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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한계 돌파





동별급 던전의 젠 포인트는 50곳.

1젠에 10명의 수행자가 투입됐고, 10분마다 생성되는 몹을 잡아 버는 돈은 젠당 최소 72만 원.

뿔 토끼 던전의 월수입은 15억 정도였다.



던전 하나에 500명의 수행자를… 정정하자면 499명의 수행자와 한 명의 무능력자를 투입한 것은 심각한 과잉 전력이었다.

실제로 민간 기업에선 무능력자 600명으로 관리하거나 수행자 150명으로 관리했다.

4배에 가까운 전력을 투입한 군대의 비효율적인 방식은 물론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합격술은 왜 한 거지?’

도격 범위에 들어온 뿔 토끼를 일격에 양단해 버리는 나.

방패로 공격을 흘리며 기회를 노려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는 조장 고영둔.

창을 휘둘러 상대를 쳐내며 빈틈을 찾아 찌르는 손창호.

이미 익숙해진 토끼의 상대는 혼자서도 충분했다.

‘젠을 지키는 건 한 명이면 충분한데 말이야.’



던전에서의 생활은 딱히 힘들거나 빡세지는 않았다.

공터에 배치된 커다란 모래시계로 시간을 알 수 있었고, 하루에 최소 12시간의 개인 시간을 가졌다.

부대원들은 틈만 나면 벽면의 검은 이끼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우물우물… 쩝쩝…….”

기감을 가진 자에게 있어 이끼는 마나가 풍부한 황홀한 맛이었고, 기감이 없는 무능력자에게 있어서는 그저 모래 같은 미역 맛이 났다.

‘정말… 못 먹을 맛이지.’

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운 이끼는 공터 벽면에 가득했고, 매일 엄청나게 생성돼 아무리 먹어도 줄지 않았다.

축기 수련에 도움을 주는 이끼는 밖으로 가져가면 없어서 못 팔 물건이지만, 밖으로 가져가는 즉시 증발해 던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환상의 음식이었다.

병사들에게 있어 마나가 풍부한 던전과 이끼는 기연 그 자체였고, 모두가 수련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일부는 공터에서 신체를 단련했고, 일부는 막사에서 가부좌를 틀고 축기를 했다.

나는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라는 말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우물은 목이 마르기 전에 파두는 게 정답이다.

언제가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서.

‘생존권 확보! 평온한 생활!’

나는 수련을 시작했다.



* * *



지치지 않는 육신과 회복력을 가진 나는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졌다.

‘특기의 특화!’

나는 개방된 공터에서 곡도를 휘두르고, 무거운 기구를 들며 근력을 키워봤다.

“적당히 하라고. 너는 우리와 달라서 피로가 누적되니까.”

무능력자라고 걱정해주는 친절한 상병.

“상병님, 저 녀석을 일반적인 무능력자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냥 괴물이라 체력이 우리 이상입니다!”

나를 자신들과 동급으로 봐주는 인성 좋은 동기.

“그건 너희가 저질 체력이라 그렇지!”

근육질의 거만한 선임.

나는 그들을 적당히 무시하며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일주일간 신체 단련을 지속했다.

역시 최적의 상태로 유지되는 신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예상했던 바다.

‘실패네…….’



‘신체 특화는 실패했지만!’

그렇담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이다.

막사에서 가부좌를 틀고 축기를 시도해 봤다.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이 내 적성에 맞았다.

제일 만만하고 말이 많은 동기, 손창호의 조언을 받았다.

“처음에는 운기토납부터야. 기를 느낄 때까지 무념무상으로 호흡을 해봐.”

가부좌를 틀고 호흡을 했다.

“길게 마시고… 길게 뱉어. 기운을 받아들인다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되뇌는 거야. 공기 중에서 기감을 느낄 때부터 축기가 시작돼.”

후흐읍… 후… 후흐읍… 후…….

조금씩 감이 온다.

‘요는 새로운 감각을 여는 거지!’

나에게는 사람들이 없는 제6감이 있다.

그건 물질을 간섭하는 나만의 초능력.

기감도 하나의 감각이다.

일곱 번째 감각을 손에 넣어야 했다.

“나는 재능치 1.1이었고, 헌터 학교에 가지 못했어. 그렇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지.”

‘별로 궁금하지 않은데…….’

“사람들이 나에게 재능이 없다며 포기하라고 했어.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았어.”

손창호는 쓸데없는 말이 많다.

“그런데 내가 머리가 좀 나빴거든…….”

그건 보면 알 수 있다.

