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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사망 플래그





나와 백구는 공터를 나와 무작정 달렸다.

통로에서 코볼트와 조우해도 멈추지 않은 채 직도를 휘둘러 길을 뚫었다.

‘직도를 만들어 두길 잘했어!’

터크를 이용했다면 금세 내구력이 다해 깨졌을 것이다.

일찍이 도주를 종용한 백구의 판단도 옳았다.



두두두두두.

코볼트 대군의 발소리가 들리고, 울림은 진동이 되어 바닥을 통해 전해져 왔다.

1천? 2천?

‘아니 얼마나 있어야 이런 진동이?’



필사적으로 코볼트를 피해 움직였지만, 피할 곳이 없다는 걸 감각적으로 깨달았다.

사방에서 녀석들이 접근 중이라, 어디가 좀 더 안전한 곳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대장, 전방 위험! 후방 위험! 사방이 위험!]

백구의 후각 감지는 무용지물이 됐고, 녀석은 두 손 두 발, 아니 네 발을 다 들었다.

“나도 모르겠다! 안전한 곳이 있기나 한 거야?”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달리는 걸 멈추면 몰려오는 녀석들에게 파묻힌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우린 조금이라도 코볼트가 적게 느껴지는 곳으로 뛰어야 했다.



“아우우!”

우리를 발견한 코볼트들이 동료를 부르며 조직적으로 몰이를 시작했다.

‘행동 패턴이 달라졌어!’

“아우우우!”

녀석들은 통로를 가득 메울 정도로 동료를 모아 조금씩 거리를 좁혀왔다.

명백한 몰이사냥.

사냥하다 사냥감으로 전락한 나와 백구.

뒤에서 거리를 좁혀오는 대군을 피해 달리다보니 갈림길이 보였다.

눈알을 팽팽 돌리던 백구가 한쪽 길을 선택해 앞으로 치고 나갔다.

[대장, 여깁니다!]

“야, 막혔잖아!”

벽으로 막힌 것이 아니다.

8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넓은 통로 앞뒤로 코볼트 대군이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진퇴양난!

‘싸, 싸워야 한다!’

싸울 수밖에 없다.

오른손에 들린 직도와 길을 막고 거리를 좁혀오는 대군을 번갈아 보았다.

역시 무리다.

“너무 많잖아!”

빽빽이 밀려오는 녀석들을 보고 있노라니 우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숨을 곳이라도 있으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 * *



킁! 킁!

그 순간, 백구가 물 냄새를 맡았다.

[전방! 피할 곳이 있습니다!]

‘나이스 쥐구멍!’

그런데 전방에서는 대군이 밀려오고 있었다.

‘쥐구멍이 저 앞인데…….’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야!’

나는 앞에서 달려오는 대군을 향해 마주 달려 나갔다.

두두두두.

“아우우우!”

“동료 좀 그만 불러! 마이 불렀다 아이가!”

당황을 넘어서 배우지도 않은 사투리까지 튀어나왔다.

녀석들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은 조급해졌다.

“입구가 어디야!”

앞서가던 백구가 벽으로 몸을 날려 사라졌다.

통로 옆에 작게 뚫린 출입구가 있었다.

나도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통로 한쪽에 이런 공간이 있다니.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원형의 좁은 방.

출입구는 들어왔던 곳 하나!

[녀석들이 옵니다!]

도망갈 곳도 없다.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었다.



무엇이 있는지 확인할 새도 없이 배낭의 템들을 쏟아 부었다.

바닥에 쏟아진 아이템들 중에 무거운 금속인 납괴를 집어 들었다.

더는 가까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형태조종]



출입구로 밀고 들어오는 녀석들에게 납괴를 모조리 던졌다.

촤라라락! 촤라라락!

납괴가 날아가면서 그물로 변해 몰려오는 코볼트들을 휘감았다.

휘감긴 코볼트와 뒤를 따르던 놈들까지 덩달아 엉켜 넘어졌다.

뒤에 있던 녀석들이 엉켜있는 놈들을 타넘고 있었다.

남은 금속들도 모조리 던졌다.

퍽! 퍽! 퍽 퍽!

동괴를 주먹만 한 금속 공으로 만들어 던져 버렸다.

모양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동료를 타고 넘어오려던 녀석들을 금속 공이 날아가 타격했다.

퍽! 퍽! 퍽!

금속 공을 맞은 녀석들은 일격에 몹생을 하직하며 빛무리로 흩어졌다.

무작위로 금속을 던져 녀석들의 접근을 저지했지만 자원은 유한했고, 천 마리가 넘어 보이는 녀석들은 무한하게 느껴졌다.



* * *



“어어…….”

바닥을 더듬는 손이 허전했다.

금속이 떨어졌다.

“던질 게 없어!”

백구는 구석에서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녀석들 시체라도 남아서 입구를 막아주면 좋으련만, 빛무리로 흩어져 출입구가 훤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나뿐인 출입문을 통해 코볼트 대군이 밀려온다.



“하아! 하아!”

지치지는 않았지만, 긴박한 순간이 오자 숨이 가빠 왔다.

손에는 직도가 들려있다.

한 칼에 3마리는 베어 넘길 자신은 있다.

전투력 차이가 있어 아무리 많은 수라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설령 30렙 대의 보스 몹이 섞여 있다 해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몬스터 대군이 몰려오자, 도저히 이건 감당할 수가 없었다.



칼로 바다를 가를 수 있을까?

못 가르면 쓸려가는 거다.

벌레와 인류의 전쟁을 다룬 영화가 생각난다.

