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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블랙 헌터(1)





한순간 폭발적인 미라클의 기운이 폭사 되며 낄릭의 목이 깔끔히 잘려나갔다.

단 한 수.

그녀를 돕기 위해 다가온 존재는 단 한 수에 낄릭의 목을 잘라버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도 그녀는 즉시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다른 낄릭들에게 레이피어를 휘둘렀다.

스가가각!

레이피어는 낄릭들을 단숨에 죽이지는 못했지만, 치명상은 입혔다. 그때 그녀를 도와준 존재가 다시 한 번 앞으로 튀어나갔다.

쏴악!

모래가 사방으로 튈 만큼 어마어마한 속도!

그리고 낄릭들의 사이로 들어가더니, 순간 말도 안 될 정도로 미라클을 컨트롤하며 몸을 회전시켰다.

쐐애애애애액!

서거거걱!

빠가가각!

느릿하게 회전시키는 게 아니라, 어마어마한 속도의 회전!

약 2초간의 회전이 끝나자, 낄릭들은 어느새 육편이 되어 곳곳으로 흩날려진 상태였다.

그녀를 비롯해 그녀의 주변에 있던 다른 클랜원들, 그리고 그녀를 주목하던 다른 클랜원들 및 용병들은 모두 입을 쩍 벌렸다. 갑작스럽게 나타나 A급 헌터를 도와준 존재.

너무나도 짧은 시간에 여러 마리의 메카르를 단숨에 죽여 버릴 만큼 대단했기 때문이다.

“…뭐야?”

자신을 도와준 존재를 바라보던 그녀는 천천히 입을 벌렸다. 그는 다름 아닌, 불과 몇 시간 전 자신이 조롱하고 무시했던 존재.

C급 헌터이자, 자신에게 건방을 떨었던 서유준이었기 때문이다.

“저 사람, C급이라고 안 했어?”

“나도 그렇게 들었는데. 애초에 A급은 용병으로 지원 자체를 하지 않았어.”

“이게 무슨 경우지?”

다른 클랜원들은 물론이고 용병들도 마찬가지로 모두 입을 벌렸다. 그녀는 여전히 놀란 눈으로 유준을 응시했다. 유준은 그런 그녀를 한 번 흘겨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구해주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의 목숨이 위험에 처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유준은 그녀의 시선을 무시하며 다른 메카르에게 몸을 돌렸다.

곧바로 진격을 사용해 근처의 낄릭에게 돌진한 유준은 참격을 사용해 낄릭의 목을 몸통에서 분리한 뒤 근처에 있던 낄릭 무리에 돌진해 참격과 일반 공격을 하며 학살하다 포위를 당하자 새로 배운 스킬. 선쇄를 다시 사용했다.

선쇄는 유준의 예상보다 훨씬 더 위력적인 스킬이었다. MP 소모가 어마어마해서 부담이 컸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몬스터를 그냥 다중으로 공격하는 게 아니라, 공격하는 몬스터의 몸을 분해 해버릴 정도로 위력이 대단했는데, 부산물을 획득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좋지 않겠지만 지금처럼 난전의 상황에서는 최고의 스킬이었다.

레벨 80의 위력!

유준은 메카르들의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학살을 함으로써 자신의 힘이 예상보다 더욱더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그동안 사냥을 하면서도 왠지 모를 위축감에 안전한 사냥을 추구했는데, 지금처럼 분노한 상황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그저 전투에 몸을 맡기니 2세대 상위권의 메카르에게 둘러싸여 있는데도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오히려, 압도했다.

“…….”

그녀는 말을 잃었다. 말 그대로 메카르를 학살하는 유준. 다른 클랜원들 역시 마찬가지로 넋을 잃고 응시했다.

‘말도 안 돼.’

경이로웠다. 그녀는 유준의 힘에 경외감을 느꼈다.

무시하고 배척하던 존재가 어이없게도 자신을 훨씬 능가하는 힘을 갖고 있다니.

저 많은 메카르들 사이를 종횡무진하면서도 오히려 다급하지 않고 여유롭게 압도하는 모습!

