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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전신강화





던전 보스가 칠흑의 곡괭이를 횡으로 휘둘러왔다.

예상한대로의 공격.

나는 장창 벽을 등지고 있었다.

‘뒷걸음은 안 돼!’

뒷걸음으로 후방의 공간이 줄게 되면 후속타를 피하는 데 지장을 준다.

사선으로 몸을 빼며 거리를 벌려 녀석의 곡괭이를 피했다.

장창 벽을 측면에 두고, 후방 공간을 확보.

휘두른 직후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빈틈!’

“크르!(다 같은 코볼트로 봤나?)”

횡으로 휘두른 곡괭이가 즉시 높이 들리며 수직으로 찍어왔다.

나는 상상 이상으로 빠른 던전 보스의 대응에 당황하며 옆으로 몸을 굴려 찍어오는 곡괭이를 피했다.



쾅! 지지직!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엄청난 위력.

아니다. 이건 나의 삽 디그 스페이드와 같은 장비의 특수 능력!

‘땅을 가르는 특수 효과. 만만치 않아. 파고들 틈이 없어!’



녀석의 움직임은 조잡했지만, 빨랐다.

‘속도에서 밀릴 줄이야!’

무기를 휘두른 직후의 회수 속도가 너무 빨랐다.

나의 움직임을 따라오는 동체 시력마저.

‘레벨 30! 이 정도인가?’

보스 몬스터인 녀석은 못해도 40레벨 헌터에 상응하는 전투력을 갖추고 있었다.

‘속도, 체력, 감지력이 뛰어난 건 코볼트란 종족의 특성이야!’

그렇다면…….

‘녀석의 장점에 맞춰줄 필요는 없어. 힘으로 밀어붙인다.’

나는 직도를 고쳐 잡았다.

“간다!”

“크앙!(와라!)”



* * *



인우는 자신의 힘이 더해진 직도의 무거운 일격을 믿었다.

보스가 직도를 마주해 곡괭이를 휘둘러왔다.

서로가 희심의 미소를 지었다.

‘힘으로 막아보겠다는 것이냐?’

“크앙!(내 무기 효과가 땅에만 적용된다 생각했나?)”

서로의 무기가 부딪쳤다.

인우는 힘 싸움으로 밀어붙이려 했지만, 흑색의 곡괭이와 직도가 만나며 발생한 소리는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아니었다.



쨍그랑!



곡괭이를 마주한 인우의 도날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깨져나갔다.

부식하듯 깨져나간 파편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인우는 급히 몸을 틀어 저항 없이 들이닥치는 곡괭이를 피했다.

흩어지는 검날 너머에서 비웃음 가득한 보스가 입을 크게 벌리며 개머리를 들이밀었다.

‘평범한 강철검으로 내 파괴의 곡괭이를 막으려 한 대가, 목숨으로 받아가겠다.’

필살 물어뜯기!

“크앙!(너의 목을 받아가마!)”



[위험합니다!]

인우의 맞은편, 던전 보스의 뒤편에 있던 백구는 인우의 직도가 깨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경악했다.

이럴 수가! 패배다!

대장의 목이 물어뜯기는 미래가 바로 코앞이었다.

‘녀석들의 이빨은 뼈마저 씹어버려!’

하지만 뛰쳐나가려던 백구는 인우의 눈을 보고 멈칫 했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

무기를 잃은 무방비 상태에서 코볼트 보스가 이빨을 들이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우의 눈은 차갑고 냉철하게 가라앉아있었다.

‘저건 패배자의 눈이 아니야!’



인우는 무기가 깨져나가며 빈틈이 생기고, 보스의 물어뜯기를 막을 수단이 많지 않음을 깨달았다.

거대한 덩치의 커다란 입이 인우의 목덜미를 향해 다가왔다.

절체절명의 순간, 인우는 담담하게 왼 주먹을 내밀었다.

‘이거나 먹어라. 죽빵이다!’

왼 주먹을 녀석의 입안으로 찔러 넣었다.

콰직!

입속 깊숙한 곳에 타격을 주고 싶었지만, 입안으로 찔러 넣은 주먹은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한 채 보스 몬스터의 이빨에 물리고 말았다.

‘큭!’

콰직!

팔에는 가죽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보스가 턱에 힘을 주자 가죽 방어구가 뚫리며 송곳니가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붉은 선혈이 놈의 턱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인우는 살 속으로 파고드는 코볼트 이빨에 극통을 느꼈지만, 고통에 찬 비명도, 통증으로 인한 찡그림조차 보이지 않았다.

