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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폭풍전야 (3)



쏴아아.
늦은 새벽 우중충한 하늘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내리던 비가 장대비가 되어 떨어졌다.
청와대 연풍문 2층 회의실.
한쪽 벽면 전체를 차지한 거대한 멀티비전이 준비되어 있고, 최상단에 빨간색의 카운트다운이 진행되고 있다.
새벽 4시가 가까운 시각.
수석 비서관들과 관계 장관들이 모두 모여 자리에 착석했다.
이필성 대통령은 창가에서 내리는 비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준비는 거의 마무리 단계입니다. 계획된 인원 외에 예비자 중 2만 명을 추가로 선별하는 작업이 내일 중으로 끝날 것으로 보입니다.”
정안식 비서실장이 말했다.
하이퍼노바(Hypernova).
극초신성의 여파가 지구에 영향을 줄 것을 사전에 파악하고 이를 대비하기 위한 대책 회의였다.
극초신성이란 초신성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방출하는 별의 폭발로 우주에서 가장 격렬한 현상 중 하나였다.
태양 지름의 약 200배에 달하는 거대한 질량을 가진 항성 알파의 폭발 여파가 곧 지구에 닥치게 된다.
“휴우-. 정말 이게 최선이었을까?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아무런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게 정말 잘하는 건가 이말 입니다.”
이필성 대통령의 말에 모두 입을 닫고 침묵했다.
정말 할 말이 없다.
여기서 혹세무민하는 말로 합리화해본들 눈총만 받을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 대부분의 국민에 속해 있지 않은 탓이다.
어떠한 말을 해도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 하기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음을 잘 알았다.
자신들은 어떻게든 삶을 지속할 것이고, 살아남을 것이기에.
“후우······ 계속 보고하게.”
대통령의 한숨이 깊어진다.
“VIP 인원은 1천 249명이고, 50대 미만 국민 중 자격을 갖춘 69만 5천 3백 명이 대상입니다. 서울 경기가 가장 많은 23만 2천여 명이고, 5곳의 피난처로······.”
정안식 비서실장의 보고는 장장 1시간 동안 이어졌다.
축약하자면, 약 70만 명의 국민들을 살릴 피난처가 전국 곳곳에 마련되었다.
과학자 및 기술자 등 전문지식인이 포함된 가족 단위의 40만 명, 치안을 통제하고 군사력을 보존하기 위한 3만 명의 군인, 그리고 질병 이력이 없는 건강한 20대가 27만여 명이었다.
사회 재건을 위한 최소한의 인력을 피난처에 수용 가능하다는 최종 보고였다.
그리고 VIP는 나이 제한을 받지 않는 이들을 총칭하는 말로, 정부 인사나 정치인 그리고 대기업이나 재벌가의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다른 국가들의 상황은 들어온 게 있는가?”
긴 보고를 끝으로 대통령은 김석형 외교안보수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미국을 비롯해 대부분 국가에서 저희와 비슷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보부의 보고입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최소 1천 2백만 명으로 가장 많은 국민들을 수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더러운 놈들 같으니라고. 조금만 더 빨리 알려 줬었어도······!”
대통령의 말에 공감하는 듯 자리한 모두가 인상을 쓰고, 책상을 두드리는 등 분통을 터트렸다.
한국 정부에 극초신성의 존재와 그 여파가 어떠한지 알려진 게 약 3개월 전이다.
물론, 대외비 1급 기밀 사항이었다.
사실 알려졌다기 보다 밝혀졌다고 보는 게 맞았다.
삐비비빅.
자리한 모든 이들의 스마트 워치가 알람을 울렸다.
59:59:59
10시간 주기로 알람이 울리고, 최종 시한을 앞둔 24시간부터는 매시간 알람이 울리게 설정되어있었다.
“발표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피난민들의 소집에 이상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게.”
“네. 알겠습니다.”
회의장을 떠나는 모두의 어깨가 한없이 무거워 보인다.
그만큼 이들이 앞으로 짊어질 삶의 무게가 어떠한지 짐작하게 했다.
“부디 최악만은 면하기를······.”
홀로 남은 이필성 대통령은 양손을 모으고 태어나 처음으로 신이라는 존재에게 기도를 했다.

