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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통제사 1권 (21화)
제8장 (1)
자는 동안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무척 달게 잘 수 있었다.
“아리는 어디 갔지?”
아리가 보이지 않았지만 어디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리의 기척이 주방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를 만드는 모양이군.”
침대에서 나와 주방으로 가니 아리가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정말 예쁘다.’
주방 창을 통해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햇빛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아리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어머! 깼어요?”
“그래. 언제 일어난 거야?”
“얼마 되지 않았어요. 조금 있으면 준비가 다 되니까 어서 씻고 와요.”
“알았어.”
아리의 말대로 욕실로 가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주방으로 가니 식탁에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이걸 언제 다했어?”
“소금구이한 연어하고, 쇠고기 무국에 밥뿐이에요. 김치가 있어야 하는데 재료가 없어서 그러니 그건 나중에 해드릴게요.”
“김치도 할 줄 알아?”
“배우기는 했는데 한 번도 해 본적은 없어요. 나중에 만들어 드릴게요.”
“이정도로도 훌륭한 데 뭘. 이야, 맛있겠는 걸.”
내가 식탁에 앉자 아리도 앞에 앉았다.
“먹자.”
“드세요.”
시원해 보이는 무국에 한 입 뜨고, 잘 된 밥에 간이 잘 밴 연어 구이를 입에 넣으니 정말 맛있었다.
“쩝! 쩝! 정말 맛있어.”
“호호호, 다행이네요.”
맛있다는 것은 빈말이 아니다.
밥을 국에 말아 먹었는데도 고슬고슬한 것이 탄력을 잃지 않았다.
타고난 솜씨가 있는 것인지 쇠고기 무국은 시원하면서도 감칠맛이 있었고, 잘 구운 연어 또한 담백하면서도 매우 맛있었다.
덕분에 아리가 밥을 두 번이나 더 퍼야 했다.
고봉밥을 세 그릇이나 먹자 아리가 그릇을 치우며 한마디 했다.
“자기는 정말 잘 먹네요. 돈을 많이 벌어야겠어요.”
“하하하, 아리 솜씨가 워낙 좋아서 말이야. 그리고 그래야 할 거야. 나 대식가거든.”
“어쩐지 그런 것 같더라니……. 이제부터라도 가계부를 적어야 할까 봐요.”
“하하하하!”
S급 진성능력자인 아리가가 계산을 하며 가계부를 적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왜 웃어요?”
“가계부를 적는 아리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져서 그래. 너무 예쁠 것 같아서 말이야.”
“눈에 콩깍지가 씌었나봐. 자기는 만날 나보고 예쁘다고만 하네.”
“그럼 어떻게 해. 진짜 예쁜데 말이야.”
“호호호! 예쁘게 봐주니 좋기는 하네요.”
“정말이야. 이렇게 예쁜 아리를 영혼의 반려로 맞은 것은 정말 행운이야.”
“알았어요. 비행기 그만 태워요. 그나저나 오늘도 시내로 나갈 거예요.”
“식재료도 조금 사야 하고 분위기도 살펴봐야 하니 나가봐야 할 것 같아.”
“알았어요. 그럼 점심은 나가서 먹어요. 그리고 대학교에 한 번 들러요. 정보를 조작해 놓기는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확인을 위해서라도 가봐야 할 것 같으니 말이죠.”
“그래, 거기도 한 번 가 보자.”
차를 마신 후 간단하게 양치를 하고 저택을 나섰다.
현무를 몰고 시가지에 도착하니 군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대신 경찰들이 쫙 깔려 있었다.
‘S급 진성능력자들을 찾으려는 것 같지만 경찰력만으로는 불가능할 텐데…….’
1차 각성을 한 이들이라고는 하지만 일반인인 경찰들이 S급 진성능력자를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군인들이 대거 동원된 만큼 소문이 퍼지고 있을 테니 아무래도 S급 진성능력자를 찾으려고 하는 것보다는 통제의 의미가 강한 것 같다.
“분위기가 많이 경직된 것 같아요.”
“그런 것 같기는 해.”
“빨리 학교에 들렀다가 거기서 점심을 먹고 식재료를 사러 가요.”
“알았어.”
곧바로 현무를 몰아 대학교로 향했다.
