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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대박 던전에서의 귀환





결과적으로 보스를 잡은 건 보험으로 만들어둔 도주용 함정이었다.

‘어이없네…….’

코볼트 보스가 죽자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보스 처치! 던전 클리어!]

[칭호 획득: 치프 코볼트 살해자]

[칭호 획득: 코볼트 학살자]

[마나 축복 진행]

[귀환 정상 작동]



몬스터가 죽으면 흩어지는 빛무리가 사방에서 생성돼 나와 백구의 몸을 휘감았고, 조금씩 흡수됐다.

‘이게 축복인가?’

“왕! 왕!(힘이 치솟습니다!)”

백구는 황홀감을 느끼며 눈을 감았고, 나는 상태 정보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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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정보]

이름: 차인우

레벨: 1 / 마나등급: 0

재능치: 0.3 / 마나: 0

근력 49 / 민첩 49 / 체력 100 / 지능 49



[친화력 미달!]

[축복 미작용!]



[획득 칭호]

<코볼트 학살자>

효과: 체력 +1%

획득 조건: 코볼트 1,000/1,000



<치프 코볼트 살해자>

효과: 체력 +1%

획득 조건: 치프 코볼트 1/1



[1개 칭호 등록 가능]

[등록 칭호 100% 효과 적용]

[미등록 칭호 10% 효과 적용] (중첩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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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상승, 칭호?

나에겐 의미가 없었고, 마나의 축복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뭐야! 이 상실감은…….’

빛무리로 휘감길 때 무언가 거대한 보상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치다니.

운영자 나오라고 해!

이건 가상현실 게임이 아니다. 엄연한 현실.

불만을 토로할 운영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런 소득도 없는 나에 비해 백구의 수치는 계속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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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 상태 정보]

이름: 백구 / 종족: 견족

레벨: 11→레벨: 19 / 내력등급: 1.1 → 1.9

재능: 1.6 → 1.6 / 풍속성 내력: 22 → 44



근력 12 → 13 / 민첩 15 → 17

체력 15 → 17 / 지능 5 → 5



[축복 완료]



[획득 칭호]

코볼트 학살자 1,000/1,000

치프 코볼트 살해자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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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한 것 없이 거저 얻은 칭호.

거기다 8렙이나 오르고, 내력은 2배로 증가 했다.

‘뭐야? 보스 몹을 단독으로 처치한 나한테는 쥐꼬리만 한 보상도 없고.’

하지만 누굴 탓하랴. 마나 불감증이라 불리는 나의 체질을 탓할 수밖에.

괜히 높은 재능치의 사람들을 헌터로 육성하는 것이 아니다.

재능치가 높으면 축복 성장 폭이 크고, 반대로 재능치가 낮으면 성장 폭이 작다.

그런데 나는 성장 폭이 작은 정도가 아니라 성장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게 남들과 다른 점이었다.



상태창을 없애고, 소란스러운 후방의 코볼트부터 정리했다.

던전 보스가 죽자 일반 코볼트와 정예 코볼트의 눈빛이 침침해졌다.

방금 배운 벽 차기 도약은 언제 까먹었는지, 4번째 구덩이에 막혀 있던 정예 코볼트들이 도약을 시도하며 죽어갔다.

2번째 구덩이에 막혀 전진을 못하던 일반 코볼트들도 우리를 향해 맹렬히 점프해 한동안 멋진 불꽃놀이를 보여줬다.

[보스가 죽으니… 애들이 바보가 되는군요.]

“머리에 ‘적이다, 돌격!’밖에 없어 보이는데?”

그렇다.

보스가 있고 없고는 몬스터의 지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녀석들은 바보가 되어 자살행진을 계속했다.



그렇게 2번째 함정에 아이템이 쌓여 기능을 잃어가고 있을 때, 정예 코볼트 1천이 몸을 던져 산화했고, 나와 백구는 구덩이의 아이템을 회수해 말끔히 비워야만 했다.

우린 뒤로 물러나 일반 코볼트가 함정으로 뛰어드는 걸 한동안 감상했다.



* * *



통로를 가득 메운 녀석들은 모두 죽었다.

