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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변혁의 시작





수아가 가까스로 통조림을 따자,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백구의 자손들이 모여들었다.

이곳은 백구의 영역.

수아는 먹이를 주며 뒤통수에서 전해져오는 따끔한 시선을 느꼈다.

움찔. 두근두근.

수아는 초긴장 상태였다.

‘낯선 사람이야! 어떡해!’

이곳은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길.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무시했다.



* * *



나에게 있어서 고급 통조림의 주인은 항상 궁금증을 유발시키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어린 꼬마일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너였구나.’

“너였구나.”

무심코 흘러나온 말에 꼬마가 반응했다.

“네?”

고개를 돌린 꼬마는 잘 관리된 긴 흑발의 여자아이였다.

나와 꼬마의 시선이 교차했다.

‘공주님 역할이 잘 어울리겠어.’



* * *



‘잘 생겼다.’

차분히 가라앉은 머릿결.

차갑지만 지적으로 느껴지는 오빠.

이것이 수아가 생각하는 인우의 첫인상이었다.



* * *



골목의 지배자들이 통조림을 재촉했다.

그들이 걸어오는 념화에 나는 정신이 없었다.

[배고프다!]

[밥!]

[알았다, 알았어. 방해 안 할게.]



“내가 도와줘도 될까?”

“네? 네…….”

꼬마가 작은 손으로 가방에서 통조림을 꺼내 건네줬다.

나는 꼬마를 도와 곳곳에 통조림을 놔두었다.

꼬마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가… 두던 곳이네요?”

“먹이의 위치는, 민감한 문제니까.”

우리는 말없이 골목을 돌아다니며 먹이를 나눠줬다.



먹이를 다 주고 난 후에 우리는 함께 골목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넜다.

차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4차선 횡단보도.

이곳을 건너면 주택들이 밀집한 동네가 있다.

‘아마 꼬마는 중심 쪽에 살겠지.’

귀족학교의 교복. 딱 봐도 공주님이다.

부자 동네와 꼬마는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 * *



조금 앞서 걷던 인우는 순간 이질감을 느꼈다.

오싹!

‘뭐지? 이 서늘한 기분!’

고개를 돌리자 트럭이 인우를 향해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있어!

‘설마!’

역시다.

인우의 초인적인 감각이 트럭 운전사의 상황을 감지했다.

트럭 운전사는 떨어진 물건을 찾고 있는지 고개를 옆으로 숙인 채 바닥을 보고 있었다.

‘모르고 있어!’

아무리 차도 사람도 얼마 없는 한산한 거리라도 그렇지!

‘엿 됐다!’

전방 주시 소홀이다.

긴박한 상황에 처한 인우는 몸 안의 기운에 집중했다.

‘제발 서둘러라! 내 몸아!’



[신체간섭] 1단계 [활성]



감각과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오른다.

그리고 몸을 던져 피하려 했지만, 몸보다 먼저 손을 뻗었다.

툭!

“어!”

고개를 숙인 채 걷던 수아는 갑작스럽게 밀쳐져 짧은 단발성을 토해냈다.

“조심해, 꼬맹이!”

속삭이듯 들려온 잘 생긴 오빠의 목소리.

쾅!

인우는 수아를 밀쳐내고 트럭과 충돌했다.



* * *



인우는 공중에 떠올라 피를 뿌리며 생각했다.

‘크윽.’

위급한 상황에서 타인을 우선하다니.

의도치 않은 실수?

당혹스러웠다.

‘왜 그랬을까?’

그 와중에 주저앉은 채 넋이 나간 꼬마의 모습이 보였다.

왠지 후회는 되지 않았다.

‘단순한 변덕이야.’

공중에서 떨어지며 인우는 미소를 지었다.



퍽! 끼이이익.

인우는 땅에 피떡이 되어 엎어졌다.

트럭이 급정거하며 소음을 냈다.

트럭 운전사는 당황했고, 사람들의 시선이 트럭에 쏠렸다.

인우는 그 사이 몸을 뺐다.

쩔뚝.

‘이런… 도대체 속도가 얼마였던 거야?’

상처가 깊었다.



트럭 운전사가 내리고,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현장을 살폈다.

우그러진 차체와 땅에 새겨진 핏자국.

하지만 피해자가 없었다.

운전사는 땅에 남은 섬뜩한 혈흔을 쫓아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 안에 들어가자 혈흔이 끊겼다.

“뭐지?”

피해자가 없다. 트럭 운전사는 당황하면서도 내심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기를 빌었다.

현장에 사람들이 모였지만, 거기에 수아는 없었다.



* * *



인적이 없는 곳으로 이동한 나는 벽에 등을 기대며 주저앉았다.

‘아프다.’

