겠죠?”
아까부터 입만 열면 산하에게 처발리던 신우는 어서 여기서 나가고 싶은지 지긋지긋하단 얼굴을 하고 있었다.
헌데 미희의 표정이 살짝 묘하게 변했다.
“그런데… 아직 끝나지 않은 것 아닌가요? 저건 뭐죠, 이신우 씨?”
“네?”
그녀가 가리킨 곳은 2층 던전 막다른 곳의 한 벽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치 촛불처럼 하늘하늘 일렁이며 빛을 내는 기묘한 광채가 나타났다.
“…서, 설마?”
황급히 그곳으로 달려간 신우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히, 히든 던전? 던전 2층에 히든 던전이 나왔다고?”
“뭔가요? 그 히든 던전이라는 게?”
“으…….”
길영의 질문에 신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뭔가 엄청나게 말해주기 싫은 모양이었으나 이럴 땐 눈치가 빠른 길영이 그에게 매달려 마구 졸라댔다.
“아우~ 뭔데 그러세요. 좋은 거 있으면 같이 나눠 먹어요, 쫌!”
“끄, 으윽…….”
한참을 끙끙대던 신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건 히든 던전이란 거다. 아주 희박한 확률로 나타나는 던전 속 또 하나의 숨겨진 던전이라고 불리지.”
“그래서요?”
“그 층수에 비해 더 강력한 몬스터들이 나오지만, 그 보상은 실로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금 우린 땡잡았다는 말이죠? 야호오!~”
길영은 지나의 손을 붙들고 빙빙 돌았다.
“우하하! 봐요, 보라니까요! 제가 이렇게 운이 좋다구요. 손 하나 안 대고 짭짤하게 한몫 벌게 생겼네, 우히히히!”
보기 드문 현상이라는 소리에 미희의 얼굴에 흥미로운 표정이 떠올랐고 지나도 생각지 못한 행운에 기분이 좋은 듯했다.
하지만 산하만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형님, 표정이 왜 그러세요? 우리 지금 대박 맞았다니까요?”
“…너 저기 꼭 들어가야겠냐?”
그의 얼굴이 살짝 구겨져 있는 걸 본 순간 신우의 잔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저놈 표정이 안 좋은 걸 보니 이 안에 들어가기 싫은 모양이군. 그렇다면 여기서 네놈 코를 납작하게 해주지. 히든 던전 공략은 풀파티가 원칙이지만, 고작 2층의 히든일 뿐이니 나 혼자서도 충분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의 얼굴이 곧바로 의기양양해졌다.
“훗! 혹시 저걸 겁내는 건가, 잘나신 1세대 각성자께서?”
“…….”
“헌데 이걸 어쩌나? 오금이 저리신 모양인데 난 저길 꼭 들어가야겠거든. 이런 곳에서 히든 던전이라니, 초보 헌터들에겐 아주 귀한 경험이라서 말이지. 그래도 정 무섭다면 그대로 꽁지 말고 찌그러지는 걸 허락해 주마, 후후후.”
“그래요, 형님! 뭐가 무섭다고 그러세요. 이신우 헌터님은 35층까지도 가보셨다고 하잖아요. 이런 곳이야 식은 죽 먹기죠.”
“……너 말이다.”
산하는 의외로 신우가 아니라 최길영을 쳐다보았다.
“진짜 후회하지 않을 거냐?”
“후회요? 후회를 왜 해요, 헤헤헤헤.”
“쯧!”
마지막으로 혀를 찬 산하가 발걸음을 옮기자 신우가 당황하여 소리를 질렀다.
“이, 이봐! 어디로 가는 거야?”
“어디긴. 저기로 들어가자며?”
“내, 내가 앞장설 거다. 네놈은 저리 비켜! E랭크 쓰레기 주제에 어딜 건방지게!”