* * *

다다닥. 스슥.
성현은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붙잡고 놓질 않고 있었다.
이미 새벽 3시가 넘었지만, 잠도 크게 오지 않았고 달리할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게임이 즐겁다.
“아저씨, 안 자요?”
해미가 통이 크고 펑퍼짐한 추리닝을 입고 머리를 말리면서 말했다.
성현의 옷이었다. 당장 흙이 묻고 엉망인 상태로 재울 수가 없어 자신의 옷을 내줬다.
“어. 넌 저기 위에 침대 있거든 거기서 자. 나는 여기 쇼파 펼치면 침대 되니까 저기서 자면 돼. 으아아 죽을 뻔했네.”
성현의 오피스텔은 복층 구조라 해미에게 자신의 침대를 양보했다. 어차피 아침까지 잘 생각도 없었고, 해미가 일어나 갈 때까지 게임을 할 생각이었다.
“헐 대박. 아저씨 저랑 같은 게임 하네요.”
“그래?”
어느덧 머리를 다 말린 해미가 성현의 뒤에 서 있었다.
“하하, 내가 렙은 좀 낮지만 컨트롤은 자신 있거든. 나중에 게임에서 보면 말해. 내가 쩔 좀 해주마.”
성현은 학생이 게임을 해봐야 얼마나 했을까 했다.
자신은 한 달을 1년처럼 사용해 게임에 매진했으니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헐. 아저씨 골드도 너무 없다. 장비들 내구도가 왜 이래요? 노랗고 빨간색도 있고, 내구도 회복스크롤 없어요?”
해미가 성현의 모니터를 보고 놀란 듯 말했다.
“크흠. 대장간 가서 고치면 1골드면 되는데 스크롤은 3골드나 하잖아. 마을가서 고치면 되지.”
갸웃, 성현의 말을 듣고도 해미는 시큰둥했다.
그리고 가만히 성현의 플레이를 지켜보던 해미의 입이 다시 열린다.
“에이. 아저씨 완전 쪼렙이네요. 잉, 거기서 거길 왜 들어가요? 뒤로 빠져야죠. 어머! 피 빠지는 거 봐봐. 그땐 왼쪽으로 돌아야죠. 세상에나! 장비가 매직급 하고 레어였어요? 헐 진심으로 전직은 이거로 한 거예요? 그거 전직 직업 개 꾸졌는데······.”
“······.”
해미의 말을 듣던 성현은 게임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자괴감이 들었다.
레벨은 어차피 다른 유저들과 시작한 시기 자체가 갭이 커서 완전히 못 따라잡더라도 남들이 상상도 못 할 컨트롤 실력과 전직해서 얻은 직업에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장비의 부실함은 그걸로 극복된다 생각했었다.
헌데, 모든 게 산산이 부서졌다.
“너 집에 가.”
“아 피곤하다. 저 먼저 잘게요.”
성현의 말에 아차 싶은 해미가 딴소리를 하며 계단을 밝고 올라간다.
‘내 컨트롤은 완벽했어. 살을 주고 뼈를 취했다. 하물며 치명적인 급소만 찾아 공격했어!’
해미의 입장에서는 자꾸 안 맞아도 되는 타이밍에 얻어맞고 있었다.
왜 공격을 일부러 맞고 되받아치는 일을 반복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람도 아닌 게임의 몬스터에게 이상한 부위만을 집요하게 계속 공격했다.
‘직업은 퀘스트 난이도가 너무 높아 아무도 하지 못하는 직업을 선택해서 무려 15일을 투자해 얻은 직업이야. 무기 전문가!! 못 쓰는 무기가 없고, 모든 무기에 대한 공격력을 증가시켜준다. 이보다 완벽한 직업이 어디 있어?’
해미나 같은 게임을 하는 거의 대부분의 유저들이 무기 전문가 직업은 효율성이 없다고 결정 내린 최악의 직업이었다.
또 직업 퀘스트는 시간만 잡아먹는 비효율의 극치였고, 직업 스킬이 다재다능하기는 하나 위력이 형편없었다.
무기 전문가를 제외한 모든 전문직업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직업 무기의 공격력을 200~300% 올려주고, 방어력도 상당히 강화시켜준다.
그에 비해 무기 전문가는 모든 무기 공격력 50%가 다였다.
갖은 전문 직업이 다 있는 게임이다.
게임 초중반만 지나면 파티 사냥이 주를 이뤄 탱커, 근접 딜러, 원거리 딜러, 둔기 전사, 마법사, 힐러 등등 각자의 포지션을 맡아 팀을 이룬다.
여러 무기를 쓰며 1인 다 역을 할 필요성이 단 1도 없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시작한 이들과 호기심에 도전한 이들 모두를 좌절케 한 직업이 무기 전문가였다.
“아저씨 새로 키울 거면 내가 쩔 해줄게요. 저 힐러 레벨 120 넘어서 3차 전직 했어요.”
“시끄러!”
성현의 레벨은 24였다.
한 달 동안 남들은 초반 사냥터를 졸업하는데 성현은 아직 초반 사냥터 중에서 낮은 레벨에 머물러 있었다.
성현은 해미의 말을 곱씹으며 한참을 생각했다.
‘아, 그래. 역시 그런 거였어.’
남다른 전투 감각이 있고 센스가 있는 자신이 보기에 해미는 레벨만 높지 게임의 대한 이해도가 낮다고 생각했다.
전혀 반대였지만, 자신은 굳게 그리 믿었다.
새벽은 깊어 어느덧 동이 터올 때까지 성현은 게임에 몰입했다.
드디어 35레벨을 찍고, 한 단계 높은 사냥터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15번을 내리 죽고 오늘은 좀 많이 죽었나? 생각할 쯤 귓속말 하나가 도착했다.

