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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능력 발현





유치원은 나에게 너무나도 어색하고 바보 같은 장소다.

그곳에서 난 구석에 소외된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의외로 다가오는 친구들도 많았다.

“인우야! 동화 같이 읽자!”

“인우야, 나랑 장난감 가지고 놀자!”

“소꿉놀이…….”

뭐, 여자애들뿐이었지만.

“그래, 신데렐라 소꿉놀이하면서 장난감 가지고 놀면 될까?”

“그래!”

“좋아!”

“응.”

“그럼 누가 신데렐라 할래?”

서로가 눈치를 볼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하고 싶은 사람을 배려해서? 절대 그렇지 않다.

배려하는 걸 모르는 친구들이다.

분명 따로 하고 싶은 역할들이 있겠지.

“뭐가 하고 싶은데?”

눈을 반짝이며 답하는 아이들.

“난 괴롭히는 언니!”

“나도 언니!”

“난… 마법사!”

“…….”

초반에 괴롭힘을 받는 신데렐라는 인기가 없다.



* * *



차분하고 잘 생긴 나를 유치원 교사들은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 나를 질투하는 친구도 있었다.

“이거 내 거야! 비켜!”

철호가 내게 시비를 건다.

“너 가져. 난 다른 걸로 놀 테니까.”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것도 내 거야! 거기 내 자리야!”

그러면서 손을 뻗어 온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센 철호는 남동생이 생기면서 부모의 관심을 못 받아 점점 과격해지고 있는 친구였다.

‘나를 밀치려는 건가?’

살짝 몸을 피해줬다.

철호는 중심을 못 잡고 넘어졌다.

우당탕탕!

“앗, 코… 피! 으앙! 아앙, 아앙!”

나는 목청이 터져라 울음을 터트린 철호를 토닥여줘야 했다.

“괜찮아, 철호야. 그럴 때는 피를 빼주는 게 좋데.”

“으으앙아아앙.”

‘뭐가 그리 아픈 거야? 그 정도 통증은 아닐 텐데.’

조금 당황스럽다.



철호의 우렁찬 울음소리에 아이들의 시선이 모였다.

“선생님! 선생님!”

“철호가 피 흘려요!”

“철호가 울어요!”

유치원 교사가 당황하며 뛰어와 피를 닦았고, 철호를 다독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사탕 하나를 쪽쪽 빨며 붉어진 눈시울로 뛰어노는 녀석.

방금 있었던 일은 잊어버린 것 같다.



소란에 원장이 왔고, 유치원 교사를 불러내 나무랐다.

보통은 듣지 못할 소리지만, 예민한 내 귀에는 다 들렸다.

“제가 눈 떼지 말라고 했죠. 크게 다쳤으면 어쩔 뻔했어요.”

“죄송합니다.”

“주의하세요!”

학부모 앞에선 여우같이 굴다가도, 유치원 교사 앞에만 서면 호랑이로 변하는 원장님.

아이들은 모두 그녀를 싫어했다.



원장이 가자 유치원 교사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데, 내 얘기가 오갔다.

“인우가 철호를 다독이고 있었어요.”

“와! 정말 귀여웠겠네요.”

“뭐, 그렇죠.”

“정말 착한 애죠.”

“말하는 게 애늙은이지만요.”

애늙은이라니…….

“후후훗, 그렇긴 해요.”

“영재 교육을 받는 것 같아요. 가끔 불쌍하다니까요.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감정 동요가 적고 표정 변화가 적은 건 태생인데.

‘표정도 신경 써야 하나?’



유치원이 집 근처여서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안에서 기다려야 했고, 엄마는 밖에서 원장님과 얘기를 나눴다.

‘무슨 얘기지?’

궁금함이 일자 기운이 움직였다.



[신체간섭] 1단계 [부분활성]



자연스럽게 발동하는 초능력.

청각과 관련된 세포들이 활발해지며 유치원 일대의 소리가 모두 들려왔다.

잡다한 소음을 거르고 엄마와 원장님의 대화에 집중했다.



“어머님, 인우는 정말 똑똑한 아이에요.”

“네.”

“엄청 착해요.”

“네.”

“의젓하기도 하고요.”

