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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멸망의 전조, 그리고 각성 (1)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가 뒤집어 졌다.
현세에 지옥이 도래했다.
긴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모든 인류가 죽을지 살지를 모른단다.
저 우주 먼 곳에서 극초신성이 폭발해 그 여파가 지구로 밀려온다고 한다.
그러한 사실을 약 3개월 전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한다.
모든 나라의 최고 국가통수권자들이 입을 맞추어 한 말이다.
하루, 단 하루다.
살지도 죽을지도 모르는 세상이 종국으로 치닫는 시간이.
하루. 24시간. 1440분.
대처법으로 내놓은 게 인터넷은 물론 호외로 뿌려졌다.
지하로, 지하로 숨으면 최소한 가능성이라도 있단다.
불현듯 떠오르는 일들이 있었다. 정부에서 갑자기 대규모 토목공사를 전국 산간벽지에서 시작했고, 어마어마한 인력과 물자들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에서야 이거였나? 했다.
“씨발!!!!”
성현의 입에서 괴성이 뿜어졌다.
옆에 있는 해미가 성현의 다리를 꼭 끌어안고 잘게 떤다.
아직 현실감이 들지 않아 이해는 했지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끼이익. 콰쾅.
오피스텔 밖의 거리는 온통 혼돈의 도가니다 아마도 방송을 듣던 운전자가 놀래서 사고를 냈던, 심장마비로 사고가 났던지 한 것 같았다.
성현은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력하다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조차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평소의 냉철하고 강단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한두 시간 전만해도 게임을 하며, 즐거워하던 것이 꼭 수십 년 전처럼 느껴진다.
“아저씨. 우리 어떡해요? 아빠가 전화를 안 받아요. 아빠가······.”
해미는 그사이 아빠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사실 성현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명절에 찾을 만한 친인척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흔한 삼촌 이모는 다른 세상 이야기 같기만 했다.
“하-아. 아무래도 전화도 폭주 중이겠지 통화가 쉽지는 않을 거다.”
성현도 제일 친한 정한이에게 먼저 전화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으아앙. 엉엉엉.”
해미가 대성통곡하며 성현에게 안긴다.
성현이라고 도리 있을 리 없다.
달래줄 정신도 없고 달래줄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는······!’
그러다 한순간 마음을 다잡았다.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상황을 기다리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우선! 방송에서 알려준 대피방법부터 다시 보자. 반드시 죽는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어느 정도 평상심을 회복한 성현이 한 말이다.
성현은 급히 옷을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유사시 군복이 조금이지만 유리하게 작용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등산 배낭을 찾아 오피스텔 안에 있는 장기 식품이란 식품은 모조리 담고, 휴대용 버너부터 응급약품까지 있는 대로 모두 구겨 넣었다.
그리고 해미의 손을 꽉 잡았다.
왠지 모르겠다.
짐이 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이유는 없었다. 다만, 이 아이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자. 해미야.”
성현과 해미가 거리로 나오자 거리는 미친 듯이 울리는 클랙슨 소리와 사람들의 고성으로 전쟁 통을 방불케 했다.
“우선 네 옷부터 어떻게 하자.”
성현은 팔을 꼭 껴안은 해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해미는 성현을 놓칠까 봐 피가 안 통할 정도로 팔에 힘주어 안고 있었다.
거리의 모든 가게에 사람이 없었다. 열려진 곳도 있고, 그 순간에도 셔터를 내려 문단속까지 한 곳도 있었다.
한 아웃도어 매장 앞에 다다른 성현은 잠겨있음을 확인하고, 인도 바닥을 이루는 격자무늬의 콘크리트 벽돌을 들고 세차게 던졌다.
와장창!
위잉위잉.
아웃도어 매장의 보안 센서가 작동해 울리지만,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다들 자기 갈 길이 바쁘다.
성현이 깨진 유리 틈의 잔 유리들을 워커로 대충 정리하고 해미와 함께 들어갔다.
그리고 맞는 사이즈의 옷으로 해미가 갈아입기를 기다리며 자신도 필요한 물품을 찾아 좀 더 가방에 챙겨 넣었다.
“가자! 시간이 없어.”
성현이 생각한 곳이 있었다.
깊은 지하에 위치해있고 도심지에 있으며, 지금 있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장소.
그리고 아는 사람이 적고 은밀한 곳.
만약을 위해 챙길 것이 좀 더 있었다. 식량도 부족하고 식수도 부족하다. 뭐든 힘닿는 데로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야 했다.
성현은 거리낄 게 없었다.
다시 옆의 편의점을 부수고 들어가 장기 식품을 아웃 도어 매장에서 챙긴 배낭 세 개에 넣고, 하나는 자기가 앞으로 매고 다른 하나는 해미에게 매게 했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손에 들었다.
자신이 매고 손에든 배낭의 무게만 자그마치 60㎏에 가까운 중량으로 성인 한 명을 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성현은 영등포시장역으로 향했다.
