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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괴물 훈련병





2분간의 팔굽혀펴기 측정이 끝나갔다.

40명 중 72개인 특급 훈련병이 5명.

남주한 같은 압도적인 존재는 없었다.

2분간 150개!

중대장과 조교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훈련병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모두의 측정은 끝났지만, 14번 훈련병 인우의 측정은 끝나지 않았다.

훈련병들은 숨을 죽이고 14번 훈련병의 측정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조교의 분위기는 삭막하기 그지없었고, 인우를 계속 다그쳤다.

“다시 합니다! 힘 빼고 있는 거 다 보입니다!”

조교는 귀신같이 인우가 여력을 남기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는 계속 닦달했다.

중대장과 축구선수 출신 조교는 무슨 상황인지 몰랐지만, 고참 병장이 하는 일이니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 분위기를 잡아줬다.



인우는 부득이하게 조금씩 속도를 올릴 수밖에 없었고, 5분이 넘어가자 훈련병들은 경악한 얼굴로 인우를 바라봤다.

“뭐야! 저게 인간이야!”

‘어떻게 쉴 틈 없이 5분간… 저게 가능해?’

남주한도 예외는 아니었다.

겉으로는 전혀 지친 기색이 없던 남주한이었지만, 팔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저놈, 뭐야!’

선수 생활을 해온 남주한도 14번의 체력에 경악했다.



“다시! 다시! 다시!”

조교는 계속해서 재측정을 요구했고, 그럴 때마다 인우는 조금씩 속도를 높였다.

측정 시작으로부터 5분 정도 지나자 남주한의 속도를 넘어섰다.

초당 1회를 웃도는 고속 팔굽혀펴기.

‘650개는 넘게 했어!’

중대장과 조교가 엄숙한 표정으로 측정을 하고 있어서 훈련병들은 조심스럽게 소곤거렸다.



“저놈, 운동선수 같은데?”

“무슨 운동선수? 근육이 없는데?”

“체조? 권투? 그런 쪽 아니겠어?”

남주한도 굳은 표정으로 나름의 추측을 했다.

‘체조하던 놈치곤… 근육이 없어. 권투 선수의 몸도 아니야. 격투기는 아닐 거고. 춤? 무용 쪽인가?’



“다시! 다시!”

10분 정도 지나자 누적으로 1,000개를 넘어섰다.

조교는 끝내 인우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시!”

“그만하지.”

살집 두툼한 중대장이 딱딱한 표정으로 나섰다.

그제야 조교는 인우의 측정을 끝내줬다.

“14번 훈련병, 특급이다.”

“이상 1생활관 팔굽혀펴기 측정을 마친다!”

담담한 표정으로 조교와 중대장은 장내를 정리했다.

밖에서는 다른 조교가 대기하고 있었다.

‘오래 걸리네……. 무슨 일 있나?’

대기하던 조교는 체육관에서 나온 훈련병들을 다음 시험장으로 데려갔다.



훈련병들이 떠난 체육관에는 중대장과 두 조교만이 남았다.

고요한 침묵이 감도는 체육관에서 셋은 입을 열지 않았다.

너무 놀라 시간이 필요한 그들이었다.

침묵 속에 그들은 생각했다.

‘괴물이다!’

‘뭐야, 저 괴물은!’

‘말도 안 돼.’

엄숙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놀람을 감추고는 있었지만, 육체파 중대장과 조교들은 군 생활 처음으로… 훈련병에게 쫄았다.



인우는 직감했다.

괴팍한 조교한테 찍혔다.

‘시작부터 꼬이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팔굽혀펴기가 특급이었으니, 이것도 특급을 받아야 빠졌다는 소리를 안 듣겠지.’

20번 훈련병과 비슷하게 하면 방금 같이 찍히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고, 남주한과 적당히 속도를 맞췄다.



“헉… 헉… 헉…….”

남주한은 윗몸 일으키기 측정을 끝내고 숨을 몰아쉬었다.

‘14번 녀석, 지치지도 않다니.’

놀랍지만, 그래도 뿌듯했다.

‘윗몸은 내가 이겼다!’

남주한은 뜨거운 눈빛으로 인우를 노려봤다.

윗몸일으키기 측정에서는 태클 거는 조교가 없었다.



20번 훈련병 남주한 150개.

14번 훈련병 차인우 137개.



조교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20번과 14번 훈련병을 번갈아 봤다.

‘괜찮은 신병이 둘이나 있네.’

‘둘 중 한 놈은 우리 분대로 데려와야 해!’

조교들은 20번과 14번을 주목하며 자기 분대로 포섭하기 위해 생각을 다지고 있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연민을 느끼게 하는 훈련병도 있었다.

7개까지 몸을 일으키고는 더 이상 몸을 일으키지 못한 역대 최악의 저질 체력, 유연학.

그는 훈련병들의 웃음거리가 됐다.

