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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일상의 종착점





아버지와 나는 식사를 마치고 서재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은 노트북 두 대와 여러 가지 자료들이 즐비해 있었다.

던전 관련 자료들이 많았다.

“던전은 어떻더냐?”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는데, 던전이라 단정하셨다.

“동별급이라 어렵지 않았어요.”

나 또한 부인할 이유가 없었다.

“생활비와 호기심쯤 되겠지. 너를 탓할 생각은 없다.”

너무도 정확하게 꿰뚫어 보신 아버지가 놀라웠다.

아버지는 조금 엄숙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래서… 네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은 했고?”

아버지는 항상 나의 한계를 궁금해 하셨다.

하지만 그동안은 능력을 사용할 일이 없어 제대로 된 기준이 없었다.

이번 던전 공략은 나를 알기 위한 모험이기도 했다.

“흐흠… 헌터로 따지면 레벨 49의 전사에 근접한 전투력이라 할 수 있겠네요.”

나의 능력은 물질 간섭.

신체를 간섭한 세포활성.

이것은 신체 능력을 몇 배로 끌어 올려주고 고속 회복을 가능케 했다.

전력을 개방한 난 인체의 한계에 도달해 있었고, 그 압도적인 물리력은 어떤 헌터에게도 꿀릴 것 같지 않았다.

“레벨 49라… 현재 최상위 헌터의 레벨은 알고 있느냐?”

“미국에 제임스가 54라고 알고 있어요.”

“맞다. 50렙대 전사들은 마나를 뿜어낸다지.”

그렇다. 50렙에 진입한 전사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다.

그들은 검기를 다루며, 헌터들의 정상이고, 은별급 던전 토벌의 주축인 자들이었다.

“50레벨이라 해도 물리 공격이 통하는 상대에게는 질 것 같지 않아요.”

아버지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만은 좋지 않다. 언제나 조심하거라. 네가 세상을 이겨낼 힘을 갖춘다 해도, 역사가 쌓아온 힘 앞에서는 아주 미약한 것이야.”

“…….”

질리도록 들은 말이라 대답해줄 기운도 없었다.

“오늘은 여기서 자거라. 이불을 펴주마.”

아버지는 나가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믿었기에… 걱정은 안 했다.”

“아, 네…….”

나는 아버지가 나간 후에도 한참동안 방문을 바라보았다.

‘믿었기에… 걱정은 안 했다.’

기운이 안정돼 있는데도 가슴이 간질거렸다.



* * *



잠자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나는 거실에 나와 함께 얘기를 나눴다.

인서가 학교에서 유아독존의 성적을 내고 있다는 얘기.

“중학교에서 나보다 강한 애는 없어. 고등부도 없을걸!”

“…….”

중1인데 벌써 학교를 제패했다.

‘대단하네…….’



엄마가 인서의 학교 학부모회에서 칭송받는 얘기.

“다른 엄마들이 자식 교육을 어떻게 하는지 자꾸 물어보지 뭐니. 무엇보다 믿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해줬지.”

“…….”



아버지의 진급과 함께 신상품 때문에 힘들다는 얘기.

“이번 신상이 고블린 독을 정제한 마취제인데, 대기업들이 던전 부산물을 독식하는 경향이 심해서…….”

‘고블린…….’

흑묘와 백구에게 다른 던전을 찾아보라고 해야겠다.



밤이 깊어 오자 우리는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여동생 인서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표정으로 계속 뒤를 따라왔다.

“할 말 있어?”

“오늘만, 특별히! 내방… 빌려줄게.”

강한 어조로 시작한 인서의 말은 끝을 맺어가며 개미 기어가듯 약해졌다.

이불 깔린 바닥에서 자는 것이 불편할까봐 방을 빌려주겠다는 인서.

“괜찮은데…….”

“아냐! 침대에서 자! 내가 여기서 잘 테니까.”

“아니…….”

인서가 나를 억지로 잡아끌었다.

이건!

……놀라운 힘이다.

나의 치유 능력으로 인해 월등한 신체 능력을 갖춘 인서는 그동안 전사 수련으로 마나를 축적하며 더욱 강해져 있었다.

‘이건… 버티면 안 된다!’

속으로는 굉장히 놀랐지만,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인서의 방으로 끌려갔다.

“오늘만 특별히! 빌려주는 거야!”

“…….”

화내면서 배려라니, 정말 무슨 생각인지…….

바란 적 없는 서비스에 나는 얼떨떨했다.

인서가 베개를 챙겨 가며 문을 닫아 줬다.

