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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강해지겠다!





박현식은 던전 관리 부대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무능력자 후임이 들어왔다.

말년에 꼬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무능력자 후임, 차인우 이병은 천재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본 천재의 존재는 현식을 놀라게 했다.

단 한 번.

그에겐 복습도 예습도 필요치 않았다.

단 한 번이면, 완벽히 습득한다.



현식은 금세 밑천이 털리고 가르칠 게 없었다.

그렇다고, ‘미안, 가르칠 게 없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

그저 제대까지 남은 날짜를 세며 지도 기간 동안 내려치기를 지시했다.

때로는 실내 연병장. 때로는 야외 운동장.

장소는 바뀌어도 하는 일은 같다.

언제나 불만 없이 지시를 수행하는 차인우 이병의 내려치기를 지켜보는 것이 현식의 일과였다.



무능력자이면서도 잘 적응해 가는 차인우 이병이 신기한지, 종종 그를 관찰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박현식 병장님… 주변 시선이 따갑습니다.”

녀석… 무능력자 주제에 예민하기는.

“신경 쓰지 마. 무능력자가 어떤 훈련으로 그런 고평가를 얻는지 궁금해서 보는 거니까.”

레벨1의 무능력자가 수행자들 사이에서 고평가를 얻고 있다?

상상도 못 해본 일이다.

다들 신기하겠지. 이해가 안 가겠지. 훈련에 어떤 비밀이 있나 싶겠지.

‘그런 건 없는데 말이야.’

“괜찮겠습니까?”

“괜찮아, 괜찮아. 봐서 닳는 것도 아니고.”

정말 이렇게 내려치기만 보여줘도 괜찮은지 의문이 드는 인우였다. 하지만…….

‘뭐… 병장이 개의치 않는다고 하니.’



시선엔 여러 부류가 있었다.

나날이 치솟는 박현식의 평가가 부러운 고참병.

자신의 훈련에 부족함을 느낀 신병.

훈련 내용이 궁금한 간부들.

인우의 내려치기를 한참 동안 지켜보던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났다.



‘복잡한 이치를 하나로 귀결시키는 건가?’

‘신체 최적화를 노렸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라…….’

어느 사이엔가 부대에는 이런 말이 돌았다.

“깨달음이 필요한가? 그럼 차인우 이병의 훈련을 지켜보라!”



* * *



열정 가득한 눈으로 나의 훈련을 지켜보는 사람이 늘어갔고, 깨달음을 얻어간 사람이 부지기수.

그들이 지켜보는 난 그저 무념무상으로 내려치기를 반복하고, 담당 교육병의 뇌에는 제대 카운트다운만이 가득한데 말이다.

‘뭘 깨달았다는 거야?’

나는 헌터인 간부들과 수행자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대 생활에는 훈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침 식후와 저녁 식후에 담당구역을 청소했다.

밤에는 2시간 정도의 개인 정비 시간이 있었고, 보통은 노래방, 인터넷, 게임, 헬스, 빨래, 무기 손질 등을 한다.

헬스는 싫다.

노래도 싫다.

무기 손질은 완벽한 상태.

컴퓨터를 하려면 필연적으로 고참들을 만나야했으므로 불편했다.

생활관에 나보다 늦게 배치된 동기가 셋이 있었고, 둘은 사이가 좋았다.

훈련 점수, 생활 점수 모두 우수한 무능력자인 나를 안주 삼아 친해진 그들이라 가까이하고 싶지가 않았다.

가끔 심심하면 훈련소 동기인 유연학을 찾아가곤 했다.



* * *



유연학은 던전 관리 부대의 행정병이 됐다.

창고의 물품 관리가 주된 임무인 보급병이다.

‘뭐야… 수치가 다 안 맞잖아!’

유연학은 선임병에게서 일을 배우며 충격을 받았다.

장부와 실제 물품 간의 오차가 컸다.

선임병도 바보는 아니다.

“신경 쓰지 마. 맞춰도 얼마 못 가거든.”

알고서도 방치하는 것이다.

던전과 관련된 다양한 종류의 보급 물품.

5개나 되는 창고.

책임감 없는 3명의 선임 보급병.

각자의 담당과 책임이 딱히 정해진 게 없어 생기는 중복기록 혹은 기록 누락.

대를 거치며 커지는 오차.

‘이 시스템은… 뭐지?’

뒤떨어져 있었다.

관리, 감시, 책임… 아무것도 없다.

시스템의 문제였고,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많아’

임시방편일지는 몰라도.

자기만족일지 몰라도.

