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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천재 여동생의 둔재 오빠





아티팩트 재능 검사기는 내 능력을 측정하지 못했다.

나는 각성자가 아니었고, 전사의 재능조차 나오지 않았다.

‘조금 실망이네…….’

하지만 달라질 것은 없다.

세상이 볼 때 나는 이질적이다.

물론 나의 입장에서는 이 세상이 이질적이다.

비유하자면 그렇다.

고양이가 사는 세상에 나는 늑대로 태어났다.

변화해 가는 세상에서 늑대가 있나 기대도 했었지만, 호랑이와 표범이라는 전사와 마법사만 생겼을 뿐 개과는 나 혼자였다.

흐흠… 조금 이상한 비유였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변화된 세상에서 난 여전히 이질적인 존재고, 능력을 숨기며 살아감에는 변함이 없었다.



학교의 분위기는 예전과 달라졌다.

선택받지 못한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모두가 의욕이 한풀 꺾여 있었다.

그래서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나름의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혹은 상실감을 해소하기 위해 희생양을 찾았다.



“야, 저 선배야!”

“저 선배가 소문의 0.3?”

“그래, 맞아. 전교 최하!”

“나 같으면 쪽팔려서 자살했다.”

“0.3이랑 같은 공기를 마셔야 한다니, 내 재능치가 떨어지면 어쩌지?”

며칠 전만 해도 잘 생겼다고 쫓아다니던 여자아이들이 징그러운 벌레 보듯 나를 본다.



주민들 사이에도 소문이 퍼졌다.

“영철 엄마, 이 학교가 0.3이 다닌다는 학교에요.”

“제 아들이 이 학교 다니게 되면 어쩌죠?”

“저는 그래서 주소지 옮겨 뒀어요. 다희를 0.3이 다니는 학교로 보낼 수는 없잖아요.”

“저도 고민해 봐야겠어요.”



‘인간들이란…….’

기대도 없었기에 실망도 없다.

그저 한없이 한심하게 느껴질 뿐이다.



* * *



여동생 인서에게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아버지가 승낙했다.

집에 방송국 관계자가 왔다.

“오빠, 들어가 있어. 부끄러우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내가 애야? 됐으니까, 방해하지 말고 방에 가 있어!”

‘애니까 그렇지.’

인우는 여동생에게 떠밀려 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재능치 검사에서 전국 두 번째, 서울시에서는 첫 번째를 기록한 차인서 양의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기자가 마이크를 내밀며 생각한다.

‘시키니까 하긴 하는데, 이게 방송에 나갈지 모르겠네.’

높은 재능치의 아이들을 인터뷰해본 결과 소감은 대동소이하다.



“운이 좋았습니다.”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달랐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앞으로 강한 헌터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식상했다.

강렬한 무엇이 부족했다.

높은 재능치는 그저 복권에 당첨된 정도의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강한 메시지를 얻는 것은 무리였다.

‘쓸모없는 인터뷰야. 그래도 일이니까…….’

속과는 달리 겉은 착실히 인터뷰를 진행했다.



“차인서 양, 1.7이라는 높은 재능치가 나왔네요. 지금의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얼굴 양옆으로 내려온 애교머리, 목선이 드러나는 단발.

활동적인 인서에게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마음을 가다듬듯 감겨있던 인서의 눈이 떠진다.

‘호오… 카메라발은 좋구나!’

시선을 집중시키는 매력적인 눈동자.

“재능 검사장에선 오빠와 함께였어요.”



인서는 그날을 떠올렸다.

모두가 검사 결과에 일희일비했다.

낮게 나오면 안타깝게 여겨졌고, 높게 나오면 부러움과 질투를 샀다.

‘전학은 싫은데… 비웃음 사기는 더 싫고…….’

인서는 불안했다.

이 검사로 인해 찾아올 변화가 두려웠다.

힘들고 두려울 때는 옆을 봤다.

언제나 담담한 표정의 오빠가 있었다.

오빠가 인서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어떤 점수가 나오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높은 점수든 낮은 점수든 놀라지 마라!”



오빠는 이미 결과를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바보처럼 보이지만 어릴 적에는 천재성이 남달랐던 오빠다.



“오빠는 걱정 안 돼?”

“전혀. 전사 학교든, 일반 학교든, 네가 잘할 수 있다는 걸 아는데 뭘 걱정해?”

인서는 열이 나는지 얼굴을 붉혔다.