-저 님하 제가 도저히 못 보겠어서 귓말 보내는데, 걍 겜 접던지 하셈. 정말 안타까워하는 말임, ㅅㄱ.

어떻게 보면 조롱이지만, 순수하게 걱정 어린 귓속말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성현은 고개를 돌려 잠들어 있는 해미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서, 설마.’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 하나둘 떠오른다.
비슷한 시기에 사냥터에 같이 도착했던 이들은 모두 떠났지만, 자신은 언제나 한참을 더 남아있었다.
그리고 새로이 합류한 이들까지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은 남았다.
‘아, 아니겠지?’
자신은 사냥하다 죽는 일이 빈번했다. 마을에서 부활해 다시 뛰어가서 사냥하다 죽길 반복했었다.
이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헌데 자신은 사냥하면서 주위의 누가 죽는 걸 단 한 번이라도 본 적조차 없었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고. 솜털까지 바짝 섰다.

* * *

아침 9시 해미를 억지로 깨운 성현은 특강을 듣고 있었다.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려 했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세 시간이 한계였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막고 찌르고 피하고, 기다리며 몬스터마다의 특성을 듣고 개체마다의 패턴을 익혀 나갔다.
그렇게 배우고 또 배웠다.
성현은 모자란 사람이 아니었고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그대로 안주하고 있을 성격이 아니었다.
모자란 것은 배우고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만.
“아 진짜 레알 직업 바꿔야 한다니까요.”
무기 전문가 직업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과 같았다.
“근데, 넌 학교 안 가냐?”
“헐, 아저씨. 아홉 시에 깨우고 학교 안 가냐고 말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더군다나 지금 열한 시 넘었거든요. 그리고 오늘 토요일이거든요!”
배울 건 다 배웠고, 이제 잔소리만 해대는 해미가 부담스러워 보내려 했지만, 토요일이었다.
“크흠. 그럼 밥 먹자.”
“참내, 일찍도 이야기하시네요.”
시간을 보니 오전 열한 시 삼십 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중국집에서 주문한 간단한 세트 메뉴로 배를 채우고, 성현과 해미는 같이 게임을 했다.
성현은 데스크 탑 해미는 노트북.
그리고 지금 게임 내 마을에 있는 상점에 와 있었다.
게임에서 해미는 상당한 부자였고, 클래스 자체도 완소 직업인 힐러였다.
재화가 크게 들어가는 직업이 아닌 해미는 게임 시작하고부터 계속해서 골드가 쌓였다고 한다.
해미가 자신의 골드를 아낌없이 성현에게 선물했다.
그 순간 해미가 하나님과 동급이고, 부처님과 같은 반열로 보였다.
‘지저스!!’
자신은 몇 골드가 아쉬워 포션 수급도 제대로 못했었다.
하물며, 수리비도 아까워 개당 3골드인 내구도 회복스크롤은 엄두도 못내 먼 마을을 왕복하며 대장간을 이용했다.
지금은 수만 골드를 호가하는 장비를 착용하고, 창고의 골드는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지금 내 캐릭터가 입고 있는 이게 요즘 유행이란 말이지?”
“아-. 유행은 아니고요. 2주년 기념으로 한시적으로 입을 수 있어요. 1달 뒤에는 없어져요.”
성현이 말을 듣고 바라보니, 아이템 아래에 아주 작은 글씨로 날짜가 기입되어 있었다.
“기간 한정이라고? 근데 왜 비싼 골드 주고 이걸 입어?”
“헐. 진짜! 아저씨 아무것도 모르시네. 이게 강화할 수 있는 아이템은 아닌데 어지간한 전설급 강화템보다 좋아요. 그래서 다들 좋은 장비 있어도 이걸 입고 다녀요. 거기다 파츠 마다 장비 걸치지 않아서 수리하기도 편하고요. 방어력도 쩔어요.”
기간 한정 2주년 기념, 전신 일체형 라이트 아머(Light armor)는 심플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캐릭터의 외형은 마치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히어로를 연상케 했다.
