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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사막 지형(2)





“거기. 이 사람 이름이 뭐죠?”

“그 친구의 이름은 서유준이라고 하오. C급 헌터지. 그리고 그 말을 한 건 그 친구가 아니…….”

“C등급? C등급이라 구요?”

덕배는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경력이 많고 여러 상황을 숱하게 겪어온 그에게 A등급의 헌터인 그녀의 심사를 건드리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대답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유준이 억울한 걸 알기 때문에 변명을 해주려고 하다가, 그녀의 말에 대화가 끊어졌다.

그녀는 유준이 C등급인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른 클랜원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놀란 눈으로 유준을 응시했다.

“C등급이 공략에 참여했다고? C등급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살짝 미소를 머금는 그녀.

명백한 조롱.

유준은 이를 악물었다. 말을 할 기회조차 제대로 주지 않으니.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C등급이 어려움 등급의 던전 공략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주제도 모르고 설치니까… 너무 우스운데?”

“…그만하시죠.”

“응?”

“그만하라구요.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를 악물며 유준은 그녀를 노려보았다. 만약 유준이 앞뒤 안 가리는 불같은 성격이었다면 당장이라도 튀어나가 그녀의 머리통을 부서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유준은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아직까지 어느 정도의 침착함과 소심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대장님, 그만하시죠. 너무 지체되었습니다.”

한 클랜원이 다가와 그녀를 말렸다. 그녀도 더 유준과 싸울 생각은 없었는지 눈물을 닦아내며 몸을 돌렸다. 애초에 유준의 변명을 듣지도 않은 듯했다.

그러다 그녀는 몸을 돌려 유준을 응시했다.

“근데 방금 뭐라고 했죠?”

“…….”

유준은 두 주먹을 말아 쥐고 이를 악물었다. 대답을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대답을 못 했다. 참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녀 역시 미간을 모았다. 그리고 모두가 들리도록 소리쳤다.

“지금부터 용병들이 전방에서 수색한다!”

용병들의 표정은 사정없이 구겨졌다. 분명 유준이 잘못한 건 없었지만, 방금 유준이 대화를 하지 않음으로써 그녀의 화를 돋웠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몇몇 용병들은 유준을 노려보기도 했다.

“C급 주제에 대가리 더럽게 뻣뻣하네.”

“하… 지가 하든 안 하든, 그게 뭐가 중요해?”

부르르.

주변 용병들의 웅성거림에 유준은 주먹이 덜덜 떨렸다. 이제는 참지 못할 것 같았다.

유준의 눈은 한순간에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튀어나가기 위해 다리 근력에 힘이 들어갔다.

탁.

그때 민준이 다가와 유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참으시죠. 원래 세상은 억울한 일투성입니다. 유준 씨가 억울하다는 거, 모두 다 알고 있으니 참으세요.”

“맞는 말일세. 참으시게나.”

“화, 화나시겠지만 차, 참으세요.”

소한까지 다가와 유준을 위로했다. 한순간 튀어나가 분노를 표출할 뻔했던 유준은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조절했다.

“…….”

후드 사람은 유준의 그런 변화를 눈치채고 있던 것인지 뒤에서 조용히 응시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돌렸다.

졸지에 용병들은 전방에서 수색하게 되었다.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않고, 호흡도 맞지 않는 그들이었기에 수색은 엉망진창이었다. 다행스러운 건 메카르들이 나타나지 않아 아직 큰 피해는 없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C급이 지원을 한 거야?”

“모집 공고에 자격 조건을 최소 C급이라고 적었나 봐. 그냥 넣은 거지 뭐. 하여튼 클랜 사무직 새끼들, 일을 참 지랄 맞게 해요.”

클랜원들은 그런 유준을 보며 저마다 조금씩 중얼거렸다. 유준은 한숨을 내쉬며 그들의 말을 조용히 참아냈다.

수색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용병들이 수색 기술은 허술했지만, 클랜원들도 같이 움직이니 수색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긴 했다. 그리고 한 가지 알아낸 사실은, 그들이 향하는 이곳에는 아무런 길도, 장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제야 돌아가네. 돌아가자!”

