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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밥 잘 주는 악마 씨?





당황하며 발버둥 치던 고양이는 금세 제풀에 지쳤고, 체념한 듯 나의 손길을 허락했다.

나는 녀석의 질병을 깔끔히 날려버렸다.

녀석은 몸에서 솟구치는 활력을 느끼고는 나의 품에서 벗어나 한동안 주변을 맴돌았다.

“냐양!”

“고마우면 나중에 은혜나 갚아.”

녀석도 자신을 도와준 것을 아는지 내 다리에 몸을 비비고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2주에 걸쳐 고양이와 들개의 생태지도를 완성했다.

그 후에 나는 매일 새벽 녀석들의 거주지에 찾아가 충분한 사료를 전해 줬다.

한 달의 시간이 흐르자, 고양이와 개들은 각자의 거주지에 콕 틀어박혀 조용히 지내게 됐고, 목적대로 골목의 영역싸움도 막을 내렸다.

‘누군지 모를 악마 씨, 당신이 일으킨 전쟁은 제가 막았습니다. 지금 어떤 기분이신지? 흐흐흐.’

엄청 분해하고 있을 사악한 존재가 상상됐다.

기분이 매우 좋았다.

수확도 없지 않았다.

근육의 미세 미동을 보고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게 됐고, 밤마다 능력을 개방하고 뛰어다녀서 그런지 억누르기만 했던 힘의 제어력도 대폭 상승했다.

기운의 제어력도 덩달아 좋아지면서 동물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고맙다, 인간!]

[좀 더 달라, 인간!]

[이 은혜 안 잊는다, 인간]

[좋은 인간이다! 좋은 인간이야!]



[너희들, 내 말 들려?]

“냥! 냥!”

[들린다! 들린다!]

“냥!”

[인간이 말했다.]

연결 능력이 한 단계 진화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연결] 2단계 [정신감응]



나에게 치료받은 존재와 념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

‘연결능력이 진화했어. 그렇다면…….’

다른 능력의 진화 가능성.

‘내 능력은 발전하고 있었어!’

성장할 능력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석탄을 다이아로 바꾸는 힘! 돌멩이를 황금으로 만드는 힘! 즉사의 힘! 또 뭐가 있지?’



안타깝게도 내가 상상하는 그런 힘을 얻는 건 여러 단계를 거친 먼 훗날의 얘기다.



* * *



나의 일탈 같은 행위는 오래가지 못했다.

평소와 같이 가족이 오붓하게 모여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내가 싫어하는 요리가 많았다.

부모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조금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



그날 저녁.

아빠가 화난 표정으로 내 방에 들어왔다.

겨울옷이나 장난감을 넣어두는 수납공간.

아빠가 그곳을 거칠게 열었다.

그곳에 500원짜리가 가득 쌓여있었다.

“돈이 필요했던 거야!”

홍당무처럼 붉게 달아오른 아빠의 얼굴.

이렇게 화난 아빠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니에요. 전 그저…….”

“휴우.”

아빠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돈은 어디서 났니?”

분노를 억누르는 모습이 역력하다.

문밖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엄마의 기척이 느껴진다.

“…….”

나는 당황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빠의 차가운 눈빛이 가슴을 찢어발겼다.

‘잘못을 빌어야 해!’

그런데 무엇을 잘못 했지?

잘 모르겠다.

나는 구석에서 뒹구는 100원짜리 동전 두 개를 아빠가 보는 앞에서 합성해 보였다.

500원짜리 하나가 만들어지고 조그만 금속 구슬이 남았다.

“훔친 거 아니에요. 나쁜 짓 한 것도 아니고요.”

아빠는 100원짜리 두 개가 500원짜리가 되는 모습을 보고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런 생각도 못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아빠의 표정이 조금 풀린 듯하자 말을 빠르게 이었다.

“이거 가짜 아니에요. 진짜랑 똑같아요! 정말이에요. 저는 알 수 있어요! 믿어 주세요!”

껌벅껌벅.



* * *



이제 더는 놀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들의 능력이 단순한 회복능력만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였을 줄이야!’

차승우는 아들과 깊은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 *



아빠에게 나의 능력을 상세히 알려줬다.

아빠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형태를 바꿔서 500원짜리 동전을 계속 만들었다고!”

“네…….”

나는 구석에 놓아둔 상자들을 열었다.

“1,500만 원이에요. 두 달 동안 매일 25만 원씩 모았어요.”

꿀꺽.

아빠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그래?”



* * *



10원짜리 동전을 녹여서 몇 십억을 벌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내 아들이 500원짜리를 찍어내고 있었을 줄이야.

밖으로 유출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 * *



“인우야, 네 능력이 드러나면 위험할지도 모르겠구나.”

국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다.

기득권층이 좋게 생각할 것 같지가 않다.

“저… 잘 숨기고 있어요.”

“아니, 이번 행동은 위험했어! 다시는 형태조종으로 돈을 건드리면 안 돼!”

“네…….”

단호한 아빠의 말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건 100원짜리로 다시 돌려놓을게요.”

“응?”

“그래도 400만 원은 되겠네요.”

“흐음.”

내가 상자에 손을 뻗자 아빠는 급히 상자 하나를 들어 올렸다.

