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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적폐청산(積弊淸算) (1)



최 상사는 성현의 면회를 마치고 담당 검사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휘본부에서 돌아온 이시용 검사를 만날 수 있었다.
“조, 조사 중입니다. 증거도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무슨 헛소립니까!! 죄 없는 사람을 가둔 것도 모자라 없는 증거가 있다고요? 지금 저를 기만하는 겁니까!”
성현의 무고함을 알리고, 일을 키우지 말고 조용히 풀어줄 것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난데없이 증거도 있단다.
애써 화를 삭이고 이야기 했건만, 최 상사는 거의 폭발 직전에 이르고 말았다.
“여, 여기에 지금은 없지만 있습니다. 자자, 화만내시지 말고······.”
이시용 검사는 서슬 퍼런 최 상사에게 궁핍한 변명을 하고,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 증거! 그 잘난 증거 내가 한번 봐야겠어. 어디 있어!”
최 상사가 이를 갈며 존칭까지 생략하고 으르렁 댄다.
이미 검사 놈도 성현을 고발한 이들과 한패라 생각한 것이다.
상체를 숙이고 바짝 들이댄 최 상사는 뚫어질 듯 이 검사를 노려봤다.
“그··· 그게 그러니까······.”
요리조리 눈알 굴리는 소리가 최 상사의 귀에 들리는듯했다.
“내 말 똑똑히 들어. 만약 되지도 않은 개소리 했다간··· 대갈통을 부셔주지.”
원래 간담이 작은 이시용 검사는 정말 당장 자신의 머리가 부서지는 건 아닌지 겁이 났다.
“즈, 증거는 위원회 의장님이 가지고 있습니다.”
설마하니 위원회 의장에게 까지 가서 최 상사가 난동을 부리지는 못할 꺼라 생각한 이 검사는 의장의 이름을 팔았다.
벌컥.
검사실의 문이 열리고 일단의 형사들이 들어왔다.
“아니, 부대장님 이거 치안본부에서 지금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흥!”
최 상사는 콧방귀를 끼며 다시 이 검사를 바라봤다.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놈들이다. 떼로 덤벼도 두렵지 않았다.
“다녀와서 보자. 의장에게도 그 증거가 없으면 구치소에 가둔 사람들 다 풀어줘야 할거야. 기다려라.”
최 상사는 검사에게 마지막 경고를 하고 돌아섰다.
“비켜!”
좁은 문을 막고 있던, 형사들을 거칠게 밀친 최 상사는 빠르게 치안본부를 빠져나왔다.
지휘본부는 멀지 않았다. 도보로 이삼 분이면 갈수 있는 거리였다.