“네…….”

칭찬 일색이던 원장의 목소리에 걱정스런 감정이 담겼다.

“그런데, 주변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네?”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면서 사회성을 길러야 하는데, 인우는…….”

“…….”

원장님은 뱅뱅 돌려서 내가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것 같으니, 집에서 다양한 놀이를 함께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불안감을 충분히 심었다고 생각한 원장은 본론에 들어갔다.

“혹시 집에서 놀아주는 게 힘드시다면 저희가 보충반을 만들어 볼까 하거든요. 그때 따로 연락드릴 건데…….”

이어진 말은 보충반에 대한 설명이었다.

“네… 생각해 볼게요.”

영혼 없이 호응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으로 가는 길에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엄마, 원장님이 뭐래?”

“원장님이? 흐흠… 인우가 착하고 똑똑하데.”

“다른 건?”

“멋지고 의젓하데.”

엄마는 원장님이 하신 나에 대한 험담은 말하지 않았다.

보충반에 대한 것도.

“기분 나쁘지는 않아?”

엄마는 조금 굳은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들었구나?”

끄덕.

“엿듣는 귀는 어느 귀냐!”

엄마는 장난스럽게 내 양쪽 귀를 붙잡고 흔들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천재가 아니라 잘 모르겠어… 너를 어떻게 키우는 게 맞는지.”

허리를 굽혀 시선을 맞추는 엄마.

“그래도 하나는 확실히 알아. 아이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라는 거.”

엄마는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아들과 함께하고 싶어. 이게 욕심일까?”

“아니.”

‘넘쳐흘러…….’

나의 몸에는 특별한 기운이 가득 차 있다.

분명 다른 게 들어갈 틈이 없는데, 사랑이라는 따뜻한 무언가가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 * *



별 탈 없이 유치원을 졸업하고, 이어진 건 초등학교.

“인우야!”

“인우야, 반가워!”

“인우 너도 여기네…….”

“쳇, 인우잖아!”

악연 철호와 내 주변을 맴도는 유치원 때 친구들.

귀찮은 녀석들이다.



초등학교 수업은 지루했다.

책만 봐도 아는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해 가르친다.

그렇다고 딴 짓은 하지 않았다.

나는 수업을 듣는 중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숙제를 미리 끝내는 건 물론이고, 전신에 퍼져 있는 기운을 가지고 놀 수도 있었다.



기운은 나의 손발과 같다.

감각이 닿아 있다고 해야 할까.

필요한 부분에 집중하면 그곳을 이루는 작은 생물들이 보인다. 아니 느껴진다.

보이는 것처럼 선명히.

‘아마 이게 세포라는 걸 거야.’

세포는 다양했고, 각자의 위치와 역할이 있었다.

일정한 룰 속에 존재하는 세포들이 모여 조직을 이루고, 뼈, 근육, 지방, 장기, 뇌 등의 신체를 이룬다.

나는 그들의 룰에서 벗어나지 않게 움직일 수도 있고,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거기에다 최적의 수를 유지하며 기능을 최적화하고 고속으로 분열시키면…….



[신체간섭] 1단계 [활성]



어떤 상처도 순식간에 회복되며 신체 능력이 일시적으로 증폭했다.

‘일시적이라…….’

완전히 일시적이라 할 수는 없다.

[활성]을 자주 쓰면 몸이 변한다.

‘세포 진화?’

더 튼튼하고 더 강력하게 말이다.

괴물이 되지 않으려고 최대한 자제했지만, 이놈의 기운은 무의식적으로 자꾸 발동한다.

막을 방법이 없다.

다행히 한계는 있었는지 요즘 들어 신체 변화는 미약했다.



내 기운은 다른 물질과도 연결할 수 있다.

책상, 의자, 필통, 연필, 지우개, 칠판, 분필, 벽, 바닥…….

손이 닿는 물건이라면 모두 기운을 밀어 넣었다.

몸속 기운이 분열해 수를 불렸고, 늘어난 기운이 물건에 심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결]과 [분석].

기운이 분열하고 이동해 연결하는 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분석은 금방이다.

분석된 정보는 방대했고, 정보는 내 머리 어딘가에 위치한 기운의 핵에 전해졌다.