웃음거리가 된 유연학은 동기들이 아무리 놀려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웃어넘길 뿐.

그의 마른 몸과 너그러운 모습은 마치… 인도의 정신적 지주 ‘간디’를 연상시켰다.

윗몸일으키기에서 60개를 넘게 한 합격자는 적었다.

인우는 내심 실망했다.

‘이거 다들 생각 이상으로 허약한데?’



오후에는 달리기 측정을 했다.

남주한은 평소에도 매일 산속을 6㎞씩 달렸다.

평지에서 치루는 3㎞ 시험.

달리기만큼은 자신 있었다.

‘승부다!’

선수의 자존심에 붙은 불똥이 인우에게 튀었다.



* * *



훈련병들이 운동장 출발선에 모였다.

20번 훈련병이 인우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 밖에서 뭐 했었어?”

“대학생이었습니다.”

‘체대였군.’

“전공은?”

“준비!”

“……계 전공입니다.

20번 훈련병은 조교의 외침에 앞부분을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지장 없었다.

‘기계 체조? 그 근육으로? 그럼 운동을 오래 쉬었다는 건데…….’

지장 없이 오해하고 있었다.

“차인우, 나랑 내기하자.”

“가진 것도 없는데 무슨 내기입니까?”

“가진 건 있다…….”

“…….”



돈으로도 구할 수 없는 귀중한 게 걸렸다.

‘각자의 할당량이라…….’

인우는 눈에 띄는 행동은 최대한 삼가고 싶었지만, 전리품이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하죠. 후회하지 마세요!”

“너야말로!”

남주한은 승리를 확신했다.

‘달리기는 팔굽혀펴기와 달라! 상대가 육상선수가 아닌 이상, 3㎞ 평지 달리기에서는 절대 지지 않는다!’



구릿빛 피부의 왜소한 조교가 출발신호와 함께 마석이 섞인 공포탄을 쏘았다.

“시작!”

빵!

초반부터 남주한이 치고 나갔다.

10명 정도가 남주한 뒤에 따라붙었다.

인우는 조금 거리를 두고 쫓았다.

구릿빛 피부의 왜소한 몸을 한 조교가 눈을 빛냈다.

‘처음부터 오버 페이스? 선두 녀석은 몸이 좀 되네. 따라가는 놈들은 완주도 힘들겠어.’



조교의 예상대로 절반 정도 지나자 남주한의 뒤를 따라붙던 녀석들은 뒤처지기 시작했다.

남주한은 살짝 뒤를 돌아봤다.

‘14번은 그렇다 치고… 27번 녀석은 의왼데?’

뒤에 따라붙는 작은 키와 왜소한 몸.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에서 특급을 받은 훈련병이었다.

자칭 22살 대기업 사원!

‘아쉽지만, 먼저 간다!’

남주한은 세 바퀴가 남은 시점에서 속도를 올렸다.

당연히 따라붙던 녀석들과 순식간에 거리가 벌어지는 듯했다.



조교는 그들의 승부를 흥미진진한 시선으로 지켜봤다.

‘3㎞를 단거리 달리듯 하네. 20번이야 우리 사이에서도 유명한 녀석이지만… 저 따라붙는 14번은 뭐지? 지친 기색이 전혀 없는데?’



* * *



승리에 확신이 들었을 때, 남주한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흐흠, 얼마나 거리가 벌어졌는지 한 번 볼까?’

응?

살짝 돌아봤는데, 14번이 바짝 따라붙고 있었다.

‘이럴 수가!’

남주한은 더욱 스피드를 올렸다.

하지만, 14번을 떨쳐내는 건 무리였다.

‘이러다 내가 먼저 지치겠어!’

바짝 따라붙는 녀석 때문에 살짝 오버 페이스한 감이 있었다.

‘체력을 비축해서 마지막 반 바퀴에 승부를 건다!’

속도를 조금 떨어뜨리자 14번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가속을 넣어 남주한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

조금씩 거리가 벌어졌다.

‘어어… 이게 아닌데…….’

거리가 더 벌어지면 마지막 승부조차 없었다.

남주한은 최대한 따라붙으려 악을 써가며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14번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안 돼! 이번 내기는 질 수 없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내기를 하지 않는 건데.

도박에서 제일 위험한 것은 확신이라 했던가?

확신한 나머지 너무 큰 걸 걸었다.



남주한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속도로 달리다 다리가 꼬여 넘어지고 말았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낙법으로 다친 곳은 없었지만, 크게 몇 바퀴를 구르며 낭비한 시간으로 14번과의 거리는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벌어졌다.

“…….”



14번 9분 20초!

20번 9분 35초!

27번 11분 12초!

33번 12분 25초!

“이상, 특급은 4명이다.”



“20번 훈련병, 다친 곳은 없습니까?”

“헉헉… 예! 괜찮습니다!”

조교의 물음에 허탈감 가득한 표정이던 남주한은 정신을 수습하고 대답했다.

