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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보름이 지나자 셀티아 제국 군사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언제든지 텔딘에 쳐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이 밝아 오고 대제국 셀티아와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7년 전쟁은 그렇게 끝을 향해 달려갔다.

셀더 협곡은 제국의 기사들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였다. 텔딘의 성기사들은 신성력을 온몸에 둘러 그들과 맞서 싸웠다.

제국의 기사들은 늑대 모양의 투구를 쓰고 검은 갑주를 둘렀으며, 갑주 위로는 하얀 늑대의 털을 둘러썼다. 그들은 항상 붉은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흰 털 또한 붉게 물들어 제 색을 알아보기 어려웠기에 ‘붉은 짐승 떼’라고 불렸다.

그렇게 신과 짐승의 싸움이 막바지로 치달았다.

피가 튀기고 살점이 날렸다. 척추가 부서져 내리고 머리가 터져 나갔다. 젠은 위대한 선을 위해 싸웠다. 악을 처단하겠다는 그의 신념은 흔들림이 없었다. 신성 성기사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위대한 순교자가 되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황금빛 십자 모양의 신성력을 온몸으로 흩뿌리며 전장을 내달렸다. 그의 곁은 고요와 비명이 공존하는 이분적 세상이었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금빛 죽음의 검로가 그려지며 모든 것이 고요해져만 갔다.

그의 친우이자 부관인 밀리안도 곁에서 검을 휘두르며 행여나 자신의 상관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변을 빠르게 정리해 갔다.

젠은 최후의 싸움을 시작했다. 짐승의 우두머리인 제국의 황태자와 맞부딪쳐 3일 밤낮을 싸웠다. 전쟁터 중심에 선 젠과 황태자의 주변엔 그들의 부하와 전우들의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 시체들은 그대로 셀더 협곡의 피의 강과 무덤이 되었다.

젠과 적국의 황태자는 피로 흩뿌려진 무덤 위에서 검을 맞대고 싸웠다. 젠은 그와 마주친 순간 충격받았다. 온몸을 뒤흔들듯 강렬한 욕구가 폭발했다. 농밀한 열기가 밀려들어 왔다.

황태자의 검은색 투구 속은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가 걸치고 있는 갑주 위 짐승 털에는 붉은 핏덩이들이 눌어붙은 채로 썩어 가며 고약한 냄새를 풍겨 댔다. 그럼에도 황태자의 검이 스칠 때마다 젠은 그의 몸에서 향긋한 향이 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젠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손끝이 차르르 울리며 근육이 팽팽해지고 성감대가 오싹거렸다. 말도 안 되는 기묘한 감각에 젠은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내려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황태자 놈은 뭐가 그리 신나는 건지 검을 휘두르는 손끝에 즐거움이 묻어났다. 간혹 그에게서 파도처럼 강한 열기가 밀려올 때면 젠은 다리를 휘청거리며 가쁜 숨을 쉬었다. 머리를 치는 달콤한 감각이 밀려들어 왔다. 동시에 페니스가 단단히 솟아올랐다.

그와 검을 맞댈 때마다 본능처럼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젠은 저도 모르게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이가 부서져라 물어 참고는 검을 휘둘렀다. 젠은 자신의 몸 상태에 이상이 생겼다고 판단했다.

‘이 무슨 미친 감각이란 말인가? 곤란해!’

그는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수장 대결을 하는 중이었다. 이 대결의 승패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수만의 군사들이 숨을 죽이며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서 이겨야만 승자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런 순간에 말도 안 되게 성욕에 휘둘리다니! 젠은 벌거벗겨진 기분과 수치스러움에 얼굴이 후끈거렸다.

그는 신나게 검을 휘두르는 황태자 놈의 면상을 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자신을 이렇게 야릇하게 도발하며 흥분시키는 빌어먹을 놈의 허리를 베어 버리고, 피곤하기 그지없는 이 전쟁을 한시라도 빨리 마무리하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 또한 밀려들어 왔다.

젠은 웃음이 터졌다. 수치심과 성적 흥분 따위를 느끼다니? 7년을 전쟁터에서 보내면서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눈앞에서 무시무시하게 검을 휘두르는 황태자는 전쟁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해 줄 가장 훌륭한 상대였다.

