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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개코 가이드





나는 고등학생이 됐고, 인서는 중학생이 됐다.

인서의 전사 학교는 서울과 붙어 있는 수성시에 자리하고 있다.



전사 학교와 각성자 학교, 각종 던전 산업 도시로 발전 중인 수성시.

아버지도 부서를 옮기며 수성시로 출퇴근을 하게 됐고, 그로 인해 우린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부자 동네에서 계획도시로의 이사다.

집안 재정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수성시의 일반 학교는 대부분이 전사 학교나 각성자 학교로 전환됐다.

일반 학교가 몇 개 남지 않아 나는 서울로 등교해야만 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부탁해 자취를 하기로 했다.

“용돈은?”

집안 재정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손을 벌리고 싶지는 않았다.

“괜찮아요. 직접 벌어 쓸게요.”

“옛날 같은 방법은 쓰지 마라.”

하하… 500원 동전 얘기를 하시는 건가?

“잊어주세요. 이제 애도 아니고 고등학생인데.”

“아직 한참 애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았다.

“밥은 꼭 챙겨 먹고!”

“자주 집에 오고!”

“나쁜 친구들 가까이하지 말고!”

“전사 학교랑 마법사 학교 애들은 조심하고!”

어머니의 충고는 끝이 없었다.

여동생은 내 자취 소식에 꿍해 있었다.

“피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이는 여동생의 배웅을 받았다.



자취하며 아침저녁을 챙겨 먹는 건 쉽지 않았다.

한국은 홀로 외식하는 문화도 없었고, 배달도 일인분은 어렵다.

요리 스킬을 갈고 닦았다.

능력! [간섭] 1단계 [활성]

식자재의 신선도를 올린다.

[물질간섭] 1단계 [형태조종]

식칼을 날카롭게!

탁! 탁! 탁! 탁!

고수의 손놀림으로 당근과 김치 그리고 잡다한 식자재를 잘랐다.

중국식 프라이팬인 웍을 꺼내 볶는다.

“성공이다!”

최상의 신선도를 자랑하는 식자재와 날카롭게 벼려진 식칼의 만남!

군침이 흐를 것 같은 볶음밥이 완성했다.



냠냠, 꿀꺽…….

“윽!”

맛이 없다.

딱딱하게 씹히는 당근. 목구멍에 걸리는 김치.

식자재 이전에, 나는 요리의 기초를 몰랐다.



생활비에 대한 계획은 있었다.

특별한 자격이 없다면 미성년자는 던전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미성년자가 던전 부산물을 거래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참 이상한 법이다.



공간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는 던전 입구는 가까이 접근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곳에는 아직 정부가 파악하지 못한 던전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아직 정부의 손이 닿지 않은 던전을 토벌해 부산물을 팔 생각이었다.



* * *



[인우야! 저기야, 저기. 벽이 막 흔들리는 것을 봤어.]

야산 중턱.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동물들의 길.

바위벽 한쪽에 사람이 허리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인우는 허리를 숙여 구멍에 몸을 밀어 넣었다.

구멍 끝에서 미세한 갈색 일렁임이 보였다.

교묘하게 감춰진 던전의 입구.

동별급 던전의 입구다.

이런 곳이라면 1년 반이 넘도록 발견되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됐다.

“고맙다, 흑묘. 나중에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아니다, 인우. 너는 나의 은인이다. 고양이, 은혜 갚는다.]

흑묘가 고양이 세수를 하며 기특한 말을 했다.

인우의 치유로 신체 능력뿐 아니라 지능이 많이 오른 동물들이 있다.

똑똑해진 그들이 물어다 주는 정보 중에는 가끔 쓸 만한 것도 있었다.

흑묘가 물어다 준 던전 입구의 정보는 특급 중의 특급이었다.



‘어디 보자…….’

동별급 던전 발견자 등록 시 상금 천만 원.

진입 토벌 시 5억.

몬스터 부활 지점을 포함한 지도 작성 시 2억.

토벌에는 헌터 자격증과 실적이 필요했고, 협회에서 의뢰를 받아야 했다.

‘흐흠, 내가 신고해서 받을 수 있는 돈은 천만 원뿐인가?’

안에 뭐가 있을지 궁금한 관계로 신고는 나중으로 미뤘다.



분명 오랜 시간 방치된 던전이다.

알려진 정보대로라면 방치된 던전에는 30렙대 보스 몬스터가 있다.

보스 몬스터는 20렙대 정예 몬스터가 호위하고, 던전 곳곳에는 10렙대의 일반 몬스터가 흩어져 있을 터.

문제는 보스 몬스터를 잡아야 던전에서 귀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던전은 생각보다 넓다고 했어.’

고등학생인 인우.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오전까지 최대 60시간.

그 안에 보스를 찾아 쓰러뜨려야 한다.



* * *



예전에 자주 지나다니던 골목을 찾아갔다.

그곳에 자칭 서울시 최강의 들개 백구가 있다.

헤! 헤! 헤!

“백구, 너의 도움이 필요해.”

[대장, 오랜만입니다.]

헤! 헤! 헤!

