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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헌터들은 뻥쟁이





코볼트 5마리와 모퉁이 하나를 두고 대치했다.



부스럭. 부스럭.

보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색적(索敵) 능력이 형편없어.’

우리는 녀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지하는 반면, 녀석들은 아직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녀석들의 접근을 기다렸다.



모퉁이를 돌 때 기습을 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다.

우리를 향해 접근하던 녀석들이 귀를 쫑긋거리곤 코를 벌렁거렸다.

킁! 킁!

‘매복을 알아차렸군.’

녀석들은 자리에 멈춰 서서 삽을 바로잡아 쥐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신장 160㎝. 양손으로 삽을 들었고, 복장은 누더기 헌옷을 입고 있었다.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개머리가 5마리.

‘상위종은 보이지 않아!’



[백구, 작전을 알려주마!]

소리를 내는 것이 조심스러워 념화로 전했다.

[멍! 앞놈 뒷놈 말만 하세요. 물어버리겠습니다. 제일 큰놈으로 갈까요?]

‘그건 닥돌이지 작전이 아니잖아!’

“네가 먼저 달려 나가 미끼가 된다.”

‘나는 뒤통수를 기습한다.’

“걱정하지 마! 다치면 치료해 줄게.”

[상처가 두려우면 어떻게 사냥을 하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물고 늘어지겠습니다!]

‘아니! 네가 물을 찾아야 하는데 죽으면 곤란하지.’

“상대하지 말고 바로 지나가. 너를 쫓는 놈들 뒤를 내가 친다.”

[그런 야비…….]

나는 인상을 와락 구겼다.

[……훌륭한 작전이라니! 역시 대장입니다!]

‘이걸 진짜! 확! 마! 그냥!’

[적당히 달리다 다시 돌아와라.]



* * *



인우는 터크 두 자루를 양손에 쥐고 다리를 벌려 자세를 낮췄다.

한쪽 손으로 바닥을 살짝 짚으며 튀어나갈 준비를 했다.

백구가 모퉁이를 튀어나가 돌진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침입자에 코볼트가 당황하며 삽을 휘둘렀다.

백구는 빠르게 좌우로 몸을 틀며 삽을 피했다.

“왈! 왈!”

[소용없다, 견공미 없는 녀석들아!]

백구가 그들을 돌파해 통로 반대편으로 뛰쳐나갔다.

그들의 눈이 백구를 쫓아 고개를 돌렸을 때, 인우가 이미 지척에 파고들어와 있었다.

번쩍!

푹, 푹, 푹!

양손에 쥐어진 터크가 번뜩였다.

세 마리 코볼트를 처리한 건, 찰나였다.

한 마리는 목을 찔렀고, 두 마리는 갈비뼈 사이로 심장을 찔렀다.

모두 치명적인 급소였다.

‘셋!’



백구가 몸을 돌려 코볼트 한 마리를 덮쳤다.

콰직!

목덜미를 정확히 물었다.

녀석이 백구를 떨쳐내려 삽을 휘둘러봤지만, 백구가 점한 위치가 워낙 절묘해 삽이 닿지 않았다.

콰악!

백구의 이빨이 동맥에 닿았다.

푸슈슈!

코볼트는 피를 뿌리며 쓰러졌고, 이제는 한 마리가 남았다.

남은 녀석이 당황하며 허둥댈 때, 인우의 터크가 번뜩였다.

푹!

심장에 구멍을 내고 나온 터크.

인우가 피를 털며 뒤로 몸을 날리자, 터크에 찔린 코볼트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녀석들의 피와 시체가 붉은 빛무리가 되어 흩어진다.

잔혹한 핏물이 빛무리가 되어 흩어지는 광경은 일견 아름다웠다.

시체와 핏물이 사라진 장소에는 붉게 빛나는 마름모 형태의 조각이 남아 있었다.

마석조각이었다.

‘…….’



* * *



스텟이 높다고는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쉬웠다.

코볼트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느리고 약했다.

백구가 급하게 뛰쳐나가는 바람에 [활성]조차 깜박하고 싸웠다는 걸 깨달았다.

“…….”

