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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특별한 아이





대정전. 던전과 이어지는 통로.

세상 가득 퍼진 미지의 물질 마나.

전사와 각성자가 난무하는 세상.

그런 세상이 도래하기 전이었다.

나는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나름 성실한 아빠와 현숙한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실한 사나이 차승우, 현명한 여인 안서진.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나의 이름은 차인우다.



* * *



24개월 인우.

그는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얌전한 아이였다.

부부는 인우가 키우기 수월한 아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식사가 끝나고 소파에 앉아 뉴스를 시청할 때면, 인우는 홀로 방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하지만 아이를 홀로 방치하는 것은 좋지 않다.

아무리 얌전해도 아이는 사고를 치기 마련이고, 얌전한 인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쌓자! 쌓자!’

인우는 의자를 블록처럼 쌓았다.

조금 큰 블록 놀이.

인우는 평범한 24개월 아기가 낼 수 없는 근력과 균형 잡힌 움직임을 보였다.

아기는 의자를 쌓아 만든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더 높이. 더 높이 갈래!’



[세계 최고 강대국 미국의 본토가 테러 만행에 유린당했습니다.]

“흐흠…….”

“사람이 뛰어 내렸어요!”

충격적인 뉴스에 몰입한 부부는 혼자 방에 있던 인우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현지 시각 8시 45분, 공중 납치된 여객기 한 대가 뉴욕의 쌍둥이 건물인 세계무역센터를 들이박았습니다.]

충격적인 뉴스.

[정확히 18분 뒤, 또 한 대의 여객기가 나머지 한 동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더니 건물의 허리를 그대로 관통해 버립니다.]

[470m, 110층 높이의 쌍둥이 건물은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뉴스 화면에는 건물의 허리가 폭발하고, 노란 먼지가 피어오른다.

건물의 잔해들이 뉴욕을 덮쳐갔다.

무너지는 건물.

도시를 뒤덮어가는 먼지구름.

도망치는 시민들.



쿵! 쿠당탕!

“으악!”

커다란 소음과 인우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부부는 용수철 튕기듯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인우야!”

“인우야!!”

깜짝 놀란 부부는 급히 인우가 놀고 있는 방으로 뛰어갔다.

의자 더미에 깔린 인우는 팔이 꺾여 있었다.

자잘한 상처도 많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끄으…….”

인우는 고통으로 신음을 흘리며 기절했다.

한쪽 팔의 각도가 한눈에 봐도 이상했다.

놀람을 넘어서 여인은 공황에 빠졌다.

여인은 무심코 아들에게 다가가려 했다.

사내는 경악하며 그런 부인을 잡아챘다.

“잠깐!”

사내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냉정해져야 했다.

‘당황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부인의 손을 잡아챈 남편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위급 상황이다.

‘정신 차려라, 차승우!’

안서진은 자신을 잡아챈 남편을 당황한 눈으로 바라봤다.

“어떡해요, 승우 씨…….”

눈물이 그렁그렁한 부인을 보며 승우는 단호히 말했다.

“함부로 만지지 마! 119 연락하고! 팔을 고정할 붕대나 테이프, 아무 끈이라도 좋으니 뭐라도 가져와!”



부인이 붕대를 가지러 간 사이, 사내는 움직였다.

파직!

사내는 의자를 부러뜨렸다.

‘좋아, 이걸로 팔을 고정해야겠어.’



여인이 119와 통화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사내는 경악과 불신 가득한 눈을 껌벅거리며 아들 인우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꺾인 팔과 자잘한 상처들은 시간이 되돌아가듯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사람의 자연 치유력이라고는 볼 수 없는 무시무시한 현상.

여인도 아들을 보며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인우의 상처가… 회복되고 있어!’

여인은 늑대인간을 떠올렸다.

사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외의 존재가 떠오른다.

판타지 소설의 트롤? 늑대인간? 뱀파이어?

모두 재생능력의 대명사들이었다.



3살이었던 인우는 고통에 정신을 잃었다.

그때, 그의 몸속에 숨어 있던 기운이 깨어나 인우와 하나가 되어갔다.



[연결]



기운과 연결된 인우는 의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전신에 닿은 새로운 감각을 느꼈다.

‘으음, 뭐야 이게… 내 몸이야?’

인우가 느낀 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아닌 새로운 감각이었고, 살, 근육, 뼈, 그 속의 조직, 조직을 이루는 세포와 하나가 되는 감각이었다.

신체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과 연결된 기운.

기운은 연결된 신체를 살폈고, 그들이 알아낸 걸 어딘가에 기록했다.

[분석] 그리고 [저장]

준비를 마친 기운은 신체의 손상을 파악했고, 복구에 나섰다.



[신체간섭] 1단계 [세포활성]



뒤틀린 팔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자잘한 상처는 새살이 돋아나 아물어갔다.

부부는 그 광경을 지켜봤다.

경악과 불신.

소름이 돋는다.

회복은 빠르게 이어졌다.

5초? 10초?

짧은 순간 회복된 아들을 보며 부부는 급히 인우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들을 보며 조금 전 느꼈던 당혹스런 감정은 잊었다.

무사한 아들을 보자, 가슴 가득 차오른 건 안도감이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괜찮아… 모두 정상이야. 다행이야…….”

부부는 인우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힌 사내는 마냥 안도만 할 수는 없었다.

아들이 회복되는 모습에 부모인 자신도 잠깐이지만 소름이 돋았다.

부끄럽고, 한심했다.

‘순간이지만…….’

아들에게서 느낀 이질감.

사내는 마녀사냥을 떠올렸다.

‘지켜야 한다. 아니 숨겨야 해!’



