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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멸망의 전조, 그리고 각성 (2)



고오오오.
광활한 우주를 아우르며 다가오는 미지의 에너지 파동이 드디어 지구를 강타했다.
극초신성 알파가 태양처럼 빛나며, 수십억 년 동안 내뿜을 에너지를 대폭발하며 단 수초 만에 모든 에너지를 발산한 미증유의 파동이었다.
화아악!
백 수십 광년을 넘어 범람하듯 밀려온 특정되지 않은 파동은 순식간에 지구를 휘감고 전체를 집어삼켰다.
영겁 같던 찰나의 시간이 흐르자 지구를 감쌌던 에너지는 또다시 먼 우주로 끝을 모르고 나아간다.
예상과 달리 에너지 파동은 지구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
우주에서 내려다보는 지구는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일 뿐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지표면의 온도가 상승하고 빙하가 해빙되는 문제였다. 이건 인류뿐만 아니라 전 지구의 생태계가 파괴되는 그야말로 종말을 뜻했다.
어떠한 준비도 이를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에너지 파동이 지나는 순간 지구 자전과 지구가 속한 태양계 전체가 일순간 멈추는 기적 같은 현상이 일어났고, 곧이어 원상을 회복했다.
뚝.
지구 대기권 안과 밖을 돌던 위성들이 하나둘 위치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수많은 위성들이 지구 중력에 이끌려 지상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쿠콰콰.
대기를 불태우는 시뻘건 화염을 두르고 수천 개의 위성비가 쏟아져 내렸다.

* * *

성현과 해미가 있는 공동 안.
공습 사이렌이 일순간 끊어졌다.
그리고······.
이명과 비슷한 소리가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거대한 파도에 삼켜지듯 큰 울렁임이 성현을 강타했다.
삐——.
모든 감각을 차단한 몽환적인 느낌이 전신을 에워쌌다.
무중력에 갇힌 연체동물처럼 공기 중에 몸을 흐느적댄다.
순간 자신이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그리고 옆에 해미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죽은 건가?’
자신이 지금 죽은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처럼 여겨졌다.
번쩍!
쩌저저정!
거대한 빛이 경계를 허물고 성현을 감쌌다.
영롱하고 황홀한 불빛은 성현을 에워싸고, 호위하듯 현실 세계로 이끌어 냈다.
‘뭐, 뭐야!!!’
자신과 해미가 보인다.
기이한 모습이다.
중력에 영향을 받지 않은 듯 지면에서 30㎝ 정도 떠 있었다.
자신이 육체의 눈을 뜬 것이 아님을 알고 소스라쳤다.
말로만 듣던 유체이탈과 같은 현상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보았다.
손목에 찬 팔찌에서 뿜어지는 찬란한 빛이, 영혼이라 생각되는 지금의 자신을 이끌어 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팔찌의 구슬 두 개가 미세한 빛으로 쪼개어져 산란하더니 서서히 뭉치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빛의 구체가 중력을 거슬러 오르더니 하나는 성현의 머리 위에서 부유했고, 다른 하나는 해미의 머리맡에 멈추어 섰다.
화아악!
태동하듯 일정한 간격을 두고 빛은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더니, 순간 분화하듯 무수히 많은 빛의 알갱이로 화해 몸 곳곳으로 스며들어 이내 사멸했다.
[ 특성 각성 완료 ]
‘이건!!’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친구 정한이 처음 팔찌를 선물한 날 본 문구와 비슷했다.
팔찌가 미증유의 힘으로 어떤 이적을 행사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게 되었다.
강력한 이끌림이 자신을 부르는 듯했다.
성현은 홀린 듯 특성 각성 완료라는 글귀에 손길이 닿았다.
잔잔한 물에 파문이 일 듯 문자가 흩어졌다.
그리고 변화가 생겼다.

[ ★게이머 ]
[ ★심판자 ]
[ ★카오스 ]

어떤 선택지를 자신에게 권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거침없이 그중 하나를 터치했다.
심판자나 카오스는 너무 은유적이고 좀 더 부정적이라 느꼈다.
‘배제한다.’
[ 게이머 각성 완료 ]
허공에 뜬 문구가 바뀌었다.
하지만, 그 외에 어떤 변화도 없었다.
‘뭐라도 바뀌어야 하는 거 아냐? 왜?’
[ 특성 부여 가능 ]
‘저건!’
해미의 머리맡에 또 다른 텍스트가 떠 있었다. 성현은 각성이지만 해미는 부여라고 되어있었다.
그곳에 손길이 닿았다.