며칠 전 보았던 헌터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코볼트는 무리를 지어 다녀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거기다 빠른 움직임과 색적 능력이 있어 기습도 힘들죠. 정말로 까다로운 몬스터입니다. 하지만, 드랍템이 코볼트 만큼이나 매력적인 몬스터는 없죠.]



빠른 움직임? 색적 능력? 까다로워? 하나도 와 닿는 부분이 없었다.

‘뭐야! 헌터들은 다 뻥쟁이야?’

그래도 마석과 함께 떨어뜨린 철괴를 보니 드랍템이 매력적이라는 말은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헤헤…….”

백구가 흥분으로 거칠어진 숨을 가라앉히며 다가왔다.

자칭 무적의 견공왕인 백구는 앞으로 반복될 전투를 생각하며 긴장하고 있었다.

‘11렙 백구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

그리고 스텟 합계 167인 나의 수준은 일반 코볼트로는 판단할 수 없었다.

동별급 던전의 위험도는 생각보다 적었고, 몬스터도 약했다.

물론 이건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다.



헌터는 속성 마력을 가진 각성자와 수행을 통해 내력을 쌓은 전사로 구분된다.

각성자는 화, 수, 지, 풍 같은 속성 마력을 다루는데, 사람들은 그들을 마법사라 부르기도 했다.

백구는 조금 특수한 경우인데, 내력은 쌓았지만 선천적인 속성 내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다.



몬스터에게 일반 몹, 정예 몹, 보스 몹 같은 호칭이 있듯 전사에게도 레벨 단계에 따른 호칭이 있었다.

Lv. 10, 기감을 가진 수행자.

Lv. 20, 내력을 축적한 견습전사.

Lv. 30, 내력으로 신체 강화를 이룬 진정한 전사.

Lv. 40, 중급 전사.

Lv. 50, 검기를 발현하는 상급 전사.

던전이 생긴 지 2년에 가까운 시간.

상급 헌터라 불리는 사람은 세계에서도 극소수고, 한국에는 다섯 명이 있었다.



던전 보스를 잡기 위해선 정예 몹의 저지선을 돌파해야 한다.

동별급 던전 토벌 때는 중급 헌터 5명과 헌터 25명 정도가 투입된다.

과잉 전력이라 할 수도 있지만, 요즘은 동별급 토벌에 목숨을 거는 사람은 없다.

‘은별급이라면 모르지만.’

헌터의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면, 단신으로 동별급 던전을 무사히 토벌하려면 최소 40레벨 후반대여야 한다.

그 기준으로 판단하면, 내 전투력은 40레벨 후반대 헌터에게도 절대 밀리지 않았다.

무엇을 기준으로? 그건 여동생을 기준으로 판단한 것이다.



1년 반 동안 전사 학교에 다닌 여동생의 레벨은 29.

중등부 최강이었고, 거기다 실전에선 30렙 중반대의 교사진과 대등한 실전 능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레벨 20대가 30대와 견준다는 건 경지 차를 무시하는 현상.

그건 여동생의 스텟이 일반 헌터에 비해 압도적이기도 했고, 감각이 좋아서이기도 했다.

그런 여동생의 전투력과 내가 능력을 발현했을 때의 전투력을 눈대중으로 비교해보면 보디빌더와 가녀린 여자아이만큼의 격차가 있었다.

‘그 정도는 되니 던전에 발을 들일 생각을 한 건데…….’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능력을 발현했을 때의 얘기고, 증폭되지 않은 순수 피지컬에서의 전투력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능력 발현 없이도 10렙대 몹을 가볍게 처리한 지금, 순수 피지컬만으로도 여동생과 동급이라 추측됐다.

‘엄청나네.’

첫 전투로 나는 자신의 전투력에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기회와 죽음이 공존하는 던전.

거기다 여긴 2년간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은 위험도 최상의 던전이었다.



첫 전투를 무사히 마친 후에 나는 낮인지 저녁인지 알 수 없는 은은한 빛이 비치는 통로를 따라 걸었다.

바닥과 벽이 바위처럼 단단한 통로는 넓었고, 길의 변화는 없었다.

‘풀도 없고, 나무도 없고.’

삭막하기 그지없는 통로에선 잦은 갈림길이 나타났고, 정기적으로 코볼트 5마리 무리와 조우했다.

