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4화

블랙 헌터(2)





경계가 끝나고 용병들은 텐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준의 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텐트는 어떻게 쓸까요. 똑같이?”

민준은 슬쩍 유준과 후드 사람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유준은 후드 사람을 응시했다.

“…….”

말도 없고 반응도 없는 그.

유준은 이제는 그가 사람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워졌다. 본래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의심을 품고 있던 유준이었으나, 박형수가 범인이라는 걸 알게 된 뒤 의심을 지운 상태였다.

다만, 이제는 정체가 궁금해졌다. 왜 도대체 자신의 정체를 저렇게 숨기면서 행동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전 상관없어요.”

정말이었다. 유준은 크게 상관은 없었다. 후드 사람은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럼 자네도 수긍하는 걸로 하겠네.”

덕배는 이제 어느 정도 후드 사람을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그러던 유준은 그가 전투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나중에 볼 수 있겠지.’

유준은 또 다시 혼자서 텐트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뒤늦게 간단한 통조림으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유준은 자신이 챙겨온 통조림을 꺼냈고, 조원들과 함께 맛있게 나눠 먹었다.

“불침번 있다는 거 잊지 말게.”

“네. 알겠습니다.”

텐트로 들어가는 유준에게 덕배가 일렀다. 유준은 텐트 안으로 홀로 들어왔고, 오늘도 왠지 혼자 잘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오히려 그게 편했다. 텐트도 혼자 썼고, 불편한 사람이랑 같이 있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차라리 이게 낫지.’

피곤했던 유준이었기에 챙겨온 물티슈로 얼굴을 대충 쓱쓱 닦아낸 뒤, 그대로 잠이 들었다



* * *



모두가 잠든 시각.

박형수의 텐트가 조용히 열렸다. 주변에 불침번들이 손전등을 켜고 돌아다녔지만, 박형수에게는 전혀 장애가 되지 못했다.



애초에 그는 A등급의 육체형 헌터. 은밀하게 이동하는 건 큰 무리가 없었다.

숙영지에서 조용히 빠져나온 그는 즉시 광활한 사막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홀로 돌아다니는 건 위험할 수도 있지만, 그는 전혀 상관치 않았다.

메카르를 만날 수도 있고 길을 잃을 수도 있었으며 유사에 빠질 수도 있었지만, 그는 A급의 헌터.

메카르를 만난다면 싸우지 않고 피해 가는 것도 가능했고 나침반도 챙겼으며 심지어 숙영지는 불빛으로 인해 멀리서도 잘 보일 정도다. 또한, 유사에 빠진다고 할지라도 그의 능력이라면 바로 나오는 게 가능했다.

한참을 이동한 그는 신전처럼 생긴 거대하고 낡은 건물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신전의 입구는 거대했다. 거대한 문은 누구든지 환영한다는 듯, 활짝 열려 있었다.

“이곳이 맞나 모르겠군.”

던전 안에 들어오는 순간 바깥세상과 연락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원하는 ‘목표’가 신전 안에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워서 그런지 내부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기감을 끌어올렸다.

혹시라도 주변에 메카르가 있으면 위험했다. 하지만 메카르는 없었고, 몇 개의 기감만 느껴졌다.

“나다.”

박형수는 웃었다. 이윽고 그의 주변으로 몇 명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박형수는 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중에서 한 사람이 조용히 입을 벌렸다.

“보스를 뵙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박형수를 보스라고 부르며 예를 갖췄다. 박형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그들에게 물었다.

“준비는?”

“전부 마쳤습니다. 이쪽으로.”

그들은 손전등으로 전방을 비추며 박형수를 데리고 이동했다.

“이곳에 메카르나 함정은 없었나?”

“일단 함정은 없었습니다. 메카르는 있었는데, 데리고 온 병력으로 처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병력 중 일부가 사망했습니다.”

“일부가 사망했다고?”

