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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블랙 헌터(3)





날이 밝기 무섭게 공략대는 곧바로 움직였다. 숙영 물자들을 모두 정리한 뒤 그들은 간단하게 아침밥을 먹고 이동을 시작했다.

한참을 이동하던 그들은 신전 앞에서 멈춰 섰다. 날이 밝기 때문인지 신전 내부가 환하게 들여다보였다.

-각 공격대별로 천천히 신전 내부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신전 내부에 함정 장치가 있을지도 몰랐기에 박형수는 각 공격대별로 안으로 진입 명령을 내렸다. 이에 헌터들은 긴장하며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유준은 이동하며 박형수를 응시했다.

어떤 계획을 짰는지 아직도 감히 잡히질 않았다.

‘죽여야 한다.’

분명 죽여야 했다. 메인 퀘스트를 제외하고서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죽여야 했다. 하지만 확신이 서질 않았다. 유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스스로 기회가 아니라고 자위하며 유준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부는 조용하고 고요했다. 그러나 헌터들은 그런 내부의 상황에 더욱 겁을 먹었다. 갑자기 뭔가가 튀어나온다던지, 함정이 발동될 것 같았다.

“아무 이상도 없는 것 같네요. 이동하겠습니다.”

헌터들은 박형수의 말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게 무슨 대책 없는 소리인가. 확인도 해보지 않고 아무런 이상도 없다니. 박형수의 행동은 확실히 이상했다.

“부, 부 마스터!”

박형수는 성큼성큼 계단을 향해 움직였다. 한 클랜원은 그런 박형수를 보며 소리쳤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입술을 깨물었다. 박형수는 운 좋게 이상이 없었지만, 다른 이들은 재수 없게 함정에 걸려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제1 공격대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박형수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내였다. 경력도 그렇고, 나이도 그렇고.

“부 마스터를 따라간다!”

그는 이동했다. 이에 다른 클랜원들도 입술을 깨물더니 함께 이동했다.

유준은 긴장하며 그들을 따랐는데, 이상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박형수는 어느새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그를 따르는 헌터들도 어느새 계단 앞에 도달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네?”

“뭐지?”

“부 마스터는 그걸 어떻게 아신 거야?”

의아해하면서도 헌터들은 그를 따랐다. 유준은 오히려 더욱 긴장했다. 과연 그가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을지 감조차 잡히질 않았다.

이윽고 그들은 2층에 도달했고, 2층에 도달해서도 박형수는 성큼성큼 움직였다. 그리고 어느새 빠르게 뒤따라온 제1 공격대장이 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부 마스터. 이렇게 가다간 위험하실지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따라오기나 하세요.”

너무나도 이상한 박형수. 뭔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는 제1 공격대장이었으나 일단 따라가야 했다. 지금 여기서 총지휘관은 누가 뭐래도 그였으니까. 결국, 그들은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고, 박형수는 빠르게 올라갔다.

다른 이들도 빠르게 그를 따랐고, 이내 1, 2층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3층의 모습을 맞이할 수 있었다.

-모두들 나를 따라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박형수는 빠르게 중앙 쪽으로 향했다. 정말 의심스럽고 이상한 행동. 하지만 다른 헌터들은 그를 빠르게 따라갔다. 모든 헌터들이 중앙에 도착하자 박형수는 그들을 정렬시켰다.

“도대체…….”

제1 공격대장은 한숨을 내쉬며 박형수를 바라보았다. 한순간에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때였다.

-크르르르…….

-크와아아!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어마어마한 수의 메카르가 쏟아지듯 내려왔다. 이에 헌터들은 모두 눈을 부릅떴고, 제1 공격대장은 소리쳤다.

“모두들 전투 준비! 부 마스터!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의 외침에도 박형수는 꼼짝하지 않았다. 유준은 뒤쪽에서 앞의 상황을 보며 미간을 모았다. 다가오는 메카르. 그 메카르는 유준도 잘 알고 있는 메카르였다.

벨비.

4족 보행을 하지만 전투를 할 때만큼은 2족 보행을 하는 메카르로, 2족 보행을 할 때 3m의 키와 울긋불긋한 근육, 그리고 단단한 가죽을 갖고 있는, 파충류와 비슷하게 생긴 2세대 상위권의 메카르였다.