벌레는 약했고 보잘 것 없지만, 무시무시한 인해전술로 인류를 몰아붙이는 영화였다.

입구를 막지 못하면… 깔려 죽는다!

던질 것이 떨어지자, 해일처럼 몰려오는 녀석들을 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바닥에 내팽개친 삽을 들었다.



“으랴랴랴!”

무슨 기발한 생각이 있어 삽을 든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든 삽은 훌륭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주변의 땅을 파내 출입구로 던졌다.

돌같이 단단한 바닥이 두부처럼 파였고, 단단한 흙더미가 출입구로 날아갔다.

퍽! 퍽! 퍽!

돌같이 단단한 흙은 이미 단순한 흙이 아니다.

그건 수량 무한의 암기였다.

단단한 흙더미는 암기가 되어 날아갔고, 몰려오는 코볼트를 처치하며 하나뿐인 입구를 서서히 막아갔다.

그물에 휘감겨 허우적거리던 녀석들은 생매장당하며 빛무리로 흩어졌다.

“으랴랴랴!”

그렇게 한동안 정신없이 땅을 파서 흙을 던졌다.



출입구 주변 땅이 깊게 파여 구덩이가 몇 개나 생겼을 때쯤 입구가 막혔고, 출입구를 막은 흙벽 사이로 형형색색의 아이템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허허… 허…….”

[멍. 살은 건가요?]

나는 막힌 입구를 보며 주저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 살았다.’



던전 토벌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정예 몹도 많고 몬스터가 조직적으로 헌터를 사냥한다는 말도 들었다.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죽, 죽는 줄 알았잖아!’



이곳은 던전이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곳.

만용은 죽음이라 했던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오니 그 말이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너무 당황했어. 내가 이렇게 당황할 줄이야.’

나는 주저앉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 하나 크기인 원형의 갈색 공터.

조금 전 머물렀던 공터를 축소한 것 같은 이곳은, 작은 샘이 있고 벽에는 검은 이끼로 가득했다.

‘식수와 식량은 걱정 없겠어.’

샘이라는 식수와 이끼라는 식량이 있다.

고립되었지만, 한동안 버틸 수 있다는 건 좋은 소식이다.

나와 백구는 주저앉아 입구를 바라봤다.

유일한 출입구에는 몰려오는 코볼트 대군을 처치하며 쌓아 올린 흙벽이 자리했다.

흙벽 속에서는 천이 넘는 코볼트가 남긴 잡템들이 반짝였다.

하지만 지금은 저 흙벽을 파내어 아이템을 수거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 * *



막힌 입구를 보며 나와 백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안전해서 다행입니다.]

“그러게…….”



밀실 상태인 공터의 천장에서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는 은은한 빛이 비친다.

우리는 고요한 밀실의 공터에서 지친 심신을 달랬다.

[저 대장… 저희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불안 가득한 백구의 념화가 들려왔다.

그럴 만도 하다. 나조차도 죽음의 공포를 느꼈을 정도니까.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대장 몬스터를 쓰러뜨리면 돌아갈 수 있어.”

백구가 감상에 젖은 눈망울로 위를 바라보았다.

천장으로 가로막힌 그 너머의 푸른 하늘을 보는 것 같았다.

[돌아가면… 저의 새끼들 좀 잘… 부탁합니다.]

“…….”

조금 촉촉하게 젖은 백구의 눈망울.

사망 플래그다!

죽기 전에 남기는 다잉 메시지!

영화나 만화를 보면 이런 말을 남기면 꼭 죽는다.

이건 막아야 했다.

[전 사실…….]

더 들으면 부정 탈 게 확실했다.

“닥쳐”

퍽!

백구의 머리를 한 대 쳤다.

가볍게 칠 생각이었는데…….

[컥!]

“캥!”

백구는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고꾸라졌다.

‘앗, 실수!’

“괜찮아?”

반응이 없다.

백구를 흔들어 보았다.

백구는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기절한 것이다.

“…….”

일단 백구에게 치유를 걸어 줬다.



백구의 불안은 이해가 된다.

‘감정에 무딘 나도 불안한데…….’

이제는 등교 시간이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살아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학교는 무슨…….’



* * *



보스를 잡지 못하면 이곳을 나갈 수 없다.

보스는 정예들과 대량의 몬스터의 호위를 받고 있다.

이 던전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아마 초기에 생성된 던전이라 오래 방치되어서 몬스터가 비정상적으로 많은 것이리라.

몬스터를 줄이지 않으면 보스에게 도달할 수단조차 없다.

이 상황을 돌파할 수단이 필요했다.

‘나의 피지컬만으론 어려워.’

높은 신체 능력이 유일한 장점인데, 수의 폭력 앞에서는 물리적인 강함이란 무용했다.

‘놈들이 동료를 부르기 시작하면… 대군에 쓸려갈 뿐이야!’

물리적인 강함을 압도하는 대군.

대군을 상대할 작전이 필요했다.

‘생각해라, 인우야!’

내가 가진 것, 알고 있는 것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입구 쪽의 깊이 파인 구덩이에 방치된 삽을 바라봤다.

단단한 흙을 두부처럼 파내는 엄청난 삽.



출입문을 막고 있는 흙더미 속에서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아이템들을 봤다.

우연의 산물로 알게 된 몬스터를 유인하는 기술.

마석 파괴.

흙 속에 묻혀있는 각종 금속 잡템들.

나는 손을 내려다봤다.

물질의 형태를 원하는 데로 주무르는 능력.



번뜩!

순간, 전신을 관통하듯 짜릿한 감각과 함께 일망타진의 기발한 묘책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