“조심합니다!”

“예!”



* * *



다른 훈련병들의 달리기 측정이 끝나려면 시간이 한참이나 남아 있어서, 측정을 마친 훈련병들은 가까운 그늘에서 쉴 수 있었다.

인우는 남주한에게 다가갔다.

‘흐흠… 충격이 큰가 보네. 뭐 운동선수가 일반인한테 졌으니까. 조금 미안한데…….’

“괜찮으십니까?”

“헉헉… 헉… 아니…….”

“다친 곳은 없어 보이네요.”

“그 정도로 안 다쳐…….”

자존심을 세우는 남주한.

인우는 위로를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내기는 내기입니다.”

확답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 저녁에 줄게.”

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었다. 분대장 훈련병은 몰상식하지 않았다.

‘안면몰수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너 부전공으로 육상도 했냐?”

‘육상? 뭔 소리야?’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았다.

“저 회계과인데요.”

‘회계? 그 숫자 보는?’

콰광!

그건 남주한의 심장에서 터진 수류탄의 소리였다.

그의 구멍 난 자존심을 너덜너덜하게 만들 정도로 위력적인 한 방.

인우에게 자비란 없었다.

아니, 눈치가 없었다.

“…….”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네요. 저 회계전공 대학생이에요.”

콰콰쾅! 뚜뚜뚜뚜!

이미 너덜너덜해진 남주한의 자존심은 무수한 폭격과 총격에 확인사살 당했다.

“…….”

“괜찮으세요?”

“…….”

“괜찮으세요? 어디 아프신 거 아니에요?”

“…….”

남주한의 정신은 회복을 위해 잠시 안드로메다로 여행을 떠났다.



* * *



고대하던 시간이 왔다.

내기에 건 물건을 지급받았다.

남주한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할당 분을 나에게 건넸다.

이런 걸로 기뻐하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보충대를 거쳐 신병교육대로 흘러들어오며 자유를 박탈당한 8일이란 시간 동안 나는 변했다.



꿀꺽.

인우는 손안에 쥔 검은색으로 토핑된 둥그런 물체를 바라보았다.

굶주려야 비로소 알게 되는 가치.

‘던전에서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나는 그것을 음미하듯 조금씩 먹었다.

“냠냠… 우물우물… 쩝쩝.”

제한된 생활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달콤한 맛.

‘초코파이… 맛있다.’



* * *



남주한은 초코파이를 건네곤 힘없이 돌아섰다.

“제 꺼 절반 드세요. 전 단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요.”

13번 훈련병 유연학이 자신의 초코파이를 쪼개 절반을 남주한에게 내밀었다.

“어…….”

얇고 하얀 기생오라비 같은 손으로 건네진 초코파이 반쪽.

남주한은 분대의 발목을 잡을 게 확실한 13번을 싫어했다.

아니, 하찮게 여겼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전우라고 반쪽씩이나 건네다니.

유연학이 건네준 반쪽의 초코파이는 유난히도 달았고, 따뜻했다.



초코파이 두 개를 삼킨 인우는 우정이 싹트는 두 사람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뜨겁게 서로를 응시하는 두 사람은… 마치…….

‘게이?’

뭐, 게이든 로리콘이든 상관없다.

‘이쪽은 초능력자인데, 그럴 수도 있지.’

반쪽의 초코파이를 나눠 먹으며 행복해하는 둘을 보고 있노라니, 좋은 일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교 생활관.

“전남고 병장님, 후임은 결정했습니까?”

유도선수 출신 조교, 전남고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변함없어. 20번 훈련병으로 한다.”

“14번도 꽤 쓸 만하던데, 아깝습니다.”

‘뭐? 14번이 쓸 만해? 눈은 장식이냐!’

14번은 20번과는 격이 다르다.

전남고는 괴물을 후임으로 받아서 가르칠 자신이 없었다.

“넌 사람 잡아먹는 호랑이랑 귀여운 강아지랑 둘 중에 뭐 키울래?”

“당연히 강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럼 다른 사람이 호랑이 데려가 키운다면 아깝냐?”

“……조금 걱정되죠.”

“그런 거야.”

“…….”

알 수 없는 전남고 병장의 말에 생활관의 조교들은 욕을 삼켰다.

‘말년이 되니 이젠 뭔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겠네.’

‘전에 말년 병장님도 헛소리를 많이 하셨지.’

‘조금만 참자.’

말년에 대한 예우로서, 조교들은 고개를 끄덕여 주며 동조하는 시늉을 해줬다.

전남고 병장도 눈치는 있다.

분대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였다.

‘에휴… 곧 알 거다.’

이곳은 신병교육대다.

24시간 전우와 함께 여러 과제를 수행해야 했고, 곳곳에서 조교의 눈이 감시하고 있다.

아무리 발톱을 숨겨도…….

‘드러나게 되어 있지.’

전남고는 알고 있었다.

이번 기수에 괴물이 섞여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