특히나 벨비는 앞다리가 뒷다리보다 훨씬 길고 굵었는데, 손이 유난히 컸다. 그리고 큰 손에는 날카로운 손톱들이 휘어져 자라 있었는데, 팔 자체도 어느 정도 휘어져 있어 마치 거대한 여러 자루의 낫을 보는 듯했다.

얼굴은 악어나 도마뱀 과였지만, 이빨은 언밸런스하게도 영장류처럼 뭉툭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벨비는 사막 지형에서 사는 메카르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벨비는 개인행동을 하는 메카르로서, 저렇게 무리를 지어 나타날 리도 없었다.

심지어 일반 벨비보다 몸집이 1.5배는 더 컸기 때문에 유준은 그게 무얼 뜻하는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그들인가?’

유준의 눈매가 한순간에 날카로워졌다. 전 메인 퀘스트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벨비들은 내려오자마자 바로 헌터들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어색한 움직임으로 정렬한 상태였는데, 박형수는 녀석들을 보기 무섭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 나갔다.

“부, 부마스터!”

“멈추세요!”

“어딜 가시는 겁니까!”

그가 움직이자 당황한 클랜원들이 소리쳤지만, 박형수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이내 박형수는 벨비 앞에 도달했고, 동시에 박형수는 헬멧을 벗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로.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

“……!!”

놀랍게도 박형수의 얼굴에는 웃음이 만연한 상태였다. 평소에 보지 못한 비열하고, 잔혹한 미소.

더욱 놀라운 건, 벨비들이 박형수를 적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박형수는 그렇게 벨비들의 사이를 지나갔고, 공략대는 혼란에 빠져버렸다.

“도, 도대체 이게…….”

제1 공격대장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벨비들의 틈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박형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모두 정신 차려라! 박형수는 우릴 배신했다! 사정이 어떻게 되었건, 지금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눈앞의 적에만 집중해라!”

순간 그의 몸에서 거대한 기세가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의 기세에 반응하듯 벨비들이 목청이 터져라 포효를 질렀다.

-크와아아아아!

-까아아아아아!

일반의 벨비와 차원이 다른 기세를 풍기고 있었기에 헌터들은 모두 긴장했다. 얼핏 봐도 수백 마리나 되어 보이는 벨비, 그것도 일반 벨비와 차원이 다른 벨비를 상대로 아무 상처 없이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니, 이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절망 할 수는 없었다.

만약 이곳이 필드라도 됐다면 도망이라도 쳤겠지만, 이곳은 필드도 아니었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살아남는 법은 싸워서 이기는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헌터들도 모두 필사적인 표정으로 기세를 품었다.

유준은 그들의 바뀐 태도에 자그마한 감탄을 품었다. 누가 뭐래도 그들은 헌터. 그것도 전부 B급 이상의 헌터들이다. 유준은 자신이 그들을 조금은 얕보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벨비들이 헌터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보통의 벨비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

유준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박형수. 이 모든 원흉인 박형수를 죽여야 했다. 하지만 살인을 하기엔, 아직까지 그의 마음은 너무나도 물러 있었다.

일단 유준은 거대 홀브와 똑같이, 거대 벨비가 있는지부터 살폈다. 거대 벨비는 없었다. 그리고 즉시 무기를 불러왔다.

아직 고민하는 유준이었기에, 유준은 조원들과 함께 있었다. 조원들 역시 모두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후드 사람 역시 망토 사이로 검 손잡이를 내밀고 천천히 검을 뽑았다.

스릉!

‘…….’

지켜보던 유준이 순간 정신을 빼앗길 정도로 그녀의 검신은 너무 아름다웠다. 상당한 명검인 듯, 소리도 너무 청아했다. 이렇게 되니 유준은 그녀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졌다.

그사이 벨비들은 헌터들을 포위하듯 다가왔고, 헌터들은 순식간에 벨비들에게 포위가 되었지만,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선두에 있던 벨비들이 어느새 헌터들을 습격해왔기 때문이다.

