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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뿔 대신 휴가





중대장실에 불려갔다.

“멋진 일격이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강한 기술일수록 반동은 크다. 무능력자의 몸으로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법이지.”

인우의 ‘무음낙도’는 그저 강력한 일격이 아니었다.

공기 마찰을 0에 가깝게 만들어 한계 속도를 끌어올리는 일격이었지만, 중대장이 그런 세세한 원리를 알 리가 없었다.

“간부와 병사들에게도 말해두겠다. 실전을 제외한 상황에서 그 기술은… 일절 사용을 금한다.”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 있으니까.’

누구를 걱정한 지시인가?

그건 호기심에 상처받을 도전자를 걱정한 조치였다.

‘무서운 일격이다. 경지 차를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두 달간의 개별 훈련이 끝났고, 인우를 포함해 3인 일조가 편성됐다.

묵직하게 남성미 넘치는 고영둔 일병이 조장이었고, 키가 작고 동글동글하게 생긴 동기 손창호와 같은 조가 됐다.



인우는 얇은 곡도로 내려치고 뒤로 빠진다.

짧은 검과 방패를 지닌 고영둔 일병이 앞으로 나서며 방어.

인우가 빠진 공간에 창병 손창호가 창을 찌르고 회수.

인우가 다시 곡도를 내려쳤다.

3인이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서로의 빈틈을 메워 줘야 했다.

한차례 손발을 맞춰 보고 조장인 고영둔 일병의 피드백이 이어졌다.



“야, 손창호. 창끝이 흔들린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그리고 회수 동작도 느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애초에 기본기가 안 돼 있어!”

“죄송합니다…….”

“뭐야? 불만 있어? 참고로 이 부대는 폭력도 허용되고 하극상도 가능하다. 열 받으면 도전해 응해 준다.”

고영둔 일병의 입에서 쏟아진 맹공격에 손창호는 탈탈 털렸다.

“그리고 차인우!”

“이병 차인우! 시정하겠습니다!”

“아아, 아니…….”

손창호를 볼 때와는 사뭇 다른 따뜻한 시선.

“공격은 날카롭고 흔들림도 없다. 동료에게 방해되지 않게 물러서는 보행법도 최고야.”



인우의 도격은 무능력자로서는 이룰 수 없는 기적적인 성취를 담고 있었다.

기적을 지척에서 본 고영둔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네가 걸어온 길에… 내가 해줄 말은 없다.’

고영둔은 단검을 방패 안쪽 검집에 꽂고는 인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네가 이때까지 흘린 땀! 한 방울도 헛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남자의 뜨거운 시선은 언제나 껄끄러운 인우였고, 자신을 대할 때와 사뭇 다른 고영둔 일병의 모습에 손창호는 인상을 구겼다.

‘뭐야! 이 차별 대우는!’



병장들이 부대를 떠나 후방으로 갔다.

“하산 축하합니다.”

남은 병사들은 부러운 눈으로 선임들을 배웅했다.

“인우야, 또 보자.”

“어디서 봅니까?”

박현식 병장은 웃으며 인우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는 뒤돌아섰다.

“차인우… 너를 보며 한 가지 깨달았다.”

“…….”

무엇을 깨달았는지 뒷말을 기다렸지만, 박현식은 말없이 호송차에 몸을 실었다.

‘너를 만나지 못했다면 난… 평생 알 수 없었겠지.’

기적의 존재와 사람들이 정한 한계가 무의미하다는 걸.

‘나는 믿지 않아. 마나가 전부라 말하는 세상을…….’

박현식 병장은 흔들리는 호송차에서 눈을 감고 상상했다.

일류 헌터가 된 자신. 던전에서 조우한 인우. 강력한 몬스터 무리에 둘러싸여 서로의 등을 맡기는 모습을.

‘기억해라… 나 박현식, 먼저 가서 기다리마!’



떠나가는 호송차를 보며 인우는 어이가 없었다.

‘또 보자면서 연락처도 안 남기는 건… 다시는 보지 말자는 건가?’

