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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적폐청산(積弊淸算) (2)



경비대 본부는 거주지가 아닌 집하장 외각에 별도의 병영을 건설해 사용 중이었다.
처음 성현이 도착해 차량을 바꿔 탄 곳이 이곳이었다.
타타타탕. 타탕!
성현이 도착했을 때는 전투 부대원들과 경비 부대 간에 총격전이 한참이었다.
아군은 기껏해야 50여 명, 적은 200이 넘어 수적으론 분명한 열세였다. 하지만, 실질적인 전투는 오히려 아군이 밀어붙이는 형국이었다.
전투 부대 대원들은 컨테이너와 같은 엄폐물 뒤에서 조준사격 중이었고, 경비대 본부 군인들은 부대 앞에 쌓아둔 모래주머니와 콘크리트 바리케이드에 몸을 깊이 숨기고, 간신히 총구만 내놓은 체 대충 쏘고 있었다.
확연히 틀린 전투자세였다.
전투력의 차이는 실전에 임하는 자세부터 다르다.
“박 중사님!”
걸걸한 목소리로 성현을 반기는 이가 있었다.
“이야-, 만호 아니냐. 너도 여기 있었구나.”
한때 같은 중대에 있었고, 가까이 지낸 후임 중 하나였다.
“저도 박 중사님 이야기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역시 전설이 그냥 전설은 아니었구나, 했습니다.”
성현은 조만호 상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반가움을 표했다.
하지만 전투 상황 중에 오래 안부만 묻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우선 동원이부터 구하고 보자. 우리 밀린 회포는 다 함께 풀자. 그나저나 저기 쟤들, 다 죽일 건 아니지?”
성현은 경비 부대 본부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음먹었다면 진즉에 모두 사살하고 진입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 애들은 죄가 없지 않습니까. 일단 살리고 싶은데··· 중사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다 제끼고 진압하는 게 맞겠습니까?”
성현은 조 상사의 말에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 답은 나와 있었다.
“일단 시간이 없으니 설명은 나중에 하자. 저기 애들은 내가 해결할 테니까. 내가 하자는 대로 좀 해줘.”
조 상사는 성현이 대단한 건 알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다.
둘 중 하나라 생각했다.
시간을 들여 차곡차곡 피해를 강요해서 지치게 하는 방법, 이건 당장에는 하책이다 중환자인 최동원 상사가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도 아니면 중화기를 동원해 그냥 초토화 전술로 가는 방법. 이 두 가지였다.
“하, 하지만··· 야간도 아니고 단독작전은······.”
조만호 상사는 뜻밖의 말에 무리임을 말하지만, 성현은 헬멧의 투명 바이저를 내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믿어라. 모두 사격중지 시켜.”
성현의 말에 잠시 말문이 닫힌 조 상사는 어째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성현이 무슨 수를 내든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성현이 결코 무모한 사람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저돌적이지만, 아무런 계획 없이 말만 앞서지는 않다고 여겼다.
눈을 질끈 감은 조만호 상사는 부대원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사격중지!”
“만호야 조금 있다 보자.”
성현은 컨테이너에서 벗어나 조금 빠르게 걸어갔다.
경비 부대 본부까지는 약 120m.
저벅저벅.
성현이 대략 15미터 정도 걸어가자, 경비대 측에서 반응이 나타났다.
타탕. 타타탕.
“아니 저 개새끼들이!”
성현을 향해 총질을 해대는 경비대를 보고, 조만호 상사가 놀라 소리쳤다.
성현은 비무장 중이다.
손에는 어떤 무기도 쥐고 있지 않았다.
조만호 상사는 성현이 대화로 설득하러 가는 것으로 판단했고, 위험하겠지만 그래도 설마 했었다.
즉각 대응 사격을 하고 성현을 구하려 했다.
헌데.
티티팅팅팅.
성현의 몸통과 헬멧에 맞은 탄환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끔찍한 장면은 연상하던 이들은 영문을 몰라 멍하니 바라만 봤다.
당연히 피를 쏟고 쓰러질 거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아니었다.
성현이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타타타탕.
티팅팅. 까깡.
