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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적폐청산(積弊淸算) (3)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 문 당장 열어! 이번 사태 주동자를 제외한 너희들에게는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 그러니 어서······.”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조중한 의장이 목이 터지라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치안본부 구치소 3층.
소란이 한참이다. 164명이나 되는 이들을 가둬 놓다 보니 시장통이 따로 없었다.
“단결!”
“어, 수고가 많다. 여기 의장하고 서지연이란 여자가 있는 방으로 안내해라.”
성현과 해미, 두식이 용칠을 필두로 총상에서 회복한 최동원 상사를 비롯한 경계 임무나 기타 필수 인원을 제외한 모든 부대원이 이곳을 찾았다.
철컥.
잠긴 철문이 스르륵 열렸다.
“이놈! 네놈들이 감히 지금 무슨 짓······.”
“저 돼지 새끼 끌고 나오고, 저 뒤에 있는 늙은 계집도 끌고 나와.”
성현이 가리키며 말하자 대원들이 날듯이 감옥 안으로 뛰어들어 둘을 개 끌 듯 끌고 나왔다.
“놔라! 이놈들, 하늘이 무섭지 안······.”
퍼걱!
“크헉, 끄어억······.”
끌려가던 조중한 의장이 완강하게 버티며 소리 지르자 조만호 상사가 워커 발로 입을 걷어차 버렸다.
입안이 터지고 깨진 이가 진득한 피와 섞여 줄줄 흘러내렸다.
“야 이 돼지 새끼야. 너희 때문에 애꿎은 애들이 얼마나 죽은 줄 알고 주둥아리 함부로 놀려?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안 쳐 죽이는 걸 감사히 여겨라.”
“헙!”
그나마 상황파악이 되는지 서지연은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성현은 이들을 데리고 치안본부 2층으로 내려왔다.
“대원들 데리고 가서 남은 위원회 놈들 전부 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하거나 문제 있었던 놈들은 전부 끌고 내려가. 단, 애들은 미리 이야기한 대로 거주지에 있다던 보육원으로 보내라.”
성현의 지시에 코맹맹이 김영기 중사가 대답하고 대원들을 이끌고 3층으로 향했다.
“이봐, 이미 알고 있겠지만 니들 두 연놈 때문에 죄 없는 이들이 죽고 다쳤다. 변명 있으면 해봐.”
조중한 의장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제 다 틀렸음을 직감했는지 침묵했다.
“나··· 난 아냐. 다 이놈이 혼자 한 짓이지 난 아냐. 난 그러라고 한 적 없어. 내, 내 잘못이 아냐.”
서지연이 정말 아니라는 듯 조중한 의장을 삿대질하며 말했다.
성현은 기도 안 찬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참 모질게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모습이 가증스럽다 못해 징글징글했다.
“머, 머여? 이녀니 지굼 뭐라 씨부리는거여. 니 녀니 부추겨 노코 나야마로 이녀 때무에 그··· 그리 된거여. 나야 마로 죄가 없어!”
앞니가 뭉텅이로 빠져 바람 새는 소리로 조중한 의장이 자신의 무고를 주장했다.
이 둘을 바라보는 성현의 표정이 가관이다.
‘정말 저열하기 그지없는 족속들이다.’
제아무리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지만, 바닥을 드러낸 인성은 보는 이들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런 모습을 보니 그들에게 어울리는 형벌이 떠올랐다.
“좋아. 둘 다 잘못이 없다하니, 잘못을 하나라도 시인하면 하나는 살려준다. 자 누구야?”
성현이 기회를 준다는 말에 두 연놈은 온갖 있는 욕 없는 욕을 해대며 서로를 비방하기 시작했다.
“저, 형님. 정말 살려주시려고요?”
최동원 상사가 귀에다 대고 묻는다.
“글쎄다. 과연 저치들 중에 한 명이라도 죄를 뉘우칠까?”
“아-, 넵. 알겠습니다.”