[ 게이머 ]
[ 사제 ]

‘다르다.’
자신과는 달리 글귀 앞에 별 모양이 없고, 하나가 적은 2개의 선택지가 나타났다.
‘이왕이면 같은 게 좋다.’
다시금 성현의 손이 움직인다.
[ 게이머 부여 완료. ]
그리고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공간이 일그러지고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슈슈슈슈.
강력한 흡입력에 부유하던 영체가 자신의 육체를 향해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점멸하듯 의식은 끊어져 버렸다.

* * *

두근두근.
심장의 고동 소리가 귓가에 작게 맴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의식의 편린들.
조금씩 온전한 형태를 갖추어간다.
그리고 이내 하나의 완전체를 이루어냈다.
“허억, 허억, 헉. 헉.”
성현은 살아남았다.
현실임을 자각하는 부분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맥동하는 심장의 두근거림, 코끝에 스며드는 지하 특유의 칙칙한 내음, 손끝에 전해지는 생생한 옷감의 감촉까지 모두 살아있음을 전해준다.
“살았다, 살았다고!!”
그러다 문뜩 허전한 느낌이 든다.
“해, 해미야.”
성현이 바닥에 쓰러지듯 누워있는 해미를 발견했다.
의식이 없다.
자신과 달리 해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찰싹찰싹.
“아, 아퍼. 아저씨?”
가끔 민간요법(?)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아직 정신을 완전히 차리지 못한 해미가 성현을 바라보며, 묻는다.
“저, 저희 산 거 맞죠? 혹시 아직······.”
“이미 위기는 넘긴 것 같다. 우린 살았어.”
성현은 확신에 찬 말에 해미가 눈시울을 붉힌다.
성현의 말이 팥으로 메주를 쓴데도 믿을 수 있는 해미였다.
살았다는 그의 한마디에 모든 불안이 한 번에 가신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얼싸안고 환호했다.
순수한 재회의 기쁨이다.
조금 수줍은 얼굴로 해미가 떨어진다.
“험험.”
성현이 어색함에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어느새 안정을 찾은 그의 눈에 이질적인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꿈이 아니었어······.”
성현은 해미의 볼을 꼬집어봤다.
“아얏! 왜, 왜 그래요?”
자기 볼을 꼬집을 수 없어서 그랬다고 말하기는 무안하다 최대한 무심하게 바라봤다.
“어라. 이, 이게 뭐예요? 아저씨 혹시 보이세요?”
“아무래도 네가 보는 건 나하고 같지 싶다.”
의외로 침착하다.
유체이탈 같은 영적인 영역에서 의식체로 지켜보고 자신이 선택한 결과로 벌어진 일이다.
혹. 꿈이 아닐까 했지만, 현실임을 다시 확인했을 뿐이었다.
최근의 현실이 더욱 비현실적임에 더 놀랄 일이 뭐가 있나 하는 심정도 일부 작용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닌 둘이라는 점. 같은 공간 같은 일을 격고 있다는 동질감이 서로 간의 정서적 안정감을 높여주었다.

* * *

“대박! 아저씨 이름이 머리 위에 떠 있어요. 게이머 박성현. 와!”
이건 해맑다고 해야 할지 무신경하다 해야 할지 성현은 도무지 감을 못 잡겠다.
어쩌면 해미보다 동심에서 훨씬 멀리 떨어진 자신이 더 많은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해미야 일단 너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성현은 유체이탈 상태에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해미에게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소리쳤다
“게임!”
“캐릭터!”
게이머란 특성을 각성해 게임의 능력이 현실에 투영되어 나타났다.
바라보는 시선 중앙 상단에 HP 즉 생명력 수치가 가로로 막대 형태로 표기되어있다.
시야에 보이는 여러 인터페이스들이 전혀 난잡하지 않아. 불편함을 줄 일은 없었다.
해미와 성현은 한참 동안 서로 말없이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일일이 확인했다.

