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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어그로 발동!





공터를 확보했다.

바닥의 아이템들을 확인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아우! 아우!” [대자아앙! 백구 죽습니다.]

“…….”

내가 없었다면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에서 장기가 찔려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만끽하고 있었을 테지만, 내가 있는 이상은 엄살에 불과하다.

[백구 살려! 숨넘어갑니다!]

“기다려 봐.”

숨만 붙어 있어도 회복에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다.

백구의 몸에는 이미 나의 기운이 연결돼 있어 중간 과정 대부분을 생략하고 능력 발동이 가능했다.



츠즈즈즈…….

백구의 부러진 갈비뼈가 제자리를 찾고, 찢어진 상처들이 아물어 갔다.

신체에 활력이 더하며 한층 더 강해진 백구지만 여기까지 오며 겪은 전투로 심신이 지쳐있었다.

우리는 이곳 공터를 거점 삼아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 사이 나는 식수원이 될 샘을 확인했다.

샘의 중앙에서 물이 흘러내렸고, 물속 바닥이 훤히 보였다.

“엄청 맑네.”

이런 걸 1급수라고 하는 걸까?

강력한 회복력을 가진 나는 복통을 겪은 적이 없어 거리낌 없이 물을 한 모금 떠 마셨다.

“꿀꺽.”

“헤헤 꼴딱 꼴딱 꼴딱.”

백구도 목이 말랐는지 샘에 머리를 들이밀고는 폭풍 흡입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물을 마시는 백구를 보며 나는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으으… 이 녀석, 평생 양치도 하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이 물은 오염됐다.

다음부터는 오염되기 전에 식수를 확보해 두기로 했다.



식수 확인을 마치고 정예 코볼트가 남긴 삽을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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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정보]

명칭: 디그 스페이스

등급: 상급

코볼트 2인자가 사용한 전설의 삽.

디그 마법이 중첩되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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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홀로그램이 아이템 정보를 알려줬다.

‘동별급 던전에 상급 아이템이라니.’

코볼트 던전은 장신구로 유명하지, 삽이나 곡괭이가 나온다는 보도는 어디에도 없었다.

‘상급 아이템이라면 최소 은별급 보스는 잡아야 나올 텐데.’

잠시 후, 홀로그램에 설명이 추가되며 의문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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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득조건]

정예 코볼트의 심장에 작은 구멍을 뚫어 죽이면, 아주 낮은 확률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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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곳검이 가져다준 행운이었군.’

삽을 들어 요리조리 살펴보고는 기능테스트를 겸한 삽질을 해봤다.

삽날이 날카롭거나 특별한 건 아닌데 바위처럼 단단한 바닥이 두부처럼 파였다.

역시 상급 템!

예사 물건은 아니었지만, 과연 내가 삽질할 일이 있을지가 의문이다.

‘공사장에 팔아야 하나?’

아무리 땅이 두부처럼 파인다 해도 삽질은 체력을 소모한다.

나 같은 무한 체력의 사기 캐가 아닌 이상, 굴착기를 택하지 삽을 택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던전용이라는 건데.’

던전용이라면 수요자는 결국 헌터고, 상급 템의 가격은 기본 수십 억대.

문제는 무기나 장비가 아닌지라 사려는 헌터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뭐… 이것만 돈은 아니니까.’

배낭 가득 들어있는 잡템들을 생각하면 흐뭇했다.



* * *



정예 코볼트에게 패배한 것이 신경 쓰인 백구는 풀이 죽어서 꼬리를 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백구는 배가 고팠다.

[대장, 밥은 언제 먹나요?]

던전 안에는 먹을 게 충분히 있다고 알려져 있어 자급자족을 생각했다. 그래서 인우는 식량을 챙겨오지 않았다.

“흐흠… 코볼트 고기 먹을래?”

[멍…….]

뜸을 들이며 망설이던 백구는 고개를 저었다.

[대장, 개고기는 좀…….]