* * *



나는 눈을 떴다.

안도하는 아빠, 눈물을 흘리며 나를 끌어안는 엄마를 봤다.

“울지망, 미앙…….”

엄마, 아빠의 당혹스런 표정에 어리둥절해하던 내 머릿속으로 그분들의 생각이 밀려들어왔다.

‘지켜야 한다.’

‘아무도 알게 해선 안 돼! 숨겨야 해!’



텔레비전 속에서는 뉴스 속보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원자 폭탄이 투하된 듯 지상은 낙진을 뒤집어쓴 것처럼 죽음의 빛으로 뒤덮였습니다.]

[비슷한 시간 이번에는 또 다른 여객기가 미국의 심장 워싱턴에 떨어졌습니다. 펜타곤, 즉 국방부 건물이었습니다.]

[불과 한두 시간 사이에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두 도시는 물론, 미국의 자존심도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미국의 자존심이 무너지던 날.

난 층층이 쌓아 올린 의자 탑 위에서 추락했다.

그날 부모님은 깨달았다.

내가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그 때까지 나는 흔한 잔병치레조차 없었다.

탁월한 이해력과 남다른 기억력을 가졌다.

근력도 또래의 아이들과 비할 바가 못 됐고, 신체 능력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인우야, 사람은 미지의 것에 두려움을 느낀단다.”

아빠는 항상 진지하게 말했다.

“이질적인 것을 배척하고 배제하려 하지.”

걱정 가득한 표정.

“그러니 숨기렴. 너의 능력… 최선을 다해 숨기렴.”

그 후에도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들었던 말이었다.



“괜찮단다. 네가 어떤 사람으로 크든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란다.”

엄마는 내가 능력을 악용해 나쁜 길로 빠지지는 않을까 불안해했다.

그렇기에 항상 말했다. 세상이 나를 손가락질해도 엄마는 언제나 나의 편이라고.

‘딱히 나쁜 짓 할 생각은 없는데…….’



그런 와중에도 우리 집은 화목했고, 그 증거로 3살 터울의 여동생이 생겼다.

이름은 차인서.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나에게 오는 걱정 가득한 관심이 희석됐고, 더욱 화목해진 것 같았다.



여동생은 나와 달리 평범했다.

먹고 싸고 울고 자고.

원숭이처럼 쪼글쪼글하던 여동생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 배밀이를 하며 기어 다녔다.

인서는 나와 같은 감각도 힘도 없어 너무도 허약했고, 언제나 따라 다니며 다치지 않게 지켜줘야만 했다.

그 역할은 엄마가 했지만, 가끔은 내가 지친 엄마를 대신할 때도 있었다.

“오빠가 놀아 줄게. 뭐 하고 싶어?”

“으아! 아!”



시간이 흘러 인서가 걷기 시작했다.

인서는 평범한 아이라 걷는 것도 불안정 했고, 활동 범위가 늘어나면서 위험만 증가했다.

거기다, 찢고 꺼내고 부수기를 반복하는 인서.

혼을 내도 잘 듣지 않았다.



“엄마, 나도 저랬어?”

“흠, 너는 안 그랬을걸.”

차분하다. 착하다. 똑똑하다. 철들었다.

나는 3살부터 이런 말을 들어왔다.

엄마는 내가 오해하지 않게 주의를 줬다.

“인서가 잘못한 게 아니야. 아기들 모두가 하는 행동이야. 그러니 인서를 미워하면 안 돼.”

“안 미워해.”

“화도 내면 안 돼!”

‘항상 화내는 건 엄마잖아. 혼내는 것도 엄만데?’



그 당시 아빠의 체력은 저질이었다.

회사에 다녀온 아빠가 인서와 놀아 주는 걸 지켜봤다.

‘30분도 못 버텼어. 아빠는 너무 약해’

아빠의 체력 순위는 우리 가족 중에 최하였고, 내가 1등이었다.

‘피로는 어떤 느낌일까? 지친다와 같은 것 같은데… 나한테는 없는 것 같아.’



시간이 흘러 말을 알아듣기 시작한 인서.

“싫어.” “아니야.” “나빠!”

하지만 그 즈음부터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 왜? 왜?”

말하기가 익숙해진 인서는 무한 질문으로 가족을 괴롭혔다.

그로 인해 엄마의 피로도가 상승하는 것 같았다.

“일루 와, 오빠가 알려 줄게.”

“싫어! 오빠는 어렵게만 알려줘.”

“아니야, 이번에는 바보라도 알 수 있게 알려 줄게.”

“정말? 정말로?”

“정말이야.”

“음, 그래도 엄마가 알려줘!”

이럴 때는 다 방법이 있다.

엄마가 못 먹게 하는 초코 과자를 슬쩍 보이면, 인서가 눈을 반짝이며 사랑지수 가득한 눈으로 나에게 온다.

“오빠 좋아!”

“정말?”

“응응! 엄마랑 아빠보다 더 좋아!”

이 말이 진실일까?

초코 과자가 눈앞에 있는 지금은 진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코 과자를 다 먹고 10분쯤 지나면, 생각이 바뀌는 것 같다.

“엄마랑 놀래!”

‘거짓말쟁이!’



* * *



유치원을 다니면서 나는 확실히 내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보통의 내 또래는 멍청했고, 약했다.

균형감각도 형편없고, 힘도 없고, 생각도 없다.

기억력도 형편없어 100번을 말해줘도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다.

‘나랑 같은 인간 맞아?’

아니지… 내가 인간이 맞을까?

하지만 깊게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너는 내 아들이다.”

“사랑해, 우리 아들.”

“오빠! 오빠!”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으니까.



그걸로 충분했다.

내가 인간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