공격대장인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고, 그들은 다시 철수하게 되었다. 돌아갈 때도 메카르의 습격은 없었다.

그들의 수색이 제일 늦었는지 박형수에게서 무전이 왔다.

-제4 공격대. 복귀 중입니까?

“복귀 중입니다.”

그녀는 천으로 얼굴을 칭칭 감으며 짤막하게 대답했다. 자외선에 타들어 갈 피부가 여간 걱정인 듯했다.

이윽고 그들은 클랜원들과 용병들이 모두 모여 있는 숙영지에 도착했다. 도착하기 무섭게 공격대장들은 회의를 위해 막사 내부로 들어갔다.

용병들과 클랜원들은 일단 경계 조부터 짜기 시작했다. 또한, 몇 시간 뒤면 밤이었기에 불침번도 짜야 했다. 유준의 조는 경계는 없었지만 불침번 근무가 있었다.

“일단 점심이나 먹죠.”

민준의 제안에 이번에는 덕배가 자신의 음식을 꺼냈다. 덕배는 배낭에 제법 많은 음식을 챙겨왔는지 여러 가지 인스턴트식품이 다 나왔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골라서 먹게.”

덕배는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유준을 보며 말했다. 이에 유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아무거나 하나 집었다.

그때 여러 헌터들이 지나가면서 유준을 슬쩍 쳐다보고 갔다. 아무래도 소문이 퍼진 것 같았다. 용병들은 유준이 C급 헌터인 걸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 별다른 반응이 없을 것 같았지만, 소문은 ‘C급 헌터가 공격대장에게 건방을 떨었다’로 났는지 용병들도 지나가면서 유준을 쳐다보고 갔다.

롤 모델 클랜원들은 대놓고 속닥거리기도 했고.

공격대장은 지금 회의를 하고 있으니, 아마도 클랜원들의 입에서 나온 소문일 것이다.

“쟤냐? C급 헌터 주제에 건방을 떨다 들켰는데, 되려 배 째라는 식으로 나왔다는 놈이?”

“롤 모델이 아니라 다른 클랜의 공격 대장이었으면 던전이라서 증거인멸도 되겠다, 바로 죽었을 텐데. 운이 좋네.”

“생긴 건 멀쩡한데 성격이 이상한가 보네.”

청각이 좋은 유준이었기에 조금만 집중을 해도 그들의 말이 어느 정도는 다 들렸다. 유준은 굳은 표정으로 통조림을 씹었다.

“…….”

조원들은 그런 유준의 눈치를 봤는데, 유준은 느릿하게 음식을 씹으며 굳어진 표정을 제어하지 못했다.

“……잘 먹었습니다.”

몇 조각을 씹은 뒤, 유준은 통조림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배가 다 차지 않았지만 입맛이 없었다.

“더 안 먹는 건가? 몇 개 집어 먹지도 않았는데.”

“괜찮습니다.”

유준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기가 먹은 것들을 치우기 위해 움직였다. 움직이면서도 유준은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그렇지만 무시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윽고 회의를 마친 공격대장들이 막사에서 나왔다. 그리고 박형수는 전 병력을 집합시켰다.

“지금부터 모든 물자를 정리하고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은 이십 분 드리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병력은 즉시 움직였다. 유준의 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그들은 모든 물자를 정리한 뒤,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동하는 곳은 제2 공격대가 수색을 했던 곳이었다.

이동하면서 간간히 메카르가 나타났지만, 나타나는 메카르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유준의 조는 별다른 전투를 하지 않았고, 그들은 그렇게 차근차근 이동했다.

이윽고 그들의 눈에는 저 멀리 흐릿하게 거대한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고, 박형수는 즉시 무전을 했다.

-좀 더 빠르게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선두에서는 조금 더 빠르게 속도를 냈다. 중무장을 한 상태에서 짐을 지고 있고, 발은 바닥에 푹푹 들어가니 몇몇 헌터는 지쳐 보였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기에 큰 무리는 없었다.

“어, 어!”

하지만 그때, 선두에서 움직이던 사람들은 당황하며 중심을 잡지 못했다.

