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9화

회귀자





체력 측정이 모두 끝났다.

훈련병들은 기진맥진이었다.

체력이 고갈되고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각 생활관에 2명의 조교가 들어왔다.

1, 2분대를 맡은 건 팔굽혀펴기 측정에서 나를 못살게 굴던 조교였다.

유도선수 출신 병장 전남고.

“지금부터 무박 3일 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눈감는 훈련병에게는 얼차려가 있겠습니다.”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시작된 지옥 입문 선언.

훈련병들은 절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남주한마저 넋이 나갔다.

나야 일주일정도 잠을 자지 않아도 끄떡없는 몸이지만, 새파래진 유연학 훈련병은 조금 걱정이 됐다.

‘사람 잡겠어…….’



* * *



조교는 의식적으로 인우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려 했지만, 인우는 힐끔힐끔 자신을 보는 조교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찍혔어. 조심해야지.’

‘괴물 녀석, 제발 사고만 치지 마라.’

조교는 조심스러웠고, 인우는 찍혔다고 오해를 했다.



“이제 k-2 소총이 애인입니다. 소중히 다룹니다.”

인우는 사귀어 본 적도 없는 애인을 받았다.

이상형과는 거리가 먼… 딱딱하기 그지없는 애인이었다.

“설명은 한 번만 해줍니다.”

부분별 명칭, 분해와 조립법, 그리고 관리법을 알려줬다.

훈련병들은 열심히 메모를 했지만, 조교의 설명속도에 맞춰 세세히 메모가 가능한 사람은 유연학이 유일했다.

‘연필 잡는 손이네.’

딱 봐도, 성실한 엘리트다.



총기를 분해하고, 닦고, 조립했다.

인우의 뛰어난 기억력은 한 번 본 걸 세세히 기억했고, 차근차근 순서에 따라 작업을 진행했다.

체력 측정에서 뒤처지기만 하던 유연학은 총기에 있어서만큼은 의외의 고수였다.

순식간에 총기를 분해하고, 닦아야 할 부분만 빠르게 닦고는 조립하여 조교에게 검사를 받으러 갔다.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

인우조차 놀랄 속도였다.

‘경험자가 아니고서는…….’

총기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경험이 없으면 불가능한 속도였다.



제일 먼저 생활관을 나선 유연학은 단독 1등으로 통과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녀석이 있었다.

3생활관 3분대 분대장 훈련병.

101번 훈련병이었다.

까무잡잡한 팔뚝 문신을 한 까칠하게 생긴 녀석이다.

둘은 조교를 향해 가다 복도에서 마주쳤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놀랐다.

‘나만큼 빠르시다니…….’

‘뭐야? 저놈 어떻게 이렇게 빨라?’

101번은 다급하게 움직였고, 유연학은 다급한 훈련병이 먼저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걷는 속도를 늦췄다.

101번 훈련병이 유연학을 지나칠 때…….

‘피식.’

비웃음?

착각이 아니었다.

“3생활관 3분대 가산점 +1점!”

“감사합니다.”

“…….”

‘양보 감사! 냠냠.’

‘1등 통과자에게 분대 가산점이라니!’

유연학은 자신의 양보로 인해 분대에 공헌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둘은 분대로 돌아가 분대원들을 돕습니다.”

조교의 지시에 유연학은 쓰린 속을 달래며 분대로 돌아갔다.



* * *



나는 총기를 느긋하게 조립했지만, 3위로 통과했다.

유연학은 조교의 지시대로 분대원들을 도우려 했지만, 알고 있으니 도움은 필요 없다는 태도가 만연했다.

그래도 정말 힘든 부류는 도움이 절실했나 보다.

“연학아! 내 것 좀 봐줘.”

분대장 훈련병 남주한. 역시 운동선수 출신이다 보니, 머리 쪽은 아쉬움이 많았다.



총기 검사의 개인 1등과 분대 1등은 101번의 분대가 모두 차지했다.

우리는 16번 훈련병이 자존심을 세워가며 도움을 거부하고, 11번, 12번 훈련병은 동반 입대라 그런지 수다를 떨며 장난치는 바람에 많이 늦어졌다.

분대원들은 의외로 뛰어난 유연학에게 잠시 놀랐을 뿐, 목표가 높지 않아 서로를 탓하는 일은 없었다.

조교의 지시에 적당히 임한 것은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분대 점수 순위에 따라 청소 구역을 배정합니다.”

3개의 생활관, 12개 분대.

꼴찌부터 청소 구역이 정해졌다.