『 특성 』
★게이머
-게임 속 캐릭터를 현실에 투영
-상태이상 및 정신 공격에 저항

‘친절한 설명이긴 한데. 선택을 고를 때 보여주던지. 그나저나 상태이상 정신공격에 저항이라··· 좀 두루뭉술한데.’
만약 다른 특성은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이내 만족하며 생각을 지웠다.
‘당장은 살았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나. 여하튼 다행이다.’
휘리릭.
캐릭터의 창을 열고 닫으며, 창고의 내용물도 확인하고, 하나하나 꺼내어 보는 해미의 손이 참 바쁘게 움직인다.
순식간에 교체가 되는 자신의 의복들이 신기한지 몇 번을 반복하고 반복했다.
“아저씨. 짜잔!”
살아있는 듯 펄럭이는 하얀 날개 달린 옷에 부과 효과로 머리 위에는 후광이 비추어진다.
‘천사 옷’ 힐러들의 대표적인 교복시리즈 중 하나였다.
“이야.”
성현도 절로 감탄이 나온다. 엄지를 척하고 내보였다.
“근데 해미야 그건 너무 튀니까 될 수 있음 딴 걸입어야 할 거야. 만일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거 같네.”
“네. 아저씨. 그냥 한번 입어본 거에요.”
‘나도 한번 입어봐?’
성현은 자신의 캐릭터 창고를 열고, 해미가 추천해서 샀던 2주년 기간 한정 라이트 아머를 터치했다.
차차창.
“우와! 아저씨 게임 캐릭터보다 더 멋있어요―. 대박!”
“흐음······.”
칠흑처럼 어두운 묵 빛 전신일체형 아머였다.
움직임에 따라 작은 미세한 비늘들이 요동치며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댔다.
어찌 보면 먼 미래에나 나올법한 전신 슈트형 아머에 가까운 외형이었다.
“해미야 이거 기간 한정 아니었니? 아이템 밑에 날짜가 없어졌어.”
“어. 그러고 보니 저도 그래요. 헤헤. 뭐 좋은 거 아니겠어요.”
해미가 그저 해맑은 말로 특별할 거 없다는 듯 일반화시켜버렸다.
성현도 해미의 말처럼 좋은 변화를 두고 굳이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
“왜 무슨 문제 있어?”
“아저씨. 레벨 좀 확인해 보세요.”
해미의 말에 성현도 캐릭터 창을 열고 레벨을 확인했다.

박성현
레벨 : 1 (EXP 0 %)
직업 : 무기 전문가 [1차 전직]
근력 12 (+10) → 22
민첩 9 (+10) → 19
내성 9 (+10) → 19
마력 5 (+10) → 15
체력 14 (+10) → 24
보너스 스텟 : 0

레벨이 초기화가 되어 있었다.
전직은 유지되어 보너스 스텟치가 반영된 게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이런. 아쉽게 됐네. 설마, 스킬도?”
성현과 해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킬도 확인했다.
“아깝네······.”
“히잉. 레벨 제한이 걸려 아무것도 못 쓰네. 아! 그나마 직업 특수스킬 2개 하고 일반스킬 1개는 쓸 수 있네요. 이긍······.”
“특수스킬하고 일반스킬 하나라도 쓸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자. 아예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니.”
직업 특수 스킬은 각 직업군마다. 액티브 한 개와 패시브 계열 한 개가 주어진다.
해당 직업군의 걸맞은 스킬들이 부여되고, 상위 직업으로 전직을 거듭할수록 강해진다.
1차 전직을 하면 일반스킬 하나가 기본적으로 주어지는데 딜러계열은 ‘강타’ 버퍼 계열은 ‘힐’이 주어진다.
성현은 불러낸 스킬창을 보고 있었다.

〔 스 킬 창 〕
*액티브*
[특수]무기 기술자
-무기 공격력, 속도, 범위, 명중 50% 증가 (적용 시간 10분,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일반]강타
-무기 공격력 30% 증가(재사용 대기시간 3분)
*패시브*
[특수]무기 전문화
-모든 무기 사용가능 및 공격력 50% 증가(활성화)

사용가능한 스킬이 줄어든 것 외에는 능력치 변동 같은 건 딱히 없었다.
패시브 스킬은 맨손도 무기로 인정하는 게임의 설정 그대로 활성화가 되어 있었다.
솔직히 좀 초라하게 보이는 스킬창이었다.
“그건 그렇고 스텟이 어느 정도의 힘인지 모르겠네······.”
성현은 배낭을 들어보기도 하고, 국방부 마크가 찍힌 철제 상자를 들어보며 힘을 가늠해 보고 있었다.
‘확실히 힘이 늘고, 지구력도 강해진 거 같긴 한데··· 애매해.’
이전보다 강해진 건 확실하지만, 정확한 측정이 사실상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