팔에서 흘러내리는 피와 함께 냉철해지는 정신.

활성화되는 뇌세포.

위기와 고통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던전 보스를 응시했다.



“크르르.(팔 하나 먼저 받아가마.)”

웃고 있는 보스였지만, 그의 내심은 등골이 서늘했다.

무기가 깨져나간 침입자가 당황한 기색조차 없이 팔을 입안으로 찔러 넣은 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침입자의 주먹이 조금만 깊이 들어왔어도 위험했다.

녀석은 팔뚝 아래가 물리고도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에 흔들림이 없었다.

그렇다 해도 팔이 물린 이상 결판은 났다.

‘너의 패배다!’



* * *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봐.”

인우가 낮게 속삭였다.

보스는 전신의 털이 곤두섰다.

‘뭐지, 이 위화감은?’

인우는 인정했다. 던전 보스는 강하다.

순수 속도만큼은 녀석 쪽이 위였고, 특별한 무구와 방어구로 무장한 녀석에게 정면으로 부딪쳐 손해를 봤다.

‘인정한다. 너는 강해. 하지만!’

인우는 몸속에 잠들어있던 기운을 일깨웠다.

‘움직여라. 전력 개방이다!’

인우는 전신의 기운을 개방하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신체간섭] 1단계 [세포활성!]



‘전신강화!’

기운이 전신의 세포를 간섭하며 신체 기능의 100%, 아니 그 이상을 발휘하게 하는 신체 강화기가 던전에 들어와 처음으로 발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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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리링! 스텟 상승!]

근력 39 → 49 / 민첩 39 → 49

체력 50 → 100 / 지능 39 →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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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는 침입자의 분위기가 변하자 등골이 서늘할 정도의 위기감을 느꼈다.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에 와서는 무엇을 하든 이미 늦었다!’

턱에 힘을 더하며 고개를 휘저어 팔부터 뜯어가려 했다.

그런데! 침입자의 팔이 쉽사리 뜯기지가 않았다.

‘뭐냐! 뭐야!’

살과 근육을 파고든 보스의 이빨을… 근육이 밀어내고 있었다.

‘뼈마저 부수는 나의 물어뜯기를 근육으로 밀어내고 있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에 보스는 경악했다.

‘아니, 근육은 이미 끊겼을 텐데! 어떻게?’

인우의 근육들이 살을 파고든 이빨을 밀어내며 고속 재생하고 있었다.



‘오빠, 레벨 30의 전사는 마나로 신체를 강화해. 그래서 헌터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초인이라고 한데.’

여동생이 학교에서 배워 온 것이다.



인간의 한계? 마나로 뛰어넘어? 속으론 웃음이 나왔다.

세포 하나하나가 최대치의 출력을 낼 때, 그 때에야 비로소 발휘되는 힘!

그것이야말로 인체의 한계에 도달한 힘이다.

“어이, 개머리!”

“…….”

“넌, 인체의 한계를 알아?”

당연히 모른다. 사람들도 모르는데 코볼트가 알 리 없다.

인우는 팔을 물고 고개를 휘저으려 하는 보스를 내려다봤다.

“나도 몰라!”

인우는 팔과 함께 개머리를 통째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쾅!

“컥!”

바닥에 균열이 생길 정도의 거대한 충격이 코볼트 보스에게 전해졌다.



뒤통수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코볼트 보스는 입이 저절로 열렸고, 눈에는 흰자위가 드러나며 정신을 잃었다.

혀를 빼내고는 개 거품을 문 채 기절한 것이다.

인우는 바닥에 녹다운당한 코볼트 보스의 입에서 주먹을 끄집어냈다.

진득한 액체가 가득 묻은 왼 주먹이 드러났다.

“으으, 더러…….”

주먹에서 더러운 김이 모락모락 솟아나고 있었다.

인우는 왼손에 잔뜩 묻은 침을 털어냈다.



헌터들은 인체의 한계를 모른다.

레벨 30의 헌터가 스텟 30만 넘으면 인체의 한계 운운한다.

인우가 볼 때 그건…….

“인체의 한계는 무슨. 고작 스텟 30에 간당간당 걸쳐있는 것들이.”

개소리다.



* * *



[이, 이겼습니다!]

백구가 얼떨떨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일순간 인우가 당할 줄 알았지만, 뛰쳐나오는 사이 역전이 되어 있었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승패를 지켜본 백구.

백구의 눈에는 팔이 물린 인우가 물린 팔을 이용해 보스를 바닥에 패대기쳐 손쉽게 이기는 모습으로 보였다.