* * *

최 상사는 단걸음에 위원회가 있는 중앙지휘본부를 찾았다.
“아니 글쎄 미리 약속을 잡고 오시라니까요. 부대장님, 지금 이것도 많이 봐드리는 겁니다.”
위원회 의장의 비서가 최 상사를 막고 있었다.
“하-. 도대체 뭘 봐줬다고 그런 소릴 합니까? 지금 의장님 안에 계신 거 알고 왔는데, 이렇게 까지 해야 됩니까?”
어차피 의장이레 봐야 할 일도 없다. 일예로 그가 결정하고 결제해야 할 사안 자체가 없었다.
현재 대피소 내부는 예정된 계획에 따라 추가 공사가 진행 중이고 차질이 생긴 곳은 없었다.
외부는 대피소 인근 지역의 도로 정비와 병행해 주간동안만 생존자를 받아들이는 중이고 자신과 부대원들이 지역 소탕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별로 제거된 좀비의 숫자와 소모된 물품을 보고서로 올릴 뿐이다.
곧 통신망이 복구되면 모르지만 아직 외부와의 연계도 없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약속을 잡으라고요? 좋아! 그럼 언제 뵐 수 있습니까?”
“그, 그건 스케줄을 확인해보고, 따로 연락을······.”
“보자보자 하니까, 나와!”
벌컥!
끝내 폭발한 최 상사가 비서를 거칠게 밀치고 의장실 문을 열었다.
의장실에는 의장과 60대로 보이는 여자가 차를 마시고 담소 중이었다.
“아니, 자네 이 무슨 무례한 짓인가!”
“급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도통 만나 뵐 수가 없습니다.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닙니다. 시간을 좀 내어주시죠.”
최대한 화를 억누른 최 상사가 이야기 했다.
“이 검사에게 대충 이야기는 들었어. 자네가 끼어들 일이 아냐. 그만 가봐!”
의장의 축객령이 떨어졌다.
이미 조중한 의장은 치안유지본부에 있던 이시용 검사의 연락을 받고, 최 상사가 찾아올 걸 사전에 알았다.
스스로가 떳떳치 못한 터였고, 부담도 되는 사안이었다.
사사로운 이유로 잡았는데 할 말 또한 없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만남을 기피했는데 이리 완강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아니 전 확인해야겠습니다. 이미 들으셨다니 설명은 필요 없을 줄로 압니다.”
“뭐야? 안하무인도 정도껏 해야지! 자네는 군인이야! 어디 내정에 까지 간섭 하려고 하나. 당장 자네 위치로 돌아가-!”
의장은 정치만 20년을 해왔다.
거기다 살아온 세월은 그 두 배다 사람을 어떻게 상대해야 되는지 그들의 아킬레스건이 무엇인지 잘 아는 조중한 의장이었다.
“이 무슨! 무고한 사람을 잡아둔 이유를 묻는 게 내정 간섭입니까? 이 문제 분명히 집고 갈 겁니다. 만일 지금 제대로 안 된다면, 본대와 연결됐을 때 공식적으로 항의 할 겁니다. 그리고!”
노회한 조중한 의장이 최 상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지금 이 대피소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합리한 일을 낱낱이 보고 할 겁니다. 일반 시민들에게 1일 2식을 주면서 지도부라는 의원들은 만찬을 즐기고, 거기다 혼자인 여자들의 인명부를 받아 불러들이고 찾아가서 성추행, 아니 그보다 더한 짓을 했겠지. 치안유지본부 놈들이 무마한 걸 모를 줄 알아!”
사실 최 상사는 성현의 일을 떠나 상부와 연결되기만 손꼽아 기다렸다 군인의 신분만 아니었다면 정말 몇 번은 뒤집어엎었을 것이다.
위원회 소속이라는 완장을 차고 의원이라는 인두겁을 쓴 놈들을 징치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벌컥!
그 때 의장실 안에 치안유지본부의 형사들이 들이닥쳤다.
“때마침 잘 와주었네. 현 시간부로 전투 부대 부대장 최동원 상사의 직위를 박탈하고, 협박 및 살해 위협을 한 혐의로 긴급 구속하게. 면회는 일절 시키면 안 된다는 점 명심해. 데려가!”
“어딜 가나 버러지 같은 인간들은 있기 마련이죠. 우리 의장님이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오호호호.”
형사들이 순식간에 최동원 상사의 곁을 에워쌌다.
“좋아.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갈 때까지 한번 가보자!”
결심이 선 최 상사가 먼저 손을 썼다. 더 이상 이런 놈들에 의해 대피소가 운영되게 할 수는 없었다.
파팟. 퍼걱!
털썩.
우측에서 자신의 팔을 잡으려는 형사의 명치를 치고 관자놀이에 팔꿈치를 박아 넣었다.
“어, 어어?”
형사들이 설마 몸싸움은 있을지언정 크게 반항하리라 생각지 못한 사이, 한 명이 쓰러졌다.
빠각!
어수선한 틈에 최 상사가 내지른 뒤돌려 차기에 한 형사가 턱을 맞고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주변의 있던 형사들이 놀라 허둥댄다.
그리고······.
타앙!
“크윽!”
한 형사가 자신의 손에 잡혀있는 38구경 권총과 최 상사를 번갈아 보며 자기가 더 놀래서 뒷걸음 쳤다.
“야이··· 개새끼들아!”
최 상사의 입에서 성난 포효가 터졌다.
외쪽 쇄골 아래에 총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칠게 형사들을 덮쳤다.
탕! 탕!
두 번의 총성이 더 울렸다.
“끄윽, 큭······.”
최 상사가 허물어지듯 바닥에 쓰러졌다. 배와 허벅지 모두 세 발의 총상이 강인한 최 상사를 무릎 꿀렸다.