오피스텔에서 대략 500m 떨어져 있었지만, 평소와 달리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차도를 가득 메운 차량과 인파에 묻혀 제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조차 힘에 겨웠던 탓이다.
간신히 영등포시장역 2번 출구에 도착했지만, 이미 상당수의 사람들이 몰리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사람은 적었지만 이미 자리를 차지한 이들이 있었다.
성현은 더 깊숙이 들어가 개찰구를 지나갔다.
군복 때문인지 사람들의 시선이 오래 머물자 행동에 신중을 기했다.
지금이야 당장 배도 덜고프고 목마름이 덜하지만, 나중 일은 모르는 바다.
특히나 상당히 많은 식량을 가진 성현은 최우선으로 노려지게 된다.
성현은 자신을 쳐다보는 이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고 강하게 노려봤다.
그제야 사람들이 눈을 피하고 슬금슬금 이동해 성현과 멀찌감치 떨어져 시야에 닿지 않은 곳으로 갔다.
왠지 위험해 보였으리라.
“누가 오던가 우리를 지켜보면 내 옆구리를 찔러 알겠니?”
“네.”
성현은 등 뒤쪽 통제 구역이라고 쓰여 있는 문에 바짝 다가섰다.
끼릭끼리릭.
철컹.
다행히 주변에 지켜보는 보는 눈은 없었다.
성현은 열린 문틈으로 먼저 해미를 들여보내고 자신도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신속히 문을 닫고 잠금장치 돌려 문을 잠갔다.
“아, 아저씨 너무 어두워요.”
“잠깐만.”
딸각.
건빵 주머니에 미리 준비해둔 플래시를 켜자 들어선 통로가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졌다.
폭이 2m 높이가 2.5미터 장방형 통로였다.
줌 기능까지 있는 고강도 플래시로 길을 밝히며 걸어갔다.
약 30여 미터를 걸어가자 기역자로 꺾인 통로에 또 다른 철제문이 앞을 막고 있었다.
툭툭.
손을 통해 느껴지는 문은 상당한 두께의 육중함을 전해줬다.
통짜 쇠를 녹여 만든 강철 문이었다.
‘강제로 진입하기는 절대 무리다.’
성현은 시선을 내려 대형 자물쇠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전자키를 보며, 오래된 기억을 되짚어 나갔다.
꿀꺽, 꿀꺽, 끼릭. 끼리릭.
성현은 먼저 캔 음료를 하나 가방에서 꺼내어 해미와 나눠 마시고, 캔의 알루미늄을 넓게 잘라. 수차례 접었다.
접은 알루미늄을 자물쇠 걸쇠 부분에 끼워 넣고. 펜치로 강하게 내리눌렀다.
철커덕.
자물쇠가 풀렸지만 더 큰 고비가 남았다.
‘내 기억이 맞아야 된다. 제발.’
삑삐빅삑.
철커덩.
“됐어!”
더 크게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오래된 기억이었지만, 비교적 쉬운 숫자 조합이라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 내는데 어렵진 않았다.
당시의 기억이 좀 남다른 면도 있어 오래 남은 것도 한몫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성현이 문을 닫자 전자키의 락이 자동으로 걸렸다.
“이 어디 있을 텐데··· 찾았다!”
그그긍. 처척.
우우우웅. 웅웅웅.
벽면 한쪽에 매몰 형태로 있던 단자함을 열고 큰 스위치를 올리자 발전기가 가동해서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빡깜빡. 화악.
통로 위에 있던 전등에도 불이 들어왔다.
“와, 아저씨. 이런 건 다 어떻게 아는 거예요?”
해미가 지금 어떤 상황에서 이곳에 온 건지도 잠시 잊고 신기한 듯 물었다.
비밀스런 길을 찾고 손쉽게 잠긴 문을 따면서, 비상용 발전기까지 가동하자 동심이 아직 남은 탓인지 눈을 반짝반짝하게 빛냈다.
“나도 직접 온건 처음이고,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해줄게. 가자.”
좀 더 안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크기의 공동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역시··· 살아만 난다면 은혜는 꼭 갚아야겠다.”
“지하철역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해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신 주변을 돌아봤다.
성현도 짐을 내려놓고, 여러 군데를 살폈다.
공동의 높이는 대략 4m는 될법 했고, 그 넓이는 300평 정도 되는 규모였다.
천장을 받치는 두꺼운 콘크리트 기둥을 몇 개 지나자 조립식 패널로 된 별도의 공간이 존재했다.
“역시 있었어.”
군용을 뜻하는 국방부 마크가 찍혀있는 목제 상자부터 철제 상자. 그리고 종이박스들이 그곳에 한가득 쌓여있었다.
“무겁게 가져온 보람이 없겠네.”
가져온 배낭을 보고 허탈하게 웃었다.
“와, 아저씨. 이게다 뭐예요?”
“볼래?”
성현이 마침 박스 옆에 있는 빠루를 손에 쥐고 나무 박스의 틈에 박아 넣고 힘을 줬다.