동족이 아니라면서 물어뜯어 죽일 때는 언제고, 같은 개과라 먹는 걸 거부하는 백구.

인우는 뭔가 위선적인 기분이 들었지만, 짚고 넘어가진 않았다.

“내 치유 능력이 있어서 굶어 죽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

영양을 섭취하지 않아도 신체 기능만 살려두면 한동안 죽지 않는다.

일단 굶어 죽을 걱정은 없지만, 문제는 역시 공복감이었다.

배가 고팠던 백구는 벽면 가득한 이끼를 바라봤다.

이끼를 뜯어 먹던 코볼트의 모습이 떠올랐고, 백구는 조심스레 이끼를 뜯어먹어봤다.

[오오! 힘이 샘솟는다!]

언제 풀이 죽었냐는 듯 백구의 기운찬 념화가 인우에게 전해져왔다.

[대장! 이끼를 먹으니 기운이 넘칩니다.]

아이템들을 한곳에 모아두던 작업을 멈추고 인우는 백구를 돌아봤다.

백구가 신나게 벽에 붙은 검은 이끼를 뜯어 먹고 있었다.

‘배가 고팠겠지. 그런데 이끼는 좀…….’



인우는 검은 이끼 한 움큼을 뜯어 쥐었다.

“흐흠…….”

칠흑색 이끼. 색이 조금 거북했다.

하지만 뭐든 도전이다.

냠냠… 쩝쩝…….

“으윽.”

이 맛은!

신음이 절로 나오는 맛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상한 맛.

미끈거리다가 텁텁한 감촉이 입안에 퍼졌다.

모래로 만든 미역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백구가 말한 힘이 넘치거나 하는 감각은 없었다.

백구가 느끼는 힘이 넘친다는 감각.

‘아마 마나 관련이겠지.’

인우의 재능치는 0.3. 그에 반해 백구의 재능치는 1.6이다.

백구가 느끼는 감각은 아마 인우가 느끼지 못하는 기감일 것이다.

[오오! 힘이 솟는다.]

“좋겠네.”

백구가 기감을 가지고 있다는 게 확인된 순간이었고, 인우는 녀석을 성장시키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터보다 사냥을 잘 하는 고렙 사냥개!

인우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백구를 바라봤다.

따끔따끔.

인우의 시선이 따갑다. 백구는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 * *



이끼를 배불리 먹은 백구는 잠을 청했고, 그다지 지치지 않은 난 공터 주변의 코볼트들을 처리하며 아이템을 긁어모았다.

던전에 들어와서 반나절 만에 200마리의 코볼트를 처리해 모은 잡템들을 확인했다.



마석조각 200개.

100g 철괴 40개, 납괴 20개, 동괴 20개, 고깃덩어리 10개.

무두질 된 가죽 20개.



아이템 등급이 하급인 던전 부산물들이다.

모두 기준가가 정해져 있어서 가까운 잡화점에 가져가면 쉽게 처분할 수 있었다.

마석조각은 개당 5천 원 정도.

마석조각만 처분해도 100만 원의 수입이 떨어진다.

반나절 정도 사냥해 번 돈 치고는 괜찮지만, 나정도 되지 않으면 기대할 수 없는 액수이기도 했다.



빈익빈 부익부.

고렙은 갈퀴로 돈을 쓸어 담고, 저렙은 장비 유지비 뽑기도 힘든 곳이 던전이었다.

하지만 나는 장비에 돈을 투자할 이유가 없었다.

자원의 보고라 불리는 던전이다.

장비를 획득하거나 재료만 획득하면, 능력을 이용해 원하는 장비를 만들 수 있다.



삽을 창의 형태로 바꿔볼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땅을 파는 기능이 상실될 것이 우려돼 일단 특별한 기능을 갖추지 못한 재료 템에 기운을 연결해 필요한 장비를 만들었다.

송곳검 터크 두 자루에 철괴를 더해 직도 한 자루를 만들었다.

빠른 스피드를 가진 나와 터크의 조합도 나쁘지 않지만, 정교한 타격을 요구하는 터크는 쓰임이 까다로웠다.