행정실에 들러 휴학을 언제까지 할 수 있는지 알아보니 남아 있는 3개월 말고도 추가적으로 2년을 더 할 수 있다니 문제가 없을 것 같아서 기간을 연장시켰다.
행정적인 일을 다 처리하고 나니 점심이 가까워져 학교 근처의 식당에 들러 점심은 먹은 후에 식재료를 구입하고 다시 저택으로 돌아왔다.
“내일 떠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아. 하지만 중국 쪽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가 문제인데 말이야.”
“자기가 포기한다면 모를까 어쩔 수 없지 않아요? 자기는 1차 각성자라서 크게 주목하지 않을 테니 이번 일에 관여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기는 하지만 워낙 예상치 못한 일을 잘 저지르는 자들이라서 말이야.”
“저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알았어. 내일 일찍 출발해야 하니까. 오늘은 저녁을 일찍 먹고 자도록 하자고.”
“저녁 먹고 그냥 자자고요?”
“응.”
“나 이제 다 나았는데…….”
“쩝!”
아주 어려 보이는 얼굴이지만 따지고 보면 나보다 한 살밖에 적지 않은데도 가끔 어리광을 부린다.
다 나았다고는 말은 하지만 아직 내상의 여파가 남아 있을 텐데 이러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긴, 내 나이가 지금 만으로 스물셋이니 우리 둘 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
1차 각성으로 인해 조숙하기는 하지만 혈기가 왕성한 나이다.
영혼의 반려를 얻었으니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알았어.”
“호호호, 뭘요?”
아리가 미소를 짓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다.
참 짓궂은 여자다.
“험! 험! 얼른 저녁 만들어서 먹자.”
“호호호, 알았어요.”
점심을 먹기는 했는데 아리가 만든 것만큼은 아니어서 그냥 억지로 먹었다.
맛이 별로였기에 먹은 양은 두말 할 나이도 없이 적었기에 배가 고픈 상황이라 주방으로 들어가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잡은 뒤에 숙성 과정을 거친 두툼한 소고기를 버터를 이용해 스테이크로 굽고, 채소와 토마토를 이용해 러시아 국민 소스인 스메타나를 넣은 샐러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분위기를 맞춰 보드카 대신 도수가 낮은 와인으로 식탁을 세팅했다.
“흐음, 정말 맛있는 냄새가 나에요.”
아침 식사가 고마워 구경만 하라고 했더니 앉아 있던 아리가 포크와 나이프를 양손에 들고 함박웃음을 흘린다.
“어서 먹자.”
“잘 먹겠습니다.”
큰소리와 함께 기세 좋게 달려드는 아리였지만 정작 나이프로 써는 양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새끼손가락 한마디 정도로 썬 후에 음미하듯 천천히 씹어서 고기를 먹는다.
“다른 방법으로 고기를 한 번 더 구울 거니까 크게 썰어 먹어도 돼. 식으면 맛없어.”
“알았어요.”
내 권유가 마음에 들었는지 고기를 크게 썰어 오물오물 씹는다.
“고기정말 연하게 잘 구워졌어요. 샐러드도 맛있고요.”
“다행이네. 자!”
와인을 따른 잔을 들자 아리도 잔을 들었다.
티―잉!
잔을 부딪치는 맑은 소리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와인의 풍취를 즐겼다.
고기와 잘 어울리는 맛이었다.
“먹고 있어. 고기 좀 더 구울 테니까.”
“그래요.”
한 번에 썰어 먹는 양이 많기에 어느새 접시를 비워 버린 터라 일어나서 고기를 구우러 갔다.
이번에는 숯불을 이용한 한국식 등심 구이다.
화로에 숯불이 잘 지펴졌기에 석쇠를 얹고 식탁 한 쪽에 놨다.
“나 이거 먹고 싶었어요.”
“젓가락은 다룰 줄 알지?”
“물론이죠.”
“내가 고기를 구워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를 테니까 하나씩 집어서 소금을 살짝 찍어 먹으면 돼.”
“드라마를 봐서 저도 알아요.”
“하하하, 알았어.”
달궈진 석쇠 위로 스테이크용 등심을 올려놓았다.
치이이익!
화로 중심의 센 불로 아래를 익히고 육즙을 가둔 후에 고기를 뒤집어 구웠다.