도끼로 부수듯 잘라내고, 해머로 박살을 내는 모습!

같은 육체형 헌터였지만, 급이 달랐다. 그녀가 보기에 유준은 말 그대로 ‘투신’이었다.

빠각!

푸화하학!

해머로 마지막 남은 메카르의 머리를 그대로 부숴버리며 유준은 몸을 돌렸다. 어느새 헌터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유준. 심지어 유준의 근처에 있었는지, 박형수도 마지막 남은 메카르를 처리한 뒤 유준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약간 찌그러진 헬멧을 벗어 던지며, 유준에게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전부 보지는 못했지만. 당신의 전투, 인상 깊게 봤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이름과 등급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 서유준입니다. 등급은… C급입니다.”

박형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C등급에 이 정도의 힘이라니. 역시나 말이 안 됐다.

“C등급 말입니까? 제가 보기엔 C등급을 훨씬 상회하는 힘을 갖고 계신데.”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피해 없이 습격을 막아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클랜원도 아니고 용병이 이렇게 열성적으로 레이드를 해주니,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유준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능력 자체가 자신이 직접 움직인다기보다,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형식이었고, 그마저도 분노로 인해서 더욱 격렬한 움직임이 표출된 것이기 때문에 뭔가 자신이 칭찬을 받는 게 어색했다.

“나중에 따로 대화를 나눠보고 싶군요.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예? 아, 예.”

유준은 당황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가 어떠한 제안을 할지 유준도 대략 짐작은 되었다. 현재 자신의 힘은 자신이 봐도 예전에 비하면 경이로울 정도였으니까.

그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흠?’

유준은 미간을 모았다. 잠깐 사이였지만,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물방울 문신.’

확실했다. 크진 않았지만, 또렷한 물방울 문신.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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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비밀 조직원을 사살하라!]

비밀 조직원은 현재 공략대 전원을 위험에 빠트릴 계획을 세운 상태다.

그를 죽여 공략대를 구하고, 계획을 막아내자!

보상 : 배터리 100% 충전, 유니크 뽑기권, 미라클 허브.

위치 : 터치.

수락 / 거절.

-수락까지 남은 시각 10초. 제한 시간 내에 수락하지 않으면 거절로 판명됩니다.

(거절 시 고통을 겪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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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살?’

유준은 순간 당혹스러웠다. 사살하라니. 하지만 일단 퀘스트는 받아야 했다.

‘…빌어먹을.’

수락은 했지만, 유준은 지금 너무 당혹스러웠다.

박형수가 커스의 비밀 조직원인 것도 놀라운데, 그를 사살하라니…… 메카르를 죽이는 건 메카르에 대한 증오와 헌터로서의 결의 같은 여러 감정이 합쳐져서 별다른 죄책감이나 거부감은 없다. 하지만, 사람은 달랐다.

엄연히 자신과 똑같은 존재였다. 헌데 그를 사살하라 하니 유준은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서질 않았다.

‘그나저나, 그가 왜?’

유준은 박형수가 왜 블랙 헌터 조직, 커스의 비밀 조직원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애초에 박형수는 클랜 마스터와 친형제 관계에 있는, 클랜 부 마스터였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높은 명성과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는 존재이니 부족할 게 없었다.

헌데 그런 그가 도대체 왜?

유준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박형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퀘스트 창을 껐다.

보상? 배터리 충전과 유니크 뽑기권. 심지어 ‘미라클 허브’도 주는, 보상이 정말 좋은 퀘스트였지만, 지금 그것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유준은 벌써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심란한 상태였다. 그러던 와중에 유준은 클랜원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클랜원들은 유준을 아직도 놀란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유준에게로 다가왔다.

“너… 정체가 뭐지?”

그녀였다.

“제 이름과 등급은 아까 제 조장이 말씀드렸을 텐데요.”

유준은 그녀의 두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한 번만 더 무례하게 군다면,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괜한 분란은 던전 공략에 있어서 최악이었지만, 애초에 분란의 시초는 그녀였다. 이제는 참고 싶지 않았다.

유준이 두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본인의 조원들이 있는 곳으로 갔고, 그곳에는 무미건조하게 응시하는 후드 사람과 놀란 눈으로 응시하는 나머지 조원들이 있었다.