끼리릭.
상자의 못이 서서히 빠지더니 성현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위로 솟아올랐다.
덜컥.
상자가 오픈되어 드러난 물건의 정체에 해미가 깜짝 놀라 성현을 바라봤다.
“헉, 이거 총 아니에요?”
“그래 맞다.”
“아, 아저씨! 간첩이에요?”
“농담도 때를 봐가면서 하자.”
성현이 자신이 입고 있는 군복을 툭툭 치며 말했다.
“이건 군에 있을 때 가까이 지냈던 녀석이 좀 특별한데 일하면서 나한테도 몰래 알려준 장소다. 유령역이라 불리기도 한다는데, 나도 잘은 모른다.”
유령역은 지하철역을 만들면서 함께 만들어진 구조물 중 하나다.
다만 필요성이 없어졌던지, 아니면 연결될 지하철의 환승역으로 만들어졌지만, 사업성이 없어 취소되었던가. 기술 문제로 연결이 되지 못해 버려진 장소였다.
추후에 일부는 사용예정으로 바뀌기도 한다.
성현은 주변의 다른 박스도 일일이 확인했다.
전투식량들은 기한이 넉넉했다.
일정 기한이 지나면 새로이 바꿔 놓는다고 했던 말은 사실이었다.
총화기도 보면 전부 5년 이내에 만들어진 새것이었다.
총화기는 K2c1 자동소총, K3 경기관총, K201 개량 유탄발사기, 60m 박격포, K6 중기관총, 각종 수류탄에 피복류까지 그야말로 전쟁에 대비해 준비된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유령역이 서울에만 최소 세 곳 이상이고, 전부는 아니지만, 두 곳은 전시에 이용할 수 있는 물품들을 보관한다고 해. 다행히 이곳이 가까워서 왔지만 좋은 선택이었던 거 같다. 그리고 여기엔 별도의 통신장치가 있으니까 전화 통화도 아마 더 잘 될 거다.”
“아, 아빠한테 연락해봐야겠어요.”
해미는 잠시 잊었던 것에 대한 죄송함인지. 금세 얼굴이 어두워져 스마트 폰을 꺼냈다.
“해미야. 난 비상 수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해보고, 튜브에 물 좀 채워야겠다. 편하게 통화해.”
성현은 마음 놓고 통화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웠다.
해미 곁에서 떨어진 성현도 스마트 폰을 꺼내 들었다.
뚜우뚜우.
‘손정한, 전화 좀 받아라.’
정한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이곳으로 데려오고 싶었지만, 통화 자체가 되지 않으니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두어 번 더 연결이 되지 않자 메시지를 남기고 자신이 있는 곳을 알려줬다.
보고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시간은 덧없이 지나갔다.
밤새 한잠도 자지 못한 성현과 과도한 긴장으로 파김치가 된 해미는 밤인지 낮인지도 잊고, 잠시 쉬려다 잠이 들었다.
야전용인 군용 라꾸라꾸 침대를 펼쳐 그 위에 모포를 덮어 임시 침대를 만들었다. 덕분에 바닥의 찬 기운을 직접적으로 느끼지는 않았다.

* * *

‘그새 잠들었나보네.’
잠에서 깬 성현은 한참을 숨죽이고 앉아있었다.
그러다 일어서 왔다 갔다 서성였다.
초조함을 넘어 일종의 불안증세에 가까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기척을 느낀 해미도 일어났다.
둘은 한동안 대화는 단절한 채 앉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숨이 가빠지고 두려움이 밀려온다.
해미는 끝내 아빠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성현은 그런 해미를 다독이고 함께 있어 주었다.
“아저씨. 이제 30분 남았어요.”
“그래······.”
“우리··· 살 수 있겠죠?”
“아마도······.”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작은 스마트 폰을 통해 살펴보던 성현의 대답은 짧았다.
‘미안하지만 힘들 거 같다. 정부에서 이미 충분히 검토하고 비밀에 붙였겠지··· 생존 가능성을 낮게 본 거다.’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해 줄 수 없었다.
“아-. 같은 반 애가 사진을 올렸는데 이건 너무······.”
“그만 보는 게 좋겠다.”
성현은 해미의 스마트 폰을 덮었다.
한꺼번에 몰린 사람들로 인해 지하철 계단의 사람들이 떨어져 밑바닥에는 압사당한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처참했다.
지상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한국의 상황도 좋지 못했지만, 특히 미주지역은 군대와 민간인 간에 총격전이 가히 내전을 방불케 했다.
거리는 온통 불바다였고, 시체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유럽도 차이는 있지만 상황은 비슷했고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전 세계 어디를 봐도 이전과 같은 평화로움이 남은 곳은 없었다.
애애애애앵.
“시작이다!”
카운트 제로.
해미는 성현의 품에 꼬옥 안긴 체 두 눈을 질끈 감았고, 성현도 눈을 내리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