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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중렙 필드, 던전 관리 부대





그동안 배운 것을 복습하고 수료식을 준비했다.

날씨가 맑은 경우에는 운동장 수료. 비가 올 경우는 체육관 수료.

날씨 예보가 어떻든 두 패턴 모두 만전을 기해 훈련을 거듭했다.



120명에 달하는 훈련병들이 일사불란하게 통일된 모습을 보이기는 쉽지 않았다.

수료식은 최고 난이도의 훈련이었고, 보여주기식 군대의 참된 모습을 확인시켜 주었다.

‘수료식 훈련을 3일간이나 할 줄이야…….’

비생산적인 훈련에 투자한 시간치고는 너무 길었다.



수료식 날, 날씨는 맑았다.

우린 운동장 입구에 정렬했다.

가족들이 모인 곳에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부모님이랑 여동생이 왔네.’

“저기 어디서 많이 봤는데…….”

“연예인 같지 않아?”

훈련병들의 시선 끝에는 부모님과 여동생이 있었다.

범상치 않은 부모님과 눈에 확 띄는 여동생.

전사 학교 고등부 2학년, 키 170㎝ 몸무게 48㎏. 미스코리아 뺨치는 몸매와 목선까지 내려온 찰랑거리는 단발.

피부와 머릿결까지 눈부신 여동생이 원피스를 차려입고 왔으니…….

굶주린 훈련병들에겐 너무도 강한 자극이었다.

조교와 간부들조차 넋을 잃을 정도의 찬란함을 뿜어내는 여동생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훈련병들이 너도나도 손을 흔든다.

“야, 봤어? 나 보고 손 흔들었어!”

“나… 쟤 알 것 같아. 전사 학교 차인서다!”

차인서임이 확인되자, 훈련병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와아! 차인서다!”

‘유명하네…….’

인서로 인해 패닉에 빠진 훈련소.

수료식은 시작부터 대위기를 맞이했다.



군인정신으로 자극을 극복한 동기들과 나는 무사히 수료식을 마쳤다.

수료식 끝부분에 가족들이 훈련병에게 계급장을 달아 줬다.

“고생했다, 아들…….”

“축하해, 오빠.”

이등병이 된 것이다.

한차례 감동의 재회를 끝낸 훈련병들은 가족과 함께 부대를 떠났다.



나는 1박에 60만 원이나 하는 리조트를 잡았다.

물론 300억 자산가인 나에게 리조트 비용은 껌 값에 지나지 않았다.

수영장은 눈으로만 감상했다.

‘귀찮다…….’

목욕탕에서 반신욕을 했다.

군대에선 있을 수 없는 사치.

주방과 거실이 있는 방 두 개짜리 객실에서 실컷 놀고, 실컷 쉬었다.

뉴스를 보며 가족 간에 쌓인 얘기도 나눴다.



* * *



날이 밝자 나는 훈련소로 복귀준비를 했다.

자대 배치를 받으면 최대한 빨리 포상휴가를 쓰려고 했지만, 눈물을 훔치며 슬픔을 애써 감추고 있는 가족들의 배웅에 나는 생각을 바꿔야 했다.

‘휴가는 천천히 나가자.’

이 분위기… 한동안 휴가 쓰긴 틀렸다.



생활관에 도착하자마자 훈련병들의 질문세례가 쏟아졌다.

“차인우! 너 차인서 오빠였어?”

“소개 좀 해주라!”

“사인 좀 부탁할게!”

나는 인서의 방문으로 한동안 훈련병들에게 시달려야만 했다.

조교들은 극성인 훈련병들을 통제해줬지만, 뒤에선 은근슬쩍 연락처를 요구해 왔다.

그래서 나는 자대에선 여동생의 존재를 최대한 숨기기로 했다.

물론 들키면 어쩔 수 없다. 여동생을 팔아 편한 자대 생활을 영위할 수밖에…….

‘나도 그리 좋은 오빠는 아닌 것 같아.’



한 명, 한 명 자대 발령을 받고 짐을 챙겨 생활관을 떠났다.

20번 남주한은 조교가 됐고, 101번 녀석은 특공부대로 갔다.

그렇게 불려간 훈련병은 돌아오지 않았다.

전방과 최전방에 대거 끌려가고는 한동안 발령 소식이 없었다.

적막한 생활관에는 나와 유연학만 남게 됐다.

“잘하면 같은 부대로 가겠네요.”

나이 차를 떠나 동기끼리는 말을 트는 게 관례인데…….

“같은 부대면 서로 말 편히 하죠.”

“2년간 함께 하려면 그것도 좋죠.”



무슨 착오가 있었는지 발령이 늦어졌다.

우리는 3일간 생활관에서 빈둥거렸다.



“13번, 14번 훈련병. 짐 챙겨 따라온다.”

드디어 고대하던 지명이 왔다.

따라간 곳에는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간부가 있었다.

계급장부터 확인해 봤다.