맘을 겨우 가라앉힌 젠은 검의 세계에 빨려 들어갔다. 황태자의 팔과 다리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젠은 황태자와 함께 아름답고 유려한 검무에 빠져들어 전장의 한복판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둘의 검은 무섭도록 합을 맞춰 갔고, 주변을 빠르게 초토화시켰다.

쾅!

그그극!

오로지 둘만의 시간이 펼쳐졌다. 군사들은 그 둘이 뿜어 대는 폭풍 같은 기류와 위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어느새 군사들이 그 둘의 주변을 둥그렇게 둘러쌌다. 멀리서 보면 마치 전장 한가운데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였다.

첫날은 흉포하기 짝이 없는 황태자의 검을 받아 내며, 젠은 제 검술의 극의인 살로를 개방해 흉흉한 검로를 모조리 흘려보냈다. 둘째 날은 황태자의 검이 아름다운 오러를 내뿜으며 그에게 도전을 해 와, 젠 또한 신성력을 쏟아부어 검을 휘둘렀다.

셋째 날은 젠도 황태자도 더 이상 오러며 신성력 따위를 짜내려야 짜낼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두 사람은 기계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노을이 졌다.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갔다.

그러고 어느 순간 젠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 붉은 태양이 지는 모습을 마주 보고 선 황태자의, 더없이 빛나는 붉은 눈동자를 보았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은 황태자는 가차 없이 젠의 목을 날려 버렸다.

자신의 목이 날아가는 와중에 젠이 본 것은, 짐승의 투구를 벗어 내린 황태자의 얼굴이었다.

자신이 구하고 자신을 구해 준 그 남자. 밤마다 잠을 이룰 수 없게 만들던 남자.

그의 얼굴은 한없이 차갑게 벼려져 있었다. 붉은 눈동자는 떨어진 젠의 목을 말없이 한동안 바라보았다. 마치 그의 모습을 하나하나 짓씹듯이.

젠은 그렇게 셀더 협곡에서 스물여섯 살의 짧은 생을 마무리했다.



***



“하아……. 씨발……. 너무 좋아.”

아델라이드는 거친 욕을 쏟아 내며 옅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녀의 겹겹이 싸인 드레스 자락이 들렸다. 한 남자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이마엔 갈색 머리칼이 땀에 젖은 채 들러붙어 있었다.

남자는 그로프 백작가의 차남으로, 바람둥이로 유명한 이였다. 한껏 달아오른 그는 발갛게 상기된 아델라이드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애액으로 흠뻑 젖은 자신의 입술을 혀로 핥고는 그녀의 도자기처럼 하얀 허벅다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아델라이드는 남자의 얼굴을 잡아당기더니 기다란 혀를 내밀어 남자에게 깊은 키스를 해 댔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부드럽고 말캉한 두 살점의 감촉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귀족 남자들을 쫓아 파티며 살롱에 들락거리는 데 할애했고, 가볍게 입술을 부벼 대면서 자신의 달아오른 욕정을 채웠다.

“드보라 영애. 입이 너무 거친 거 아닌가?”

그로프 백작의 차남이 아델라이드의 젖가슴을 마구 더듬으며 그녀의 목에 키스를 해 댔다. 화끈한 열기가 목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져 내렸다. 아델라이드는 더운 숨을 내뱉으며 그에게 몸을 더욱 밀착했고, 목을 부서트릴 듯 끌어안았다.

셀티아 제국은 전쟁을 마무리하는 중이었고 얼마 전에 종전을 선언했다. 제국의 귀족가는 종전 소식과 제국의 대승 소식을 동시에 파발로 전해 듣곤, 여기저기서 소규모 파티를 주최하여 승리의 전야제를 즐기고 있었다.

아직 밤이 깊지도 않았건만 파티장 테라스의 커튼을 내리고 두 남녀가 엉겨 붙어 있었다.

“하아……. 아아, 거기 너무 좋아. 더 세게 빨아 봐.”

아델라이드의 입에서 거침없는 요구가 쏟아져 나왔다. 남자는 영애의 그런 가벼운 몸가짐을 맘에 들어 했다.

얼마 전만 해도 도도하기 짝이 없던 후작가의 영애가 어느 날 돌변했다. 사교계의 고고한 꽃이었던 여자다. 어느 누구도 다가설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냉정했다. 그런데 최근 그녀가 낙마 사고를 당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얼마 뒤 나타난 그녀는 사람이 180도로 변해 있었다.