어느 정도 익었기에 고기가 질겨지기 전에 가위로 잘라서 먹기 좋게 석쇠 끝에 올려놓았다.
“츠읍! 맛있겠다.”
“지금 먹어야 맛있어.”
“알았어요.”
“쩝! 쩝! 정말 맛있어요. 자기도 어서 먹어요.”
“알았어.”
연하면서도 고기 특유의 풍미가 잘 살아 있어서 아주 맛이 좋았다.
내가 워낙 잘 먹기도 하지만 아리도 만만치 않아 거의 1킬로그램이나 하는 스테이크용 등심을 금방 다 먹어 버렸다.
“이러다가 배가 나오겠어요.”
“아리는 배가 나와도 예뻐. 그리고 금방 소화될 거잖아.”
“그렇기는 해도.”
“자, 차나 한잔하자.”
주전자를 불에 올려 물을 끓인 후 커피를 내렸다.
설탕을 넣지 않은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시는 나와 달리 달달한 것을 좋아하는 아리를 위해 라떼를 만들어 주었다.
“중국에서 일을 마치고나서 한국에 가면 뭐 할 거예요?”
“일단 2차 각성을 준비하려고 해.”
“이런 일을 하면서는 쉽지 않을 거예요.”
“아직까지 직접 사람을 해친 적은 없었어.”
“정말이요?”
“응, 아직까지는…….”
“그나마 다행이네요.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면 인과율에 따라 2차 각성이 어려웠을 테니까요.”
“그게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 당신말대로 이런 일을 하면서는 말이야.”
“그만둘 수는 없는 건가요?”
“그만 두기는 해야 할 텐데 다른 것은 몰라도 이번 일은 힘들 것 같아.”
“배신한 자 때문에요?”
“맞아. 배후에 있는 존재들을 밝혀내지 못하면 문제가 계속해서 커질 테니까 말이야.”
“하긴, 그럴 거예요. 미지의 대차원과 지구가 연결이 되면 대변혁에 준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 자명한 일이니까요. 저도 최선을 다해서 도울게요.”
“고마워. 그나마 아리가 있어서 다행이야.”
“뭘요. 서방님이 하시는 일인데 당연한 일인데. 소녀는 언제나 서방님 편이옵니다.”
사극조로 말하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하하하! 이만 자러 갈까?”
“그래요.”
아리가 앞서 침실로 향한다.
‘미안하다.’
알파를 나와도 그만 두지 못하는 것은 내가 가진 사명 때문이다.
확실한 이유를 내가 말해 주지 못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따라주는 아리가 고맙기 그지없다.
주방을 나와 욕실로 가서 함께 양치를 한 후에 침대로 들어갔다.
쪽!
이불속으로 파고들자 아리가 안기며 키스를 한다.
“아리야,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오늘은 조금만 하자.”
“으음, 조금만! 조금만!”
와인은 다 비워서인지 얼굴 붉게 달아오른 아리는 내 목을 휘어 감고는 품속으로 파고들며 들뜬 소리를 내뱉는다.
그렇게 열정적인 키스가 이어지고 난 후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내일 중국으로 들어가기에 조금만 사랑을 나누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열정의 환락이 끝난 후, 우리는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 * *
베이징으로 가는 탓인지 공항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 항공편을 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별다른 문제없이 좌석에 앉은 후에 이륙하기를 기다렸다.
승객이 다 탑승한 후에 비행기는 곧장 이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장의 안내 방송을 들은 후 기내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화장실을 가는 척하면서 심연의 심안으로 타고 있는 이들을 살필 수 있었다.
‘S급 진성능력자가 세 명이로군. 각자 따로 앉아 있기는 하지만 같은 일행이다.’
살기의 잔향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항카 호 주변에서 러시아 능력자들을 학살했던 자들이 분명했다.
자리로 돌아온 후에 스킨 패널을 열어 텔레파시를 보냈다.
― 탑승구와 비상구 근처에 모두 세 명이 있어. 조심해야 할 거야.
― 최대한 감추고 있으니 저를 알아차리지 못할 거예요.
― 공항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그래도 조심해야 할 거야. 그나저나 현무가 걱정이군.
아침 일찍 일어나 현무에게 내가 지정한 좌표로 이동하도록 했다.
