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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물질간섭





나의 초등학교 생활은 평화로웠고, 반복적인 나날이었다.



겨울이 찾아오자 들개와 길고양이는 따뜻한 곳을 찾아 숨어들었다.

하수구 같은 곳에 숨어들어 못 나오는 경우도 있었고, 먹이를 못 구해 굶어 죽는 경우도 있었다.

먹이는 어찌어찌 해결해도, 녀석들은 추위와 질병을 이겨낼 정도로는 강하지 못했다.

녀석들의 수명은 길면 3년. 보통 한 계절조차 살아남기가 힘들다.



하굣길에 항상 애용하던 평화로운 길.

그곳에 누군가 통조림을 놔두었다.

가끔 있는 일이다.

배고플 고양이와 개를 불쌍히 여긴 사람들.

‘칠면조 고기?’

흔하지 않은 고급 통조림.

백구가 통조림을 먹고 있었다.

골목 곳곳에 같은 통조림이 보인다.

그날부터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골목에 통조림 냄새가 퍼졌다.

누군지 모를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골목길에 고급 통조림을 두었고, 나의 평화는 서서히 깨져갔다.



‘오늘은 장어 고기네.’

식량이 부족했던 탓에 평화롭던 골목길은 고양이와 개들의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야앙!”

“왈왈!”

살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싸운다.

약육강식, 그것이 동물의 세계.

‘피 냄새잖아!’

뛰어난 감각은 알고 싶지 않은 것도 자연히 알게 해준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영역싸움.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길옆에 못 보던 고양이가 보였다.

검은 고양이.

분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마른 고양이다.

앞다리와 가슴 사이에 살이 뜯겨 있었다.

‘배가 아무리 고파도 그렇지, 여긴 만렙 필드라고.’

7개월쯤 되어 보이는 어린 고양이.

나는 자연스럽게 고양이를 안아 들었다.

죽어가던 고양이는 몸부림칠 기운도 없었다.

“냥아, 너는 운이 좋아! 죽기 전에 나를 만났으니.”

나는 기운을 밀어 넣었다.



[연결]



기운과 고양이의 세포가 연결 됐다.

나는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능력을 개방했다.



[신체간섭] 1단계 [활성]



죽어가는 고양이의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어갔다.

새살이 돋고, 새털이 자랐다.

10초간 이어진 놀라운 광경.

그건 죽어가던 고양이에게 있어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준 기적이었다.

“야옹!”

고양이는 갑작스럽게 기운이 샘솟자 내 품에서 뛰어내렸다.

“야옹!”

[고맙다. 이 은혜 잊지 않는다!]

검은 고양이는 인사하듯 뒤돌아 울고는 몸을 날려 어딘가로 가버렸다.

“음?”

가족을 치료해준 일은 몇 번 있었다.

동물을 치료해준 건 처음이다.

그런데 떠나는 고양이의 말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환청인가?’

아니면 내 능력일까?



나에게 치료를 받은 녀석은 운이 좋았다.

세포 고속분열을 통한 자가 재생 극대화, 그리고 신체 기능 최적화까지.

일시적이라 해도 짧은 시간에 세대교체를 무수히 이룬 세포는 한 단계 진화를 하게 된다.

치료가 끝나고도 감각, 지능, 근력, 면역력 등이 한 단계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다.

‘치료가 아니라 진화 수준이지.’

수시로 교체되던 나의 세포는 최적의 수준으로 진화를 마친 상태.

영상 저장 수준의 기억력, 야수 이상의 감각, 한계점에 도달한 근력, 울버린 뺨치는 회복력까지 생겼다.

나는 이미 초인이었고, 나의 신체는 언제나 최적의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세상이 평화로워서 슈퍼맨도 배트맨도 필요 없겠지만.’

그래도 강해지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근래에 상처를 입고 돌아다니는 동물들이 늘었다. 그래서 눈에 띄는 대로 치료를 해줬다.

그때의 검은 고양이처럼 말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능력이 변화하고 있다는 직감은 들었다.

‘연결도 빨라졌어. 끈끈해지는 느낌도 들어.’

연결을 집중 수련하며 반년이 지났다.

동물의 말은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환청이었나?’

수련의 성과는 없었고, 매일 골목을 지나며 맡게 되는 피 냄새에 익숙해졌다.



중상의 고양이를 보고 치료를 해주며 한마디 했다.

“그만 좀 싸워.”

말을 해도 소용은 없었다.

회복된 녀석들은 강해져서 전장으로 갔고, 전장에서 많은 개와 고양이를 상처 입힌다.