고개를 바짝 들며 개폼을 잡는 백구.

헐떡이는 숨소리 때문에 폼이 안 났다.

순진하고 귀엽게 생긴 백색 대형견.

말투는 어리벙벙했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를 대장이라 불렀다.

‘새끼 때는 귀여웠는데… 너무 컸어.’

자칭 서울 최강 들개 백구.

하지만 아무리 강해봐야 개는 개다.

필요한 건 녀석의 탈견급 후각이었다.

각 던전에는 휴식을 취할 공간이 있다.

그곳을 찾는 데 녀석의 후각은 도움이 될 것이다.

‘식수나 식량도 안에서 보급할 계획이니까.’

그전에, 저 지저분한 몰골 좀 어떻게 해줘야겠다.



금요일.

“선생님, 조퇴하고 싶습니다.”

“그래, 가서 쉬어라!”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학생의 행동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 게 우리 담임의 미덕 같았다.



보통 던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장비를 갖춘다.

무기, 방어구, 예비 무기, 식량, 야영 세트, 포션, 해독제.

모두 필수품들.

하지만 나는 돈이 없다.

가진 건 뾰족한 송곳 검 ‘터크’ 두 자루뿐.

집에 있는 식칼들로 만들어낸, 찌르기에 특화된 짧은 송곳 검 두 자루는 상대의 공격을 막거나 베려고 하면 부러질 수 있다.

기습전 특화 암살 무기.

단단하고 내구력이 강한 무기의 확보도 절실했다.



* * *



“백구는 아직 안 왔네…….”

조금 일찍 온 것 같았다.

던전 입구를 바라보자 살짝 걱정이 들었다.

30렙대 보스가 얼마나 강한지 나는 알지 못한다.

‘무모한 건가?’

적을 모르니 나를 먼저 확인했다.

전투에 사용 가능한 능력은 2가지.

[활성]과 [형태조종]

증폭된 신체능력으로 행하는 물리 공격.

자유자재로 변하는 무기로 기습 공격.

그 정도인가?

지금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난 물리 공격 특화 캐릭터라는 것이다.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 몬스터를 만나면…….

‘죽잖아!’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액체 몬스터 슬라임만 만나도 이길 수 없다.

‘돌아가자!’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알바나 찾자!

아니, 그냥 던전 발견자 신고로 상금을 받자!

천만 원이면 1년 생활은 충분할 거야!



나는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대자아앙! 백구 왔어요!]

백구가 바위벽 구멍 안으로 돌진해와 나에게 뛰어들었다.

‘이런!’

백구는 나와의 포옹을 원하는 것 같았지만, 나에게 있어 전신의 무게가 실린 백구의 포옹은 앞발 밀치기였다.



퍽!



백구에게 밀쳐져 넘어가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큭, 젠장!’

던전으로 빨려 들어가며 속으로 외쳤다.

‘네 이놈, 백구!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쿵!



엉덩방아를 찧으며 무사히… 던전 입성이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주변을 확인했다.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는 은은한 빛이 던전 안을 비추고 있었다.

바닥과 벽은 돌처럼 단단한 재질이지만 흙처럼 갈색을 띠고 있었다.

‘단단한 흙?’

“킁킁!”

[흙냄새!]

한 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사태 파악이 우선이었다.

갈색의 지하 통로. 눈앞에 보이는 홀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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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정보]

이름: 차인우 / 나이: 17

레벨: 1 / 마나등급: 0

재능치: 0.3 / 마나: 0

근력 39 / 민첩 39 / 체력 50 / 지능 39



-던전 정보*

-펫 정보*

-칭호 정보

-스킬 정보

-장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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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으로만 듣던 상태창이었다.

‘스텟이구나.’

처음 보는 문자임에도 알아볼 수 있었다.

상식을 넘어선 현상.

‘이건 마법?’

의지에 반응해 보였다 사라졌다 하는 홀로그램.

정말 마법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몇 가지 수치에 궁금증을 가지자 홀로그램에 문자가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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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1 (수련과 실전을 통해 마력 등급을 올릴 수 있다.)

재능: 0.3/0.3(마나 친화력과 잠재력)

근력 39 / 민첩 39 / 체력 50 / 지능 39



내력: 0 (전사의 정제된 마나)

[전사의 재능이 없습니다.]



마력: 0 (마법사의 대기와 공명하는 마나)

[마법에 재능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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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조작 없이도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 추가되는 설명.

확실히 신기했다.

보도 자료를 통해 알려진 헌터들과 비교했을 때, 나는 압도적인 능력치를 갖추고 있었다.

‘체력 50과 올 스텟 39라.’

아직 스텟을 검사하는 도구는 없다.

정부에서 파악한 건 재능치와 레벨 정도.

내 재능치와 레벨은 쓰레기 이하.

스텟과 레벨의 상관관계는 없다고 알려져 있다.

단지 10 정도가 평균치며, 20은 천재적인 수치라 상당한 수련을 해야만 도달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10과 19의 차이는 크지 않다.