“그래그래, 알았다고. 잘~ 해보셔. 그렇게 랭크로 사람 차별하는 넌 너보다 윗 랭크 만나면 알아서 벌벌 기겠구나. 신발이라도 핥아 주냐?”
“입 닥쳐! 이 쓰레기가!”
호기롭게 고함을 친 신우를 따라 길영도 지나도 그리고 백미희까지 그 불길한 광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한층 더 짙어진 불길함에 인상을 찌푸린 산하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게 바로 나를 향한 초대장인가 본데… 좋아, 가주지. 20년 전의 망령 중 과연 뭐가 내 앞에 마중 나올까?”

***

“타아앗!”
신우의 마나 블레이드가 폭발할 듯 불타올랐다.
크기가 두 배는 더 커진 파란 칼날이 악어의 얼굴을 한 인간형 괴물의 머리통을 둘로 갈라버렸다.
“크에에엑~”
“흠, 리저드맨이라. 보통 15층에서 나오는 놈들인데 여기서 보는군.”
강산하와 일행들은 문제의 히든 던전 속에 들어와 있었다.
그들이 그 갈라진 공간의 틈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던전의 입구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지나가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으나 신우는 대수롭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했다.
“별 것 아니야. 히든 던전은 원래 진입하면 나갈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던전 보스를 처치하면 다시 입구가 열리니까 걱정하지 말도록. 나도 여기선 전력을 다할 생각이니까.”
그는 양손의 마나 블레이드 말고도 한 쌍의 팔찌를 꺼내 양 손목에 채웠다.
“이제부턴 이 싸이킥 부스터까지 사용해서 내 마법 실력도 보여주지. 지금 내 스탯을 공유해 뒀으니 보고 싶은 사람은 아이 모니터를 참고하도록.”

< 이신우 - 랭크 B >
힘 : 41
민첩 : 39
체력 : 34
정신 : 29(+5 싸이킥 부스터)
개인 등록 포지션 : 듀얼 어태커

“우와… 능력치가 전부 40에 가까우시네.”
“자 다들 봤겠지? 여기가 히든 던전이라고 해서 불안해할 필요는 없어. 최길영 씨, 당신은 올 스탯 50을 넘어서는 각성자를 뭐라 부르는지 알고 있나?”
“초인(超人)… 아닌가요?”
“잘 맞췄다. 스탯이란 상승시킬수록 점점 성장이 어렵고 까다로워진다. 나중엔 던전에서의 전투론 더는 스탯이 올라가지 않게 돼, 결국 타워의 힘까지 빌리게 되지.”
이신우가 양팔에 찬 팔찌, 싸이킥 부스터를 가리켰다.
“이놈까지 사용했을 때 나는 실로 초인의 경지에 다가가게 된다. 다들 염려 푹 놓도록. 백미희 아가씨께서도 마음 놓으십시오. 제가 전력을 다해 지켜 드리겠습니다.”
“좋아요, 아주 믿음직하군요.”
“물론 아까처럼 절대 몬스터에게 손을 대시면 안 됩니다. 구룡의 호신 의류라도 한계는 있는 법이니까요.”
그렇게 신신당부한 뒤 신우는 자신의 전력을 발휘하여 그야말로 폭풍처럼 던전을 휩쓸어 가기 시작했다.
히든 던전의 정체는 리자드맨이라 불리는 도마뱀 인간들의 서식처로 대략 15층에 해당하는 난이도였으나, 신우의 손에 들린 마나 블레이드는 고무줄처럼 크기와 길이를 변화시키며 적들을 분쇄해 버렸다.
“싸이 블래스트(Psy blast)!”
“쿠에에겍~”
맨 앞의 적을 썰어버린 뒤, 뒤에서 투창을 날리던 녀석을 향해 파란 광탄이 날아가자 놈의 머리통이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이신우의 포지션, 듀얼 어태커는 전, 후방을 오가며 날뛰는 범용 딜러를 가리키는 말로 원거리 마법과 근접 전투, 둘 다 소화할 수 있는 그이기에 가능한 포지션이었다.
