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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개이득





‘으으…….’

기절해 있던 백구가 눈을 떴다.

백구의 눈에 비친 것은…….

‘멍!’

인우가 출입구를 막은 흙을 파내며 아이템들을 수거하는 모습이었다.

안식처를 없애고 있는 행위!

[대장, 안됩니다!]

막아야 했다!



인우는 평소의 담담한 표정으로 백구를 마주했다.

“너도 도와. 아이템 던져주면 분류나 해.”

‘저 반짝이는 것들이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일단 살고 봅시다!’

백구는 벽을 허무는 자살 행위를 막고 싶었다.

[놈들이 오면 어떡해요?]

“놈들은 일단 물러갔어.”

백구는 언제나처럼 차분한 인우의 눈이 평소와 다르게 반짝인다고 느꼈다.

‘저건… 기대 가득한 눈!’

이런 절망적인 순간에도 저런 눈빛이라니!

백구는 인우를 더는 막으려 하지 않았다.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대장은… 강하십니다.’

절망적인 생각밖에 떠올리지 못한 자신과 달리 인우 대장은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백구는 태도를 바꿨다.

[함께 하겠습니다.]



백구의 눈빛이 바뀌었다.

흔들림과 망설임이 가득하던 눈에는 단호함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뒤에서 던져주는 템을 분류해줘! 마석, 철, 납, 동, 은, 가죽, 고기, 가끔 장신구도 있으니까 잘 모아둬!”

백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우가 던져주는 템을 분류해 쌓았다.

천에 가까운 코볼트가 남긴 잡템의 양은 상당했다.

중간 중간에 정예 코볼트도 섞여 있었는지, 일반 마석 조각의 10배의 가치를 지닌 상급 마석 조각도 보였다.



흙벽을 허물며 진행한 아이템 발굴 작업은 상당한 시간이 걸려서 마칠 수 있었다.

흙 속에서 아이템을 일일이 고르느라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 * *



퍼석!

흙벽을 두부처럼 파내던 삽이 벽을 뚫었고, 이내 출입구 밖의 통로가 보였다.

인우와 백구는 흙투성이로 뒤를 돌아보았다.

백구는 동색으로 반짝이는 장신구 세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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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정보]

체력의 장신구 세트 (*보임*/숨김)

등급: 하급

하급 체력의 반지: 체력 +0.5%

하급 체력의 팔찌: 체력 +0.5%

하급 체력의 목걸이: 체력 +0.5%

하급 체력의 귀걸이: 체력 +0.5%

세트 효과로 체력 1% 추가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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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찌는 왼쪽 앞발에 착용했고, 반지는 꼬리에 착용했다.

모두 체력을 올려주는 장신구들.

총합 3%의 아주 애매한 수치다.

체력은 지구력과 회복력에 연관된 수치 같았다.

백구의 체력이 발굴 페이스를 따라오지 못해 인우는 활성 치료로 백구의 체력을 회복시키며 일을 시켰다.



장신구는 숨김 기능이 있어, 남에게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게 가능했다.

숨김 기능을 켜면 착용감마저 사라졌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다.



장신구에서 3%.

머리, 손, 발, 상의, 하의, 망토, 무기.

이것저것 맞추면 상당한 상승치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중복 적용은 안 되지만.’

그렇다 해도 체력 템은 인우에게 무용지물이었다.

‘지쳐본 적이 없으니까…….’



거치적거리는 남은 장신구들은 공터 한쪽에 쌓아뒀다.

개당 수백만 원이나 호가하는 물건이다.

발굴로 얻은 템들만 처분해도 3년 치 생활비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나가기만 하면 말이지.’

돌아본 공터 안에는 금속, 마석, 가죽, 고기, 장신구, 귀금속들이 상당량 쌓여있었다.

“필요충분조건을 갖췄어!”



중노동으로 지친 백구는 아이템만큼이나 반짝이는 인우의 눈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가지 못하면… 저것도 필요 없지 않나요?]

기어들어 가는 낮은 소리로 전해지는 백구의 념화였다.

인우는 뚫린 출입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 마. 생각이 있으니까!”

인우가 호언장담하자 백구는 출입구를 보며 각오를 다졌다.

[견공왕 백구, 대장과 함께라면 죽는 순간까지 싸웁니다.]

“…….”



* * *



전투 각오를 다지며 불타는 백구를 보자 인우는 조금 난감했다.

‘당장 싸울 건 아닌데 말이야…….’



인우는 곧바로 공사에 착수했다.

백구는 인우가 만든 금속 바구니로 재료를 날랐고, 인우는 열심히 땅을 파 통로 양쪽을 막았다.