“이야! 네 캐릭터도 예쁘네.”
해미의 캐릭터도 성현과 같은 아머를 입고 있었고, 좀 더 슬림(Slim)하면서도 여성성이 강조된 섹시한 모습이었다.
성현은 블랙, 해미는 화이트.
“어라? 너는 머리에 쓰고 있는데 왜 나는 없어?”
성현은 허전한 자신의 캐릭터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앗. 원래 이 아머하고 세트인 헬멧은 별도로 구매해야 돼요. 물론 이것도 기간 한정 상품이에요. 취향에 따라 문양도 넣을 수 있거든요. 저처럼.”
해미는 화이트 헬멧에 불꽃 문양이 수 놓여 있었다.
“아저씨도 자신만의 앰블럼을 고르면 돼요.”
성현은 고심 끝에 동양의 용을 벤치마킹한 문양을 선택했다.
마우스로 골라 헬멧에 클릭하자 문양이 그대로 옮겨진다.
그리고 캐릭터 창의 골드가 빠져나가고 상점창의 헬멧은 자신의 창고로 옮겨졌다.
“꼭 바이크 헬멧 같네. 그래도 멋있긴 하다. 해미야 고맙다. 이 남는 골드는······.”
성현은 장비를 모두 구입하고 남은 골드를 어째야 하나 슬쩍 물어봤다. 아깝지만 줘야 할 것만 같았다.
게임의 재화로 현금 거래 같은 건 해본 적은 없지만 적지 않은 금액이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에이, 얼마나 한다고요.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괜찮아요. 10만 골드당 한 9천 원 하나? 지난주에 천만 골드 팔아서 상납··· 아니 친구 빌려주고 지금도 5백만 넘게 있어요. 저 그래도 나름 힐러 랭커에요.”
상납이라는 말에서 성현의 표정이 변하자 급히 말을 바꾸는 해미였다.
‘해미 주변 애들 한번 참교육이 필요하긴 한 거 같다. 근데 10만 골드당 9천 원이면 1골드는··· 제기랄! 내가 1원도 안 되는 돈을 아끼려고 그 고생을 하고 마을을 갔던 거냐!’
“부담가질 거 없어요. 저를 구해주시기도 했는데······.”
“그래. 그럼 염치없지만 잘 쓸게. 고맙다. 그럼 물약도 좀 사볼까.”
“에이-. 저 힐러 랭커라고 했잖아요. 물약은 노프라블럼. 저만 믿으세요.”
장비 세팅이 끝난 둘은 적당한 사냥터를 찾아 필드로 나섰고, 성현의 사냥은 시작되었다.
피슝.
스카칵. 스걱.
화살을 날리고, 달려가 일 검에 몬스터들을 베어버렸다.
고 레벨 힐러를 쫄로 데리고 최적의 버프와 힐을 받으며, 학살에 가까운 사냥을 하고 있었다.
진정한 격세지감을 느꼈다.
“어, 뭐야 게임 임시 중단?”
“어머.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무슨 일이죠?”
게임에 몰입해 제대로 빠져들고 있는 참이었다.
성현은 뜬금없는 공지에 힘이 쭉 빠졌다.
“무슨 대통령 긴급 발표가 있다는데요.”
성현도 봤다.
대통령의 긴급 성명이 발표된다고 TV를 시청하라고 한다.
삐잉. 삐잉. 삐잉.
휴대폰에 긴급 문자가 도착했다.
애애애애애앵.
하다 하다 적습 또는 공중 공습 때에나 울리는 경보가 엄청난 데시벨로 울려 퍼진다.
‘뭔 일이 나도 제대로 난 거 같은데.’
자신이 알기로 대통령이 담화문이나 무슨 발표를 해도 이리 강제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적은 기필코 없었다.
하물며,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국지 도발로 포사격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띠리링.
급히 TV 리모컨을 찾아 전원을 눌렀다.
TV는 어느 곳을 틀어도 긴급 방송을 준비 중이란 문구와 함께 청와대 내부의 방을 비추고 있었다.
봉황 깃발이 비스듬히 마주 보며 세워져 있었고, 그 앞에 책상 없이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격식에 어긋나는 모습이지만, 크게 생각지는 않았다.
잠시 후. 기다리던 익숙한 모습의 대통령이 모습을 보였고, 의자에 착석했다.
상당히 침통한 표정으로 한참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자신과 눈을 마주 보는 착각이 들 정도로 성현도 집중했다.
[먼저 대통령으로써 국민 여러분에게 형용치 못할 죄를 지어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 어떤 말로도 이 죄는 씻을 수 없을 겁니다........]
이필성 대통령이 카메라 앞에서 엎드려 사죄했다.
너무도 황당한 상황에 성현이나 해미도 입을 벌리고 멍해졌다.
성현은 뒷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