* * *

다음날.
성현은 좀이 쑤시고 바깥소식이 궁금했지만 참았다.
최 상사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 상사가 다녀간 이후 아무도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일이 잘 풀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만 쉽지 않은 모양인지 시간이 조금 더 지체되는 가보다 했다.
그렇게 시멘트로 둘러진 차디찬 방에 들어와 만 하루가 지났다.
“해미가 걱정 되는데······.”
성현은 자신보다 해미와 두식, 용칠이 더 걱정이었다.
그때.
따다다당.
타탕. 탕.
성현은 갑작스런 총성에 놀라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이 건물 안이다. 설마 여기까지 좀비가······?”
성현은 창고를 열고 K2c1 한 자루를 꺼내고, 탄창을 결합했다.
그리고 여태 벗어두었던 헬멧까지 착용해서 완전 무장을 갖추었다.
타타타탕!
파바팍!
총성이 커지고 방 앞까지 누군가 다가온 소리가 들린다.
“박 중사님! 저 김영기 입니다. 문에서 비켜서십시오.”
“김 하사? 그 코맹맹이 김 하사 맞나?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아 진짜. 코맹맹이 졸업했습니다. 그보다 중사님 일단 물러서십시오. 문부터 열겠습니다.”
“알겠다.”
타탕! 팅- 텅
철제문을 결속하던 자물쇠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끼릭. 벌커덕!
“어, 중사님 무기 반납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드리려고 가져왔는데······.”
김 하사에 손에는 벨기에제 SCAL 한 자루가 더 들려있었다.
“영기야. 그보다 설명 좀 듣자.”
성현의 재촉에 김 하사가 빠르게 상황을 전달해 줬다.
어제 최동원 상사가 성현을 보러 간다고 가고 나서 소식이 끊겼단다.
아침 점오에도 오지 않아 대원 둘이 최 상사 동선을 따라 찾아다녔는데 치안본부도 모로 쇠로 일관해서 어찌된 영문인지 몰랐단다.
근데 뜻밖에도 병원 응급실에서 그 흔적을 찾았다고 했다.
대원 하나가 의사와 친분이 있어 자초지종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총상에 입고 상당한 출혈이 있는 상태로 병원에 왔었다고 한다.
위독한 상태라 응급수술에 들어갔고, 다행히 위험한 고비를 넘겼지만, 안정을 요하는 중환자를 수술이 끝나자마자 지휘부에서 데려갔다고 했다.
“동원이! 최 상사는 찾았어?”
“상사님 행방은 아직 못 찾았습니다. 지금 상황이 별로 좋지 못합니다. 지휘부는 저희를 국가반역죄 내란죄란 명목으로 공격중입니다.”
어떻게든 최 상사를 찾겠다는 생각으로 지휘본부로 간 부대원은 치안본부로 강제 연행되었고, 또 다시 대원이 소식이 끊어지자 다른 대원들이 이를 찾아갔다.
찾아간 이들까지 모두 체포되고 도합 여덟 명의 대원들이 구속되었다.
그리고 뜬금없이 지휘부에서 최 동원 상사와 그들을 싸잡아 국가반역죄 내란죄로 구속되었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최동원 상사 다음 짬밥인 조만호 상사가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전 대원 무장할 것을 알리고, 1개 중대를 데리고 지휘본부에 상황 파악을 위해 찾아갔다.
물론 싸울 의사는 없었고 무력시위를 위해서였는데, 지휘본부에는 이미 경비대에서 나와 경계 중이었고, 대뜸 상대측에서 먼저 발포 했단다.
어쩔 수 없이 대응사격을 하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던 차 치안본부를 수색 중 성현을 먼저 구출하게 되었다고 한다.
으드득.
성현이 이를 부서지게 갈았다.
최 상사는 분명 자신의 구명을 위해 나섰다가 일을 당했음이다.
“이 개새끼들, 다 죽여 버리겠다.”
“지금 대원들도 전부 눈 돌아서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위원회 새끼들이랑 치안본부 놈들 전부 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경비대 본부에 모여 있는 거 같습니다.”
“경비대 본부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가자.”
성현이 구치소 방을 나와 복도에 섰다.
“해미야! 가자.”
성현이 복도가 쩌렁하게 소리쳤다.
콰쾅!!
철제문이 통째로 뜯겨 복도에 나뒹군다. 그리고 뜯긴 문사이로 쭉 뻗은 가느다란 다리가 보였다.
“아저씨. 나 진짜 쫌만 더기다리다 안 오면 나가려고 했는데.”
와락.
해미가 달려오며 성현에게 안긴다. 성현은 숨도 제대로 못 쉬겠는지 ‘끅끅’ 대자 그제야 해미가 성현을 놓아주었다.
“중사님. 여기요, 여기.”
복도 끝 쪽 방에서 작은 창에 손을 내밀고, 성현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해미야, 애들 좀 꺼내 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