[대단하십니다!]

“당연한 결과야!”

명백한 능력치 차이가 존재했기에 걸었던 싸움이었다.

인우는 애초에 질 싸움은 하지 않는 주의다.

‘그럼… 무슨 아이템이 나왔을까나…….’

아이템을 수거하기 위해 녀석이 쓰러진 곳을 바라봤다.



그런데 쓰러져 있어야 할 녀석이 서 있었다.

백구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놈이 일어선 것이다.

“크르르르.(비열한 녀석! 비장의 수를 감추고 있었다니.)”

던전 보스는 인우의 공격으로 중상을 입었다.

그것으로 보스의 권능을 개방할 조건이 충족됐다.

“크르르.(비열한 침입자 놈! 던전 지배자의 권능을 보여주마!)”



보스의 털이 곤두서며 덩치가 부풀어 오른다.

놈의 눈은 빨갛게 충혈 됐다.

저건…….

“야수화(野獸化)!”

코볼트 보스가 전신에 김을 모락모락 일으키며 곡괭이를 휘둘러왔다.

수웅! 수웅! 수웅!

배 이상 빨라진 코볼트 보스의 곡괭이가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몰아쳤다.

인우는 빠르게 물러서며 곡괭이를 피했다.

코볼트 보스는 야수화로 빨라졌지만, 인우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속도는 상대적이다.

인우는 이미 인체의 한계속도에 도달해 있었다.

‘생각보다 별것 없군. 아님, 내가 강한 건가?’

손으로 곡괭이를 몇 번 흘려내며 깨달았다.

‘이런 위력으론 나의 직도를 간단히 부술 수 없어!’

직도가 파괴된 것은 곡괭이의 특수 능력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크앙!(죽어라!)”

보스는 곡괭이를 무작위로 휘두르며 인우를 몰아쳤다.

인우는 몸을 뒤로 빼며 손으로 공격을 쳐내며 버텼다.

치고 들어가기에는 야수화의 기세가 너무 강렬해 인우는 야수화가 끝날 때까지 버티는 쪽을 택했다.

‘이런 강렬한 기술, 오래가진 않지.’



코볼트 보스는 구덩이가 있는 장창 벽을 등지고 인우를 몰아붙였고, 인우는 안쪽 통로를 등지고 싸웠다.

통로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지만 인우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 뒤로는 혹시 모를 위험에서의 탈출을 돕기 위한 함정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보험이었다.



공격이 제대로 먹히지 않자 코볼트 보스는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야수화가 끝나갔기 때문이다.

“크앙!(나락으로 떨어뜨려주마!)”

보스가 벽 쪽으로 몸을 날렸다.

벽을 차서 천장에 발을 디딘 녀석이 바닥으로 점프했다.

반동과 중력을 동반한 강력한 내려찍기!

보스의 곡괭이는 인우가 아닌 바닥을 향해 있었다.

“크앙!(균열 속에 묻혀 버려라!)”

보스는 무기 파괴의 곡괭이에 감춰진 필살기를 발동했다.



인우는 그런 녀석을 보며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인우의 배후인 넓은 공간을 차지하려 한 것은 좋았지만, 착지점이 안 좋았다.

땅과 파괴의 곡괭이가 충돌하며 본래 일어나야 할 거대한 충격도, 땅이 갈라지며 인우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기술도 발동하지 않았다.

보스가 곡괭이를 찍으며 착지한 땅이…….

퍼석!

무너져 내렸다.

“크으?”

보스가 추락했다.

의문을 가득 머금은 얼굴로 보스는 추락했고, 금속 꼬챙이에 전신이 꽂혔다.

코볼트 보스는 황당함을 가득 머금은 눈빛으로 구덩이 밖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침입자와 개 한 마리를 바라보았다.

‘마지막까지 이런… 비겁한… 개, 개 같은… 컥!’

번쩍!

코볼트 보스는 빛으로 화해 흩어졌다.



* * *



코볼트 보스는 칠흑의 곡괭이와 은빛의 장신구 세트, 딱 봐도 좋아 보이는 철 갑주 세트와 마석을 남겼다.

마석은 그동안 보아온 마름모꼴이 아닌 작은 구슬 모양을 하고 있었다.



보스의 최후를 구덩이 밖에서 내려다보며 인우와 백구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저기로 뛰어들어서는… 찝찝하게 말이야.”

[멍. 결과는 좋았네요.]

의도치 않은… 얼떨떨한 마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