상당한 거리라 지금의 능력으로는 움직임에 제약이 있어 걱정이 된다.
― 현무는 목적지로 잘 가고 있을 거예요.
― 언제 도착을 할 지 모르겠지만 눈치가 여간 아닌 녀석이니 잘 가고 있겠지.
― 그래도 꽤나 귀여운 애에요.
― 당신한테나 그렇지.
― 질투하는 거예요?
― 아니, 그런 게 아니야. 현무가 당신을 위해서 제작된 것 같아서 그래.
― 저를 위해서요? 설마요.
― 당신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 느낌이 그래.
― 자기가 그렇다니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겠네요.
현무는 아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거의 확실하다.
내가 마스터인데도 불구하고 서브 마스터인 아리를 더 주인 같이 대하니 말이다.
― 지금은 편히 쉬고 비행기가 착륙하고 나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긴장을 해야 할 거야.
― 걱정하지 마요. 어떨 때 보면 자기는 내가 S급이라는 것을 가끔 잊는 것 같아요.
― 후후후, 아리가 내 여자라서 그러는 거겠지.
― 어휴, 느끼해.
― 느끼한 내가 바로 당신 남자야. 조금 피곤할 테니 잠깐만 자두는 것이 좋을 거야.
― 알았어요.
어제 밤에 계속해서 사랑을 재촉한 것은 아리였기에 입술을 삐죽이는 모습을 한 방에 잠재울 수 있었다.
대한민국 영공을 가로지를 수 없기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베이징까지는 조금 돌아가는 탓에 비행기로 두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달게 한숨 낮잠을 자면 도착할 시간이라 두 눈을 감았다.
‘쉬지를 않는군.’
잠시 뒤 아리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려왔지만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은밀한 에너지 흐름이 세 명의 S급 진성능력자들 사이에서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내기는 했지만 저들에게도 통할지 모르겠군.’
심연의 심안을 통해 아리가 현무에게 발산하는 텔레파시를 감청한 적이 있었다.
아리와 현무는 내가 감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기에 저들에게도 한 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텔레파시로 나누고 있는 저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다면 여러 가지 상황에 미리 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8장 (1)
자는 동안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무척 달게 잘 수 있었다.
“아리는 어디 갔지?”
아리가 보이지 않았지만 어디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리의 기척이 주방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를 만드는 모양이군.”
침대에서 나와 주방으로 가니 아리가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정말 예쁘다.’
주방 창을 통해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햇빛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아리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어머! 깼어요?”
“그래. 언제 일어난 거야?”
“얼마 되지 않았어요. 조금 있으면 준비가 다 되니까 어서 씻고 와요.”
“알았어.”
아리의 말대로 욕실로 가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주방으로 가니 식탁에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이걸 언제 다했어?”
“소금구이한 연어하고, 쇠고기 무국에 밥뿐이에요. 김치가 있어야 하는데 재료가 없어서 그러니 그건 나중에 해드릴게요.”
“김치도 할 줄 알아?”
“배우기는 했는데 한 번도 해 본적은 없어요. 나중에 만들어 드릴게요.”
“이정도로도 훌륭한 데 뭘. 이야, 맛있겠는 걸.”
내가 식탁에 앉자 아리도 앞에 앉았다.
“먹자.”
“드세요.”
시원해 보이는 무국에 한 입 뜨고, 잘 된 밥에 간이 잘 밴 연어 구이를 입에 넣으니 정말 맛있었다.
“쩝! 쩝! 정말 맛있어.”
“호호호, 다행이네요.”
맛있다는 것은 빈말이 아니다.
밥을 국에 말아 먹었는데도 고슬고슬한 것이 탄력을 잃지 않았다.
타고난 솜씨가 있는 것인지 쇠고기 무국은 시원하면서도 감칠맛이 있었고, 잘 구운 연어 또한 담백하면서도 매우 맛있었다.
덕분에 아리가 밥을 두 번이나 더 퍼야 했다.
고봉밥을 세 그릇이나 먹자 아리가 그릇을 치우며 한마디 했다.
“자기는 정말 잘 먹네요. 돈을 많이 벌어야겠어요.”
“하하하, 아리 솜씨가 워낙 좋아서 말이야. 그리고 그래야 할 거야. 나 대식가거든.”