중학생 인서의 방은 인형이 가득했고, 핑크로 물든 공간이었다.

커튼, 이불, 침대, 책상, 벽지마저 핑크다.

여기에 오래 있다가는…….

‘없는 정신병도 생길 것 같아!’

여동생의 복수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배려였다.



이른 아침에 인서는 학교에 가고, 아버지도 출근했다.

나도 집을 나서며 배웅해 주는 엄마에게 봉투를 건넸다.

고기를 사고 남은 990만 원이 들어있었다.

엄마는 복잡한 표정으로 봉투를 받았다.

봉투에 대해 별말은 없었다.

“바쁘네…….”

“응, 벌려둔 일이 많아서.”

엄마는 나를 푸근하게 안아 주었다.

“아들 파이팅!”

언제나 웃으며 응원해 주는 엄마.

“엄마도.”



나는 집을 나섰다.

애써 밝은 표정으로 배웅해 준 엄마는 내가 뒤돌아서자 자신의 떨리는 손을 꾹 잡으셨다.

알고 싶지 않은 것마저 알게 되는 예리한 감각이 이럴 때는 조금 원망스럽다.



* * *



나는 낮에는 학교, 밤에는 코볼트 던전에서 아이템을 정리하고 새벽에 잡화점에 들러 아이템을 팔았다.

주말에는 집에 들러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학교에서 난 개학 초부터 몸이 아파 장기 결석한 부잣집 도련님이 돼 있었다.

탁월한 외모로 처음에는 인기를 끌었지만, 항상 차갑고 성의 없게 친구들을 대하다 보니 외톨이가 됐다.

애초에 사람들의 변심은 너무도 빨랐다.

일일이 맞춰주며 녹아드는 것은 어려운 일.

차라리 공기 같은 존재로 허공에 녹아드는 걸 택했다.

조용히 보내는 학교생활도 나쁘지 않았다.



던전에 대해서도 철저히 알아봤다.

동별급 던전에는 완전한 물리 면역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액체 몬스터 슬라임, 버섯 몬스터 머쉬룸, 유령 몬스터 고스트.

이들이 대표적인 물리 면역 몬스터지만, 핵을 파괴하거나 일정 강도를 넘어선 타격을 받으면 죽는다.

완전한 물리 면역 몬스터가 없는 이상 내가 토벌하지 못하는 동별급 던전은 없는 셈이었다.



던전의 몬스터가 일정 수 이상일 경우, 몬스터의 증가 속도는 불규칙하다.

몬스터 수가 일정 이하로 줄면 매일 일정 수의 몬스터가 생성된다.

처음 생성될 때는 10렙이던 몬스터는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해 19렙이 된다. 거기서 더욱 시간이 지나면 20렙의 정예 몬스터로 진화한다.

정예 몬스터가 늘어나면 그중 한 놈이 보스 몹이 된다.

정예 몹 탄생 주기를 1개월, 보스 몹 탄생 주기를 3개월로 본다.



정부와 기업은 보스 몹과 정예 몹을 좋아하지 않는다.

위험도가 오른 던전은 마석 생산량에 차질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반대로 보스 몹을 엄청 좋아했다.

던전 보스가 있으면 좋은 물건을 많이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거기다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녀석들은 일망타진하기가 좋다.

그만큼 위험한 것도 사실이지만, 얻는 것도 많았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좋은 말이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이라 발견되지 않은 던전은 흑묘와 백구가 찾아줬다.



방학 때에는 본격적인 던전 탐험을 했다.

던전 토벌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을 알 수도 없는 갈색의 식상한 통로와 공터에서 이끼를 먹으며 하는 아이템 정리 작업은 정말 지루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에, 정말 고양이 손을 빌렸다.



나는 언제나 흑묘와 백구를 데리고 다녔다.

던전에서 수시로 체력을 회복시키며 무한 사냥을 이어갔고, 여러 보스를 처치하며 축복을 듬뿍 받게 된 녀석들은 나날이 강해졌다.

고블린 던전을 찾아 아버지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발견한 여섯 던전 중 아쉽게도 고블린 던전은 찾지 못했다.

발견한 여섯 던전에서 마석 조각이 나오는 건 같았지만, 부산물의 종류는 조금씩 달랐다.