이런 극심한 상처도 마음만 먹으면 5초 만에 회복할 수 있다.

누구에게서 받은 축복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능력.

하지만 이 능력에도 단점은 있었다.

“크아아악!”

‘아프다! 엄청 긁혔어! 아, 갈비뼈! 다리도 이상해!’

이런 통증이라도 없었다면 타인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괜찮아요, 오빠?”

쿵! 두근두근.

내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다.

천천히 돌아본 곳에는 나를 쫓아온 꼬마가 있었다.

‘이런… 통증에 감각이 무뎌져 있었어.’

들켰다.

치이이익.

급속도로 아물고 있는 상처를 본 꼬마는 화들짝 놀라며 토끼 눈을 했다.

“엇! 몸이! 초능력?”

‘사람은 이질적인 것에 두려움을 느낀단다.’

아빠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꼬마는 순수했다.

걱정, 놀람?

그리고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호기심을 보인다.

‘아빠 말도 다 맞지는 않네.’

“휴우, 왜 쫓아 온 거야?”

“그게… 미안해요. 저 때문에… 감사와 치료비를…….”

꼬마는 책가방을 땅에 내려놓고 지갑을 찾는 듯했다.

피식.

“보면 알지? 치료비 필요 없다는 것 정도는?”

끄덕.

당연하다. 이미 몸은 최적의 상태로 회복돼 있다.

손상된 신체가 복원되면서 더욱 튼튼한 조직으로 대체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과정을 두 눈으로 직접 봤으니, 아무리 얼빵한 초딩이라도 병원에 가자는 소리는 안 하겠지.

“그래도 검사는 하셔야… 머리를 다쳤을지도…….”

보기와는 달리 심하게 얼빵한 꼬마였다.

“치료비는 됐어. 한 가지만 부탁할게.”

인우는 강렬한 눈으로 수아를 응시했다.

“네!”

“가족을 포함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줘. 오늘 있었던 일은.”

나는 손을 내밀었다.

새끼손가락.

꼬마가 얼굴을 붉히며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비밀을 지키며 산다는 건 쉽지 않아.”

경험에서 나오는 말이다.

꼬마는 망설이지 않았다.

꼬마와 나의 손가락이 이어졌다.

“오빠가 초능력자라는 거, 누구한테도 말 안 해요.”

꼬마의 심장 소리가 이어진 새끼손가락을 통해 전해온다.

두근! 두근!

“그리고… 오늘 일은 절대 안 잊어요.”

“난 잊어줬으면 좋겠는데.”

둘만의 비밀, 그리고 둘만의 약속.

그런 걸 믿을 정도로 나는 순수하지 않았다.

꼬맹이가 누군가에게 사실을 말한다 해서 믿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없을 것 같은데.’



* * *



“앞으로는 조심해라, 꼬맹이!”

인우는 담장을 뛰어넘었다.

“저! 수아에요! 이수아! 오빠 이름은요?”

홀로 남겨진 수아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골목길을 울렸다.

고요한 골목에 홀로 남은 수아는 새끼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수아에게 있어 그는 생명의 은인이었고, 정체를 감춘 히어로 같은… 그런 오빠였다.



집으로 돌아간 수아는 싱글벙글 웃으며 침대 위를 마구 뒹굴었다.

‘또 만나요, 초능력 오빠!’



인우는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잦은 한숨을 내뱉어야 했다.

‘14년간 잘 숨겨 왔는데, 들켰어! 별일 없겠지?’

이사를 하고 싶어졌다.

‘으아아악!’

한심한 자신을 생각하며 인우는 속으로 괴성을 질렀다.



* * *



꼬맹이와 만난 다음 날 이른 아침.

내 고민은 한낱 부질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엄마는 아침 준비를 위해 일찍 일어났다. 하지만…….

“불이 켜지지를 않네? 가스가 끊긴 건가?”

요리를 위해 다시 가스 레버를 돌렸다.

“불이 안 붙어.”

엄마는 마당에 나가보려 했다.

‘문이 열리지를 않아!’

엄마의 기척을 느낀 나는 눈을 뜨고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엄마, 무슨 일 있어?”

“그게 말이지, 문이 열리지를 않지 뭐니. 그리고 가스레인지에 불도 붙지 않고.”

엄마는 난감해했다.

우리 가족은 모두 감각이 좋다.

“엄마, 무슨 일이야?”

“여보, 좋은 아침!”

인서와 아빠가 일어났다.

문은 일단 [형태조종]을 사용해 열어 줬다.

아빠가 마당에 주차된 차를 확인했다.

“난감하네. 시동이 안 걸려.”

“아빠, 큰일이야!”

“무슨 일인데!”

“내 스마트폰이, 스마트폰이! 고장 났어!”