최동원 상사가 그제야 성현의 속뜻을 알고 한 발 뒤로 물러선다.
“이봐, 시간 없어 빨리 결정해.”
성현은 3층에서 미리 지정한 이들을 끌고, 1층에 대기 중인 차량으로 옮겨지는 이들을 슬쩍 보며 말했다.
이들도 말이 많았다.
‘살려주시오’부터 시작해서 욕지거리하는 놈, 그리고 자신은 죄가 없다고 떠드는 놈들까지 각양각색이다.
“단결! 총 164명 중 138명 이송준비 완료했습니다.”
부대원 하나가 다가와 보고했다.
성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직도 말씨름 중인 둘을 바라봤다.
“어쩔 수 없지. 둘 다 데려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작은 유희쯤으로 생각하고 둘을 놀려 먹었다.
“이놈아. 죽으려면 너 혼자 죽어! 왜 나까지 끌어들여 이 똥물에 튀겨 죽일 놈아-!”
“이녀니 미쳐도 꼬게 미치지 야이 미치녀나 왜 자알사고있는 나하테 와서 이 사단을 만드고 지라리야. 지기녀나!!”
둘은 끌려가면서도 서로를 죽일 듯이 욕하고 발길질하고 난리였다.
“동원아, 저 둘 같은 차에 실어라. 수갑은 풀어주고.”
최동원 상사는 풋, 하고 웃었다. 성현의 말대로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안 봐도 눈앞에 선했다.
치안본부 앞 통로에 수송 트럭 네 대와 험비 다섯 대가 대기 중이다.
성현은 자신의 말대로 한 차량에 올라타는 조중한 의장과 서지연. 둘을 지켜봤다.
“아쉽네.”
이 둘이 만들 상황을 직접 보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웠다.
성현은 제일 선두에 있는 험비에 올라탔다.
“두식이는?”
운전대를 잡은 용칠이만 보이고 두식이가 보이지 않자 성현이 물었다.
두식이와 용칠이는 성현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와 당번병 역할과 운전병을 자처했는데, 그런 두식이가 보이지 않았다.
“넵. 형님은 뒤에 수송 차량에 타시고 가신다고 하시던데요.”
“그래?”
성현은 의아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해미는?”
언제나 옆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지 모르는 해미도 지금은 옆에 없었다.
“저, 그게 해미양도 뒤에 수송 차량에······.”
그제야 성현은 눈치챘다. 좋은 구경 지들은 하겠다고 수송트럭 조수석에 탔음을 알았다.
“에휴, 알겠다. 그만 출발하자.”
선두의 험비가 출발하자 뒤따라 차량들이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지금 이송되는 이들 때문에 젊은 군인은 41명이 죽었고, 중상자도 많아 희생자는 더 늘어날 예정이었다.
직접적으로 선동하고 찬동한건 물론이고, 이를 간접적으로 묵인한 모두에게 책임이 있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성현이 없었다면 사상자는 지금의 몇 배로 늘었을 거고, 어쩌면 입장이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
저들 중 진심으로 뉘우치는 자가 있을 수도 있지만, 예외로 두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
하나의 예외를 두게 되면 예기치 못한 예외가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고, 그때마다 흐지부지 넘어갈 수는 없었다.
성현이 제시한 형벌을 모두 찬성했다. 필살의 각오로 나서는 전장이 아닌 이상, 피를 직접 묻히는 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벼랑 끝으로 내몰지만 떠미는 일은 남의 손을 빌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뭐, 편안하게 보내 주기도 싫고······.’
끼이익.
성현이 잠시 사색에 빠진 사이 어느덧 도로정비가 완료된 지점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놈들 중 단 한 놈도 여기에 와 본 적은 없을 것이다. 차량 위와 아래에 좀비들 사체로 가득하고, 도로 가 쪽에는 좀비 사체를 태운 흔적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여태껏 편안히 살아온 이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었다.
“재미 좋았냐?”
성현이 해미와 두식을 보고 말했다.