“어쩐지 그런 것 같더라니……. 이제부터라도 가계부를 적어야 할까 봐요.”
“하하하하!”
S급 진성능력자인 아리가가 계산을 하며 가계부를 적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왜 웃어요?”
“가계부를 적는 아리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져서 그래. 너무 예쁠 것 같아서 말이야.”
“눈에 콩깍지가 씌었나봐. 자기는 만날 나보고 예쁘다고만 하네.”
“그럼 어떻게 해. 진짜 예쁜데 말이야.”
“호호호! 예쁘게 봐주니 좋기는 하네요.”
“정말이야. 이렇게 예쁜 아리를 영혼의 반려로 맞은 것은 정말 행운이야.”
“알았어요. 비행기 그만 태워요. 그나저나 오늘도 시내로 나갈 거예요.”
“식재료도 조금 사야 하고 분위기도 살펴봐야 하니 나가봐야 할 것 같아.”
“알았어요. 그럼 점심은 나가서 먹어요. 그리고 대학교에 한 번 들러요. 정보를 조작해 놓기는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확인을 위해서라도 가봐야 할 것 같으니 말이죠.”
“그래, 거기도 한 번 가 보자.”
차를 마신 후 간단하게 양치를 하고 저택을 나섰다.
현무를 몰고 시가지에 도착하니 군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대신 경찰들이 쫙 깔려 있었다.
‘S급 진성능력자들을 찾으려는 것 같지만 경찰력만으로는 불가능할 텐데…….’
1차 각성을 한 이들이라고는 하지만 일반인인 경찰들이 S급 진성능력자를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군인들이 대거 동원된 만큼 소문이 퍼지고 있을 테니 아무래도 S급 진성능력자를 찾으려고 하는 것보다는 통제의 의미가 강한 것 같다.
“분위기가 많이 경직된 것 같아요.”
“그런 것 같기는 해.”
“빨리 학교에 들렀다가 거기서 점심을 먹고 식재료를 사러 가요.”
“알았어.”
곧바로 현무를 몰아 대학교로 향했다.
행정실에 들러 휴학을 언제까지 할 수 있는지 알아보니 남아 있는 3개월 말고도 추가적으로 2년을 더 할 수 있다니 문제가 없을 것 같아서 기간을 연장시켰다.
행정적인 일을 다 처리하고 나니 점심이 가까워져 학교 근처의 식당에 들러 점심은 먹은 후에 식재료를 구입하고 다시 저택으로 돌아왔다.
“내일 떠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아. 하지만 중국 쪽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가 문제인데 말이야.”
“자기가 포기한다면 모를까 어쩔 수 없지 않아요? 자기는 1차 각성자라서 크게 주목하지 않을 테니 이번 일에 관여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기는 하지만 워낙 예상치 못한 일을 잘 저지르는 자들이라서 말이야.”
“저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알았어. 내일 일찍 출발해야 하니까. 오늘은 저녁을 일찍 먹고 자도록 하자고.”
“저녁 먹고 그냥 자자고요?”
“응.”
“나 이제 다 나았는데…….”
“쩝!”
아주 어려 보이는 얼굴이지만 따지고 보면 나보다 한 살밖에 적지 않은데도 가끔 어리광을 부린다.
다 나았다고는 말은 하지만 아직 내상의 여파가 남아 있을 텐데 이러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긴, 내 나이가 지금 만으로 스물셋이니 우리 둘 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
1차 각성으로 인해 조숙하기는 하지만 혈기가 왕성한 나이다.
영혼의 반려를 얻었으니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알았어.”
“호호호, 뭘요?”
아리가 미소를 짓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다.
참 짓궂은 여자다.
“험! 험! 얼른 저녁 만들어서 먹자.”
“호호호, 알았어요.”
점심을 먹기는 했는데 아리가 만든 것만큼은 아니어서 그냥 억지로 먹었다.
맛이 별로였기에 먹은 양은 두말 할 나이도 없이 적었기에 배가 고픈 상황이라 주방으로 들어가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잡은 뒤에 숙성 과정을 거친 두툼한 소고기를 버터를 이용해 스테이크로 굽고, 채소와 토마토를 이용해 러시아 국민 소스인 스메타나를 넣은 샐러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분위기를 맞춰 보드카 대신 도수가 낮은 와인으로 식탁을 세팅했다.