밖에서 볼 때는 얇은 금속판으로 된 벽이 세워지고, 안쪽에서는 흙을 엄청 가져다 부어 벽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120m가량의 긴 통로를 확보했다.

땅을 파면 흙이 나온다.

나온 흙을 한쪽 벽에 쌓다 보면, 확보한 통로의 길이가 줄어들어서 무리를 해가며 긴 통로를 확보했다.

몬스터들이 얇은 금속 벽을 보고 뚫으려 하다가 안쪽에 단단한 흙이 쌓여있자 포기하고 돌아갔다.

이 긴 통로가 인우와 백구의 전장이 될 것이다.



[이거 언제까지 하나요?]

지루한 공사 작업에 지쳐가던 백구가 질문했다.

“가족이 액션 영화를 좋아해서 말이야. 가끔 옆에서 함께 보는 경우도 있었어.”

백구는 영화가 뭔지 모른다.

그래도 대장이 하시는 말씀이니 대꾸해줘야 했다.

[멍!]

“영화를 보면 말이야… 엄청 강해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놈들이 막 등장하거든.”

백구는 몸에 달린 배토판을 밀며 인우가 구덩이 밖으로 던지는 흙을 벽 끝으로 밀어붙이는 작은 불도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백구가 구덩이 안에서 열심히 삽질을 하고 있는 인우에게 물었다.

[멍? 대장보다 강한가요?]

“흐흠… 나보다 강하고 약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의 세계에서 제일 강하다는 게 포인트지.”

[멍. 제가 들개 사이에서 최강인 것과 비슷하군요.]

백구는 이해했다.

고양이 녀석들이랑 다른 종족 놈들을 뭉뚱그리면 자기는 최강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들개들에 국한해 보면 자신은 언제나 승자였다.

“비슷해. 그런데 액션 영화를 보면 강한 놈을 잡기 위해서는 언제나 함정을 파거든.”

[…….]

“그리고 함정은 항상 들키지.”

[들켰으니 소용이 없겠군요.]

“아니.”



백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함정이라는 것을 알면 피하지 않을까요?]

“문제는 함정을 피할 수 없게끔 인질을 잡는 경우도 있고.”

[멍.]

“보통은 자신의 힘을 맹신하고 함정을 정면 돌파하려 하지.”

[…….]

함정인 줄 알면서도 함정에 걸려 주다니, 인간은 복잡했다.

“나도 이해가 안 돼.”

인우가 삽질을 멈추고 허리를 폈다.

깊은 구덩이 속에서 고개를 드는 인우.

구덩이 밖에서 인우를 내려다보는 백구.

갈색의 통로를 끊어 버린 깊은 구덩이 하나가 완성됐다.

무언가 뿌듯해하는 인우를 보며 백구는 정작 물어보고 싶은 걸 물었다.

[그런데… 저희 언제 싸우죠?]

이 물음에 인우는 난감해하며 이렇게 답했다.

“……조만간?”



한동안 둘의 공사는 이어졌다.

하지만 언제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오는 법.

공사가 끝나고 개장을 했다.



퍽!

삽으로 통로 하나를 뚫었다.

인우와 백구는 미리 만들어둔 금속 다리를 이용해 함정을 건너갔다.

인우가 금속 다리를 회수했다.

금속 다리는 인우의 손에서 액체처럼 꾸물거리며 뭉치기 시작했다.

상자 형태로 변한 금속덩이가 옆에 놓였다.

“레츠 쇼 타임!”

“아우우우!”

퍼석!

인우의 손에 들린 마석이 터졌다.

마석이 터지며 생겨난 파동이 던전을 훑었다.



* * *



던전 중심부에는 거대한 공터가 있다.

공터 중앙에는 커다란 분수가 있고, 바닥과 벽은 갈색 흙이 아닌 광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검은 이끼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들의 식량이다.

분수와 이끼 그리고 광물로 가득한 공터 중앙에 칠흑의 곡괭이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던 코볼트가 눈을 떴다.

마석이 깨지며 생겨난 파동이 던전 중심부에 닿았다.



“크르르르.”

신장 190의 흑색 곡괭이를 든 던전 보스는 파동을 감지했다.

“크아앙!”

던전 보스가 포효하자 정예 코볼트들이 모여들었다.

수백의 정예 코볼트, 그리고 수천의 일반 코볼트가 던전 보스 앞에 모였다.

이곳은 2년간 방치된 코볼트만의 세상이다.

며칠 전 코볼트 세상에 발을 들인 어리석은 존재를 응징하기 위해 던전 보스는 흑색의 곡괭이를 걸치고는 공터를 나섰다.