*코볼트 던전: 금속, 귀금속, 가죽, 장신구

*꿀벌 던전: 벌꿀, 회복포션, 풍(風)속성석

*나무인형 던전: 마력 장신구, 목(木)속성석, 각종 스크롤(1회용 마법 종이)

*스켈레톤 던전: 본 웨폰, 본 아머, 각종 스크롤, 암(暗)속성석

*좀비 던전: 방부제, 해독포션, 혈(血)속성석

*큰 쥐 던전: 해독포션, 가죽, 암기



코볼트, 나무인형, 꿀벌 등은 대표적으로 돈이 되는 몬스터들이다.

스켈레톤, 좀비, 큰 쥐 등은 돈이 안 되는 놈들이었다.

방학에 던전을 청소하고 던전 안에 창고를 만들어 아이템을 쌓았다.

괜찮은 중급 템은 내가 쓰거나 가족에게 선물했고, 매일 새벽 조금씩 아이템을 판매하며 돈을 벌었다.

여섯 개의 던전을 방학마다 토벌하며 독식한 결과 고등학생인 나의 월수입은 평균 6억이 넘었다.

돈도 돈이지만 조금씩 필요한 아이템을 갖춰 가고, 백구와 흑묘가 성장하는 게 게임을 하는 것 같아 즐겁기도 했다.



* * *



“요즘 학부모 모임이 많아져서 카드 값이 많이 나왔어요.”

“그건 써야지. 학부모 모임이 얼마나 중요한데. 적금을 너무 많이 들었어. 하나 정도 깨면 여유로울 거야.”

“그거… 일 년만 더 넣으면 되는데.”



부모님이 돈 걱정을 하시는 것 같아, 돈을 찾았다.

너무 많은 금액은 불필요한 오해와 잔소리를 들을 수 있어, 조금만 가져다 드렸다.

‘부모님 자존심도 생각해 드려야 하니까.’

돈 가방 안을 확인하신 어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가방을 떨어뜨렸다.

쏟아지는 돈다발에 아버지도 호흡이 멈췄다.

인서는 토끼 눈이 되어 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버지가 심호흡을 하고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인서는 서재에 가 있거라.”

“…….”

인서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방으로 들어가 숨었다.

인서가 방에 들어가자 아버지는 화가 난 어조로 물었다.

“이 돈은 다 뭐냐? 목숨까지 걸고 돈을 버는 거냐?”

“흐음…….”

계산 착오다.

10억은 충분히 불필요한 오해와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액수였다.

“여보… 그만 해요. 저희가 부족해서… 그런 거예요…….”

훌쩍. 훌쩍.

‘어머니, 그건 도와주는 게 아닙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거예요!’

역시, 눈물을 글썽이며 말리는 어머니 덕에 아버지의 분노지수는 최대치를 찍었다.

“자식 피땀 묻은 돈! 받아야 할 정도로 부족하진 않아. 돈 가져올 것 없다.”

“죄송해요.”

나는 한동안 잔소리를 들으며 죄인이 돼야 했다.



두 분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을 때, 나는 집을 나섰다.

부모님은 심한 말을 많이 한 게 미안했는지 따뜻하게 배웅해 줬다.

여동생도 나를 배웅했다.

“그럼, 이건 가져가…….”

“커험, 괜찮다. 두고 가도 된다.”

근엄한 아버지는 돈 가방을 챙기셨다.

“돈이 부족하지 않으시…….”

“생각해보니 조금 부족한 것 같기도 하네.”

안정을 찾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거든다.

말과 달리 주는 것은 꼭 챙기시는 아버지.

좋으면서 싫은 척 해보는 어머니.

‘나… 잔소리는 왜 들은 거지?’

이래서 집에 뭘 가져오는 게 싫은 것이다.

‘받을 거면 그냥 받지, 꼭 한소리를 하고 받으셔.’



* * *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흐르고…….

연필 소리 가득한 긴장감 넘치는 수능 시험장에서 홀로 여유를 부리며 시험을 본 것이 엊그제 같다.

대학에서 과모임에 나가 술 파티로 선배들을 다져놓은 것도 추억이 됐다.



“의류대를 뒤집습니다. 실시!”

“실시!”

“확인 끝났으면 주워 담습니다. 실시!”

“실시!”

“빠진 게 없는지 다시 꺼내서 확인합니다. 실시!”

“실시!”

“챙겨 넣습니다. 실시!”

“실시!”

“한 번 더 확인합니다. 실시!”

“실시!”

“챙겨 넣습니다. 실시!”

“다시 뒤집습니다. 챙깁니다. 뒤집습니다. 챙깁니다.”

나는 20명이나 있는 길쭉한 생활관 구석에서 받은 물건을 확인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있었다.

‘시발! 안 빠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