유연학은 틈만 나면 창고에 갔다.



“뭐 하는 거야?”

열심히 창고를 뒤적이며 물건을 살피고 있던 유연학을 찾아온 사람은 무능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수행자와 같은 극한 훈련을 이겨내며 명성을 떨친 인우였다.

“인우군요.”

“말 놓기로 했잖아.”

“아… 그랬지.”

유연학은 실제 재고를 조사하고 있었다.

“연말에 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때 하면 늦어.”

유연학은 재고 조사를 토대로 장부와 재고를 일치시키려 했다.

‘쉬운 일이면 누군가 했을 텐데.’

한번 일치시켜 봐야 변하는 건 없다.

보급품은 반입 때부터 장부와 실물이 다른 경우도 많았고, 재고 기록은 매일 조금씩 틀어지고 있었다.

오늘 파악한 게 내일이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즉, 헛수고라는 건데.’

“실제재고 파악만 된다면, 매일 변동 부분만 체크하는 걸로도 오차를 최소화할 수 있어!”

“매일 말이지…….”

유연학은 열정 가득한 얼굴로 손짓까지 섞어가며 재고 조사의 필요성을 설명했지만, 결론적으로 일거리가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줄어들 것 같지는 않았다.

유연학이 서울대 경영과를 졸업한 수재라는 건 간부들의 말을 엿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매일 틀어지는 수치를 바로잡으며 재고를 파악하려면 이 속도로는 불가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속도론 불가능해.”

그는 창고를 뒤적이며 말했다.

“그럴 거야. 이 속도론 무리지.”

“알면서 왜 하는 거야?”

유연학은 안경을 고쳐 쓰곤 반짝이는 눈으로 창고 전체를 훑어봤다.

“지금은 무리지만, 내일은 가능할지 모르니까.”

그의 눈에는 무수한 실패 끝에 있는 성공이 보였다.

하지만 인우에겐 성공에 다가가기 위해 허비해야 할 시간과 노력만이 선명히 보였다.

“미련하네…….”

“……바보 같지?”

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된 걸 발견하고 바로잡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게 쉬웠다면 잘못된 채로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소득도 없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을 사람은 없다.

그걸 아는지 유연학은 인우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자신의 역량만으로 5개 창고의 재고 조사에 착수했다.

시간이 지나 무수한 실패를 거쳐, 그가 5개 창고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숙지할 때에야 비로소 끝날 재고조사.

인우는 유연학이 무의미한 일에 열정적인 건 훈련소 때부터 충분히 봐왔다.

고작 무박 삼일… 고작 행군…….

인우가 고작이라 생각하는 아무런 가치 없는 것에, 유연학은 전력으로 도전해 왔다.

유연학은 인우를 응시하며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나도 이성적으론 이건 아니라고 외치는데…….”

머리를 가리키던 손을 가슴으로 가져갔다.

“여기가 해보자는데 어쩌겠어. 난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해야 후회하지 않거든.”

이성보다는 감정?

인우와 많이 달랐다.

흔들리지 않는 유연학을 보고 있노라면, 인우는 자신이 정답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오답처럼 느껴졌다.

‘바보가 된 기분이야.’

“거기다 시련 속에는 언제나 기적이 존재한다고!”

피식.

안경잡이 엘리트인 그와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 인우는 웃음이 나왔다.

좋은 사람이다.

보고 있으면 답답하면서 궁금하기도 했다.



“형이 맞았어.”

“어?”

의문을 담은 시선.

“기적이 찾아왔네.”

“기적?”

의문 가득한 유연학을 뒤로하고 인우는 창고를 둘러봤다.

“나는 한 번 본 걸 모두 기억해. 인지 범위, 인지 속도, 모두 평범하진 않아. 뇌 기능에 차이가 있다고나 할까?”

단순한 변덕이다.

“무슨…….”

“거기다, 던전 관련 물품은 거의 다 알고 있고.”

“…….”

“변동된 부분도 한 번 훑어만 봐도 순식간에 계산되지.”

“…….”

창고를 훑어보던 인우는 유연학의 눈을 마주했다.

“바보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야!”

바보는 전염병이라 했던가?

“그런데 바보가 둘로 늘었네.”

유연학은 조금 어리둥절한 얼굴로 인우를 바라봤다.

인우의 손가락이 그를 가리켰다.

“바보 중 하나는 서울대 출신의 수재. 그리고 하나는…….”

뜨끔!

유연학은 숨기고 있던 학벌을 지적당해 놀랐고, 인우는 자신을 가리키며 뒷말을 삼켰다.

‘물질 간섭자!’

