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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사격왕





주말에는 종교 활동을 했고, 그곳에서 서로 정보를 교환했다.

“거긴 뭐야? 우리는 xx사 초코파이 1개.”

“그래? 우리는 yy사 초코파이 2개인데.”

“뭐? 나도 거기 갈걸…….”

밖에서 따로 종교가 있던 훈련병의 90%가 초코파이 1개를 더 받아먹으려고 종교를 바꿨다.

그들은 자신의 신을 찾으며 용서를 빌었다.

용서만 빌면 다 용서해주는 너그러운 신들.

내가 신이었음…….

‘너희들 다 천벌!’



2주차 사격훈련!

영점 사격 전에 총기 훈련이 빡세게 진행됐다.

총알값 때문이다.

대정전 이후 세계에 마나라는 물질이 퍼졌다.

나는 그걸 물질이라 보지 않지만…….

어쨌든 이놈은 기존의 전자제품을 먹통으로 만들었고, 화약과 석유, 가스 등을 증발시켰다.

새롭게 생산한 화약으로 만든 현대 무기는 ‘불발’ 아니면 ‘폭발’ 했다.

핵 시설까지 쓸모없어지면서 세계의 군사력 평가는 모두 리셋 되어 힘의 균형이 깨지는 대사건이 벌어졌다.

이후 시간은 걸렸지만 마석을 이용한 새로운 총알이 보급됐고, 상위 마석으로 만든 폭탄들이 마구 등장했다.

던전 산업은 그 나라의 국력을 재는 기준이 됐고, 정부는 너나 할 것 없이 주도적으로 던전 개발에 뛰어들었다.



결론은 500원도 안 하던 총알값이 6천 원으로 올랐다는 것이다.

총알 한 발도 아까운 신병 교육대다.



“50사로 앉아 쏴! 100사로 서서 쏴! 150사로 누워 쏴! 200사로 엎드려 쏴! 그냥 쏴! 마구 쏴! 똑바로 쏴! 굴러굴러 쏴! 꽂아 쏴! 뒤로 쏴!”

‘쏴’로 끝나는 명령에 우리는 바닥을 마구 굴러다녔고, 반복해서 총기를 들었다 놨다 했다.

피 같은 총알을 한 발이라도 아끼기 위해, 훈련병은 총기와 일심동체가 돼야만 했다.



영점 사격을 한 번에 통과하면 긴 휴식과 달콤한 간식 그리고 자상한 조교가 기다렸고, 한 번이라도 떨어지면 지옥 훈련과 야차 같은 조교가 기다리고 있었다.

3번째 영점을 못 맞추면 바로 유급!

지옥 훈련은 충분한 효과를 발휘해 유급은 단 한 명도 없었다.

“14번 훈련병 합격!”

반동을 이겨 낼 안정된 몸과 정확한 눈.

손쉬운 합격이었다.



13번 합격!

20번 합격!

사전 훈련이 빛을 발한 것인지 불합격자는 적었다.

합격자는 훈련병 전원이 합격할 때까지 휴식과 달콤한 간식을 즐겼다.



영점 사격이 끝나고 실제 사격에 들어갔다.

“훈련용 탄은 사거리가 짧다. 100m 사격을 기준으로 채점하겠다.”

훈련용 탄은 마석을 아껴가며 만들어서 사거리가 짧아졌다.

“10발 중 6발이 통과다. 10발 모두 명중한 훈련병에게 분대 가산점을 주겠다. 그리고 개인 포상으로 5분간 통화권을 줄 것이다. 불합격자는 알다시피 지옥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정신 바짝 차리도록!”

10개의 사로에 조교가 1대1로 붙었다.

“사격 시작!”

탕! 탕! 탕! 탕! 타타타타탕!

“1사로 1발! 2발… 사격 끝!”



나는 영점 사격 때 처음으로 총성을 들었다.

고막을 울리는 굉음.

음속에 가까운 원거리 무기.

등골이 서늘해지며,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총구를 잘 보고 있으면 총알을 피할 수 있을까…….’



아니, 총뿐만이 아니다.

엄청난 화력의 폭탄도 여럿 있을 것이다.

꿀꺽.

한때는 무적이라 생각했다.

세상이 변하고, 소수의 최상위 헌터만이 나와 겨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석이 사용된 현대 무기들을 접한 지금은… 생각을 수정했다.

힘은 더 강한 힘에 꺾이는 법.

유능제강(柔能制剛).

요컨대 정부와는 부딪히지 않는 게 상책이다.

‘앞으로 폭사 당하지 않게 조심해야지…….’



내 차례가 왔다.

탕! 탕! 탕!

“4사로 사격 끝!”

조교와 함께 확인하러 갔다.