“3년이 걸려 기감이 생겼고, 수행자 반열에 들었어.”

3년? 그렇게나 걸리는 건가?

“조금 늦은 편이긴 하지만, 재능치 1.1로 기감을 얻은 건 대단한 성과야.”

손창호의 재능치는 나의 3배. 그럼 난 9년을 숨만 쉬어야 하나?

“듣기로는 재능치가 상당히 낮다던데… 참고로 0.9 이하가 기감을 얻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어.”

지금 장난해? 왜 시작하는 사람한테 초를 치고 그래?

“그래도… 너라면 모르지. 너만큼 강한 무능력자가 있다는 것 자체가 사기 중의 사기니까.”

그렇겠지.

나는 가부좌 상태에서 호흡을 하며 손창호의 말을 들어줘야 했고, 엄청 신경이 쓰였다.

‘이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시작부터 머리가 복잡해지는 게, 주화입마에 걸린 기분이었다.

후흐읍… 후… 후흐읍… 후…….

인서의 전례가 있다.

나로 인해 증폭된 신체는 기감을 얻으며 더욱 강력해졌다.

‘기감만 열면 강해지는 건 확실한데.’



일류에 들어선 헌터는 수증기 같은 검기를 두르고, 화려한 전투를 자랑한다.

‘멋지잖아, 검기!’

검기가 서린 무기는 바위도 쪼개고, 마법을 벤다.

‘멋을 위해!’ 가 아니라 강해지기 위해 두 달간 인내하며 토납법을 수련했지만, 대기 중에 떠도는 물질만 더욱 세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이게 산소인가? 저건 이산화탄소? 마나는 뭐지?’

마나란 것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끈기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기감을 여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머리 회전이 빠른 내가 2달이나 허송세월한 건, 검기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아쉽지만, 방향을 틀어 기술을 연마했다.

애초에 인식한 동작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난, 매일 만 번을 반복해도 변화가 없었다.

“기술은 몸에 때려 박아야 하지만, 기예에 있어 너는 이미 우리보다 한참 위의 경지다. 지금은 반복 수련이 아닌 깨달음이 필요할 때야.”

수련하는 날 보고 있던 까무잡잡하고 못생기신 소대장님이 한마디 하셨다.

‘아, 그렇습니까…….’



* * *



애초에 특별한 기운을 지니고, 사람들과 다른 감각을 가진 내가 같은 방식으로 수련한다는 게 미스였다.

‘이런 수련은 전혀 도움이 안 돼.’

그동안 어떻게 강해졌는지 떠올려 봤다.

입대 전 나의 일상은 던전과 학교를 오가는 나날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의 능력은 시간과 비례해 진화해 왔다.

연결이 점점 빨라져 접촉하고 5초면 물체에 기운을 심을 수 있게 됐고, 기운을 통해 느끼던 감각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점점 작은 것을 느끼게 되었고, 조직을 이루는 분자까지 느끼게 됐다.

감각이 변화하며 더욱 세밀한 간섭이 가능해졌고, 강도, 탄성, 질량의 변화가 가능해지면서 [물질간섭] 2단계 [물질강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렇지. 나의 수련은 따로 있었지.’

조금 감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연결] [분석] [정보저장]을 반복하며 강해져 왔다.

새로운 물질을 접하며 정보를 얻었고, 연결과 분석을 반복함으로서 능력이 자연스럽게 진화해 왔다.

‘시간을 들여 간섭력을 높여야 해’



나의 능력에는 아직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사용하면 마나처럼 연소하는 것도 아니다.

몸속에는 일정량의 기운이 항상 유지되고 능력을 사용하면 그만큼의 기운이 분열돼 밖으로 배출된다.

내가 간섭 가능한 것은 기운과 연결된 물질.

신체 또한 물질이라 할 수 있다.

아니, 세상 만물이 물질 아닐까?

‘마나를 제외하고 말이지.’



연결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을 좌우하는 것이 기운의 분열 속도다.

분열 속도는 능력을 사용하다 보면 늘어난다.

아무리 써도 줄어들지 않는 기운과 쓰면 쓸수록 빨라지는 분열 속도.

‘반복 사용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과제.

‘신체간섭 2단계의 경지에 발을 들여야 해!’



나는 실생활 속에 능력을 발현하기 시작했다.

수시로 세포 활성으로 신체를 일깨웠다.

치솟는 힘. 예민해지는 감각.

실생활에 불편을 겪을 때가 많았다.

‘좀 더 섬세하게 다뤄야 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감각세포의 부분 활성!