“영애. 여기는 어때?”

남자는 그녀의 탱탱한 젖가슴 위에 꼿꼿이 솟은 꼭지를 한 손으로 뭉근히 누르며, 자신의 입술과 혀로 탐욕스럽게 핥아 댔다. 남자의 다른 한 손은 여전히 그녀의 드레스 자락 아래, 액체가 줄줄 흐르는 하반신을 휘젓고 있었다.

아델라이드는 남자의 머리를 잡으며 허리를 가늘게 떨었다. 드레스 자락을 들쳐 올리고 그녀의 은밀한 곳이 드러나자 남자는 자신의 바지 앞섶을 내렸다. 급하게 잡아 내린 그의 다리 사이에 시커먼 남성이 꺼덕거리며 위용을 자랑했다.

순간 아델라이드가 남자를 세차게 밀어 내며 인상을 썼다. 그러곤 순식간에 흐트러진 옷을 추스르더니 남자의 물건을 경멸스럽게 바라보았다.

“드보라 영애? 왜 그래? 날 이렇게 달궈 놓고 내빼는 건가?”

“미안하지만 그 물건 좀 치워 줄래? 아무리 스킨십이 좋아도 그건 적응이 안 되니까.”

“미안하다고? 그럼 같이 더 놀아 줘야지!”

남자가 그녀의 가는 팔을 거칠게 잡아당겨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이자 아델라이드는 인상을 와락 구기며 그에게 안겼다.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능숙하게 그녀가 좋아하고 자지러지는 부분을 찾아 만져 댔다. 그녀는 곧 옅은 신음을 내지르며 그에게 달려들어 물고 빨아 댔다.

두 남녀는 한동안 짐승같이 서로를 탐하다 홀에서 들리는 황태자의 회군 소식에 떨어져 나갔다.

“황태자가 돌아온다고?”

“왜? 드보라 영애, 황태자 전하께 관심 있어?”

가쁜 숨을 내쉬던 아델라이드가 그의 가슴을 살며시 밀며 싱긋 웃었다.

“제국의 미혼인 영애 중에 황태자님께 관심 없는 이가 있을까?”

“하긴. 너도 나도 달려들려 하겠지. 황태자 전하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 하루빨리 황태자비를 맞이하려 하실 테니 말이야…….”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앞에 서 있는 여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녀는 금세 의상을 정돈하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남자 앞에 서 있었다.

170센티미터에 달하는 늘씬한 키의 드보라 영애는 길게 쭉 뻗은 팔다리와 승마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가 매력적인 여자였다. 은청색의 머릿결이 부드럽게 그녀의 어깨 위로 흘러내려 보기 좋게 모양이 잡혀 있었다. 에메랄드빛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남자를 상냥하게 바라보았다.

드보라 후작의 금지옥엽 막내딸. 위로 오빠가 네 명이나 있었다. 그녀는 잘 자란 귀공녀의 표본이었고, 늘 남자들을 눈 아래 두며 차갑게 굴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그에게 다가왔다. 둘의 눈에는 스파크가 튀었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미친 듯이 서로를 탐했다. 그녀는 귀공녀의 허물을 벗어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투가 한없이 거칠었고 본능에 치우친 듯 한없이 노골적이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녀는 끝까지 몸을 내주지는 않았다. 마치 그의 물건을 혐오하는 듯한 눈빛은 그도 뒤로 한발 물러서게 했다. 제국의 바람둥이로 소문난 그가 끝까지 갖지 못한 유일한 여자였다.

그녀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때로 세상을 달관한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고, 때로는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눈 속에 붉은 불길을 일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정열이 느껴졌고, 무서울 정도로 그를 매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만 들어가 봐야겠어. 슬슬 우리 관계도 정리하자.”

아델라이드가 그를 향해 은청색의 긴 눈썹을 팔랑거리며 말했다.

“끄응……. 벌써 정리하려고? 난 아쉬운데.”

“아쉬울 때 끝내야 아름다운 거야.”

제국 최고의 바람둥이인 그로프 백작의 차남은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살며시 들어 손등에 키스하곤 경건하게 말했다.

“드보라 영애. 당신의 앞길에 빛이 있기를.”

“그로프 님께도 빛의 인도가 있기를.”

그 둘은 그렇게 서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헤어졌다. 처음부터 아무런 사이가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