“흐음, 정말 맛있는 냄새가 나에요.”
아침 식사가 고마워 구경만 하라고 했더니 앉아 있던 아리가 포크와 나이프를 양손에 들고 함박웃음을 흘린다.
“어서 먹자.”
“잘 먹겠습니다.”
큰소리와 함께 기세 좋게 달려드는 아리였지만 정작 나이프로 써는 양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새끼손가락 한마디 정도로 썬 후에 음미하듯 천천히 씹어서 고기를 먹는다.
“다른 방법으로 고기를 한 번 더 구울 거니까 크게 썰어 먹어도 돼. 식으면 맛없어.”
“알았어요.”
내 권유가 마음에 들었는지 고기를 크게 썰어 오물오물 씹는다.
“고기정말 연하게 잘 구워졌어요. 샐러드도 맛있고요.”
“다행이네. 자!”
와인을 따른 잔을 들자 아리도 잔을 들었다.
티―잉!
잔을 부딪치는 맑은 소리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와인의 풍취를 즐겼다.
고기와 잘 어울리는 맛이었다.
“먹고 있어. 고기 좀 더 구울 테니까.”
“그래요.”
한 번에 썰어 먹는 양이 많기에 어느새 접시를 비워 버린 터라 일어나서 고기를 구우러 갔다.
이번에는 숯불을 이용한 한국식 등심 구이다.
화로에 숯불이 잘 지펴졌기에 석쇠를 얹고 식탁 한 쪽에 놨다.
“나 이거 먹고 싶었어요.”
“젓가락은 다룰 줄 알지?”
“물론이죠.”
“내가 고기를 구워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를 테니까 하나씩 집어서 소금을 살짝 찍어 먹으면 돼.”
“드라마를 봐서 저도 알아요.”
“하하하, 알았어.”
달궈진 석쇠 위로 스테이크용 등심을 올려놓았다.
치이이익!
화로 중심의 센 불로 아래를 익히고 육즙을 가둔 후에 고기를 뒤집어 구웠다.
어느 정도 익었기에 고기가 질겨지기 전에 가위로 잘라서 먹기 좋게 석쇠 끝에 올려놓았다.
“츠읍! 맛있겠다.”
“지금 먹어야 맛있어.”
“알았어요.”
“쩝! 쩝! 정말 맛있어요. 자기도 어서 먹어요.”
“알았어.”
연하면서도 고기 특유의 풍미가 잘 살아 있어서 아주 맛이 좋았다.
내가 워낙 잘 먹기도 하지만 아리도 만만치 않아 거의 1킬로그램이나 하는 스테이크용 등심을 금방 다 먹어 버렸다.
“이러다가 배가 나오겠어요.”
“아리는 배가 나와도 예뻐. 그리고 금방 소화될 거잖아.”
“그렇기는 해도.”
“자, 차나 한잔하자.”
주전자를 불에 올려 물을 끓인 후 커피를 내렸다.
설탕을 넣지 않은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시는 나와 달리 달달한 것을 좋아하는 아리를 위해 라떼를 만들어 주었다.
“중국에서 일을 마치고나서 한국에 가면 뭐 할 거예요?”
“일단 2차 각성을 준비하려고 해.”
“이런 일을 하면서는 쉽지 않을 거예요.”
“아직까지 직접 사람을 해친 적은 없었어.”
“정말이요?”
“응, 아직까지는…….”
“그나마 다행이네요.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면 인과율에 따라 2차 각성이 어려웠을 테니까요.”
“그게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 당신말대로 이런 일을 하면서는 말이야.”
“그만둘 수는 없는 건가요?”
“그만 두기는 해야 할 텐데 다른 것은 몰라도 이번 일은 힘들 것 같아.”
“배신한 자 때문에요?”
“맞아. 배후에 있는 존재들을 밝혀내지 못하면 문제가 계속해서 커질 테니까 말이야.”
“하긴, 그럴 거예요. 미지의 대차원과 지구가 연결이 되면 대변혁에 준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 자명한 일이니까요. 저도 최선을 다해서 도울게요.”
“고마워. 그나마 아리가 있어서 다행이야.”
