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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통제사 1권 (11화)

제4장 (2)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계속 걸었다.

전투 슈트를 입고 가면 아주 빠르게 갈 수도 있지만 만약을 생각해 그냥 맨몸으로 걸었다.

북쪽으로 향한 이유는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딸린 역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주일 정도 산을 타고 움직인 후에 조그마한 도시를 찾을 수 있었다.

대략 3,000여 가구가 사는 곳인데, 마을 중심에 역이 있었다.

기차표를 사기 위해 역사에 갔다.

“블라디보스토크 편도로 하나 부탁합니다.”

원어민 수준의 러시아어로 매표창구에서 표를 부탁했다.

“다음에 올 열차는 좌석이 하나도 없는데…….”

배불뚝이 하나가 퉁명스럽게 말한다.

“급해서 그런데…….”

그의 옆으로 급행료로 돈을 들이밀었다.

루불화가 아니라 달러로 100달러였기에 그의 눈이 상당히 커졌다.

“험! 험! 어디보자. 꾸페가 남았는데 2만5천 루블이요. 달러로 주면 더 좋고.”

꾸페는 2등석의 4인실로, 지금 말한 요금은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격이다.

‘이런 도둑놈의 새끼!’

한화로는 대략 50만원인데 중간에 타는데도 전액을 다 부르는 것을 보니 나머지 요금은 떼먹으려는 것 같아 속으로 욕이 나왔다.

“주세요. 달러가 없어서 계산은 루블화로 하겠습니다.”

“크, 흠! 할 수 없지. 선금이요.”

루블화로 돈을 다 내자 열차표를 준다.

“고맙습니다.”

열차를 타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표를 받아들자마자 곧바로 역사를 나왔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음식 좀 먹어보자.’

반군 거점에서 뭉흐체첵과 헤어진 후부터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전투식량으로 만들어진 고단백 에너지 바만 줄곧 먹어온 터라 사람이 만든 음식이 그리워졌다.

‘저곳에 사람들이 많군.’

역사 근처에서 만남이라는 뜻을 가진 브스뜨레차라는 이름의 음식점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안쪽에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봐서는 맛있는 곳일 가능성이 높았기에 안으로 들어갔다.

‘흐흠, 냄새가 정말 좋군.’

안으로 들어가자 꽤나 괜찮은 냄새가 났다.

하지만 낯선 사람이 들어온 탓인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냄새를 느낄 여유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저기가 비었군.’

얼른 비어 있는 곳으로 가서 자리에 앉자 종업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다가 왔다.

‘러시아인이 슬라브 계통이라 미인이 많다고 하더니…….’

키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이런 한적한 곳에서는 정말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여행을 오셨나 봐요?”

“여행은 아니고, 학교 과제로 탐사를 하러 왔다가 이제는 돌아가려고요.”

“그렇구나. 혹시 학생?”

“극동 공립대학교에 다녀요.”

“참 멀리서도 왔네요.”

“저, 지금 제가 배가 고파서 그런데 블린느이 좀 주시겠어요. 속을 채울 것은 햄하고 치즈, 연어 알로 주시고요. 그리고 양은 이 인분으로요.”

“호호호, 배가 많이 고팠나보다. 알았어요.”

여자가 곧바로 주방으로 가서 주문을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핫케이크처럼 생긴 블린느이와 속에 넣을 재료들이 담긴 접시를 들고 여자가 왔다.

“난 알리사라고 해요. 맛있게 먹어요.”

“스빠씨바, 알리사.”

한국 사람들이 들으면 욕처럼 들리겠지만 러시아 말로 고맙다는 말이다.

“천만에요.”

내 인사에 알리사가 손을 들어 보인 후 주방 쪽으로 갔다.

‘맛있겠다.’

음식이 눈앞에 보이자 회가 동했다.

블린느이는 러시아 핫케이크인데, 반죽에 러시아 특유의 유제품인 케피르를 첨가해서 쫄깃쫄깃한 맛을 낸다.