“예. 죽은 병력과 죽인 메카르는 살아남은 병력의 먹이로 제공되었습니다.”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박형수는 그들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황량했다. 하지만 곳곳에 전투의 흔적이 보였다. 이곳에는 메카르가 가득 있었지만, 모두 해결한 것 같았다.

“이곳에 있었던 메카르의 수는 얼마나 됐지?”

“총 300마리 정도 있었습니다.”

“층마다?”

“그렇습니다.”

박형수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들은 삼층에 도착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3층에는 메카르들이 가득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메카르들은 그들을 보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번에 ‘그들’에게 지원받은 병력들인가?”

“그렇습니다.”

“본래는 총 몇 마리였지?”

“300마리를 지원받았습니다.”

“지금은?”

“213마리가 남았습니다.”

사막을 횡단해오고, 여러 격렬한 전투를 치른 것 치고 큰 피해는 없었지만, 박형수는 미간을 찡그렸다. 평범한 병력과는 차원이 다른 병력이었기에 너무 아까웠다.

하지만 공략대를 전멸시키기에는 너무나도 충분한 병력이었기에 박형수는 별다른 불만을 품지 않았다.

애초에 일반적인 메카르와 다른 메카르였으니.

“더욱 중요한 건 장비들이지. 장비들은 별 탈 없이 잘 가져왔겠지.”

“그렇습니다. 이쪽으로.”

조직원은 박형수를 4층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4층은 지금까지 올라왔던 층과 다르게 마지막 층인 듯했다. 그리고 4층의 한편에는 한 메카르가 상처를 잔뜩 입은 채 묶여 있었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큰 상처를 입은 듯했다.

“우두머리인가.”

“클리어를 막기 위해 포박을 해두었습니다. 손쉽게 죽일 수 있도록 상처를 입혀놓은 상태입니다.”

우두머리 메카르의 주변에는 세 마리의 메카르들이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몸 일부분이 이미 잘려나간 상태였기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것 같았는데, 저렇게 누르고 있으니 너무나도 고통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박형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여러 장비들을 살폈다.

“무리 없이 혈액을 채취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군.”

박형수는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장비들을 살폈다. 이에 조직원은 웃으며 박형수의 비위를 맞추듯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격렬한 전투가 있었지만, 장비들은 전혀 피해가 없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었습니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이번 재료라면 ‘그들’로서는 정말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겠군.”

“그렇습니다. 그들 산하의 어떤 조직도 이렇게 양질의 재료를 가져다주진 못할 겁니다. 등급이 낮은 헌터들의 혈액도 아니고, 무려 B급 이상의 혈액이니 당연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박형수는 조직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다른 조직원들을 돌아보며 조용히 나직였다.

“큰 공로들을 세웠군. 돌아간다면 큰 보상이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조직원들은 저마다 고개를 숙였다. 박형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조직원들은 그를 따랐고, 거침없이 이동하는 박형수는 진한 미소를 그렸다.



* * *



피곤했기 때문에 유준은 너무나도 빠르게 잠에 들었다. 하지만 그는 중간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부스럭부스럭.

예민한 그의 감각에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포착되었다. 유준은 조용히 눈을 떴고, 눈동자를 움직여 텐트 입구를 바라보았다.

텐트 입구는 천천히 열리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후드 사람이 유준 몰래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도 밖에서 자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나 보네.’

유준은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일부러 뒤척이는 척을 하며 조용히 자리를 만들어줬다. 후드 사람은 잠시 멈춰서 흠칫했지만, 이내 조용히 그 자리에 누웠다. 불편했지만 유준은 다시 눈을 감았고, 텐트 안에는 숨소리만 울려 퍼졌다.

하지만 유준은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이젠 큰 의심은 없어도, 그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몸을 살짝 돌려 유준은 조용히 후드 사람을 응시했다.

‘헉…….’