“뭘요. 서방님이 하시는 일인데 당연한 일인데. 소녀는 언제나 서방님 편이옵니다.”
사극조로 말하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하하하! 이만 자러 갈까?”
“그래요.”
아리가 앞서 침실로 향한다.
‘미안하다.’
알파를 나와도 그만 두지 못하는 것은 내가 가진 사명 때문이다.
확실한 이유를 내가 말해 주지 못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따라주는 아리가 고맙기 그지없다.
주방을 나와 욕실로 가서 함께 양치를 한 후에 침대로 들어갔다.
쪽!
이불속으로 파고들자 아리가 안기며 키스를 한다.
“아리야,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오늘은 조금만 하자.”
“으음, 조금만! 조금만!”
와인은 다 비워서인지 얼굴 붉게 달아오른 아리는 내 목을 휘어 감고는 품속으로 파고들며 들뜬 소리를 내뱉는다.
그렇게 열정적인 키스가 이어지고 난 후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내일 중국으로 들어가기에 조금만 사랑을 나누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열정의 환락이 끝난 후, 우리는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 * *
베이징으로 가는 탓인지 공항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 항공편을 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별다른 문제없이 좌석에 앉은 후에 이륙하기를 기다렸다.
승객이 다 탑승한 후에 비행기는 곧장 이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장의 안내 방송을 들은 후 기내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화장실을 가는 척하면서 심연의 심안으로 타고 있는 이들을 살필 수 있었다.
‘S급 진성능력자가 세 명이로군. 각자 따로 앉아 있기는 하지만 같은 일행이다.’
살기의 잔향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항카 호 주변에서 러시아 능력자들을 학살했던 자들이 분명했다.
자리로 돌아온 후에 스킨 패널을 열어 텔레파시를 보냈다.
― 탑승구와 비상구 근처에 모두 세 명이 있어. 조심해야 할 거야.
― 최대한 감추고 있으니 저를 알아차리지 못할 거예요.
― 공항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그래도 조심해야 할 거야. 그나저나 현무가 걱정이군.
아침 일찍 일어나 현무에게 내가 지정한 좌표로 이동하도록 했다.
상당한 거리라 지금의 능력으로는 움직임에 제약이 있어 걱정이 된다.
― 현무는 목적지로 잘 가고 있을 거예요.
― 언제 도착을 할 지 모르겠지만 눈치가 여간 아닌 녀석이니 잘 가고 있겠지.
― 그래도 꽤나 귀여운 애에요.
― 당신한테나 그렇지.
― 질투하는 거예요?
― 아니, 그런 게 아니야. 현무가 당신을 위해서 제작된 것 같아서 그래.
― 저를 위해서요? 설마요.
― 당신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 느낌이 그래.
― 자기가 그렇다니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겠네요.
현무는 아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거의 확실하다.
내가 마스터인데도 불구하고 서브 마스터인 아리를 더 주인 같이 대하니 말이다.
― 지금은 편히 쉬고 비행기가 착륙하고 나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긴장을 해야 할 거야.
― 걱정하지 마요. 어떨 때 보면 자기는 내가 S급이라는 것을 가끔 잊는 것 같아요.
― 후후후, 아리가 내 여자라서 그러는 거겠지.
― 어휴, 느끼해.
― 느끼한 내가 바로 당신 남자야. 조금 피곤할 테니 잠깐만 자두는 것이 좋을 거야.
― 알았어요.
어제 밤에 계속해서 사랑을 재촉한 것은 아리였기에 입술을 삐죽이는 모습을 한 방에 잠재울 수 있었다.
대한민국 영공을 가로지를 수 없기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베이징까지는 조금 돌아가는 탓에 비행기로 두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달게 한숨 낮잠을 자면 도착할 시간이라 두 눈을 감았다.
‘쉬지를 않는군.’
잠시 뒤 아리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려왔지만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은밀한 에너지 흐름이 세 명의 S급 진성능력자들 사이에서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내기는 했지만 저들에게도 통할지 모르겠군.’
심연의 심안을 통해 아리가 현무에게 발산하는 텔레파시를 감청한 적이 있었다.
아리와 현무는 내가 감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기에 저들에게도 한 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텔레파시로 나누고 있는 저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다면 여러 가지 상황에 미리 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