둥글고 얇은 이 러시아산 핫케이크에 연어 알, 잼, 치즈, 햄, 고기나 사워크림인 스메타나 등을 넣어서 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쩝! 쩝!”

고소하고 쫄깃한 맛에 풍미가 살아 있는 속 재료가 감칠맛을 내고 있어 계속해서 식욕을 돋운다.

“쩝! 쩝! 알리사, 2인분 더요.”

반 정도 먹었을 때 손을 들어 주문을 추가했다.

속이 허기지기도 했지만 정말 괜찮은 맛이라서 2인분을 금방 비워 버렸다.

“여기요.”

“고마워요.”

먹는 속도에 맞췄는지 접시가 비자 알리사가 추가한 2인분을 식탁에 내려놨다.

내 손과 입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우와! 정말 배가 고팠나 보네요. 이렇게 잘 먹는 사람은 처음 봐요.”

추가로 나온 것도 후다닥 해치우고 나자 주스를 가지고 온 알리사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하하하, 내가 덩치가 좀 있죠.”

“우리 집은 양이 많은 편인데 혼자서 4인분이라니 정말 대단해요. 그런데 이름이 뭐예요?”

“드미트리라고 합니다.”

“호호호, 얼굴하고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하하하. 에이, 뭘요.”

왜 이렇게 친절한 것인지 모르겠다.

키는 190센티미터에 몸무게는 100킬로그램이고 얼굴은 선이 굵은 편이라 절대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데 말이다.

“고마워요, 알리사. 덕분에 잘 먹었어요. 이제는 가 봐야 할 것 같네요.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말이죠.”

“그래요. 또 이곳으로 여행을 오실 건가요?”

“잘 모르겠어요. 이쪽으로 다시 오게 될지는…….”

“다음에 또 봤으면 좋겠네요. 그럼 잘 가요.”

“예.”

알리사가 빈 그릇을 들고 주방 쪽으로 가는 것을 보며 팁을 식탁 위에 올려놓은 후 브스뜨레차를 나왔다.

소화가 되지는 않았지만 열차시간이 가까워 곧바로 역사로 갔다.

대합실에서 앉아서 조금 기다리자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역사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정말 고풍스러운 기차군.’

위쪽에 전조등이 달려 있고, 묵직한 원형의 철제 중심부에 붉은색 판에 금색으로 되어 있는 열차 번호가 옛날 증기기관차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모습은 옛날 증기기관차인데 디젤엔진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특급열차로군. 쩝! 이거, 괜히 미안해지는데…….’

역사에 도착한 것이 일반적인 횡단 열차가 아니라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특급열차였다.

내가 표를 산 가격에 두 배를 줘야 탈 수 있는 것이라 매표소에 있던 사람에게 속으로 욕한 것이 미안할 지경이다.

‘고마워요. 잘 탈게요.’

매표창구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고, 대합실을 나선 후 열차에 올라탔다.

특급열차답게 안에는 별도의 안내원이 있었는데, 내가 가야할 객실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여깁니다.”

“고마워요.”

안내인이 객실 문을 열어주었기에 안으로 들어갔다.

‘이야, 이거 잘 하면…….’

객실로 들어서자 아름답게 생긴 여자가 창가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보고 있었던 듯 양손으로 책을 쥔 그녀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괜찮아요.”

침대칸 앞에 있는 좌석에 있는 그녀에게 인사를 하자 시크한 대답이 들려왔다.

4인 객실에 여자 한 명만 있는 것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열차표에 적혀 있는 내 침대를 확인한 후에 들어가서 커튼을 치고 누웠다.

침대 밖으로 빙 둘러 칠 수 있는 커튼이 있어 그녀의 시선을 차단할 수 있었다.

‘으음, 알리사가 능력자였나…….’

객실에 책을 보며 앉아 있던 여자는 지금 처음 보는 여자가 아니다.

얼굴은 다르지만 객실에 있는 여자는 브스뜨레차에서 나에게 말을 걸고 음식들 서빙을 했던 알리사가 분명하다.