19와 20의 차이는 단순한 1의 차이를 넘어 단계의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30렙 대의 헌터가 한 가지 스텟이 20을 넘으면 후한 평가를 받았다.

그럼 30대 스텟은? 괴물급이다.

그런데, 난 3가지 스텟이 30대다.

체력도 들어 본 적 없는 50이라는 수치다.

‘스텟 하나만큼은 압도적이네.’

높은 스텟의 대가로 마나가 없는 거지만, 순수 스텟만 따지면 말도 안 되는 수치라 할 수 있다.



30렙의 전사는 내력으로 육신을 강화했다.

스텟을 약 5 정도 일시적으로 증폭시킬 수 있었다.

고렙으로 갈수록 그 증폭 정도가 크다고 하니, 헌터들 사이에서는 스텟이 높다고 강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헌터의 레벨과 강함은 마나 등급과 마나량으로 말해졌고, 재능치를 잠재력으로 봤다.

마나 만능주의가 팽배하다고나 할까?



‘빠르고 강하면 장땡이지.’

내력? 마력? 뭐든 상관없다.

전투에서는 강한 놈이 이긴다.

그리고 난 강하다.

‘나에게는 활성이라는 비장의 카드도 있고.’

활성 상태의 나는 평시의 나와 차원이 달랐다.



-펫 정보*

펫 정보가 있어 살펴보니 백구의 정보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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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 정보]

이름: 백구 / 종족: 견족

레벨: 11 / 내력 등급: 1.1

재능치: 1.6 / 풍속성 내력: 22

근력 12 / 민첩 15 / 체력 15 / 지능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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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 자칭 서울 최강의 들개라더니, 한국에도 몇 없을 법한 엄청난 재능치다.

내력에도 속성이 붙어있다.

거기다 레벨이 11.

‘뛰어난 줄은 알았지만, 11레벨이면 헌터 학교 수행자급이잖아!’

여동생이 다니는 전사 학교에서도 10렙 이상은 드물었고, 전국을 뒤져봐도 속성 내력을 가진 자는 손에 꼽혔다.

‘아주 레어하네.’

스텟도 이 정도면 양호한 편.

11렙의 수행자들과 비교했을 때, 아주 높은 편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백구의 정보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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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정보]

코볼트 던전

귀환 불가.

던전 보스를 처치하면 귀환이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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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야. 여기가 코볼트 던전이어서.’



코볼트는 이족보행의 개과 몬스터다.

주로 삽과 곡괭이를 휘두르고, 강력한 치악력으로 상대를 물어뜯는다.

알려지기로는 무리 지어 움직이며,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체력, 기습이 통하지 않는 색적(索敵) 능력을 갖추고 있다.

상대하기가 조금 까다로운 녀석들이지만, 이들이 떨어뜨리는 아이템은 너무도 매력적이다.

금속과 귀금속, 장신구를 떨어뜨리는 대박 몬스터.

오랜 시간 방치돼 보스가 있는 던전은 드랍율이 굉장히 높다.

즉!

금광을 발견한 것이다.

‘대… 박!’



대충 확인을 마친 나는 이동을 위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통로 주변을 살피고 있던 백구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주변의 위험을 감지하며 이동한다.”

[멍!]



킁! 킁!

백구는 바닥에 바싹 붙어 냄새를 맡으며 움직였다.

“식수와 식량이 있을 만한 곳을 먼저 찾아!”

[흙냄새뿐입니다.]

“열심히 찾아봐!”

[멍!]



상대는 물리 공격이 통하는 몬스터.

까다롭다 해도, 상성상 최악은 피했다.

허리에 찬 두 자루 터크에는 이상이 없다.

등에는 배낭을 멨고, 아날로그 태엽 시계를 가져 왔는데 작동이 되지 않았다.

‘시간을 알 수 없다니.’

답답했다.



백구의 코를 믿지만, 감각을 집중해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혹시 모를 적의 접근에 대비했다.

높이 3m, 넓이 4m 정도의 갈색 통로.

이동하며 많은 갈림길을 만났다.

자주 찾아오는 갈림길.

한결같은 갈색 통로는 미로를 방불케 했다.

갈림길을 만나면, 백구가 물이 있을 만한 곳을 선택해 이동했다.



킁! 킁!

[쇠와 개 냄새가 납니다!]

고대하던 몬스터의 등장이다.

“몇 마리야?”

[다섯입니다.]

처음부터 5마리. 레벨 대는 10~19인 일반 몹으로 추정.

부담스러운 숫자다.

그래도 백구 5마리를 상대한다 생각하면…….

‘식은 죽 먹기지!’



[피해 가나요?]

“아니. 모두 죽인다.”

[함께 하겠습니다!]

‘이거, 동족상잔 아닌가? 이족보행이라 해도 같은 개과인데.’

“괜찮아?”

[멍?]

“흠, 그러니까… 같은 동족 아니야?”

[멍! 제 동족에는 저런 견공미 없는 녀석들은 없습니다만.]

“견공미? 그건 또 뭐야?”

[그런 게 있습니다.]

백구가 무시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거슬렸다. 심히 거슬렸다.

‘날 잡아 교육 좀 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