녀석들은 의복을 갖추고 있어 세세한 근육의 미동까지는 볼 수 없었지만, 단조로운 공격 패턴이 눈에 익자 움직임을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백구조차 한 마리 정도는 거뜬히 상대할 정도라 작전 없이 정면 돌파를 감행했다.



휘둘러 오는 삽은 스텝을 가볍게 밟아 피했고, 내 양손에 쥐어진 터크가 번뜩일 때마다 코볼트의 몸에는 어김없이 구멍이 뚫렸다.

백구도 빠르게 돌진해 몸통 박치기로 한 녀석을 넘어뜨리곤 급소를 물어뜯었다.

내가 넷을 처리할 동안 백구가 한 마리를 맡았다.

죽은 녀석들은 흩뿌린 피와 함께 빛이 되어 흩어졌다.

그 자리에 남은 건 붉은 마석조각과 잡템들.

마석, 금속, 가죽, 고기 같은 잡템을 수거해 배낭에 넣으며 식수를 찾아 이동했다.

식량은…….

‘먹을 게 없으면 이거라도 먹어야지.’

녀석들이 남긴 개고기(?)로 어떻게든 될 것이다.



던전에서의 사냥은 삭막하고 지루한 여정의 반복이었다.



* * *



킁! 킁!

백구가 고개를 들었다.

[대장, 찾았습니다! 물입니다!]

백구가 드디어 그렇게 찾아 헤매던 식수를 찾았다.

몇 차례 모퉁이를 돌아 도착한 곳에는 출입구처럼 벽에 구멍이 뚫려 있었고, 구멍 안을 들여다보니 높은 천장을 가진 공터가 있었다.

공터의 네 방향으로는 벽이 뚫려 출입구 역할을 했고, 중앙에는 분수대 같은 작은 샘이 있었다.



‘물이다!’

먹을 수 있는 물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인공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샘 주위와 공터 벽면에는 검은 이끼가 가득했다.

코볼트 몇 마리가 검은 이끼를 뜯어먹고 있었다.

“…….”

이끼 먹는 코볼트라, 아주 선식을 하네.

백구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멍. 식성이… 대단하군요.]

백구의 반응으로 알 수 있었다.

개과라서 이끼를 먹는 것이 아님을.



입구 벽에 바짝 붙어 몸을 숨기곤 감각을 집중해 녀석들의 수를 헤아렸다.

‘1… 2… 3…….’

“20마리…….”

[20!]

백구와 거의 동시에 녀석들의 수를 파악했다.

적지 않은 수인지라 굳이 무모하게 정면 돌파를 고수하지는 않기로 했다.

나는 잡템으로 가득한 무거운 배낭을 내려두고 전투 준비를 했다.



마석 하나를 바닥에 던졌다.

또르르.

마름모꼴의 마석이 굴러가며 소리를 냈고, 호기심 가득한 코볼트 한 마리가 다가왔다.

킁! 킁!

녀석은 접근하다 말고 뚫린 입구 양옆 벽면에 붙어있는 우리의 존재를 눈치 챈 듯 동료를 불렀다.

‘신중하기는.’



5마리의 코볼트가 낚였다.

입구 밖으로 머리를 들이민 순간, 나의 터크가 번뜩였다.

귀를 정확히 파고든 터크가 뇌를 휘젓고 빠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백구가 달려 나가 코볼트 한 마리의 다리를 물고 고개를 휘저었고, 나 또한 뛰어들었다.

신장 160㎝인 녀석들에 맞춰 나는 자세를 낮추고 싸웠다.

휘둘러 오는 삽이야 몇 대 맞아줄 수 있지만, 녀석들의 물기 공격은 아주 치명적이라 머리를 들이밀며 가슴 안으로 파고드는 것만은 경계해야 했다.



녀석들의 심장과 머리를 노려 터크를 찔러 넣었다.

시끄러운 소란에 휴식을 취하던 코볼트들이 몰려왔다.

그중에는 머리 하나쯤 더 큰 녀석도 있었다.

레벨 20 이상의 상위종!

‘정예 코볼트다!’



정예 코볼트는 방어구로 흉갑과 견갑을 착용해 어깨와 가슴을 보호하고 있었고, 무기로는 곡괭이를 들고 있었다.