빗발치듯 무수히 쏟아지는 총탄이 성현의 핼멧과 몸통을 두드리지만 모조리 퉁겨내고,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순식간에 경비 부대 방어라인 20m 지점에 다다랐다.
경비대 대원들도 잠시 사격을 멈추고 당황해했다.
자신들의 총이 통하지 않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했다.
“니들도 그러고 싶어 그러고 있겠냐.”
가까운 거리라 경비 부대 본부를 지키는 병력들에게 충분히 성현의 목소리는 전달되었다.
성현은 보란 듯이 창고에서 K3 경기관총 두 자루를 꺼내고, 200발이 삽탄된 드럼 탄창을 결속시켜 한 자루씩 손에 들었다.
“살고 싶으면··· 모두 대가리 박아-!”
성현은 걸음을 떼면서 방어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모래주머니와 두터운 콘크리트 벽에다 총을 난사했다.
투타타타타타.
경비대원들은 자동 반사적으로 상체를 숙이고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모래주머니가 터져나가고, 두께 20㎝가 넘는 콘크리트가 푹푹 파이고 갈라져 틈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도 몇몇이 고개를 들고 대응 사격을 했다.
티티팅팅. 까가깡.
성현은 몇 명은 본보기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지금처럼 반격하는 놈들 때문에 시간을 지체해선 안 되었다.
안에는 생사를 오갈 최동원 상사를 구하는 게 급했다.
“날 원망마라! 살고 싶은 놈들은 모두 무장해제하고 대가리 박아!!”
성현은 한 놈이라도 더 살리고 싶어 크게 소리치며 방아쇠를 당겼다.
예열된 총구에 다시금 불꽃이 쉼 없이 튀어 나왔다.
버버벅. 퍼버벙!
대응사격을 하던 대원의 몸통이 순식간에 찢어발겨 지고 머리는 폭죽마냥 ‘뻥’ 소리를 내며 터져나갔다.
한군데에 몰려 성현을 쏘던 무리가 일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팔다리가 날아가고, 피분수를 뿌리며 쓰러진다.
‘후드드득’하며 큰 살점들이 주변에 아무렇게나 흩뿌려지고, 주변의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총을 떨어트리고 바닥에 머리를 박고 떨고 있다.
성현은 이미 경비 부대 방어라인을 넘어 안으로 한참 들어와 있었다.
딸각딸각.
K3경기관총의 탄약이 떨어졌다.
성현은 한 자루는 바닥에 버리고 새로운 드럼 탄창 하나를 꺼내 손에 들고 있는 K3경기관총에 결속시켰다.
철컥.
노리쇠를 후퇴 고정하고, 총구를 돌리며 주위를 돌아봤다.
지나쳐온 곳에 있는 경비대 병사 이백여 명 이상이 모두 총을 멀찌감치 던지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사, 사격중지! 사격중지!”
경비 부대 부대장인 진경준 중령이 팔을 위로 올려 크게 교차시키며 소리쳤다.
그리고 성현에게 다가왔다.
“하, 항복하겠습니다. 제발 그만해주십시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총알을 전부 막아낸 것도 모자라 허공에서 총을 꺼내어 공격했다.
이미 본부 방어라인은 뚫렸고, 대원들 대부분이 겁에 질려 더 이상의 전투는 불가능했다.
“모두 부대 밖으로 나가서 전투 부대원들의 지시를 따른다. 실시!”
성현이 소리치자 대부분의 병사들이 나 살려라 하고 경비 부대 본부 밖으로 달려나갔다.
“모두 무릎 꿇고 손 뒤로.”
이미 경비 부대 본부 앞까지 진입한 전투 부대원들의 소리가 들린다.
제대로 지시를 따르지 않았는지 몇 명은 다리를 걷어차이고, 바닥에 쓰러져 버둥댔다.
그리고 해미가 화이트 색 라이트 아머와 헬멧을 쓰고 달려오는 게 보인다.
“최동원 상사는 어디 있나?”
성현은 진경준 중령을 향해 물었다.
“본관 1층 의무실에 있습니다.”
“안내해.”
성현은 고개를 까닥거리며 진 중령에게 앞장서라 전달했다. 진 중령은 힘없이 돌아서 경비대본부 건물로 향했다.