4개의 함정에 꼬챙이 높이까지 아이템이 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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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코볼트 230]

[단독 처치. 코볼트 20,000 달성]

[단독 처치. 정예 코볼트 2,000 달성]



업적: 코볼트 대학살

아공간 1칸 획득

[물품 1보관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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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오, 아공간이라니!

지금까지 던전에서 아공간을 얻었다는 헌터는 없었다.

‘보스 처치 축복이 끝이 아니었어!’



누가 혼자 던전에 들어와 2만 마리의 몬스터를 잡을 생각을 할까? 아니, 이렇게 몬스터가 쌓여있는 던전이 있기나 한 걸까?

누구도 가보지 않은 곳에 아무도 얻지 못했던 보상이 있었고, 나는 그중 하나를 얻었다.

그리고 문득 드는 생각.

‘코볼트 대학살 업적으로 아공간 1칸을 얻었어. 그럼 다른 던전에도 같은 보상이 준비돼 있다는 말인데…….’

꿀꺽!

‘이 짓을 반복하면…….’

매력적인 아공간 창고를 얻을 수 있을지도.



그렇게 나의 첫 던전 청소는,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구덩이 4개에서 형형색색의 빛깔을 뽐내는 아이템들.

“이걸 언제 다 치우지?”

[대장… 저 먼저 집에 가면 안 되나요?]

“너도 저기 떨어져 볼래?”

[함께 하겠습니다!]

괘씸죄는 죽음이다.



아이템이 차곡차곡 분류돼 쌓여갔다.

보스 몹을 처치하고 나온 아이템은 따로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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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정보]

명칭: 파괴의 곡괭이

등급: 상급

<코볼트 일인자가 사용하는 전설의 곡괭이>

<파괴의 힘이 깃들어 있다.>



<획득조건: 던전 단독 클리어 시 낮은 확률로 획득>



<패시브 스킬 1>

금속 파괴 - 금속 장비를 파괴한다.



<액티브 스킬 1>

그라운드 웨이브 - 땅에 진동을 일으켜 적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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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만한 템을 얻었다.

등급도 상급. 현존하는 최고 등급이었다.

‘최고는 비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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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정보]

명칭: 체력의 부분갑주 세트

등급: 중급

분류: 철갑옷 / 머리, 손, 발, 상의, 하의

<착용하면 신체에 맞게 변형된다.>

<체력 +5%> (각 부위 1%)

<세트 효과 +2%>



<획득조건: 코볼트 보스 처치 시 낮은 확률로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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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기도 하고 방어력도 그리 뛰어나 보이지 않았다.

신체에 맞게 변형되는 프리사이즈는 매력적이었지만, 체력 상승효과가 안타깝다.

예상가 5천만 원.

‘이건 여동생에게 선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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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정보]

명칭: 민첩의 장신구 세트

등급: 중급

분류: 장신구 / 반지, 팔찌, 목걸이, 귀걸이

<민첩 +4%> (각 부위 1%)

<세트 효과 +2%>



<획득조건: 코볼트 보스 처치 시 낮은 확률로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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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장신구의 허접한 똥색과 달리 은빛으로 반짝이는 장신구는 품격이 있었다.

착용하자 몸이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속도에 속도를 더한 감각.

‘이건 나를 위한 템이야!’

장신구는 값이 나간다.

예상가 5억.

팔 생각은 없었고, 금속 상자를 만들어 고이 보관했다.



낮은 확률로 획득 가능하다는 아이템을 무더기로 획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오랜 시간 방치된 던전은 몬스터의 질과 수뿐만 아니라 드랍율 또한 증가한다.

그렇게 드랍율 만땅인 곳에서 사냥을 했으니, 낮은 확률이 절대 낮지 않았다.



시간을 알 수 없는 공간에서 밤낮 없는 노가다로 아이템 분류를 끝냈다.



마석 1개 - 예상 판매액 50만 원

상급 마석 조각 2천 개 - 예상 판매액 1억(개당 5만)

마석 조각 2만 개 - 예상 판매액 1억(개당 5천 원)



하급 체력의 장신구 10세트

남은 목걸이 8개

남은 팔찌 12개

- 예상 판매가 7억



금괴 1개 / 은괴 200개

동괴 2,000개 / 철괴 4,000개

납괴 2,000개 / 가죽 2,000장



2만 마리의 코볼트, 그리고 정예 코볼트 2천을 추락시켜 얻은 아이템이었다.