꼴찌는 배식을 겸한 식당 청소.

정말 지옥이 따로 없는 곳이다.

끝에서 두 번째인 우리는 화장실 청소였다.

1, 2, 3등은 청소 열외.

1등에게는 간식 추가 지급!



청소를 하면서 눈에 밟힌 것은, 편하게 쉬면서 간식을 먹고 있던 101번 녀석의 분대였다.

우리는 태도를 180도 바꿔야 했다.

“1등을 노린다!”

분대장 훈련병 남주한도 뜨겁게 타올랐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간식을 위해 나 또한 묵묵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쟁취하죠, 우리의 간식을 위해!”

“…….”

남주한이 뜨겁게 달군 공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다들… 간식 먹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

나는 분대원들을 둘러보았다.

내 물음에 뭔가 석연치 않은 표정들이다.

‘너 두 개나 먹었잖아!’

‘네 눈엔 간식밖에 안 보이냐!’

‘그걸 노골적으로 말하면 어떡해. 두 개나 먹은 녀석이!’

“2분대 파이팅!”

“파이팅!”

내가 만든 차가운 공기는 남주한이 일단 흘려보냈다.



* * *



매일 두 시간씩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에도 빠르게 끝낸 분대에 가산점이 있었다.

유연학은 빠르게 생활기록부를 읽고는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볼펜을 움직였다.

슥, 스스스슥.

종이에 빠르게 채워지는 글씨들.

유연학은 각종 정보와 사상 관련 질문의 포인트를 캐치해 빠르게 써내려갔다.

나와 유연학은 빠르게 끝내고 분대원들을 도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1위 제출은 101번 훈련병 분대의 차지였다.

독무대!

101번은 모든 가산점을 싹쓸이하고 있었다.

‘쩝…….’

아쉽게도 우린 2등을 했다.



새벽에 총기만을 휴대한 2시간 행군, 체육관에서의 각종 이벤트.

분대 이름 짓기, 분대 구호 만들기, 분대 마크 그리기.

잠이 오면 시작되는 PT체조.

분대별 제식 훈련과 시험.

분대별 총기 분해와 조립 시간 경쟁.

각종 게임을 통한 분대별 경쟁.

각각 통과 성적에 따라 포인트가 지급됐고, 우린 1등을 위해 포인트를 열심히 벌어야 했다.



육체를 쓰는 게임에서는 남주한과 내가 활약했고, 머리를 쓰는 게임에서는 유연학과 내가 활약했다.

나는 진정한 에이스가 되어 분대 점수를 대폭 올렸지만, 101번 분대를 넘어 설 수는 없었다.

우린 언제나 2등이었다.

‘크윽, 개인전이었다면 이겼을 텐데.’

처음으로 겪는 패배가 조금 충격이었다.

떠나가는 간식을 생각하며 나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밤을 지새우고 무박 2일째.

정신 교육, 군인 영화, 각종 노동…….

훈련과 시험, 분대별 대항 게임이 이어졌다.

나에게는 나름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움직일 때마다 근육통으로 괴성을 지르는 훈련병들에게 있어서는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좀비 같네.’

밥을 먹다 식판에 머리를 박은 훈련병이 있어 얼차려를 받은 분대가 있는가 하면, 영화를 보다 잠이 들어 얼차려를 받는 분대도 많았다.

무박 3일은 단합과 경쟁을 버무린 정신 극복 훈련이었다.

이 훈련이 끝나면 모든 훈련이 쉽게 느껴진다나?

조교가 그리 말하는 걸 얼핏 들었다.



* * *



유연학은 처음부터 시작된 근육통 때문에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그는 따로 준비해 온 물건을 꺼냈다.

포션이 첨가된 회복 연고.

가격은 50만 원밖에 나가지 않는 저가품이다.

물론 300만 원짜리 최하급 포션을 쌓아두고 파는 내 기준에서 그렇다는 거지, 서민에겐 역시나 귀한 물건이었다.

유연학은 연고를 아주 조금 덜어서 아픈 곳에 조심스럽게 발랐다.

누군가 그걸 알아봤다.

“와아! 그거 포션 들어간 신상품 아니에요?”

그 소리를 들은 11번과 12번이 부탁을 했다.

“연학이 형, 저희 좀 빌려줘요!”

유연학은 웃으며 연고를 건넸고, 그걸 받은 11번과 12번은 남의 물건이라고 왕창 짜서 떡칠을 했다.

유연학은 아까운지 입맛을 다셨다.

회복 연고는 1분대 2분대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써보길 원했다.