팔, 다리, 발가락… 부분 근육세포의 활성!

신경, 뼈, 위장, 각 조직 세포의 부분 활성!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는 몰라도, 나는 수련을 거듭했고, 나의 세포활성 능력은 점점 수준급으로 진화해 갔다.



* * *



아무리 수련하기 좋은 환경이어도 온종일 수련만 할 수는 없다.

병사들에게는 적절한 휴식과 오락이 필요했다.

전자제품이 망가지는 던전에선 주로 보드 게임이나 카드 게임 혹은 몸으로 하는 놀이를 즐겼다.



“인우, 승부다!”

옆 분대 선임이 나에게 가위바위보 승부를 걸어왔다.

속임수가 개입할 수 없는 종목.

가위바위보는 나의 불패 신화를 꺾기 위한 종목 선정이었다.

“알겠습니다.”

“난 주먹을 낸다.”

묵을 예고하는 선임. 심리전을 유도하고 있었다.

“가위, 바위, 보!”

가위바위보는 심리전이 아니다.

운 싸움도 아니다.

이건 경지의 싸움이다.

선임이 들어 올린 주먹이 내려온다.

신경세포를 극도로 끌어 올리자 선임의 손이 아주 천천히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주먹을 주시하고 있으면 힘이 풀리는 손가락들을 알 수 있었다.

‘다섯 손가락! 완전히 풀린다! 이건 보!’

나는 아슬아슬하게 주먹을 유지한 상태로 손을 내리다 결정적인 순간, 두 손가락의 근육세포를 활성화해 손가락을 폈다.

가위다.

“크윽, 내가 지다니! 방법 좀 가르쳐 주라. 어떻게 한 거야?”

“고수가 되면 알 수 있습니다.”

동체 시력과 연관된 신경세포와 손가락 근육세포의 부분 활성.

나의 가위바위보 승률은 100전 100승이다!



카드 게임으로 승부를 걸어오는 선임도 있었다.

“포커 왕인 내가 상대해 주지!”

“섞습니다.”

패를 섞으며 기운을 주입해 연결해 둔다.

나는 연결된 54장의 패가 구별됐고, 보지 않아도 앞으로 받을 패와 상대가 받을 패를 알게 되었다.

절대로 질 수 없는 게임.

승부는 나의 기운이 연결된 순간 이미 정해졌다.

연결과 감지, 그리고 감각의 수련.

카드 게임에서도 언제나 100전 100승.



브루마X, 모노폴X 같이 주사위를 굴려 땅을 사서 내 땅을 밟는 사람에게서 돈을 뜯는 게임도 자주 했다.

주사위가 손안에 쥐어지는 틈에 이루어지는…….



[형태조종]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무게 중심의 변화.

세밀하고 순간적인 능력의 발현!

‘내가 원하는 숫자는 12.’

또르르르.

튕기며 구르던 주사위 두 개가 내가 원하는 6에서 멈췄다.

‘이겼다.’

원하는 땅은 모두 확보했다. 얼마 있지 않은 적의 땅은 부담 없이 피할 수 있다.

나는 주사위를 주워 건네며 무게 중심을 원상태로 복구했다.

가끔 상대가 말을 움직일 때 주사위를 건네며 무게중심을 틀어 다음 사람이 내 땅을 밟게끔 유도하기도 했다.

아무리 능력자라 해도 그들은 수행자에 불과했다.

주사위 무게 중심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 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은밀하고 세밀한 고속 형태조종.

주사위 게임 역시 100전 100승.

이것이 나의 불패 신화.

그리고 일상 속의 수련이었다.



시간이 남으면 소대원들의 장비를 손질해줬다.

취미 생활을 겸한 수련이었다.

금속만큼 나의 기운이 안정적이게 안착하는 곳은 없었고, 기운이 안정되면 나 또한 안심됐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창날을 손질했다.

숫돌을 받침에 받치고 날을 가는 행위는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정적인 상황과 달리 내면은 활성과 안정을 빠르게 반복하고 있었다.

나의 의념이 전신을 거쳤을 때, 가늘게 뜨인 실눈이 서서히 열렸다.

나는 또 하나의 힘을 손에 넣었다.

신체 조직의 변형.



[신체간섭] 2단계 [조직진화]



나는 인체의 조직적 한계를 벗어 던졌다.

인체의 한계를 넘어선, 생물의 한계에 도전하는 힘!

‘이것으로…….’

검기를 다루는 최상위 헌터에게 닿을 발톱이 준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