뭐, 군대 때 후임이라 사회에서 만나기 껄끄러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뭔가 기분이 나빴다.

‘나는 떠날 때 저러지 말아야겠어.’



고참들이 떠난 후, 우린 다양한 훈련을 거듭했다.

“지형을 숙지해야 위급 상황에서 필요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 분대별 담당 젠 포인트는 꼭 기억하도록!”

던전의 몬스터 수가 일정 이하로 떨어지면, 몬스터가 생성되는 지점이 있다.

그곳을 젠 포인트라 불렀다.

동별급 던전의 젠 포인트는 50곳.

던전 관리 부대의 주된 임무는 젠 포인트를 지키다가 나오는 몹을 잡아 마석을 얻는 것이었다.



* * *



지루한 교육이 이어졌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3달간의 정비 기간이 끝났다.



때는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한여름.

대대적인 이동이 시작됐다.

우리 부대는 강원도 산골짜기에 위치한 던전으로 이동했다.

대대 본부는 밖에 남고, 3개 중대가 던전에 투입됐다.

던전은 시멘트 건축물 안에 있었다.



중세의 병사처럼 무장한 우리는 건물 안에서 2명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의 흔들림을 봤다.

갈색의 흔들림.

우린 흔들리는 공간에 발을 들였다.

던전에 발을 들이자 공기가 바뀌었고, 배경이 바뀌었다.

찌는 듯한 더위와 시끄러운 매미 소리가 사라졌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적막한 갈색 통로.

‘여름에 피서하기는 최고겠어!’

무더운 여름, 피서가 가능한 던전은 꿀이었다.



입장한 소대원들은 상태창을 확인했다.

나는 업적과 칭호를 훑어봤다.

변동이 없어서 상태창을 없앴다.

“오오, 드디어!”

“이 갈색의 삭막함. 오랜만이네.”

선임들은 상태창을 보면서 시끌벅적했고, 동기들은 환경 변화에 긴장했다.

“다른 부대의 영역일지도 모르니 모두 조용!”

간부들이 떠드는 선임들에게 주의를 줬다.



소대원이 모두 모이자 6개월 동안 생활할 공터로 이동했다.

철그럭… 철그럭…….

도착한 공터의 출입구는 철조망으로 막혀있었다.

“3대대 3중대 3소대 소대장 정인정 중위다.”

경계병의 확인 절차를 마치고, 우리는 공터에 들어설 수 있었다.



철조망으로 막힌 4방향의 출입구.

중앙에는 예의 그 인공적인 분수가 있었고, 공터 벽면은 검은 이끼로 가득했다.

‘흐흠…….’

고등학생 때부터 4년을 들락거린 곳이다.

익숙한 부분과 어색한 부분이 겹쳤다.

공터 중앙에 놓인 취사도구, 그리고 커다란 모래시계 셋.

곳곳에 세워진 텐트.

45명 인원이 6개월간 거주할 공터였다.



그동안 이 지역을 담당하던 인원들이 귀환준비를 마쳤다.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충성!”

“고생하셨습니다. 충성!”

배낭에 짐을 가득 지고 그들은 떠나갔고, 우리는 공터의 진정한 주인이 됐다.



우리 분대가 맡은 젠 포인트는 막사와 조금 떨어진 통로에 있었다.

상대하는 몬스터는 레벨 10의 뿔 토끼.

고양이 정도 크기에 광기 가득한 붉은 눈과 섬뜩한 앞니가 특징이다.

흰 털을 가졌으며, 이름에서 예상되듯 15㎝가량의 송곳 같은 뿔이 머리 위로 솟아 있었다.



* * *



손창호가 붉은 빛이 모여 생성된 뿔 토끼와 마주했다.

인우와 고영둔 일병은 뒤로 물러나 구경했다.

고영둔 일병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조심해라. 뿔과 몸이 일직선상에 놓이면, 갑옷과 몸이 뚫린다.”

첫 실전.

뿔 토끼의 광기 가득한 붉은 눈을 마주한 손창호 이병은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았다.

‘뭐야… 무섭잖아!’

뿔 토끼가 방향을 잡고 몸을 웅크렸다.