다친 녀석 중 운이 좋으면 나를 만나 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받아 강해지면 또 전장에 간다.

골목의 개와 고양이는 점점 강해지는데, 나는 영양가 없는 치료에 기분이 나빴다.

‘나… 뭐 하는 거지?’

치료를 안 하면 당장 죽을 것 같아 치료는 해주는데, 이놈을 치료해주면 전에 치료한 놈이 다치게 된다.

‘어떡해야 하는 거야!’

원인을 따져보면 고급 통조림 때문인 것 같다.

‘이게 없을 때는 평화로웠는데.’

배고픈 녀석들을 자극해 싸움을 붙이는 통조림.

알아보니 개당 1만 4천 원이나 하는 고가의 물건이었다.

‘이거 의도한 건 아니겠지?’

아닐 거다. 아니겠지만, 왠지 사악한 웃음을 흘리며 통조림을 따고 있을 인간이 상상됐다.

‘악마다! 진짜 악마야!’



* * *



식사 시간에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해봤다.

“악마가 이사 온 것 같아요.”

“응?”

나의 자극적인 단어 선택에 가족의 시선이 집중됐다.

나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상세히 말해줬다.



어느 날 나타난 악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고급 통조림을 골목길에 배치하여 평화롭던 곳을 전쟁터로 만든 이야기다.

“참 좋은 사람이구나?”

‘아니, 이야기를 어떻게 들으신 거예요?’

“통조림이 1만 4천 원이나 한다고?”

‘네네. 1,400원이 아니라 1만 4천원 맞습니다. 제가 알아봤어요.’

“오빠, 동물들 보고 싸우지 말라 하면 안 돼?”

‘미안. 오빠도 노력해 봤지만, 동물 말은 못 하겠어.’

엄마는 통조림 값에 놀라셨고, 심각한 나의 얼굴을 보며 아빠는 웃음을 흘리셨다.

“하하, 척박한 영토의 동물들이 비옥한 영토를 노리면서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니. 사람이나 동물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아빠, 그럼 안 싸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인서가 물었다. 나도 궁금했다.

“그야 다른 영역을 노릴 이유를 없애 줘야지.”

“음…….”

“예를 들어, 각자의 영역에 먹을 것을 분산해 주면 굳이 다른 녀석 것을 먹으러 갈 필요가 없지 않겠니?”

“앗!”

그렇구나.

먹을 것 때문에 일어난 전쟁.

먹을 것만 있으면 해결되는 전쟁이다.

하지만, 식량은 돈이다.

요즘도 대출금 갚기가 빠듯하다고 한숨이 잦은 엄마다.

엄마의 늘어난 한숨을 감당하면서까지 사료 값을 요구할 수는 없다.

‘돈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데…….’

나는 초능력자다.

여러 가지 알아본 바로는, 나의 능력은 물질간섭이다.

‘능력으로 해결할 방법이…….’

하나씩 정리해봤다.



[활성] [형태조종] [감지]

활성으로 의사를?

‘아냐, 능력이 들키면 안 돼.’

능력이 들키지 않으면서도 쉽게 돈을 벌 방법.

번뜩!

뭔가 떠올랐다!



* * *



100원짜리 동전, 그리고 500원짜리 동전.

사람들이 500원짜리 동전에 부여한 가치와 내가 느끼는 가치는 조금 다르다.

‘100원짜리 동전의 1.4배.’

집안의 저금통을 열어 100원짜리를 긁어모았다.

1,000개.



[연결]



‘양이 많았나?’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10분을 지나 나의 기운이 연결됐다.

‘좋았어!’



이미지다.

입체적이고도 정확한 500원짜리 동전의 이미지가 필요했다.

나의 머리로는 불가능.

‘분석된 정보가 어딘가 저장돼 있어! 그걸 가져오면 돼!’

기운의 핵에 정신을 집중했다.

‘내놔! 내게 필요한 500원짜리 이미지!’



[정보저장] 1단계 [정보재현]



저장된 정보 중 500원짜리 동전의 입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완벽하게 연산된 입체적 이미지.

‘마무리다!’



[물질간섭] 1단계 [형태조종]



100원짜리 동전들이 액체가 되어 새로운 형태를 갖춘다.

재탄생.

1,000개의 100원짜리 동전을 합쳐 700개의 500원짜리 동전을 만들었다.

‘생산 연도, 학 문양, 숫자. 모두 완벽해!’

성공이다.

‘흐흐!’

자금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재료만 충분하다면.