9개의 대나무 잎에 둘러싸인 금강석.

소령?

‘왜, 소령이 직접?’

“타라.”

소령의 지시에 우리는 의문을 뒤로하고 고급 지프차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지프차는 전술 도로를 따라 산속 깊이 들어갔고, 깊은 산속에 높고 긴 담벼락이 보였다.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철문.

철문에서 검열을 거쳤다.

“신병 둘.”

“확인했습니다. 고생하십시오.”



문을 통과해 들어온 곳에는 커다란 운동장 주위로 깔끔한 2층 건물들이 여럿 있었다.

“일개 대대 400명 이상을 수용한 훈련기지다.”

“예!”

“차인우 이등병. 유연학 이등병.”

“예!”

“나는 여기 3중대 중대장 이오철 소령이다.”

중대장이 소령?

중대장은 중위나 대위 정도로 알고 있는데.

거기다 훈련기지라니.

‘뭔가 잘못됐어…….’

불길한 기분이 전신을 휘감았다.



* * *



조금 높은 언덕 위엔 본부 건물이 하나 있고, 그 앞에 3동의 건물이 나란히 있었다.

특색 없는 깔끔한 건물 앞에는 커다란 운동장이 있었고, 체육관으로 쓰이는 건물도 여럿 보였다.

“이쪽이다.”

“네!”

소령을 따라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현식아, 신병이다.”

“네! 중대장님.”

건물 입구에서 활동복 차림의 3소대 분대장을 소개받았다.

나는 그를 따라갔고, 유연학은 지원소대 분대장을 따라갔다.

“3소대 3분대 박현식 병장이야. 짧은 시간이겠지만 잘 부탁한다.”

키가 183㎝쯤 되는, 나보다 조금 큰 병장이었다.

말랐지만 밀집된 근육이 범상치 않았다.

주변에 다니는 병사들도 활동복을 입고 있었는데, 모두들 잘 다듬어진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뭐야? 여기 특수부대야?’



생활관의 문을 열자마자, 나는 그동안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여기는 내가 알던 군부대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넓은 실내에는 10명의 분대원이 있었다.

“왔냐… 어? 신입?”

“일단 신고식 전에 복장부터 맞추자!”

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선 선임들.

그들은 활동복 차림에 도병을 하나씩 지니고 있었고, 관물대에는 일반 군인에게는 필요치 않은 물건들이 수두룩했다.



선임들이 각자가 준비한 장비를 가지고 나왔다.

“이건 네가 앞으로 쓸 개인 무기.”

묵빛이 감도는 얇은 곡도를 받았다.

“이건 내복으로 입고.”

가죽 갑옷.

“이건 방탄조끼 대신.”

은빛으로 반짝이는 사슬갑옷.

“마지막으로 이거… 방탄모다.”

분대장이 머리에 무언가를 씌워줬다.

그건 얼굴 전체를 덮는 강철 투구였다.



생활관의 선임들은 중세 시대 병사가 된 내 모습에 감회가 새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 군대와 무관할 것 같은 장비는!’

정신없는 날 보며 분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모르고 온 거야? 여기 던전 관리 부대인데.”

던전이란 단어에 난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넌 앞으로 두 달간 나한테 훈련을 받는다.”

박현식 병장이 옆으로 손을 내밀자 선임 하나가 곡도를 건넸다.

박현식 병장은 건네받은 곡도를 뽑아내 사선으로 털어 보이곤 도집 안으로 꽂아 넣고는 손을 내밀었다.

“잘해 보자고.”

나는 손을 내밀며… 경악성을 삼켰다.

‘뭐야, 던전 부대라니! 훈련이라니!’



들어는 봤다.

현대 무기에는 마석이 들어간다.

그래서 마석의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던전에 투입되는 부대가 만들어졌다.

던전 토벌 부대.

던전 관리 부대.

던전 지원 부대.

토벌 부대는 레벨 30 이상인 헌터 자격증 소지자로 편성됐고, 관리 부대는 헌터의 역량을 갖추지 못한 레벨 10대의 수행자와 레벨 20대인 견습 헌터가 가는 곳이다.

지원 부대는 헌터의 가족이나 서포터 교육을 받은 무능력자가 지원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즉!

‘여기는 무능력자인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건데…….’

심각한 착오가 발생했다.



* * *



이오철 소령은 신병 프로필을 보고 있었다.

‘쓸 만한 녀석 하나랑 똑똑한 놈 하나 달라니까…….’

한 명은 그럭저럭 똑똑해 보인다.

명문대 출신, 집안도 좋다.

문제는 다른 한 놈이다.

‘무능력자를 왜 여기에?’

특별한 무언가 있을까 싶어 프로필을 꼼꼼히 살폈다.

재능치 0.3.

이건 걸어 다니는 시체급 재능치다.

서포터 학원 출신도 아니고, 전통 무술 연마자도 아니다.