“와… 정말로 B랭크는 다르네요. 원랜 저거 두세 명이 각자 포지션 나눠 맡는 건데 혼자 다 해결하시네.”
“그냥 저 무기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니고?”
산하가 자유자재로 늘어나던 무기, 마나 블레이드를 가리켰다.
“그것도 그렇긴 한데 이신우 헌터님이 마법을 쓰실 줄 아시니까 저 마나 블레이드도 쓸 수 있는 거겠죠.”
“마법… 지금은 저런 걸 마법이라고 인정하나 보군.”
“어? 형님 땐 뭔가 달랐어요?”
“저건 굳이 말하자면 초능력이잖아. 방금 녀석이 쏜 것도 염동력 계열 같은데.”
“에… 그렇긴 한데 저게 마법을 쓰는 각성자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에요.”
“내가 아는 놈들이 쓰던 마법이라는 건 좀 달라서 말이야. 그 능력이 다들 제멋대로였지.”
“헤에… 그땐 그랬군요.”
둘의 대화야 어쨌건, 제대로 작정한 신우는 혼자 던전을 파괴해 버리는 중이었다.
리자드맨의 둥지는 칙칙한 녹색 이끼가 무성한 신전 같은 곳이었으나 겉보기에 느껴지는 불길함관 다르게 신우의 마나 블레이드 앞에서 무력할 뿐이었다.
제법 돈이 되는 리자드맨의 비늘을 쓸어 담으며 거침없이 전진하던 일행은 결국 히든 던전의 마지막, 커다란 방으로 이어지는 철문 앞에 다다랐다.
“여기가 분명 보스 방일 것입니다. 이 안의 보스만 처리하면 이 히든 던전도 끝나는 거죠.”
“혼자서 모두 처리하다니 훌륭해요. 역시 촉망받는 B랭크 유망주답군요. 돌아가면 구룡에서 좋은 일로 연락이 갈 거예요.”
“영광입니다, 아가씨.”
씨익, 웃어 보인 신우는 수통을 꺼내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일행을 한데 불러 모았다.
“이제부터 보스 방인데 주의를 하나 주겠다. 리자드맨의 둥지에서 나타나는 보스는 두 종류로 거대한 뱀 모습을 한 파이어 서펀트, 아니면 인간형 몬스터인 리자드킹이 나오게 되지. 후자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문제는 첫 번째다.”
그는 돌바닥에 대고 커다란 구렁이의 모습을 그렸다.
“만약 파이어 서펀트가 나올 경우 반드시 놈의 정면에서 피해 있어야 해. 간헐적으로 강력한 화염 브레스를 내뿜거든. 나야 당연히 피하지만 문제는 당신들이지.”
바닥의 그림에서 파이어 서펀트가 일직선의 화염 브레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내가 싸우는 모습을 구경하는 건 상관없는데 거기에 정신 팔려 멍청하게 놈의 화염 브레스 경로 앞에 서 있지 말라고. 곧바로 통구이가 되어 버릴 테니까. 특히 최길영 씨, 당신은 꼭 주의해.”
“네. 알겠습니다, 히히.”
“물론 아가씨도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파이어 서펀트 자체는 별 것 아니지만, 그 브레스를 막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알겠어요. 그렇게 하죠.”
“최길영 씨 그리고 윤지나 씨. 당신들 둘이서 꼭 아가씨와 함께 움직여. 당신들 목숨보다 귀중한 분이니까.”
“엥? 우린 우리 목숨이 더 중요한데요?”
“…젠장, 좋아. 당신들 목숨만큼 중요하다고 해둘게. 하여간 꼭 명심하라고.”
말을 마친 신우는 천천히 보스 방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강철이 긁히는 육중한 소리와 함께 보스 방으로 들어선 순간, 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대체 뭐야 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