재료를 모으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곳은 학교 밀집 지역이라 문구점도 많고 은행도 많다.

동전 자동 교환 기계도 군데군데 있다.

나는 매일 10만 원씩을 100원짜리 동전으로 바꿔 왔고, 그 돈은 35만 원이 되었다.

일일 수입 25만 원!

‘흐흐.’

필요했기에 만들었을 뿐인 돈이지만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와 아빠에게 자랑을 하고 싶었다.

‘들키면 혼날 것 같기도 하고.’

능력을 쓰는 것 자체를 싫어하시니, 일단은 비밀리에 움직였다.



* * *



자금을 확보한 나는 다음 계획을 진행했다.

누군가처럼 아무 곳에나 먹이를 배치하면 또 다른 전쟁터를 양산하는 것과 다름없다.

동물들의 거주지와 사냥터를 확실히 파악하지 못하면 나는 제2의 악마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안 되지.’

들개와 고양이들의 거주지와 사냥터를 철저히 파악하고 생태지도를 만들어야 했다.

평범한 사람이 동물들의 활동영역을 일일이 파악하는 건 쉽지 않다.

‘난 평범한 사람은 아니니까.’

그렇다. 초능력자인 나는 평범과는 거리가 멀다.



세상이 어둠에 잠기고 고요한 밤이 찾아오자 나는 조용히 집을 빠져나갔다.

능력 [활성]으로 인해 나의 컨디션은 언제나 최상.

지치지만 않으면 굳이 수면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모두가 잠든 밤은 나의 활동 시간이었다.

물론 도시의 밤거리는 어린 내가 활동하기에는 위화감이 있었다.

나는 주로 어두운 골목길을 이용해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움직였다.

어차피 고양이나 개도 눈에 띄지 않는 짐승의 길을 애용하니까.

녀석들과 마주칠 수도 있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사사삭. 사사삭.

어둠에 동화된 나는 고양이 한 마리를 미행하고 있다.

지금 미행 중인 녀석의 건강상태도 심히 걱정스러웠다.

‘피부병과 호흡기 질환인가?’

축적된 경험과 지식으로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치료해 주기 위해선 연결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 동안만이라도 신체 접촉이 필요하다.

‘제약이 만만치 않네.’

반복 사용으로 숙련 되면서 연결에 필요한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연결이 가능한 경지는 아니었다.

‘1분 정도면 될 것 같은데.’

한동안 녀석을 미행하며 기회를 노렸다.



* * *



녀석이 산만해진 틈에 가까이 접근해 보았지만, 경계심 강한 녀석은 나의 존재를 눈치 채자 필사적으로 줄행랑을 쳤다.

전력을 다한다면 쉽게 잡을 수는 있다.

하지만 힘 조절에 실패하면 고양이가 다칠 수 있어 최대한 힘을 빼고 잡아야 했다.

나는 녀석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쫓았고, 녀석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었다.

왼쪽으로 빠져나가려던 녀석이 몸을 급히 틀며 오른쪽으로 도망쳤다.

‘음?’

놓친 걸 안타까워하며 추적을 계속했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기회가 왔지만, 번번이 녀석을 놓치고 말았다.

몇 차례 녀석을 놓치고 나자 의문이 들었다.

‘뭐지? 녀석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는데?’

속도는 상대적.

녀석은 느렸고, 나는 빨랐다.

그런데 잡지 못했다는 것은…….

나는 인상을 구겼다.

나의 움직임을 예측했거나 유도한 것이다.

‘고양이에게 농락당할 줄이야.’



진심으로 덮치면 고양이가 조금 다치더라도 잡을 수는 있다.

‘지칠 때까지 기다릴까? 잠을 잘 때? 아니야. 그냥 덮쳐?’

한동안 고민하며 녀석을 관찰했다.

녀석의 움직임이 눈에 익자 행동이 읽히기 시작했다.

‘왼쪽, 오른쪽, 회전, 정면.’

그렇군.

나의 눈은 녀석의 미세 미동을 보고 있었다.

움직이기 전에 일어나는 근육의 작은 반응.

그동안 의미를 알 수 없었던 근육의 반응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의 앞을 가로막았고, 녀석은 도주로를 골라야 했다.



왼쪽, 오른쪽, 뒤쪽, 정면.

나는 본다. 이미 반응하고 있는 녀석의 근육을.

‘왼쪽으로 몸을 튼다.’

고양이가 도주할 곳을 먼저 점하고 뛰어드는 녀석을 캐치했다.

“잡았다!”

“냐앙! 냐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