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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요즘 몬스터는 템빨도 좋다





1단계 함정에 정예 코볼트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확실히 머리 하나는 커다란 한 등급 높은 정예들은 5마리 중 2마리가 성공적으로 구덩이를 뛰어넘었다.

구덩이를 넘어선 코볼트를 기다리는 건 두 번째 구덩이였다.

‘하나로 끝나면 아쉽잖아!’



정예 코볼트는 첫 번째의 성공을 경험 삼아 또 한 번 도약을 감행했다.

같은 5m라 생각한 걸까?

구덩이를 넘어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진행한 도약.

‘어리석어.’

하지만 아쉽게도 두 번째 구덩이는 5m 60㎝.

5m를 겨우 통과한 녀석들은 두 번째 구덩이를 넘지 못하고 추락했다.



구덩이들은 코볼트의 도약력, 수, 행동 패턴 등을 충분히 고려해 설계한 함정들이었다.

‘나에게 빈틈 따윈 없다!’

모든 건 계획대로.

쑥스럽게도 중2병이 도졌다.



* * *



던전 보스가 대군을 몰고 왔다.

통로 정체 현상으로 느긋이 움직였다.

“크르르르.(급할 것 없다. 밀어붙여라!)”

상대가 생각보다 잘 버틴다.

앞 열에 있던 녀석들이 빠르게 빛무리로 화하는 것이 보였다.

“크르르르.(침입자 놈들이 상당한 녀석들인가 보군!)”

“크앙!(돌격이다! 숨 돌릴 틈을 주지 마라!)”

앞 열의 코볼트는 보스의 명령에 정말 숨 돌릴 틈도 없이 구덩이에 몸을 던졌다.



앞 열이 사라지는 만큼 던전 보스도 전진했다.

길을 열어 나설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부하들이 줄어가는 속도로 봐서 녀석들은 상당한 존재들이다.

조금쯤 지치게 만든 후 싸우고 싶었다.

“크앙!(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비열하다 욕해도 좋다!

이겨서 살아남는 것이 던전 보스의 생존 전략.

이쪽의 장점은 숫자!

수로 밀어붙여서 지친 상대의 목덜미를 물어뜯어줄 준비를 하며 몇 발짝씩 전진했다.

보스는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허리를 쭉 펴서 전방을 주시했다.

“크르?”

이상하다. 최전방에서 죽어가는 부하들과 침입자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저건…….’

진실을 목격한 보스는 황당함에 몸이 굳었다.

침입자는 움직인 흔적이 없고, 부하들은 계속 죽어갔다.

부하들은 싸우다 죽은 게 아니었다.

‘아니 이런 미친……. 이 무슨 황당한… 개 같은 경우가!’

구덩이에 가득 쌓여있는 마석과 금속, 그건 부하들의 유해였다.

‘이런 비열함의 극치라니!’

보스는 침입자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 * *



백구는 귀가 가려운지 뒷발로 귀를 긁어댔다.

인우는 자꾸 귀를 긁어대는 백구가 신경 쓰였다.

“왜 그래?”

[자꾸 가렵습니다.]

“누가 계속 너 욕하나 보네.”

‘그, 그럴지도 모르죠.’

허무하게 빛으로 산화해 가는 코볼트들의 허망한 단말마를 계속 듣고 있노라면…….

‘귀가 안 간지러울 수가 없잖아요!’



첫 번째 구덩이에 아이템이 쌓여 금속 꼬챙이가 묻혔다.

1번 함정은 효력을 잃었다.



“1관문 통과를 축하한다.”

녀석들에게는 인우가 준비한 축하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2번째 구덩이.

코볼트들이 주저하다 양옆으로 물러서며 길을 열었다.



“응?”

덩치가 좀 있어 보이는 코볼트가 흑색 곡괭이를 들고 앞으로 나서는 게 보였다.

보스는 일반 코볼트를 물리고 정예만을 대동했다.

정예의 수만으로도 통로를 가득 메울 정도.

‘휴우, 이거 엄청나네…….’

메인디쉬의 등장이다.



* * *



보스는 보스였다.

상황을 보고 무작정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함정을 넘는다!’

“크앙!(나를 잘 따라 해라!)”

보스는 벽 쪽에 붙어 도약을 시도했다.

중간에서 벽을 발로 차며 5m 60㎝의 절묘한 거리를 가볍게 넘었다.



“흐흠…….”

지능이 높았다.

정예들도 보스를 따라 했다.

그렇게 인우의 함정을 무용지물로 만들며 3번째 구덩이를 넘어 인우와 녀석들 사이에는 하나의 함정만이 남았다.

“좀 하는데?”

‘녀석들이 벽을 이용할 줄이야.’

완벽한 줄만 알았던 함정에서 빈틈을 찾아내다니.



“크르르!(쳐라!)”

비열한 인간이다.

아직 상대의 강함을 모르기에 던전 보스는 정예 부하들을 먼저 보냈다.



벽 쪽에 붙어 도약해야 했기에 한 번에 도약 가능한 코볼트는 두 마리.

인우는 옆에 쌓여있는 가죽 주머니를 던졌다.

퍽!