콰지직

“끄아아악!”

서걱!

-키에에엑!

헌터들은 벨비들과 치열하게 싸웠다. 하지만 벨비들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애초에 2세대 상위권의 힘을 갖고 있던 벨비가 강화까지 되어 있으니 3세대 메카르 정도는 아닐지라도 평균 B급의 헌터들이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강력했다.

심지어 숫자도 적지 않아서, 이대로라면 전멸이 확실했다.

유준은 벨비들의 힘을 보며 즉시 파악을 했다. 벨비들은 홀브보다 훨씬 강하다. 애초에 홀브들은 하위권의 메카르였고, 벨비는 상위권의 메카르이니. 하지만 벨비들은 거대 홀브처럼 강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약했는데, 현재 유준의 수준으로서 그렇게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유준은 강해진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졌다. 그리고 그런 자신감은 전투가 시작되자 흥분되기 시작하는 심장으로 인해 더욱 불어났다.

이내 자신의 근처에도 벨비가 다가오자, 유준은 즉시 진격을 사용해 돌진했다.

콰지직!

-키에에엑!

유준은 한 벨비에게 다가가 옆구리에 해머를 쑤셔 박았다. 그러자 벨비는 그대로 날아 가버렸고, 그사이에 유준의 도끼가 벨비의 다리 한 짝을 잘라냈다.

서걱.

단숨에 유준의 몸은 벨비의 피로 물들었으나, 유준은 벨비를 끝까지 쫓아갔다. 아니, 쫓아가려고 했다.

서서걱!

어느새 나타난 후드 사람이, 날아간 벨비의 곁에 나타나, 미라클이 날카롭게 발출된 검을 휘둘렀다. 검은 그대로 벨비의 목을 잘라냈고, 벨비는 허공에서 목과 몸이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툭, 투둑.

푸화하학!

유준은 그녀를 조용히 응시했다. 후드 여성. 그녀는 결코 B급의 헌터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녀는 현재 기세도 전부 드러내고 있지 않았다. 이 말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그녀의 힘에 조원들도 당황했는지, 유준의 곁으로 다가오며 그녀와 유준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유준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주변을 살폈다. 주변은 어마어마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헌터들이 벨비를 죽이고 있다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벨비들이 헌터들을 학살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유준은 이 모습이 하나의 지옥처럼 보였다.

‘처음부터…….’

그냥 그를 죽였다면 모든 일이 끝나지 않았을까? 결국, 자신으로 인해 일어난 결과가 아닐까?

유준은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박형수의 곁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도 커스의 조직원인 듯싶었다. 형수는 웃으며 그들과 함께 4층으로 올라갔는데, 유준은 그걸 보며 이를 갈았다.

‘애초에 필요한 일이었어.’

유준은 자기 자신을 탓했다. 살인이라는 단어에 당황하며 괜히 고상한 척을 떨었다고 생각하니 자기 자신에게 실망감까지 느껴졌다.

‘나는 헌터다.’

애초에 일반인과 다른 헌터. 유준은 가라앉은 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제야 생각이 정리되었다.

자신이 정한 선이 있었지만, 결국 지금 이 일도 자신이 정한 선 안에 들어가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그 선이라는 것도 결국 자기 자신이 만든 틀이라는 것이다.

유준이 헌터라는 건 바뀌지 않고, 앞으로 헌터로서 걸맞게 행동할 것이라는 건 바뀌지 않는다. 굳이 틀을 정해 그 안에서 한계를 가질 필요는 없었다. 유준은 그걸 지금 여실히 깨달았다. 결국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의 마음가짐이다. 뭘 하든 간에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할 마음가짐.

굳은 표정으로 유준은 즉시 진격을 사용해 가까운 곳의 메카르에게 향했다. 그리고 메카르를 해머로 날려버리고 다시 한 번 또 다른 메카르에게 진격을 사용했다.

MP가 미친 듯이 소모되었지만, 유준은 물약 패드의 버튼을 누름으로서 가볍게 해결했다.

“흐아압!”

유준은 기합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땅을 박찼고, 유준의 몸은 여러 시체의 벽을 그대로 뛰어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