탄착군이 잘 형성되어 10개의 구멍이 옹기종이 모여 있었다.

“대단합니다. 이 정도로 정밀한 사격은 처음 봅니다.”

담당 조교가 감탄을 터트릴 정도의 정확한 사격이었다.

“잘 알려주신 덕분입니다.”

속으론 그리 생각하지 않지만, 예의상 덕담을 주고받았다.



“11번 6발!”

“12번 8발!”

“13번 10발!”

“14번 10발!”

……

“20번 7발!”



불합격자는 지옥 훈련소로 가고, 합격자는 생활관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밤이 되자 조교에게 불려가 집에 전화를 할 수 있었다.



* * *



“힘들지는 않니?”

-조금…….

“…….”

인우의 엄마, 안서진은 의외였다.

‘아들이 힘들다고 할 줄이야! 이런 빅뉴스가!’

“엄마, 나도 바꿔줘!”

“여보, 훈련소 통화 시간은 짧아!”

안서진은 남편과 딸의 닦달을 가볍게 무시하고 통화를 이어갔다.

“조금 의외네. 아들이 힘이 든다니…….”

-먹는 게 좀…….

“훈련은 어떠니?”

-쉽지 뭐.

“풋.”

역시, 아들이다.

누가 뭐래도, 아들은 자랑스러운 초능력자니까.

“조금 변했네…….”

인우는 차갑고, 냉정했다.

하소연 같은 건 일절 하지 않던 인우가 우는 소리라니.

아들의 인간적인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보기 좋다.”

안서진은 부드럽게 미소 띤 얼굴로 수화기를 끝내 양보하지 않았다.

-시간 다 돼가.

“오빠, 편지 많이 보냈어!”

“아들, 거기서 사고 치면 안 된다! 선임 마음에 안 든다고 패면 안 돼! 아무리 간부가 인간쓰레기여도 신처럼 모셔야 한다!”

옆에서 일어나는 잡음도 안서진에게는 들려오지 않았다.

“아들… 힘들면 언제든 말하렴.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야.”

“오빠, 괴롭히는 녀석은 이름만 기억해 둬!”

“아들, 군대는 모든 걸 내려놓는 곳이다!”

-고마워, 모두. 다음에 또 연락할게.

띠띠띠…….

전화가 끊겼다.

인서와 차승우는 잔뜩 찡그린 채 안서진을 쏘아보았다.

안서진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가족들을 돌아봤다.

이마에 역 팔자 주름이 만들어질 정도로 잔뜩 찡그린 얼굴.

“화장실 급하세요?”

“엄마!”

인서가 버럭 화를 냈다.

“여보… 우리 가족회의가 필요할 것 같아.”

차승우는 낮게 깔린 음성으로 회의를 요청했다.

다음번에 인우와 통화할 사람을 정하기 위한 회의였다.



* * *



인우는 5분간의 통화를 마치고 수화기를 내려놨다.

아쉬움이 남았다.

따뜻하게 받아주는 어머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는 아버지.

데스노트를 작성하라는 여동생.

‘여전하네…….’



병장 조교 전남고는 14번의 표정 변화를 본 게 처음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괴물 같은 훈련병 14번.

통화를 끝내고 보인 부드러운 미소는…….

‘웃을 줄도 아네.’

인간적이고 보기 좋았다.



사격훈련의 마지막으로 야간 사격을 했다.

조준 상태에서 불을 껐다.

달빛조차 없는 밤, 칠흑이 대지를 덮었다.

“사격 시작!”

탕!

‘뭐야… 하나도 안 보이잖아!’

인우조차 당황했다.

훈련병들도 어쩔 줄 몰라 했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한 발을 쏘고 난 반발력에 총구 방향이 틀어졌다.

재조준을 하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표적을 조준하는 것은 불가능.

그저 아무 곳이나 조준해 쏘는 것에 불과했다.

아니… 조준조차 못 하는 것이 야간 사격이었다.



인우는 시력을 끌어올리고 전방에 집중했다.

그러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짙은 그림자가 보였다.

‘저게 표적이네.’

탕! 탕! 탕! 탕!

감으로 알았다. 10발 전부 명중이다.



* * *



사격 후, 조교들이 표적을 확인하고 왔다.

“1사로부터 보고!”

“11번 훈련병 0발!”

“12번 훈련병 0발!”

“13번 훈련병 2발!”

“…….”

4사로 조교가 머뭇거렸다.

‘이걸 어떻게 보고하지…….’

“4사로 보고!”

“저… 중대장님.”

‘이런 일은 처음인데…….’

4사로 조교는 당황 가득한 얼굴로 보고를 망설였다.

“보고부터 해라!”