인우가 준비한 가죽 주머니가 날아가 도약하는 코볼트를 맞췄다.

푸푸푹!

추락한 코볼트는 전신이 뚫려 빛으로 산화했다.

코볼트들이 도약을 시도하는 족족 가죽 주머니를 던졌다.

퍽! 퍽! 퍽! 퍽!

“크악!”

정예들이 추락해 단말마의 비명을 내뱉으며 죽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보스는 이를 악물었다.

‘동족의 가죽으로 저런 암기를… 이런 잔혹한!’

“크앙!(몰아쳐라! 주머니가 얼마 없다!)”

침입자 옆에 놓인 주머니는 100개 정도.

정예 코볼트는 1,500마리가 넘는다.

보스는 더욱 기세를 높여 몰아쳤다.



함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우는 차분한 눈으로 던전 보스를 응시했다.

뚫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안타깝게도… 나는 충분히 준비돼있다!’

‘아니! 아쉽게도 너의 암기는 곧 떨어진다! 그때가 끝이다!’

인우와 던전 보스의 마음의 소리가 교차했다.



자원은 유한했고, 주머니가 떨어지자 백구가 금속 수레를 몰고 왔다.

[멍!]

금속 수레 안에는 흙덩이가 가득했다.

“호갱님, 흙덩이는 맞아 보셨습니까?”

인우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던전 보스는 인우가 흙덩이를 손에 쥐자 이를 악물었다.

“크르르.(흙덩이로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도발에 넘어간 보스는 부하들을 보냈고, 그들은 흙덩이에 희생돼 죽어갔다.



퍼퍽! 퍼퍽!

하지만 한 수레나 되던 흙덩이도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5백을 넘게 잡았지만, 아직 절반이나 남았다.

백구는 흙덩이가 떨어지자 당황했다.



보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개가 미소를 지어봐야 저게 미소인지 알 수는 없다.

그저 흉포하게 이빨을 내밀며 거친 숨길을 내뱉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인우는 웃으며 옆에 있는 커다란 금속 수레와 금속 상자에 손을 올렸다.

“난 야구 선수가 아니야. 난 물질 간섭자다!”



[형태조종]



금속 상자가 액체처럼 꾸물거리며 바닥에 질퍽하게 깔리더니 형태를 바꿔 장창의 벽을 세웠다.

빼곡히 세워진 장창은 도약하는 정예 코볼트를 막는 가시 벽이 됐다.

장창의 벽.

코볼트가 뚫을 수단은 없다.

“나의 마지막 방진이다! 뚫을 수 있으면 뚫어봐.”



인우는 녀석들에게 강요했다.

몸을 던져 구덩이를 채우라고!



* * *



‘당했다!’

던전 보스는 이를 갈았다.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목숨으로 함정을 채워야 하나?’

차갑게 가라앉은 침입자의 눈을 마주했다.

농락당했다. 철저한 패배다.

하지만 녀석은 모른다. 내가 왜 던전의 지배자인지!

“크르.(나를 너무 우습게 봤다!)”

던전 보스가 기세를 일으켜 몸을 날렸다.



“흡!”

보스의 도약.

의외다.

도약에 성공해도 앞을 막는 것은 장창의 벽!

아쉽지만, 보스의 생은 이걸로 끝이다!

‘싱겁…….’

아니었다.

레벨 30대의 보스는 던전 지배자의 위용을 보였다.

탁! 탁! 쿵!

벽을 한 번 박차 천장으로 몸을 날린 후, 천장을 차내며 내려앉은 곳은 장창 벽을 훨씬 뛰어넘은 인우의 뒤편이었다.

3단 벽차기.

놀라운 신체 능력.

‘레벨 30대란 건가?’

마나로 신체 강화가 가능한 레벨 30대의 헌터는 인체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와 비등… 아니, 그 이상의 전투력을 가진 것이 던전 보스다.

여동생의 교과서에도 나오는 내용이었다.

‘그랬었지…….’

인우는 뒤로 돌아서 던전 보스와 마주했다.



보스는 구부린 몸을 펴고 커다란 몸과 비대한 근육을 과시하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크르르?(죽을 준비는 되었느냐?)”

전신에 부분 갑주를 덧대고 있어 전신 갑옷을 입은 것과 진배없는 무장.

은목걸이, 은팔찌, 은귀걸이, 꼬리 중간에 낀 은반지까지.

딱 봐도 중급 이상의 장비들로 전신을 도배했다.

“요즘은 몬스터도 템빨로 싸우나?”

“크르르르 크아앙!(비열한 침입자 놈!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주겠다!)”



백구는 보스의 포효에 털이 곤두서는 강렬한 포스를 느꼈다.

수준이 다르다는 걸 직감한 백구는 벽 쪽으로 바짝 붙어 둘의 승부에 방해되지 않게끔 몸을 피했다.



* * *



던전 보스가 칠흑의 곡괭이를 들어 올렸다.

인우는 몸을 틀며 직도를 빼들었다.

날 끝은 던전 보스를 가리킨다.

막기에는 너무 넓다고 생각한 통로가 결투장이 되니 비좁게 느껴졌다.



인우 vs 코볼트 보스.

1대1 방해 없는 결투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