나는 녀석을 최대한 피하며 일반 코볼트를 빠르게 정리해 갔다.

시간을 끌면서 새롭게 등장한 정예 코볼트의 행동 패턴을 익히고, 어느 정도의 신체 능력을 갖췄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백구는 나의 의도를 읽지 못했다.

[덩치 큰 놈! 내가 상대다!]

백구가 빠르게 좌우 기동을 하며 정예 코볼트의 곡괭이 공격을 피하면서 뛰어들었다.



* * *



와직!

‘이런…….’

백구는 빠른 속도와 도약력을 선보이며 녀석의 어깨를 물었다.

하지만, 견갑이 보호하는 어깨를 물고 말았다.

정예 코볼트는 히죽 웃으며 곡괭이를 휘둘러 백구를 떨쳐냈다.

퍽!

깨갱!

벽에 충돌한 백구는 머리를 흔들며 일어서려다 다시 주저앉았다.

백구는 신체적 충격과 함께 정신적 충격까지 받았다.

‘당했다! 머리 하나 더 클 뿐인데, 격이 달라!’

인우의 치유를 통해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갖추게 된 백구.

하지만 밖에선 견공왕이라 불리는 들개의 왕일지 몰라도 이곳은 헌터가 활동하는 던전이다.

마나조차 없이 정예 몬스터를 상대한 것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예외는 있다.

마나는 없어도 순수 피지컬만으로도 마나를 축적한 헌터를 가볍게 넘어선 존재.

바로 인우다!

인우가 주변의 코볼트를 빠르게 정리하고 녀석을 향해 터크를 찔러 갔다.

챙! 챙! 챙! 챙!

연속으로 찌르기를 밀어붙여 봤지만, 녀석은 당황하지 않고 곡괭이를 이용해 막아냈다.

일반 몬스터와는 격이 다른 손맛이었다.



피식.

녀석이 비웃었다.

인우의 무기인 터크는 짧았고, 녀석의 몸에 닿으려면 거리를 좁혀야 했다.

거리를 좁힌다 해도 방어구를 피해 찔러야 한다.

그것을 녀석도 알고 있다.

정예 코볼트는 인우가 파고드는 틈을 노리고 있었다.

체력에 자신 있는 녀석은 인우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거리를 좁히려 할 때를 노리다니.’

머리 굴리는 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대장, 조심! 파고드는 틈을 노리고 있어요!]

백구가 쓰러진 채 충고해왔다.

“알고 있어!”



한동안 유효타 없이 서로를 견제하며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인내심 싸움에서 녀석이 이겼다.

인우는 돌진을 감행했다.

거리를 좁히려는 인우에게 곡괭이가 휘둘러져왔다.

인우와 녀석의 눈이 동시에 빛났다.

‘걸렸다!’

정예 녀석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인우는 돌진 중에 몸을 틀며 급정거를 했다.

정예 코볼트의 곡괭이가 공기를 가르며 인우의 코앞을 스쳐 지나갔다.

쾅!

곡괭이가 바닥에 찍히며 일순 무방비 상태가 된 정예 코볼트.

피식.

인우는 당황하는 녀석을 살포시 비웃어 주고는 흉갑이 방어하지 못한 옆구리 쪽으로 터크를 찔러 넣었다.

“심장이다!”

“크악!”

정예 코볼트는 단말마의 비명을 뱉고는 전신에 힘이 풀려 곡괭이를 떨어뜨렸다.

바닥에 떨어진 곡괭이는 녀석과 함께 빛무리가 되어 흩어졌다.



빠른 속도, 감지 능력, 전투 지속력 등을 장점으로 삼는 코볼트다.

하지만 그 무엇 하나도 인우의 순수 피지컬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속도, 지구력, 감지력.

‘내가 제일 자신하는 거니까.’

사냥하면서 느꼈다.

상성이 너무 좋다.

인우에겐 축복이었고, 이들에겐 재앙이었다.

곡괭이를 든 녀석이 사라진 자리에 잡템이 아닌 무기가 떨어져있었다.

아니, 무기라기보다는… 도구?

“흐흠…….”

[멍.]

곡괭이 녀석… 삽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것도 아티팩트인가?’

처음으로 얻은 장비가 삽이라니.

인우는 자신의 행운 수치가 알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