“아···. 아저씨 알고 있었구나.”
“크흠, 저······.”
해미는 혀를 샐쭉하게 내밀며 성현의 옆으로 와 팔짱을 끼고 아양을 떨어댄다.
그리고 두식은 슬그머니 뭔가를 내민다. 성현이 이게 뭐냐고 턱짓으로 물었다.
“찍어 뒀습니다.”
두식은 성현이 스마트 폰을 받자 ‘나 잘했죠.’라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칭찬은 없지만 성현의 흡족한 표정을 보고 두식은 충분했다. 한 건 했다는 얼굴로 당당히 성현의 왼쪽에 섰다.
“형님, 곧 해가 저뭅니다.”
최동원 상사가 와서 계획했던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려왔다. 기운 해가 먼 산꼭대기 위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성현은 슬쩍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고개를 들었다.
“하차시키라고 해.”
“모두 하차!”
최동원 상사의 지시에 따라 대원들이 차량에 탄 이들을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안 내린다고 떼를 쓰고 사정하는 이들부터 용서해달라며 비는 이들은 양반이다. 아예 포기하고 저주를 퍼붓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 모두 자신의 운명을 일찌감치 예상했으리라.
그중 산발을 하고 입가가 피투성이인 서지연은 두식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아이고’를 연발하며 땅을 치고 있었다.
“너희들은 사람들을 착취하고 제 배만 채운 돼지다. 거주민들은 적은 양의 두 끼를 주고 니들은 밤마다 연회를 열고 흥청망청했다. 그리고 구해준 은혜도 모르고 원수로 갚은 이도 있다. 죄 없는 청년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이에 너희는 유죄다. 살아서 죄만 늘 것이고, 다수가 피해만 본다. 너희는 함께 있을 자격이 없다. 죗값을 달게 받아라.”
성현의 우렁찬 말에 잠시 정적이 흐른다.
“돌아가자.”
곧 해가 지고 땅거미가 드리우면, 허기진 좀비들의 한끼로 미련 많은 생을 마감하게 될터였다.
성현은 노을이 드리운 서 산 넘어를 바라보고 곧장 차량에 탑승했다.
수송 차량과 험비들이 떠나자 차량을 따라오며 악다구니를 쓰는 이들도 있고, 체념하고 눈물을 떨어뜨리는 이들도 있었다.
성현은 짧은 악연들과 작별을 고하고 눈길을 돌렸다.

* * *

거주지로 돌아가는 차 안.
해미의 안색이 그리 좋지 못했다.
“해미야.”
“네? 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니?”
“아···. 그게 방금 그 사람들 모두 죽겠죠?”
“음······.”
성현은 해미가 밝게만 보여 미처 생각지 못했다.
죄짓고 나쁜 놈들이라곤 하나, 어찌 되었든 같은 사람이었다. 죽음으로 내몬 그 현장의 중심에 해미도 같이 있었다.
성현조차도 과히 좋은 기분이 아님에 해미의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기존의 윤리나 도덕적 관념과 크게 이반되는 지금의 상황이 혼란을 가중시켰을 거라 생각했다.
“해미야. 세상이 변한만큼 그에 따르는 모든 질서도 바뀌어야 한다. 불과 며칠 전에는 법이 있어 어떻게든 죄짓고 나쁜 짓을 하는 놈들에게 강제력을 취할 수단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떠니?”
“법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죠.”
“맞다. 여기 대피소를 보았듯이 위정자가 곧 법이고, 그들의 독단에 모든 일이 결정되고 이루어졌다. 해선 안 될 짓을 하고 잘못을 저지르지만, 누구도 이를 제지하지 못했다. 하물며 우리도 힘이 없었다면, 지금쯤 저놈들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 처했을 거다. 그렇지 않겠니?”
“네···. 아마도.”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다. 세상이 변한만큼 우리도 변해야 한다. 함께 있어서 해악만 끼치는 이들이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누군가는 줘야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가장 적당하다 싶구나. 우리를 해치려는 놈들에게는 똑같이 해주면 된다.”