손쉽게 처분 가능한 마석 조각 일부와 장신구 한 세트, 그리고 100개 묶음인 가죽 뭉치를 양손에 하나씩 들었다.

“귀환!”



[귀환 요청 승인]



공간이 일렁이며 블랙홀 같은 출구가 나타났다.

그것은 던전에 출입할 때와 같은 동색의 빛을 띠고 있었다.

출구를 향해 가자 백구가 부러운 얼굴로 바라본다.

“단련 잘하고 있어라!”

그동안 레벨이 또 올라 21렙이 된 백구는 밖에 풀어두기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인서도 레벨 29로 전사 학교 최강이라 불리는데 말이지.’



중1에 괴물이 된 인서, 그리고 괴물 강아지 백구.

나의 치유능력은 괴물을 찍어 낼 수 있다.

[열심히 훈련도 하고! 정리도 하고 있겠습니다.]

왜 이리 믿음이 가지 않을까…….

“믿는다.”

동색 공간에 발을 들였다.

번쩍!



* * *



나는 야산 어딘지 모를 중턱에 모습을 드러냈다.

따뜻한 봄 날씨에 벌레 소리가 우렁찬 오전이었다.

배낭 가득한 마석 조각과 양손에는 가죽 뭉치.

이걸 지고 집으로 갈 수는 없다.

일단 바위 구멍을 찾아 던전 입구가 있는 곳으로 갔다.

다행히 바위 구멍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돌아왔냐!]

토굴 밖에서 흑묘가 따사로운 햇볕을 쬐고 있었다.

“며칠이나 지났어?”

[열아홉 밤은 지났다. 간 곳은 어떠냐?]

“몬스터랑 아이템이지 뭐.”

[몬스터? 아이템? 그거 먹는 거냐?]

“…….”

가끔 흑묘가 고양이라는 걸 까먹을 때가 있다.

“아니, 다음에 같이 가자고.”

[기다리겠다.]

“흐흐…….”

일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다.



구멍으로 들어가 필요한 것을 챙겼다.

던전 입구 앞에 잘 모셔둔 여벌의 의복.

스마트폰, 지갑, 통장, 카드.

혹시나 필요할 경우를 생각해 챙겨둔 주민등록등본.

스마트폰을 켜서 확인해 봤다.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가득 쌓여있었고 여동생이 보내온 문자가 조금 많았지만, 근 5일간은 나를 찾는 문자와 전화는 없었다.



생활비 좀 벌어보려고 무작정 들어간 던전에서 19일이나 지났고, 걱정하고 있을 가족에게 연락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먼저 들려야 할 곳이 있었다.

‘물건부터 처분하자. 19일이나 실종 상태인데, 몇 시간 사이에 별일 있겠어?’



* * *



오전 10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헌터와 관련된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찬 거리를 지나쳤다.

유리벽으로 세워진 멋들어진 8층 건물이 보였다.

‘생각보다 크네.’

잡화점! 헌터 백화점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8층 건물의 자동문을 통과해 들어서자 접수대가 길게 늘어서 있었고, 곳곳에는 깔끔한 유니폼을 입은 안내원들이 있었다.

흡사, 호텔 로비.

너무도 화려한 입구에 조금 쑥스럽다.



등에는 누더기 배낭, 평소에 즐겨 입는 청바지와 티셔츠, 양손에 든 가죽 뭉치.

보따리 장사꾼이 따로 없는 내 모습은… 이런 고풍스러운 로비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뭐야? 뭘 멀뚱히 서 있는 거야? 방해되는 거 안 보여?”

30대 아저씨, 거친 말투, 구릿빛 피부, 군인 같은 짧은 단발에 지저분한 철갑옷.

철갑옷?

주변을 돌아보니, 가죽 갑옷, 철제 연결갑옷, 사슬갑옷, 좀 멋진 전신 갑주를 입은 사람도 있다.

마법사 로브까지.

‘여기가 중세 판타지냐!’



현대적이면서도 고풍스러운 건 건물과 안내인들의 복장뿐이었다.

지저분한 나의 모습은 이곳과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