성현이 진 중령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갈 때 몇몇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렀다.
“아저씨. 수고하셨어요. 근데 다쳤다는 동생분은 어디 계세요?”
“이제 찾으러 간다.”
해미를 따라온 조만호 상사를 비롯한 이름 모를 대원들 십여 명도 함께 조용히 따랐다.
그리고 연신 성현과 해미를 힐끔거린다.
궁금한 게 한가득이지만 꾹 눌러 참고 모두 입을 열지는 않았다.

* * *

해미의 손이 빛으로 물든다.
찬란한 광휘가 순식간에 확장하더니 최동원 상사의 전신에 깃들었다.
그리고 그보다 작은 빛들이 수차례 더 최동원 상사에게 발현이 되고 해미가 물러섰다.
상처를 감아 놓은 붕대를 성현이 걷어 내자 빠르게 아물고 있는 상처들이 눈에 들어왔다.
최동원 상사의 얼굴도 한결 편안해 보이면서 숨소리도 고르게 냈다.
“이상하다··· 왜 안 일어나지.”
성현이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해미의 손을 잡는다.
해미야 ‘그건 나쁜 거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우리 해미 잘했네. 좀 자게 놔두자.”
“아저씨 안 깨워요? 저 잘 깨울 수 있는데.”
성현이 강하게 도리질한다.
겨우 살려놨는데 죽일 수는 없다.
“주··· 중사님? 어떻게······.”
해미의 이적을 지켜보던 조만호 상사와 부대원들이 두 눈이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성현도 이 모두에게 어떻게 사실을 전해야 하나 난감했다.
마땅한 핑곗거리가 없어 고심하는 중에 해미가 먼저 대답했다.
“저, 힐러에요.”
해미가 천진하게 웃으며 말한다.
근데 어찌 된 일인지 모두 납득하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성현이 단신으로 적진으로 쳐들어갈 때의 모습을 이들은 떠올리고 있었다.
어떤 특수 장비를 입었는지 총알을 튕겨내고 공중에서 경기관총을 꺼내어 난사했다. 그것도 양손으로.
어떤 큰 비밀이 있을 거라 지레짐작했고, 해미가 그런 비밀을 에둘러 감춘 거라 생각한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하-아.”
성현의 오해도 깊어진다.
모두가 힐러라 진짜 믿는 거라 본 것이다. 니들은 어떻게 그걸 납득하고 있냐고 묻지도 못했다.
성현도 이제는 쉽게 생각하자고 나름 마음을 다시 먹었다.
그렇게 진실은 오해로 인해 후일로 밀려났다.
저벅저벅.
“단결!”
대원 하나가 병실에 들어와 성현을 보고 경례를 한다.
“보고 드립니다. 아군 총원 131명 중 사망 0명, 중상 1명 방금 치료되었고, 경상자 15명 현재 치료 중입니다. 적 사망자 39명, 중상 22명, 경상자 8명입니다. 위원회 소속 의원과 지도부 관계자 164명 또한 모두 구속했습니다. 그리고 일반 경비대 소속 457명 무장 해제 후 각자의 숙소에 임시 연금했습니다. 이상입니다.”
최초 총격 발생 3시간 만에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보고하는 병사가 아군과 적군으로 구분했다. 이미 전투를 시작한 이상적임을 명확히 한 거다.
“적이지만 부상자는 치료할 수 있게 해주고, 1시간 후 치안유지본부에 필수인원 제외한 전 대원 집합할 수 있도록 해라.”
“넵! 알겠습니다. 단결!”
보고한 대원은 명령 수행을 위해 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성현은 누워 있는 최 상사의 손을 잡고 쓰다듬었다.
친동생은 아니지만, 한때 이놈을 내 동생이라고 생각할 만큼 챙겼던 때가 있었다.
제대 후 가까이서 챙길 수 없어. 휴가 나오면 좋은 거 많이 사 먹이고 밤이 되면 진탕 술을 먹여 자기 집에서 재웠다가 복귀시키곤 했다.
그러다 최 상사가 해외 파병 가고 2년 정도 뜸했었다.
“빨리 일어나라. 형이 할 이야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