얼굴이며 옷까지 전부 변해 있었지만 알리사에게서 나던 체향과 완전히 같으니 말이다.

‘처음 볼 때부터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진성능력자였을 줄이야. 그것도 최소한 A급이다.’

내 감각을 속인 정도면 A급 진성능력자이상이어야 하는데 한낱 시골 도시의 음식점에서 서빙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목적이 있는 여자다.

더군다나 내가 이름을 말했을 때 뭔가 동요를 보이는 것 같더니, 아무래도 진짜 드미트리와 관련이 있는 여자인 것이 분명하다.

‘이 여자가 나타난 것은 아무래도 그때 그자 때문인 것 같군.’

산맥을 타고 이동을 하다가 4일 전에 딱 한 번 인기척을 느낀 적이 있었다.

멀리서 망원경으로 나를 살피는 것 같은 자가 하나 있었다.

심안으로 살펴보니 하고 있던 행색으로 봐서는 밀렵을 하는 자로 보여 무시했었다.

‘밀렵꾼이 아니라면 누군가로부터 의뢰를 받았다는 뜻인데, 아무래도 의뢰인이 알리사인 것 같구나. 알리사가 나에게 접근하려는 이유는 모르지만 해치려는 것은 아닌 것 같으니 일단 지켜보도록 하자.’

일반인들은 알 수 없지만 객실 주변에 알리사가 친 것으로 보이는 인식 차단 장치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공간 이동을 해 다른 모습으로 열차에 타고 인식 차단 장치를 칠 수 있을 정도라면 최소한 A급에 준하는 진성능력자라고 할 수 있다.

알리사를 대놓고 살펴볼 수는 없겠지만 인식 차단 장치를 친 것을 보면 최소한 나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외부에서 객실 안을 감지하지 못하도록 인식 차단 장치를 설치한 것을 보면 말이다.

‘무엇을 원하는지 살펴보자. 행동은 그 다음에…….’

지켜보면서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아함! 피곤하니 일단 한숨 자볼까.’

일주일 동안 눈 한 번 붙이지 않고 강행군을 한 상태에서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은 탓인지 졸음이 밀려온다.

지금은 씻는 것 보다 자는 것이 우선이다.



* * *



시베리안 삼림지대 인근에서 몰래 밀렵을 하는 자들에게 의뢰를 넣었던 알리사는 사흘 전에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동양인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을 봤다는 제보를 받은 알리사는 곧바로 위성을 검색했다.

제보자가 만났던 위치에서부터 정밀하게 추적한 한 후 대상자가 움직인 경로를 확인할 수 있었고, 곧바로 시베리아로 날아왔다.

역장에게 손을 쓰고 난 후 역사 근처에 있는 음식점에 취직을 해 기다렸다.

산맥을 타고 오느라 제대로 먹지 못해 음식점을 찾을 것이라는 판단대로 대상자와 조우 할 수 있었다.

자신이 찾고 있던 인물인 확인한 그녀는 대상자를 보호하기 위해 열차로 공간 이동을 해 탑승을 했다.

안내원 몰래 탑승을 하기는 했지만 내일까지 사흘 동안 움직이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객실을 이미 예매한 터라 문제는 없었다.

역장이 드미트리에게 판 것도 그녀가 예매한 객실의 열차표 중 하나였고, 예상대로 대상자와 한 객실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이다.

드미트리의 보호를 요청한 이는 그녀의 스승이자 보호 대상자의 아버지인 오 해오비치 야안이었다.

드미트리 오오비치 야안이라는 이름 중에서 중간의 오오비치는 오의 아들이라는 뜻이니 자신이 찾고 있는 이가 틀림없었다.

스승의 이름이 고려족의 방식으로 성은 김이고, 이름은 외자로 오를 쓰니 말이다.

‘스승님이 비명에 가신 것을 확인한 후, 시신이 사라졌을 때 드미트리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스승인 김오가 시베리아에서 찾고 있었던 것은 차원 융합이 이루어지기 전에 존재했다고 알려진 이 세상의 기반 에너지였다.