근육통으로 시달리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유연학은 거절하지 않았다.

연고는 훈련병 사이를 한 바퀴 돌면서 몰상식한 녀석들이 마구 써댄 탓에 금세 바닥이 나서 유연학의 손에 돌아왔다.

씁쓸한 얼굴로 빈 연고 껍데기를 돌려받은 유연학.

인우는 그 모습이 옆에서 보기에 조금 답답했다.

‘아까우면 거절을 할 것이지…….’

유연학은 조금 남은 연고를 인우에게 내밀며 물었다.

“얼마 없지만 써볼래요?”

“…….”

인우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답답한 형님이다.



포션이 섞인 연고의 효과는 발군이었다.

연고를 바른 녀석들은 근육의 격통을 이겨내고 좀 더 수월하게 무박 3일의 역경을 버틸 수 있었다.

연고의 주인인 유연학은 충분한 양을 바르지 못했는지, 움직일 때마다 격통에 신음했다.



2일째 밤이 되자 열외자가 속출했다.

“허리가…….”

“감기가…….”

“발목이…….”

“머리가…….”

많은 훈련병이 의무실로 실려 갔다.

낙오자라는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됐지만, 녀석들은 현명한 편이었다.

옆에 죽기 일보 직전인 유연학이 있었다.

그는 힘들어도 힘들다 하지 않았고, 아파도 신음을 삼켰다.

언제나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겨우겨우 버티며 분대의 발목을 잡았다.

분대원들은 차라리 그가 열외 했으면 했다.

하지만 나이 어린 동기에게 무시당하고 놀림을 당하면서도 그는 끝까지 자기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미련하네…….’

고작 3일간의 무박 훈련.

아무런 의미도 없는 훈련에 너무도 열정적이다.

‘간식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개인전이었다면 모를까 분대 대항전에서는 그놈의 101번의 분대가 가산점을 싹쓸이하는 바람에 인우의 분대는 추가 간식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 * *



무박 3일째.

조교들은 이번 기수에서 열외가 제일 적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내 귀로 여러 그룹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13번 훈련병이 아직도 있네?”

“그놈 때문에 열외도 못하겠어.”

“저질 체력인 13번도 하는데…….”



다들 13번보다 먼저 열외 하는 게 쪽팔린 것이다.

모두가 13번의 열외를 기대했지만, 우리 분대는 1명의 열외자도 없이 무사히 무박 3일의 훈련을 끝냈고, 하루 동안 푹 잘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당연히 등수가 낮은 분대의 훈련병들은 이리저리 불려가 짐을 나르고 배식 등을 해야만 했다.

2등인 우린 세상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집에서는 잠자는 게 지루해 뜬눈으로 밤을 보내던 나였지만, 이곳에서의 잠은 특별히 달콤했고, 편했다.

‘나… 군대 체질인가?’

잠을 자며 101번에 대해 생각했다.

분대별 평가에서 모두를 압도하며 가산점을 독식한 녀석.

까무잡잡한 피부와 팔뚝 문신에 까칠한 외모.

녀석은 뛰어난 구석이 없다.

체력측정도 2급 정도.

녀석의 분대원도 특출하지 않다.

하지만… 언제나 녀석의 분대가 1등을 한다.

그건 녀석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어날 훈련에 대해.

점수를 얻기 위해 해야 할 것을 미리 알고 분대원에게 준비를 시킨 것이리라.

‘어떻게 아는 거지?’



모든 훈련을 미리 아는 녀석을 우리는 회귀자라 불렀다.



훈련병의 휴식은 조교의 휴식이기도 했다.

조교와 친해질 시간이 있었다.

나는 101번 훈련병에 관해 물었다.



“뭐? 그놈이 회귀자라 불린다고?”

“예…….”

“크크크.”

1, 2분대 담당인 병장 조교는 폭소를 터트렸다.

“두 번 한다는 것에 있어서는 회귀자가 맞긴 맞네.”

“…….”

“걔 열라 불쌍한 놈이야.”

조교가 101번에 대해 말해주었다.

101번은 전전 기수의 훈련병이었다.

4주차 훈련을 마칠 때쯤 담배를 소지한 것이 걸려 다시 훈련을 받게 됐다고 했다.

즉, 두 번이나 같은 훈련을 받는 것이니 훈련에 대해 꿰뚫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전사도 각성자도 있는 세상이다.

거기다 나는 초능력자이기까지 하다.

회귀자도 있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했는데…….

진실은 너무도 식상하고 평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