이런 쑥스러운 말을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하는 오빠다.

“나 말고, 오빠 걱정! 낮게 나오면 어떡해?”

“나? 그것도 걱정 안 하지.”

“왜?”

“우리 가족은 이런 의미 없는 숫자에 연연하지 않으니까.”



흔들리지 않는 믿음 가득한 눈이다.

두근.

그렇다.

무엇을 걱정했던 것일까?

누구의 평가를 걱정했던 걸까?

어떤 평가가 나와도 나를 그대로 바라봐줄 가족이 있는데.

어떤 수치가 나와도 부끄러워할 필요도 기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인서는 당당하게 재능 검사기에 손을 내밀었다.

오빠가 부끄럽지 않게!



인서의 목소리는 좋았지만, 조급함과 긴장이 묻어났다.

“저는 높게 나왔지만… 오빠는 반대로 아주 낮게 나왔어요.”

전하고 싶은 말! 간절할수록 말이 꼬인다.

“그러니까… 기쁘지, 않아요. 슬프지, 않아요. 그러니까… 중요하지 않아요. 재능치 검사는 중요하지…….”

‘말이 정리가 되지 않아!’

인서는 당황했다.

당황한 인서와는 달리 기자와 카메라맨은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전하려 하는 인서의 마음을 느꼈다.

‘좋아! 바로 이거야!’

‘오호! 무언가 가슴을 간질이는 것 같다.’

‘귀엽네…….’

부족한 어휘라 해도 진심이 담긴 말은 마음에 닿는다.

“그러니까… 전 인서고! 오빠는 오빠에요! 이런 숫자 따위로 슬프고 기쁘지 않아요!”

좋다!

‘이거, 쓸 수 있어!’

재능 검사의 부작용, 상실감을 느낀 많은 사람을 대변하는 좋은 인터뷰였다.

그리고 그 대사에는 귀여운 소녀의 진심이 담겨있다.

‘좋아할 사람들이 많겠어!’

높으신 분들이 좋아할 만한 무언가를 건진 것 같아 관계자들은 무척 기뻤다.



* * *



“잘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좋았습니다. 혹시 연예계로 보낼 생각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 주시죠. 다리 정도는 놓아 드리겠습니다.”

“하하,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야죠!”

“앗, 제가 실례했네요. 본인에게 먼저 물어봐야 하는 건데. 이런 아버님이 있으니 그런 참한 아드님과 따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빈말이라도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기자와 촬영진을 웃으며 배웅했다.



여동생 인서에게 물었다.

“너 나한테 할 말 없어?”

“없어!”

인서는 얼굴을 붉히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없으면 없지, 왜 성질이야?”



며칠 후, 여동생의 인터뷰가 방영됐다.

-그러니까… 전 인서고! 오빠는 오빠에요! 이런 숫자 따위로 슬프고 기쁘지 않아요!

부족한 어휘가 조금 낯설었지만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

‘그래, 나는 나야!’

‘재능치가 뭐라고! 변하는 건 없어!’

상실감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인서의 인터뷰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

인서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이 생기고 낯선 사람들이 좋은 헌터가 되라고 응원까지 한다.



‘이러다 연예인 동생 생기는 건 아닌지…….’

다행히 인서는 그쪽에 관심이 없었다.



나 또한 덩달아 유명해졌다.

“야, 저 선배야!”

“저 선배가 소문의 1.7 차인서의 오빠야?”

“그래, 맞아. 전국 2위의 오빠!”

“좋겠다. 말이라도 걸어 볼까?”

“1.7의 오빠랑 같은 학교라니, 내 수치도 오르는 것 아니야?”



“영철 엄마, 그거 아세요? 여기 방송에도 나온 1.7 인서의 오빠가 다녀요.”

“정말요?”

“다희는 이 학교로 보내려고 주소지 옮겨놨어요.”

“저도 고민해 봐야겠어요.”

나는 길을 걸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인간들이란…….’

천재 여동생의 둔재 오빠.

나쁘지 않은 비아냥거림이다.



* * *



던전의 몬스터는 기본 레벨이 10부터다.

오래 방치되거나 사람들이 적게 가는 던전에서는 상위종인 레벨 20을 넘어선 정예 몬스터가 목격되기 시작했다.



정예 몬스터의 숫자가 늘면 위험한 사태가 발생한다.

레벨 30을 넘어선 보스 몬스터의 탄생과 함께, 던전 안은 극도로 위험해진다.