‘에라, 될 대로 되라지.’

“14번 훈련병 25발!”

중대장과 조교들은 얼빠진 얼굴로 4사로 쪽을 돌아봤다.

“4사로, 다시 보고해봐.”

“14번 훈련병 10발 중 명중 25발!”

“…….”



황당한 일이었다.

야간 사격 10발 중 25발 명중.

다른 훈련병이 표적을 찾지 못하고 마구 갈긴 탄환이 우연히 인우의 표적에 박힌 것이다.

10점 만점에 25점.

당연히 만점 이상의 점수를 받을 수는 없었지만, 인우는 야간 사격 명중률 250%의 훈련병으로 한동안 회자됐다.



* * *



3주차 각개전투.

그저 열심히 땅을 기고 구르며 뛰어다니는 훈련이다.

총기와 군장이 거치적거렸다. 부상자가 속출했지만, 우리 분대는 전원 열외 없이 무사히 훈련을 마칠 수 있었다.

야영과 경계훈련도 했다.

텐트가 구식이라 너무도 불편했다.

차라리 경계를 설 때가 편할 정도였고, 감기 환자가 속출했다.

심폐소생술, 각종 포션에 대한 교육, 수류탄에 대한 교육이 이어지며 3주차 훈련이 마무리됐다.

3주차 개인 정비시간에 집에서 보내온 편지를 받았다.

3주간 쌓인 편지들.

나처럼 가족에게서 편지를 받은 사람도 있었고, 여자 친구에게서 편지를 받은 사람도 있었다.



여동생이 쓴 편지 내용이 조금 이상했다.

과거의 추억으로 시작해 분위기가 좋았는데, 마지막에는 군대에서 조기 제대하는 방법이 나왔다.

‘뭐야? 허리 통증을 호소해 후방 병원으로? 귀신이 보인다고 하면 조기 제대를? 게이라고 주장해서…….’

생각 이상으로 조기 제대를 할 수 있는 기괴망측한 방법이 많았다.



4주차 마지막 훈련, 행군.

완전 군장으로 행군을 했다.

우리는 유연학의 제안에 요령껏 군장의 무게를 줄였다.

무거운 부분을 남주한과 내가 부담하고, 분대원들의 군장을 35㎏에서 20㎏까지 줄일 수 있었다.

인솔 조교마저 감쪽같이 속인 작전이었다.

무게를 대폭 줄이고 출발한 우린 당연히 앞섰다.

하지만 마지막 코스를 남긴 지점에서 유연학이 처지기 시작했다.

101번 분대와의 거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모두가 직감했다.

‘녀석들도 무게를 줄였어!’

유연학의 작전으로 우린 앞섰고… 그의 부족한 체력 때문에 2등으로 밀릴 위기를 맞았다.

유연학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조금씩 1등의 포상을 포기하고 있을 때, 나는 1등을 확신했다.

‘분대로는 첫 승리네. 연학이 형, 고마워! 덕분에 외박할 수 있겠어!’

나는 본격적으로 나섰다.

유연학의 군장을 뺏어 들었다.

“연학이 형, 덕분에 1등입니다.”

유연학은 어리둥절해하며 군장을 내줬다.

두 개의 군장을 짊어진 나는 전혀 지친 기색 없이 앞서나갔다.



* * *



남주한은 두 개의 군장을 메고도 앞서가는 인우를 보며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야야, 우리 것은 무게가 상당하다고!’

인솔 조교는 전율을 느꼈다.

‘괴물 훈련병… 전우의 군장마저 짊어진 건 네가 최초다.’

군장을 빼앗긴 유연학은 발목은 아팠지만 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인우의 뒤를 쫓아 점점 빨라지는 유연학.

그런 그를 따라가기 위해 이를 악무는 분대원들.



빠르게 따라붙던 101번은 두 개의 군장을 짊어진 14번을 보며 경악했다.

“헐… 뭐야 저놈은? 지금 군장을 두 개나 멘 거야?”

101번이 황당한 표정으로 인솔 조교에게 물었다.

“조교님, 저래도 되는 겁니까?”

101번 분대의 인솔 조교가 앞서가는 분대를 뜨겁게 응시하며 말했다.

“억울해하지 않습니다. 멋진 패배지 않습니까.”



두 개의 군장을 짊어진 인우와 그의 분대가 1등으로 행군을 완수했다.

중대장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

‘14번… 넌 한 명의 굴강한 병사로서 분대의 운명을 뒤집었다.’

패배할 승부를 승리로 이끈 한 명의 영웅.

그렇기에 그를 이곳에 남길 수는 없었다.

중대장은 미련을 털었다.

‘보내주마!’

영웅이 절실한 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