거기다 프로필이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체력 측정 팔굽혀펴기 180?

‘물음표는 뭐지?’

주간사격 100%, 야간사격 100%.

‘저격수를 왜 이곳에…….’

이런 데이터는 아무리 높아도 무용하다.

‘저격수를 보내 달라고 한 적은 없는데 말이야.’

마석을 사용한 배터리와 마석이 섞인 탄환 등은 던전 안에서 증발해버렸다.

이유는 밝혀진 바 없지만, 가공된 마석을 던전 안에 들고 가는 것은 불가능.

‘무슨 의도로 무능력자를 보낸 것일까?’

이놈은 쓸 수가 없다.

10㎏에 달하는 장비에서 오는 부하(負荷).

1.8㎏ 곡도를 사용하며 생기는 근육의 파손.

던전에서의 4시간 지속 사냥은 평범한 인간의 회복력으론 버틸 수 없었다.

무능력자라니…….

프로필 파일의 뒤쪽에 신병 교육대에서 보낸 편지가 있었다.



[대정전으로부터 6년이 흘렀습니다.

지금 정상에 있는 헌터들은 높은 재능치와 탁월한 능력을 갖췄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건 이오철 소령님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잘 알지…….’

한국 최강의 길드, 홍염 날개.

그곳은 빽도 없고 돈도 없는 하류들이 모인 길드였다.

가진 것이라고는 잃어도 아쉽지 않은 목숨 하나뿐이었던 그들.

하지만 지금의 헌터계 정상은 누가 뭐라 해도 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녀석은 분명 잘해낼 겁니다.]



터무니없는 고평가에 의문이 들었다.

‘어떤 녀석인데… 이리도 확신하고 있는 걸까?’

이오철 소령은 호기심이 들어 한동안 관심을 가지고 신병을 지켜보기로 했다.



* * *



던전 관리 부대는 3개의 대대가 돌아가면서 3달간의 휴식기를 가졌다.

인우는 휴식기 초기에 배속되어 잇따라 배속되는 동기들을 볼 수 있었다.

‘역시…….’

이등병 동기들은 모두 레벨 10 이상인 수행자들이었다.



3달간의 휴식기가 끝나면 6개월간 던전에 투입된다.

전역까지 9개월도 남지 않은 선임들은 후임을 받아 자신의 무기술과 반 년간 던전에서 쌓은 노하우를 전수했다.



박현식 병장은 인우를 후임으로 받았고, 3개월 후 제일 고참병이 될 분대원에게 견장을 물려줬다.

인우가 레벨1의 무능력자라는 것은 고참들 사이에선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그런 인우를 맡게 된 박현식 병장은 암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막상 훈련에 들어가서는 나름 만족스러워했다.



인우는 한동안 갑옷 무게에 적응하는 한편, 박현식 병장에게서 곡도의 사용법을 배웠다.

“횡으로 베기와 찌르기는 빈틈이 많다! 조별 훈련에 들어가면 내려치기만 쓴다!”

얇은 곡도에 무게와 중력을 그대로 이용한 일격필살이 바로 내려치기다.

박현식 병장은 훈련 평가에 있는 내려치기만 가르쳤다.

“일!”

“이!”

박 병장의 호령에 맞춰 인우는 곡도를 들고 내려쳤다.

내려친 후에 몸을 뒤로 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뒤로 빠지면서는 자세를 다시 잡아! 조별 평가 때는 얼마나 동료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느냐가 포인트다.”

4시간 동안 이어진 내려치기 훈련이 끝나고, 인우는 오후에 박현식 병장에게서 이론 수업을 받았다.



박현식은 인우를 가르치면서 매번 속으로 놀람을 삼켜야 했다.

그동안 일종의 기선 제압으로 무리한 훈련을 진행했다.

그런데 차인우 이병은 무리한 훈련을 무리 없이 소화해 버렸다.

거기다 한 번 알려준 것은 굳이 두 번 알려 줄 필요가 없었다.

‘어떻게 된 녀석이야?’

도저히 무능력자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체력.

‘내력도 없이 어떻게 누적되는 피로를 해소하는 거지?’

의문은 많았지만, 중요한 것은 인우에 대한 평가가 자신에게도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역시 박현식 병장이네. 무능력자를 저 정도까지…….”

“흐흠… 담당 교육병의 격인가?”

인우의 훈련성과를 본 간부들은 담당 교육병인 박현식을 높이 평가했고, 후임들은 존경어린 시선을 보내왔다.

“현식아, 교육병들에게 한마디 해줘라.”

내려치기밖에 가르친 게 없는 박현식이었지만, 이럴 때는 어깨에 힘을 주며 말했다.

“부족한 후임이 있다면, 그건 후임이 아닌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렇게 현식은 일장 연설을 하며 참된 교육병의 명예를 드높여갔다.

‘말 한 번 더럽게 잘하네…….’

인우는 딱히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박현식 병장이 가증스럽게 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