“자, 자네 더 강해졌군. 따로 뭐 비법이라도 있는 건가?”

덕배의 칭찬에 유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주변 용병들은 어느새 유준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유준과 눈이라도 마주치기라도 하면 눈을 피했다. 자신들이 유준을 무시했던 게 떠올라서 자칫 유준의 심사가 뒤틀리면 큰코다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상황을 정리하겠습니다. 시간은 20분 드리겠습니다.

다소 지친 목소리로 박형수가 무전을 했다. 이에 사람들은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부상자들은 치료를, 그리고 사망자들에겐 애도했고, 메카르의 부산물은 미라클 큐브만 챙겼다.

‘좋은데?’

헌터 마켓에서 산 해체용 단검을 사용해본 유준은, 차원이 다른 효율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뇌수와 피가 철철 흐르는 단검을 쥐고 웃는 모습이 조금 기괴스럽긴 했지만.

이윽고 상황이 모두 정리되자 그들은 다시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동하면서도 적은 숫자의 메카르에게 간간히 습격을 받았고, 결국 멀리 보이는 커다란 건물, 신전과도 비슷한 그곳에 도달하지 못한 채, 모래 위에서 밤을 맞이해야 했다.

-빠른 속도로 기본적인 숙영지를 편성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일단 롤 모델이 숙영지를 편성하는 동안, 용병들이 경계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용병들은 즉시 경계를 서기 시작했다. 개인의 목숨을 더 중요시하는 용병들은 부상자는 많았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부상자들도 지금은 모두 치료를 받아 괜찮아진 상태였다.

유준은 조원들과 함께 경계를 서게 되었는데, 상당히 배가 고팠다. 별로 먹지도 않았는데 격렬하게 움직인 탓이다.

즉시 인벤토리에서 초코바 하나를 꺼내 그대로 씹기 시작했다. 후드 사람은 그런 유준을 빤히 응시했다. 유준이 힘을 보인 이후부터 그는 계속해서 유준을 응시했는데, 유준은 그 시선을 어느 순간부터 알고 있었기에 상당히 의심스러웠다.

유준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초코바 하나를 더 꺼내 그에게 넘겼다. 그는 느릿하게 초코바를 받았지만, 먹지는 않고 갖고만 있었다.

“유준 군. 나도 하나 주게.”

“예.”

덕배에게도 초코바를 건네고 나자, 뒤이어 민준도 초코바를 원했다. 유준은 아예 소한의 초코바까지 꺼내 전부 넘겼다. 그들도 의외로 출출했는지 초코바를 모두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유준 씨. 정말 대단하시더군요.”

“아…… 감사합니다.”

“왜 아직도 C급인지 의문스럽네요. 혹시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뇨. 그건 아니고…… 그냥 아직 시험을 보지 못했습니다.”

“시험을요?”

어느새 덕배와 소한도 의아하다는 눈으로 유준을 응시했다.

“네. 어쩌다 보니…….”

생각이 복잡한 유준은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유준이 사정이 있어 시험을 못 봤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유준은 어두운 사막의 수평선을 지그시 응시하며, 박형수를 떠올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애초에 헌터라고 해서 살인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블랙 헌터. 그들을 체포하거나 살해하는 것 역시 헌터의 일이다. 결국 메카르든, 사람이든 생명체를 죽여야 하는 존재가 헌터다. 또한, 그뿐만 아니라 던전이나 사냥 구역에서도 사람을 죽여 본 헌터는 숱하게 많을 것이다. 그만큼 비정한 세계였고, 유준도 피부로 체감을 아직 전부 못했을 뿐이지, 어느 정도는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본인의 손으로 살인을 저지르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첫 살인. 퀘스트에 의한 강제적인 살인. 이게 정상적인 행동일까?

본인이 정한 진정한 헌터라는 기준에 의해 그어진 선 안에서 살인이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이 하겠지만, 퀘스트로 인해 억지로 살해를 하려니 그는 마음이 복잡했다.

“후우.”

유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한입 정도 남은 초코바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