“잠깐! 이건 압수다!”

아빠는 엄한 표정을 지으며 동전 상자들을 가져갔다.

무게가 있어 몇 차례나 1, 2층을 왕복해야만 했다.



다음 날.

평소와 같은 저녁 식사시간.

내가 좋아하는 요리가 많이 나왔다.

아빠는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엄마의 표정도 밝았다.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



* * *



자금을 잃었다.

돈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미안한 표정을 짓는 엄마다.

들개와 고양이 사료 값을 요구할 용기는 없었다.

사다 둔 사료를 소비하며 들개와 고양이들에게 말했다.

“미안해. 이제 매일은 못 올 거야!”

[괜찮다, 인우. 우리 걱정 마라! 추운 겨울은 지났다.]

[인우와 이야기하며 많은 걸 알았다. 사람들과 잘 공존해 보이겠다!]

그동안 보살펴온 녀석들은 지능도 대폭 올랐지만,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해 투견 혹은 투묘가 돼 있었다.



‘뭐, 잘 살겠지. 이 녀석들도 평범한 개나 고양이는 아니니까.’

녀석들과 인사를 마치고 나는 학교와 집 사이의 골목길에 들어섰다.

사건의 발단이 된 그 골목.

고급 통조림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흑돼지 통조림? 여전하네.’

나는 골목길 한편에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생태지도를 붙였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나라는 존재가 있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한동안 의욕을 잃었다.

돌보던 녀석들이 걱정됐다.

밤이 되면 방안을 서성였다.

‘가 보았자 줄 것도 없는데.’



며칠이 흘렀다.

나는 깊은 밤에 집을 나왔다.

‘어떻게 지내는지만 보자!’

그저 잘 살아 있는지는 확인하고 싶었다.

‘음? 이게 뭐지?’

이곳도, 이곳도, 이곳도…….

녀석들은 건강한 모습으로 나를 환영해줬다.



[인우다!]

[자주 와라!]

거주지 근처에 빈 깡통들이 굴러다닌다.

저건!

‘흑우 소갈비.’

반쯤 리모델링된 들개의 아지트.

곳곳에 놓인 애완견 정수기 그릇.

[꺼억, 왔냐! 요즘 양복 아저씨들이 잘 챙겨 주고 있다.]

“…….”



고양이의 영역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걱정은 기우였다.

나는 말없이 몸을 돌렸다.

안심이 되면서도 기분이 팍 상했다.

‘나 없어도 상관없잖아!’

악마 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몰랐을 뿐이다.

‘하지만 무지도 죄라고!’

악마 씨로 인해 죽어간 들개와 고양이들은 돌아오지 못한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악마 씨가 고마웠다.



* * *



“아저씨, 밥 주고 왔어요?”

고급 주택 앞에 있던 조그만 아이가 양복 차림의 보디가드에게 물었다.

“그럼. 다들 할당 구역 모두 돌았지.”

“잘 먹어요?”

“배가 고팠는지 엄청 잘 먹더라.”

“정말요?”

“그래, 그래.”

“이거! 내일은 이거랑 이거 꼭 주세요!”

“수아는 동물을 참 좋아하네?”

“아저씨는 싫어요?”

“하하, 나도 좋지.”

‘귀찮지만.’

동물 사랑에 빠진 여자아이와 피곤한 보디가드의 대화였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인우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근처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도 1년은 순식간에 흘렀다.

만 14살의 인우는 경험은 없지만 축적한 지식만큼은 방대했고, 초능력으로 뭐든 수월하게 쟁취하며 살아와서인지 꿈도 목표도 없었다.

‘무료하네.’

인우는 초능력과 관련된 애니, 드라마, 만화책, 소설 등을 좋아했고, 편하고 느긋한 일생을 보내고 싶은 소년이었다.

‘산 속에서 사는 슬로우 라이프는 어떨까? 인터넷이랑 책방이랑 사우나 정도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또래의 아이들과 동류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항상 소외감을 느꼈고, 언제나 홀로 다녔다.

잘 생긴 인우는 차가운 이미지의 고독한 늑대였고, 여학생들에게는 인기가 많았다.

인기가 너무 많아 범접하기 힘들 정도였다.



‘인우한테 사귀자고 하면 100% 차이겠지?’

‘인우는 나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야.’

여학생의 용기를 산산 조각낼 정도의 매력.

용모단정, 성적우수, 거기다 부자 동네에서 산다.

웬만한 자신감이 없다면 접근조차 힘든 게 인우였다.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

인우는 가끔 먼 길을 돌아 예전에 지나갔던 골목길을 이용했는데, 오늘은 골목길을 지배하는 백구의 인사를 받아주며 걸었다.

골목길 모퉁이를 돌자, 여자애가 있었다.

처음 보는 아이다.

애초에 이 골목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손가락으로 꼽는 일.

긴 생머리의 꼬마였다.

근처에 귀족학교라 불리는 곳의 초등부 교복을 입고 있었다.

한눈에 그 아이의 정체를 눈치 챘다.

낑낑거리며 열려고 하는 깡통을 보면 모를 수가 없다.

‘양갈비 통조림……. 이렇게 만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