-유사입니다! 모두 일단 뒤로 빠져주시길 바랍니다!“

선두 공격대의 대다수가 그대로 유사에 빠지고 있었기 때문에 박형수는 즉각 명령을 내렸다. 이에 나머지 사람들은 즉시 몸을 뒤로 뺐고, 스펠형 헌터들은 그들을 구해내기 시작했다.

-크와아아아!

-카아아아악!

기다렸다는 듯 모래 속에서 메카르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뱀의 몸에 쥐의 얼굴을 가졌고, 또한, 뱀의 몸이었지만 팔다리가 있어 상당히 기괴스러운 외모를 가진 ‘낄릭’이라는 메카르였다.

낄릭의 숫자는 제법 많았다.

대충 보이는 숫자만 해도 100여 마리.

애초에 이곳을 지나가야 했으니, 유사와 메카르는 일종의 트랩인 셈이다.

헌터들은 일단 구조를 하는 사람들부터 호위를 하며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정신없는 상황이었지만, 클랜원들은 모두 훈련이 잘 되어 있는 탓에 당황하지 않고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였다.

용병들이 있는 뒤쪽에는 낄릭들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박형수는 즉시 용병들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용병들은 가까이 와서 본대를 돕길 바랍니다!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용병들은 같은 조끼리 움직였다. 유준의 조 역시 움직였는데, 유준은 메카르들을 보자 평소보다 더욱 끓어오르는 혈기에 당장이라도 튀어나가고 싶었다.

스트레스가 쌓여 있는 상태에서 전투 욕구가 솟구치니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흥분이 되었다.

화아앗!

유준은 기세를 숨기지 않았다. 자신의 기세를 마음껏 표출했다. 이에 민준은 놀란 눈으로 유준을 응시했고, 후드 사람 역시 유준을 응시했다. 그리고 몇몇 주변의 용병들 역시 놀란 눈으로 유준을 응시했다.

그때, 박형수를 비롯해 네 명의 공격대장들이 강렬한 기세를 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의 시선은 그곳으로 집중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준은 자신의 무기를 불러왔다.

양날 도끼와 한 손 해머!

투신의 가호로 인해 은은하게 흘렀던, 영험한 기분이 드는 미라클이 이제는 제법 눈에 보일 정도로 흘렀다. 그래 봤자 아지랑이 정도였지만.

‘더… 강해진 건가?’

유준의 기세에 덕배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예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강렬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한 기운.

‘느껴지는 기세로는 다른 A급 헌터 이상이군.’

민준 역시 유준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소한은 ‘역시’라는 표정으로 유준을 응시하고 있었고, 후드 사람은 아예 유준 쪽으로 몸을 돌려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새 그들 조는 클랜원들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고, 유준은 정면을 응시했다.

“하압!”

아까 유준을 못살게 굴었던 공격대장이 낄릭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열 마리의 낄릭이 붙어 있었는데, 그녀는 다른 헌터들의 보호를 받으며 전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레이피어를 사용하는 육체형 헌터였는데, 움직임이 제법 유연하고 재빨랐다.

“대장님!”

그때 그녀의 뒤쪽에서 한 마리의 낄릭이 덮쳐왔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미라클이 대량으로 발출된 레이피어를 강하게 휘두르며 땅을 박찼다.

그녀가 있던 땅의 모래는 낄릭의 주둥이로 들어갔고, 그녀는 땅으로 내려오며 다른 낄릭에게 레이피어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녀가 상대하고 있는 건 2세대 상위권의 메카르인 낄릭. 절대로 얕볼 상대가 아니었다.

공중에서 다른 대원들의 보호를 받지 못할 상황에 여러 마리의 낄릭이 그녀에게로 돌진했다.

이에 다른 대원들은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대, 대장님!”

“피, 피하세요!”

“안 돼!”

위험한 상황에 그녀는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허공에 떠 있는 상태로, 사방을 옥죄며 돌진해오는 낄릭 전부를 처리할 수는 없었다.

‘제길!’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부상을 입을 각오로 레이피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때.

쏴악!

모래가 강하게 밟히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신형이 다가왔다. 매우 빠른 속도였고, 그녀로서도 쉽사리 눈으로 쫓지 못할 속도였다.

서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