‘너무 귀찮단 말이지.’

코볼트 정도는 적당한 도병을 휘둘러 처치하는 게 편하고 효율적이다.

내가 쓸 직도를 만들고 남은 철괴로 백구의 등, 가슴, 머리를 보호할 멋들어진 부분 철갑주를 만들었다.

‘뭔가 조금 아쉽네.’

코볼트 가죽을 이용해 철갑주 안쪽에 받쳐 입을 가죽 갑옷도 만들었다.

‘뭐… 이 정도면 괜찮겠지.’



백구를 깨워 가죽 갑옷과 철갑주를 입혀 줬다.

[멍… 움직임이 좀…….]

“네 몸에 맞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코볼트 공격 패턴을 상정해 치명적인 공격을 방어할 수 있도록 설계했어.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고 적응해 봐.”

[멍!]

그렇게 녀석은 불편한 갑주에 적응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여보다 다시 바닥에 드러누웠다.

‘잠자러 던전 왔냐?’



원하는 장비를 모두 만들기에는 철괴가 부족해 나는 가죽 갑옷에 만족했다.

납은 무게가 너무 나가 장비로 만들기에는 적절치 않았고, 동은 강도가 약해 쓰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 어떤 쓰임이 있을지 몰라 일단 기운을 연결해뒀다.



이것저것 물질을 연결하다 마석조각을 손에 올렸다.

새로운 물질을 느낀 기운이 요동쳤다.

빨리 맛보고 싶다며 보채는 것 같았다.

연결을 위해 기운을 밀어 넣었다.

마석조각에 기운을 연결하는 건 처음이다.

낯선 물질은 연결 작업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백구 녀석, 잘도 퍼질러 자네. 이것만 끝내고 깨워야지.’



퍼석!



잠시 주의를 돌린 틈에 손 안에 있던 마석이 터져버렸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충돌했어!’

연결 과정에서 무언가와 충돌해 폭발하는 감각이 있었다.

백구가 화들짝 놀라서 몸을 튕기며 일어났다.

[멍! 큰일입니다.]

“왈! 왈! 왈!”

작은 소음에 저렇게 놀라다니, 악몽이라도 꿨나?

“아무것도 아니야. 조금 더 쉬어둬.”

[멍멍! 위험! 위험!]

“뭔 소리야?”

[옵니다. 올 겁니다! 멍!]

백구가 당황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왜?”

[방금! 방금! 뭔가 하지 않았나요?]

방금 한 것이라곤 기운을 연결하다 마석이 터진 일밖에?

‘설마…….’

“뭘 느낀 거야?”

[거대한 소리! 향기! 큰일입니다!]

‘그래서 몰려온다는 거야?’

“몰려오면 잡으면 되지.”

[그런 게 아닙니다!]

무엇이 그리도 다급한지 발을 동동 구르는 백구를 보다가 나는 바닥에 엎드려 땅에 귀를 댔다.

부분 활성으로 청각을 끌어 올렸다.

일명 천리지청!

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고요함… 두두두두두.

‘전혀 고요하지 않잖아!’



* * *



나는 위급 상황임을 깨달았다.

백구는 나의 긴장한 표정을 보고는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급히 짐을 챙겼다.

네 방향으로 뚫린 통로를 통해 달려오는 녀석들이 느껴졌다.

십여 마리! 그 뒤에는 이십여 마리! 그 뒤에는 엄청 많이!

이건 상대하면 안 된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튀자!”

[멍!]

백구의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내 도주 결정에 답하는 녀석의 념화가 굉장히 밝게 느껴졌다.

백구는 코볼트 기척이 제일 적은 출입구로 뛰어나갔다.

“야, 같이 가!”

[멍! 빨리 가야 합니다.]

“이런 의리 없는 놈, 같이 가자니까!”

[후퇴는 줄 서서 하지 않습니다!]

다급한 순간이 오면 제일 먼저 주인을 버릴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