나는 그 과정에서 정보의 일부를 엿볼 수 있었다.

우주? 무수한 별들? 회전?

봐도 알 수 없는 것들.

중요한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다양한 물건에 내 감각이 닿았고, 연결된 물건의 모양을 바꾸거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질간섭] 1단계 [형태조종]과 [연결] 1단계 [감지]



감지와 달리 형태조종은 연결 외에도 한 가지 조건이 더 충족돼야 하는데, 그건 신체 일부의 접촉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능력 같지만, 쓸 일이 없었다.

‘지우개 모양을 바꾸거나 연필심을 다듬거나.’

정말 쓸 일이 없었다.



지루한 수업시간, 나는 물건에 기운을 심는 걸 반복했다.

[연결] [연결] [연결]…….

손이 닿는 모든 물건에 기운을 연결했다가 다시 기운을 회수했다.

회수된 기운은 내 몸속에 들어와 다른 기운과 합쳐지는데, 기운이 늘거나 줄었다는 느낌은 없었다.

두 개가 됐던 게 다시 하나가 된 느낌.

회수가 끝나면 다시금 기운을 심어 연결했다.

반복되는 과정에서 분열, 이동, 연결 등 일련의 과정이 숙련되며, [연결]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수련이라면 수련이겠지만, 나에게는 놀이다.

‘이게 은근 재미있다는 말씀!’

지루한 수업시간을 유익하게 보내기 위한 놀이였다.



수업을 마치면 곧장 집으로 갔다.

대로를 지나 상점가를 관통해 골목길에 들어선다.

지저분한 골목길은 들개와 길고양이가 비바람을 피하는 데 최적의 장소다.

이 길을 매일 지나다 보니 나를 알아보는 녀석도 생겼다.

잘 생긴 백구가 눈인사를 해왔다.

나는 인사를 받아주며 골목을 지나갔다.

골목을 나오면, 사람과 차가 잘 다니지 않는 건널목이 보인다.

길을 건너면 주택들이 밀집한 부자 동네가 나왔다.

우리 집은 이 부자 동네 구석에 있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부자는 아니다.

나의 능력이 드러나는 걸 꺼리신 아빠가 노심초사하며 결정한 게 전원주택으로 이사하는 거였고, 때마침 급매물로 나온 허름한 이층집을 구할 수 있었다.

높은 담에 화려한 대문이 있는 깔끔한 주택들을 지나 구석으로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다 무너져가는 담벼락에 싸구려 철문이 붙어있는 허름한 복층 벽돌집이 있었다.

부자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는 처량함.

지나온 집들과 대비되는 풍경.



끼이이익.

철문을 열고 시멘트 발린 정원을 지나 집안에 들어선다.

“다녀왔습니다.”

두두두두

“오빠! 오빠! 이거 같이 하자!”

밖의 풍경과는 달리 안은 활기차고 밝았다.

5살이 된 여동생 인서가 ‘불어 펜’이라는 그림 도구를 들고서 제일 먼저 나를 반겼다.

“별일 없었고?”

엄마는 지친 얼굴로 나를 반겼다.

“응… 항상 같아.”

나는 대충 인서를 상대해 주고는 손을 씻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 있는 내 방.

침대 하나 들어갈 정도의 작은 방이다.

2층 침대가 들어갔고, 침대 1층을 개조해 책상, 옷장, 수납공간이 자리했다.

나의 감각은 예민했고, 귀도 밝아 방음 처리는 기본으로 해야만 했다.

나만의 공간.

집안 곳곳에는 나의 기운이 연결돼 있고, 나의 감각이 닿아있다.

식칼, 가위, 인서의 장난감, 집의 각종 가구.

집중하면 물건들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연결] 1단계 [감지]



쓸데없어 보이는 능력이지만, 의외로 활용도가 높다.



“인우야! 리모컨 못 봤니?”

“식탁 위에 있어요.”

“오빠! 내 색연필 하나가 없어!”

“소파 밑에.”

“열쇠를 어디 두었더라…….”

“엄마 주머니.”



[연결] 1단계 [감지]

연결된 물건의 위치와 상태를 파악하는 능력.

정말 유용한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