뿔이 가리키는 곳은 손창호의 몸.

쇠에엥!

파공음과 함께 토끼의 몸이 총알처럼 쏘아졌다.

“으억!”

위기감을 느낀 손창호는 옆으로 몸을 날려 바닥을 뒹굴었다.

‘뭐가 이리 빨라!’

간신히 피해낸 뿔 박치기.

가볍게 깡충깡충 주변을 맴돌며 뿔의 각도를 잡은 녀석이 다시금 몸을 웅크렸다.

손창호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던졌다.

이리저리 바닥을 구르는 손창호를 보며 고영둔은 웃음을 참고 있었다.

휙! 휙!

뿔의 각만 잡혀도 경악하던 손창호는 무작위로 철창을 휘둘렀고, 그런 조악한 공격으로는 재빠른 뿔 토끼를 맞출 수는 없었다.

손창호가 맞서는 뿔 토끼를 본 인우의 감상은…….

‘웅크리면 박치기네. 난이도는 하중하!’

인우가 잡아본 몬스터 중 제일 만만해 보였다.



끝이 없다.

적당히 상황을 즐기던 고영둔이 나섰다.

“동별급 일반 몬스터 중 돌진력만큼은 최고를 자랑하지.”

총알처럼 쏘아지는 녀석의 박치기에 고영둔은 방패를 비스듬히 받치고는 몸을 지탱했다.

캉! 징…….

공격을 비스듬히 쳐내며 흘렸고, 방패가 진동했다.

고영둔은 반복되던 상황에서 기회가 오자 눈을 빛내며 자세를 낮췄고, 쏘아진 녀석을 위로 쳐냈다.

퍽!

고영둔은 공중에 붕 뜬 녀석의 배속에 단검을 박고, 마구 휘저었다.

푹! 지익.

뿔 토끼는 단검에 꽂혀 피와 내장을 쏟다가 빛이 되어 흩어졌다.



“대충 봐도 알겠지만, 녀석의 공격은 빠르고 위력적이다. 하지만, 공격 패턴은 단조롭지. 녀석의 공격을 읽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헉헉…….”

“갑옷 믿고 함부로 덤비지 마! 갈비뼈 부러지고 내장 토해내는 녀석, 매번 있다.”

손창호는 비위가 약한지 새파래져 있었다.

‘잠깐 토끼 피 흘린 거로… 너무 심한데?’



모래시계의 흐르던 모래가 멈췄다.

인우의 차례가 온 것이다.

대기한 젠 포인트에 붉은 빛이 모여 뿔 토끼가 생성됐다.

“온다!”

“넵!”

뿔 토끼가 가까이 있던 인우를 적이라 인식했다.

몸을 웅크리며, 자세를 잡는 토끼.

단조로운 정면 공격.

인우는 도를 내려쳤다.

도날의 기운이 공기를 밀어내며 무음의 일격이 나갔다.

촤아악!

토끼는 공중에서 반으로 갈라졌고, 반쪽이 된 신체가 피와 내장을 쏟으며 좌우로 떨어졌다.

퍼퍽.

‘무음낙도’

인우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술의 이름을 되새겨 봤다.



“우엑… 우엑…….”

뿔 토끼가 반으로 갈라지며 내장과 피를 쏟아낸 광경은 사뭇 그로테스크했고, 비위가 약한 손창호는 통로 한쪽에서 헛구역질을 했다.

‘깔끔하게 좀 하자!’



고영둔 일병은 시작하자마자 끝나버린 사냥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한 마디 해주며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정면 공격은 추천하지 않지만, 부족함 없는 일격이었다.”



* * *



내가 처음으로 사냥한 녀석은 빛으로 흩어지며 뿔을 남겼다.

단단함과 높은 관통력을 지닌 뿔은 무기 제작과 여러 산업에 쓰이는데, 그 가치는 대략 30만 원.

“축하한다. 뿔 하나당 포상 휴가 1일이다.”

군대에선 돈 이상의 가치를 지닌 물건이었다.



‘띠링! 1일 휴가를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