밤이라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눈이 어둠에 익숙해진 탓에 실루엣은 어느 정도 보였다. 잠을 자느라 벗겨진 그의 후드는 그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는데, 그는 남자가 아니었다. 긴 생머리를 가진 여성이었던 것이다.

설마 그가 여성일 줄은 몰랐던 유준이었기에 간신히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자신의 옆구리를 찌르는 무언가에 고개를 살짝 들었다.

그녀는 아마도 검을 사용하는 검사인 듯, 검을 손에 쥐고 잠을 자고 있었다. 불편했는지 몸을 유준의 쪽으로 돌리고 있었는데, 이에 검 손잡이가 자연스럽게 유준의 옆구리를 찌르고 있었던 것이다.

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지. 그리고 왜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는지 궁금했지만, 유준은 그녀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슬쩍 검 손잡이를 치웠다. 왠지 자다가 칼 맞는 기분이라 썩 유쾌하진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텐트 입구 근처로 다가왔다. 곤히 자고 있던 그녀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검을 챙겨 나름 은밀하게 텐트를 나갔다.

발소리의 주인은 텐트 내부에 불빛을 비췄고, 유준은 자연스럽게 잠에서 깬 척을 했다.

“불침번입니다. 10분 안에 준비하고 나와 주시면 돼요.”

“예.”

유준은 준비를 하는 척을 하며 적당히 시간을 버티다가 장비를 불러오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전 근무자가 놀란 얼굴로 조용히 물었다.

“안에서 갈아입으신 겁니까?”

“아, 네 뭐.”

유준은 그에게 불침번 관련 사항을 인수인계했다. 후드 사람 역시 다른 근무자에게 인수인계를 받고 있었다.

인벤토리에서 손전등을 꺼낸 유준은 곳곳을 살피며 숙영지를 돌아다녔다.

그러던 유준은 어느 텐트에서 소리가 들리자 그곳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하… 잠 깨니까 잠이 안 오네.”

“나도다. 담배나 한 대 피울까?”

“담배 피웠다가 어떤 소리를 들으려고. 아서라.”

아마도 잠에서 깬 사람 같았는데, 유준은 신경을 쓰지 않고 몸을 돌렸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소리는 유준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후… 아까 낮에 그년한테 들켰을 생각만 하면 아직도 오금이 저린다.”

“그 새끼가 총대 메서 다행이지. 그나저나 그 새끼 아까 오후에 봤냐? C급이라면서 존나 날아다니던데?”

“그런 놈이 왜 아직도 C급인지 모르겠네.”

유준은 고개를 돌렸다. 아까 낮에 자신이 오해를 받았던 사건의 진짜 범인이 텐트 안에 있었다.

지이익.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유준은 텐트 안을 열었다.

“뭐, 뭐야.”

근처에 불침번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그들은 당황하며 일어났다. 유준은 자신의 얼굴 옆쪽에 빛을 비췄다. 이에 그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이가 없네.”

유준은 은은하게 기세를 뿜었다. 은은하지만 그들보다 월등히 강력한 유준의 기세는 제아무리 은은하다고 할지라도 압도적이었다. 그들은 입을 다물고 떨리는 손을 말아 쥐었다.

그들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유준은 이미 끝난 일이고 굳이 지금 이 야밤에 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용히 그들을 노려보며 읊조렸다.

“함부로 입 열고 다니지 마세요. 주둥이…… 찢어버리기 전에.”

두 사람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답도 못 한 채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유준은 조용히 텐트 문을 닫았다. 그리고 굳은 표정으로 걸음을 움직였다. 그때였다.

‘응?’

불침번을 서며 돌아다니던 유준은 뭔가 조용히 움직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조용히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박형수의 텐트가 있었는데, 그곳의 입구 지퍼가 조용히 닫히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딜 다녀온 모양이었다. 이미 그의 정체는 알고 있었기에 유준은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하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진 못했다. 복잡한 심경에 유준은 조용히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