성현은 자기의 생각과 신념을 알려 줬지만, 이를 그대로 해미가 자신의 가치관으로 삼을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좀 더 유연하게 세상에 녹아들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생각했다.
“이타적으로 살되, 이를 의무라 생각하지 마라. 사람들을 가엽게 여기되 이용당하지 말고, 적이라 생각되면 자비를 생각하지 말자.”
성현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신조와 같은 말을 해주고, 끝을 맺었다.
해미에게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 * *

“형님. 이곳에서 지내시면 될 듯합니다.”
최동원 상사가 안내한 곳은 기존에 의장이 사용하던 관사였다.
타인의 것을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들 만큼 파렴치하지 않았지만, 어차피 이제는 주인이 없는 거처다.
이런저런 이유로 겸양하는 건 성현의 성격에 맞지도 않았고, 가식일 뿐이라 생각했다.
권하는 마당에 일부러 불편함을 고집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 잘 쓰마.”
“우와! 아저씨 여기 완전 좋아요.”
성현은 해미의 프라이버시도 있고, 아직 어리다 하나 성인으로 봐도 무방한 해미와 따로 지내는 게 맞지 않나 생각했다.
그런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찾지 못했다.
해미가 울고불고 자기 버릴 거냐고 하는 통에 달래느라 진땀을 쏟았다.
지금 해미는 신혼집을 보듯 관사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평가하기 바쁘다.
“헐 대박, 아저씨 여기 내 방 할래요.”
“어, 그래. 마음에 드는 방 있음 아무거나 골라.”
해맑은 해미를 보며 성현도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곳 대피소에 와서 구치소의 감방만 보았으니 어디를 가도 다 좋아 보이긴 할 터였다.
성현이 보기에도 이 관사는 상당히 공들여 지어졌음이 분명했다. 가히 고급 아파트에 비견할 만했다.
방은 도합 6개에 욕실이 3개 드레스 룸 2개 서재로 쓰이는 공간은 별도로 있었다. 거기다 일반 가전제품도 현대에 필수적인 것은 모두 구비되어 있었다.
“두식이 하고 용칠이가 바로 옆집이랬지?”
“네, 형님. 위원회 의원이 쓰던 관사인데 여기보단 작아도 충분히 지낼만할 겁니다.”
“그래, 신경 써줘서 고맙다.”
성현은 최 상사의 작은 배려에 고마움을 표했다.
“저, 형님. 이야기 좀 잠시 했으면 하는데요.”
“그래? 저기 앉아서 이야기하자.”
거실에 마련된 소파에 성현과 최 상사가 나란히 앉았다. 최고급 물소가죽으로 만든 소파의 감촉이 부드러우면서 탄력이 넘친다.
“이제 어쩌실 건지 좀 여쭤보려고요.”
성현은 멀뚱멀뚱 뭐를? 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설마 아무런 생각 없이 계신 건 아니시죠? 당장 각 부책임자 자리가 대부분 공석입니다. 시설관리본부, 근린복지본부, 치안 유지본부 등 아홉 개 본부 일곱 개 부서장이 모두 공석이에요. 형님이 의장직을 대신하신다지만··· 다른 자리는요?”
“너 설마··· 나보고 의장 하라고?”
성현은 웬 생뚱맞은 소리냐는 듯 반문했다.
“형님··· 진심이세요?”
최 상사가 ‘이 사람이 왜 이러시나’라는 표정을 하고, 마치 볼일 다 본 사람처럼 이야기하는 성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
좀 이상하기도 하다.
총격전 발생 후 사후처리는 모두 자신이 지시하고 모두가 그에 따라 움직였다.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론을 내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저 전투 부대 자체가 자신의 후임병들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했던 것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를 넘는 일이었다.
제아무리 이해 당사자라 해도 일을 시키는 자신이나 이를 당연히 여기며 따르는 이들 모두가 이상하게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