몬스터들이 갑작스럽게 조직적이고 지능적이게 헌터를 사냥하기 시작할 뿐만 아니라, 본래라면 던전 입장 후 24시간이 지나면 가능했던 귀환조차 불가능해진다.

누군가 보스를 쓰러뜨려 줄 때까지 던전 안에서 생존해야만 했다.



미국이 최초로 보스 사냥에 성공했다.

그 후 갈색 입구의 던전 말고도 은색 입구의 던전이 세계 각지에 생겨났다.

동별급 던전을 넘어선 은별급 던전의 탄생이었다.

‘다음은 금별급 던전이겠네…….’

초기에는 던전 보스로 인한 피해가 컸다.

하지만 정보가 축적되며 여러 대처법이 생겼다.



미국의 헌터 사업은 세계가 놀랄 정도로 빠르게 발전해 갔다.

그 비밀은 헌터들에게 보급된 전사단련법에 있었다.

미국에서 전 세계의 전통 무예를 연구해 개발한 것이다.

각국에서 비슷한 연구를 진행했지만, 진척은 느렸다.



던전의 부산물, 마석조각의 수확량이 늘어나며 전기 에너지가 원활히 공급되면서 국제 교류는 자연히 회복됐고, 미국은 전사단련법을 내밀며 전 세계와 거래를 요청했다.



던전 부산물 국제 가격 정립!

전사단련법 사용자에 한해서 연간 1억 원의 별도 세금.

각국 헌터의 타국 던전 출입 금지.

사냥과 생산 행위 외 능력 사용 금지 등등.

여러 국제법이 마련됐다.



던전이 생기고, 지구의 물질 태반이 화학적 불안전성을 띠기 시작했다.

화약 사용 불가, 석유의 위험성, 석탄의 불안전성.

사회는 화학적 안정성을 갖춘 마석이 필요했다.

마석은 어떠한 오염도 일으키지 않는 친환경 에너지였다.

헌터는 언제나 부족했고, 비교적 안전한 던전은 전 국민에게 순차적으로 개방해 갔다.

일반인도 단련을 통해 레벨 9까지는 쉽게 올릴 수 있었고, 기감을 얻으면 레벨 10을 넘어설 수 있었다.

‘일자리가 없으면 던전으로!’

던전에는 언제나 일자리가 넘쳤다.

성인 남성의 가치가 오르고 여성들은 남성에게 상냥해져 갔다.

20세의 경제 독립이 많아지면서 결혼 연령이 앞당겨지고, 출산율도 증가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던전에서는 마석만 나오는 게 아니다.

아티팩트라 불리는 마법 아이템.

금, 은 같은 귀금속.

철, 납 같은 금속자원.

나무, 흙, 가죽, 고기 같은 것도 얻을 수 있었다.

던전에서 나오는 자원은 지구의 것과 사뭇 달랐다.

같은 철이라도 던전의 것이 월등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신물질이 쏟아져 나왔고, 그것은 기술의 발전을 의미했다.

일자리, 환경오염, 자원고갈, 기술 정체, 출산율 등 그동안 떠안고 있던 대부분의 사회 문제가 해결됐다.



인구증가 문제도 걱정 없었다.

던전 보스는 꾸준히 발생했고, 매번 상당한 인명피해를 발생시켰다.

새롭게 생겨난 사회문제라면 남녀 성비 불균형이다.

남자의 사망률이 높아지면서 생겨난 현상이었다.



* * *



세상이 변하는 와중에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근처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낮은 재능치로 인해 무능력자로 판정받은 나는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해야만 했다.

여전히 스펙과 인맥이 필요한 사회.

목표는 적당한 인 서울 대학.

그리고 일거리가 적은, 천천히 쇠퇴 중인 중소기업을 노렸다.



아버지 일을 보며 느낀 거지만 영업은 나와 맞지 않았다.

부모님과 오랜 의논 끝에 진로를 정했다.

능력을 사용할 일이 없으며 무난한 직업.

숫자를 보는 경리나 회계 쪽을 택했다.

‘정해진 대로만 하면 되니 이게 제일 편한 것 같아!’

수능 3년 전, 나는 이미 미래 설계를 끝냈다.



시험 준비?

할 필요가 없다.

능력 [정보저장] 2단계 [기억검색]

축적된 기억 속에서 원하는 정보를 떠올리는 능력!

이걸로 수능 준비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