“…….”



* * *



나는 변덕쟁이다.

하지만 나의 변덕은 그에게 있어 기연이었다.



나는 창고를 뒤적거리며 시야에 들어오는 물건의 개수를 순식간에 파악해 유연학에게 알려줬고, 유연학은 빠르게 기록해갔다.

나의 빠른 인지력과 그의 거침없는 연필 놀림이 만나자 조사는 순식간에 끝났다.

“이럴 수가…….”

2시간 만에 후딱 정리된 장부를 보며 유연학은 떨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쉽지?”

사람을 놀라게 하는 건 의외로 재미있다.

“하하… 너랑 있으면 상식이 송두리째 날아가는 것 같아.”

“나에 대해선 비밀로 해줘.”

“마찬가지야. 나도 학교에 대해 비밀로 하고 있었어.”

가족 외에 비밀을 접한 사람이 한 명 늘었다.

순간 긴 생머리의 꼬마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한 명 더 있었네.’

“순간 기억과 연산 능력인가? 부럽네. 컴퓨터가 필요 없겠어.”

“컴퓨터는 필요하지. 상상만으로는 게임은 할 수 없거든.”

“하하, 컴퓨터가 단순한 계산기는 아니지.”

“맞아. 게임기도 되고, TV도 되니까.”

우린 잡담 끝에 서로의 비밀을 지켜주기로 약속했다.

나의 초월적인 뇌 기능과 그의 학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약속이었다.



낮에는 여전히 무념무상의 내려치기.

밤에는 창고 정리를 도왔다.

간부들의 허락을 받을 때 사수 박현식의 도움이 컸다.

“감사합니다, 병장님.”

“천재가 하는 일을 범재인 내가 어떻게 알겠냐.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불똥만 안 튀게 해주라. 전역 얼마 안 남았다.”

“…….”

보신주의와 방임주의가 합쳐진 박현식 병장은 의외로 대하기가 편했다.



미련한 수재와 내가 힘을 합치자 재고조사는 일주일 만에 끝났다.

유연학은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오차를 계산하고, 장부 관리계획서를 만들었다.

완성된 계획서로 간부와 선임을 설득해낸 유연학은 선임병들의 협조 아래 순조롭게 바쁜 군 생활을 보내게 됐다.

결론은 역시.

‘사서 고생한다는 거지…….’



유연학과의 약속 여부와 관계없이 나의 능력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될 것이다.

‘둘 이상 아는 비밀은 비밀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아버지가 자주 예로 들어주던 마녀사냥이 떠올랐다.

‘마녀들이 사냥당한 건 힘이 없어서야.’

그들이 힘을 갖추고 있었다면 천사로 추앙받았을지도 모르는 일.

나의 힘은 세상의 규격과 맞지 않는다.

그렇기에 힘이 필요했다.

나는 각오를 다졌다.

‘드러나는 시간을 최대한 늦추고, 정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을 손에 넣는다!’

심경의 변화는 기운에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은 숨어서 꼼짝도 않던 기운들이 의지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전신을 누비기 시작했다.

규칙성 따위는 찾을 수 없었고, 낯선 기운의 반응에 당혹스러웠다.

‘너희들은 뭘 하고 싶은 거냐?’



매일 이어지는 내려치기의 무한 반복 속에서 나의 군더더기 없던 내려치기가 점점 진화하고 있었다.

공기를 가르던 내려치기의 파공음이 점점 작아지더니, 박현식 병장의 개인 지도 마지막 날에는 나의 내려치기에는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도날 표면에 안착해 있던 기운이 공기를 밀어내며 만든 무저항의 길!

어떠한 저항도 받지 않는 나의 내려치기는 소리 없이 빨랐다.

‘무음낙도’ 의 완성이었다.



* * *



박현식 병장은 인우의 내려치기의 변화를 지켜봤다.

꿀꺽.

‘괴물 녀석… 결국 완성했구나.’

완성된 저 일격은 과연 몇이나 막을 수 있을까?

‘이건 중대장도 못 막아!’



멀리서 지켜보던 간부들은 감탄과 함께 안타까움을 삼켰다.

‘대단하다. 하지만, 그게 무능력자의 한계!’

‘저 일도가 어떠한 경지에 들어섰는지조차 모르겠어. 그런데 안타깝게도 마나를 실을 수가 없다니.’

재능치 0.3. 마나를 쌓는 건 불가능.

그렇기에 더욱 눈을 뗄 수 없었다.

‘저 기술에 내력이 더해진다면…….’

꿀꺽.

‘최강의 헌터가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