그의 뒤를 수백의 정예 코볼트, 수천의 일반 코볼트들이 따랐다.

미로 같은 갈색 통로를 지나치며 그를 따르는 코볼트는 점점 늘어났다.

“크르르르!”

‘사냥의 시간이다!’



* * *



물질간섭과 크게 관련 없이 인우의 기운과 마석의 기운이 충돌하며 생겨난 특수기 [마석 파괴].

우연의 산물로 알게 된 유인 기술이다.

[마석 파괴]의 효과는 탁월했다.

마석이 깨지며 던전 구석구석까지 마나의 파동이 닿았고, 코볼트의 발소리와 함께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그건 앞으로 닥쳐올 해일을 예고했다.

“꿀꺽, 어그로 하나는 갓급인데…….”

백구는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코볼트들이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풀린 눈으로 마구 몰려들고 있었다.

근처에 있는 코볼트부터 하나뿐인 통로로 몰려왔다.

뒤쪽 통로는 철저히 막아뒀기에, 올 수 있는 통로는 애초에 하나다.

“아우우우.”

인우와 백구를 발견한 녀석들은 늑대 울음을 내며 동료를 부르고는 돌격을 감행했다.

통로를 가득 메운 녀석들을 보며 백구는 허둥댔다.

[너무 많지… 않나요?]

“친구가 많은 건 좋은 거지.”

여유 넘치는 인우와 불안한 백구.

둘에겐 확실히 온도 차가 있었다.



코볼트는 이족보행을 하지만, 기본은 개다.

통로를 가득 메운 코볼트는…….

“개떼가 따로 없네.”

[멍.]

‘개떼…….’

백구가 듣기에 기분 좋은 단어는 아니었다.



두두두두두.

개떼의 돌격에 땅이 떨려왔다.

돌진하는 대군은 멈추지 못한다.

뒤에서 밀고 오는 녀석들이 있기 때문이다.

“환영합니다, 호갱님들!”

앞 열의 코볼트들이 우수수 함정으로 추락했다.

“크앙!”

코볼트들은 무턱대고 달려오다 끊겨버린 통로 아래로 추락했다.

코볼트들은 발판을 잃고 추락하면서 팔다리를 저으며 황당한 표정으로 짧은 단말마를 뱉었다.



백구는 코볼트가 마지막에 뱉은 단말마를 알아들었다.

“크앙!(이런 개 같은 경우가!)”

[멍…….]

백구는 찝찝한 단어에 입맛을 다셨다.



함정은 성채를 지키기 위한 해자와 같다. 5m 깊이의 구덩이가 길을 끊어 놓았다.

떨어지는 충격만 선사한 것은 아니다.

바닥에는 빈틈없이 세워진 금속 꼬챙이가 있었다.

번쩍! 번쩍! 번쩍!

초당 수십의 녀석들이 추락해 꼬챙이에 뚫려 죽었다.

대량의 코볼트가 빛무리로 흩어지는 광경은 흡사 불꽃놀이를 보는 것 같았다.



백구는 떨어지는 놈들만큼이나 황당했다.

대량의 코볼트가 빛무리로 화하는 광경에 입을 닫지 못했고, 닫치지 않은 입에서는 침이 흘러내렸다.

무수히 많은 개의 추락.

‘개 추락!’



하지만 인우의 감상은 백구와 사뭇 달랐다.

시체 대신 아이템을 남겨 구덩이를 메워 주는 착한 녀석들.

“개이득!”

[…….]

백구는 인우의 감상에 할 말을 잃었다.



인우는 그동안의 무한 삽질에 대한 보상을 지켜보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이것이 사냥이지!”

‘삽질은 사냥이 아닙니다!’

백구는 입안에 맴도는 말을 삼켰다.



머리를 써서 기어 내려가려던 녀석은 벽에 달린 칼날에 긁혀 추락했고, 몸을 써서 도약을 시도한 놈은 5m 거리를 반도 넘지 못하고 죽어갔다.

녀석들은 시체를 남기지 않는다.

빛무리로 흩어지며 남기는 자그마한 아이템들이 한두 개씩 쌓여갔다.

“구덩이를 다 메우려면 조금 걸리겠는데?”

[야비… 아니, 대단하십니다.]



5m 추락은 커다란 충격이고, 그 밑에는 꼬챙이로 빈틈없이 장식되어있다.

100% 보장된 지옥행 구덩이였다.

“어서 옵쇼!”

함정에 빈틈은 없었고, 설사 구덩이가 메워져 통과하기 시작해도 이중 삼중의 함정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인우는 한동안 1단계 함정에서 개죽음당하는 녀석들이 남기는 무수한 잡템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