대변혁이 일어난 후 각 차원의 에너지도 융합되어 세상을 움직이고 있었기에 이전 세계의 기반이 되었던 에너지를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스승인 김오 박사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전 세계의 기반 에너지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는 소식을 모스크바 대학에 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승인 김오 박사가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했다.

시베리아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도중에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스승의 시신을 시골 병원의 안치실에서 확인하며 알리사는 비밀리에 남겨진 유언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유언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스승의 시신이 사라져 버렸다.

시신이 사라지기 전에 동양인 청년이 포함된 건장한 사나이들을 병원 근처에서 봤다는 이야기를 병원장으로부터 들은 후 근처를 이 잡듯이 뒤졌다.

드미트리로 보이는 동양인 청년에게 돈을 받고 시신을 옮긴 자들을 찾아내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운전해 온 트럭에 스승의 시신이 담긴 관을 싣고 떠난 동양인 청년의 흔적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미치는 줄 알았지. 어디에서도 드미트리를 찾을 수 없었으니까.’

자신이 없을 때 벌어진 일이라 자책감이 무척이나 컸지만 스승의 유언을 쫓아야 했다.

드미트리를 보호하기 위해 무척이나 찾아 헤맸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스승과는 따로 떨어져 별도의 조사를 하고 있었기에 무사할 것으로 여겼지만 3년이 다 되어가도록 시베리안 인근에서 드미트리를 보았다는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기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드미트리 또한 살해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슬 포기하고 있었던 시점이었는데, 그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그나저나 드미트리가 블라디보스토크에 모습을 드러내면 스승님을 죽인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텐데 별다른 정보가 없으니 걱정이군.’

드미트리가 행방을 알 수 없는 동안 알리사는 놀고만 있지 않았다.

스승의 죽음과 관련된 자들을 조사하며 어느 정도 결과를 얻을 수 있었고, 스승의 죽음에 관여한 자들에 대한 단서를 포착하고 있었다.

스승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자들 중에는 정보국 산하에 있는 블리자드 섹터의 진성능력자들이 있었다.

남겨진 흔적을 지워 버려서 쉽게 찾아내지는 못하겠지만, 너무 급작스러운 만남이라 완벽하게 지우지 못해 조금은 불안했다.

드미트리를 찾아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준비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 서둘러야 했다.

‘조금 더 확인을 해야겠지만 스승님께서 부탁하신 것을 들어드릴 수 있어 다행이다. 스승님, 저에게 의뢰라고 말씀하셨지만 드미트리는 제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알리사는 조용한 눈으로 가려진 침대칸을 바라보며 스승으로부터 전해진 유언을 되새기며 책처럼 보이는 디스플레이 패널을 펼쳐 들었다.

‘드미트리가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기 전까지 최대한 서둘러 정보를 교란해야 한다.’

드미트리가 극동 공립대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비밀리에 스승의 요구를 들어준 자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리자드 섹터의 진성능력자라면 안심이 되지 않기에 여러 가지 정보를 계속해서 섞어 남아 있는 흔적까지 지워야 했다.

알리사는 정보를 조작하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패널을 열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스승님 때문에 드미트리에 대한 공식적인 정보는 전혀 없다는 거다.’

10살 이후로 드미트리는 스승과 함께 시베리아에 있었던 터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마저도 드미트리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을 정도니 정보를 조작하기가 무척이나 쉬웠다.

이미 변조해 놓은 출생지의 증명들에 적힌 정보를 기반으로 극동 공립대학교의 자료를 일부 수정하고, 기관에 알려진 것들을 조작하고 나니 다른 것은 거의 손을 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탁!

조작을 끝내고 패널을 닫은 알리사는 서늘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기다리고 있어라. 드미트리의 각성이 끝나게 되면 네놈들에 대한 응징도 시작할 테니…….’

3년이 넘는 시간동안 참아 온 일을 머지않아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려왔지만, 알리사는 애써 억누르며 마음을 가라 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