인서는 생애 첫 휴대폰이 켜지지 않아 충격을 받았다.

“여보! 저도 휴대폰이 안 켜져요!”

난감하다.

내 노트북과 스마트폰도 작동이 되지 않았다.

집안의 전자기기가 모두 죽었다.



아버지의 부탁으로 밖으로 나와 동태를 살폈다.

한산한 거리.

아무도 없는 학교.

군인, 경찰, 공무원들이 각 구역을 돌며 집에서 움직이지 말 것을 지시하고 있었다.

우리 동네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순찰을 돌며 주민이 아닌 사람의 접근을 차단했다.

“정전사태로 불편을 겪고 계신 주민 여러분! 집안에서 모든 상황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 드립니다.”

“거기, 학생! 집에 들어가 있어라! 집이 어디니?”

집 밖 활동을 철저히 제한 당했다.



그날 밤에도 전기는 회복되지 않았다.

가스마저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옹기종기 거실에 모여 과자 파티를 했다.

“북한의 EMP 공격이야.”

아빠의 전쟁설.

“외계인의 공격이에요.”

인서의 외계인 공격설.

“전기세 내는 거 빼먹은 적 없는데.”

엄마의 억울설.

“초능력자가 전기를 다 먹어 치운 건 아닐까요?”

나의 초능력 악당설.

결론 없는 열띤 토론을 하며 우리는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아버지는 정부의 요청으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아버지를 통해 외부의 소식과 식량을 얻을 수 있었다.

전국적인 정전.

이번 사태를 사람들은 대정전이라 불렀다.

대정전과 동시에 몇 가지 이변이 일어났다.

분열로의 원자, 석유, 가스, 화약의 증발.

곳곳에 생겨난 갈색 균열.

각성자라 불리는 초능력자.



* * *



정부는 암암리에 각성자를 모았고, 균열 탐사를 시작했다.

탐사대는 가방 가득 붉은 보석과 마법 아이템을 가지고 돌아왔다.

“균열 안에는 지하 동굴이…….”

“괴생명체가…….”

“처치하니 아이템이…….”

“……마치… 게임 같은 상태창이…….”



과학자들은 붉은 보석에 열광했다.

“새로운 가능성!”

“신세계가 열립니다!”

“에너지의 혁명입니다.”

“지금 당장 전기 에너지로 대용 가능합니다.”

던전, 사람들은 균열 안의 지하 동굴을 던전이라 불렀는데, 거기에서 나온 물건에는 고유 명칭이 있었다.

던전 안에서는 아이템 정보를 볼 수 있었고, 학자들이 에너지석이라 부르며 찬양한 붉은 보석의 정체는 ‘마석조각’이었다.

정부는 마석을 통해 전기를 뽑아내는 시설을 갖췄고, 사회 제반 시설과 소실 데이터 복구에 힘썼다.

대정전 사태 이후 2주가 지나자, 매일 저녁 4시간가량 전기가 공급됐다.

전기가 충분히 공급되는 데는 반년의 시간이 걸렸다.



반년간 치안과 식량 보급에는 차질이 없었다.

물론 어딘가 차질이 있었다 해도 알 방도는 없다.

아버지는 정상적으로 출근할 수 있게 됐고, 나와 인서는 학교에 갈 수 있게 됐다.

“아아, 학교 가기 싫어.”

“너, 집은 심심해서 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잖아?”

“그건 어제까지고! 지금은 가기 싫어!”

“…….”

역시나 여자의 마음은 갈대 같다는 말이 맞는 것일까?



세계적으로 일어난 대정전.

그것은 변혁의 시작이었다.

각국은 던전이라 불리는 자원의 보고를 개발하기 위해 헌터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한국도 세계의 흐름과 보조를 맞췄다.



아티팩트 재능 검사기의 발명!

전 국민을 상대로 이루어진 재능 검사.

재능 있는 아이들은 신설된 헌터 교육기관에 보내졌고, 재능 있는 청년들은 헌터 관련 사업 부문에 1순위로 등용됐다.

헌터 육성과 관련된 사업들은 부국강병을 위한 국가적 사업이었다.



* * *



여동생 인서는 1.7이라는 높은 재능 수치가 나왔다.

전국의 초등학생을 통틀어 2위를 기록한 재능치였다.

미래가 보장된 천재 중의 천재.

‘역시!’

여러 차례 나의 능력에 노출된 여동생은 감각, 지능, 근력, 면역력, 매력 등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문무겸비의 미소녀였다.

높은 수치가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모태 초능력자!

당연히 높은 수치가…….

“재능 수치 0.3. 다음!”

검사관이 외치고 기록관이 기록한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딱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본다.

여동생은 수재 중의 수재. 나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

나는 그날 쓰레기 판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