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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쇼핑(1)





2주가 지났다. 그동안 유준은 갖고 있는 돈을 흥청망청 쓴다거나, 돈을 어떻게 쓰기로 계획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일단 작은 목표를 승급으로 잡고 사냥에 집중했다.

곧 헌터가 된 지 딱 한 달이 된다. 그때가 되면 유준은 승급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유준은 사냥에만 집중했다.

어차피 A등급에 필적하는 힘을 그동안 키운다고 해서 바로 A등급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B등급까지는 무력으로 등급을 올리는 게 가능하지만, A등급부터는 다른 추가 시험을 치러야 했다.

또한, 그동안의 경력도 중요했고.

유준은 오늘도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부지런히 캐릭터를 키웠다. 그동안 유준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단 레벨.

현재 유준의 레벨은 79였다. 매일 배터리를 100%로 충전해서 게임을 했지만 레벨이 오를수록 레벨 업이 힘든 RPG 게임의 특성상 겨우 2주 동안 많은 레벨 업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동안 꾸준히 캐시 포인트를 모아 스킬 레벨을 올리고, 장비 뽑기를 한 결과, 현재 유준에게는 장비의 변화도 생겼다.

기존에는 두 개의 무기 중 양날 도끼만 레어 등급의 아이템이었다면, 이제는 양 손에 레어 아이템을 들고 있었다.

유준이 얻은 레어 아이템은 한 손 해머였다.

본래 왼손에 매직 등급의 메이스를 쓰고 있었는데, 이번에 나온 레어 무기는 그보다 월등한 성능과 파괴력을 지닌 아이템이었다.

그 외에 뽑기에서 나온 아이템들은 다른 나머지 아이템들을 전부 매직 등급 아이템으로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됐고, 중복되는 아이템들은 해머와 양날 도끼, 그리고 단 한 개의 유니크 반지의 레벨 업에 소모 되었다.

유준은 현재 소프트의 사행성 시스템에 상당히 열이 받아 있는 상태였다. 2주 동안 14만 원이라는 캐시 포인트를 소모했는데, 큰 이득을 얻지 못한 것이다.

이에 열이 받은 유준은 소프트 사행성 시스템에 관해 알아보기 위해서 인터넷을 켜서 정보를 알아보았는데, 자신은 새 발의 피라고 할 만큼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퀘스트를 깨서 유니크 뽑기권을 얻은 자신과 달리 어떤 사람은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을 뽑으려고 몇 백만 원을 투자했지만 아직도 얻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러한 사행성에 기사가 뜨고 많은 유저들도 접는다고 난리를 치고 있었지만, 정작 접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부정적인 기사들은 홍보가 되어 여전히 모바일 게임 순위, 매출 순위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유준은 레벨 업을 할 수 있었다.

레벨 80.

소프트 내에서는 아직 초보라고 할 수 있는 레벨이지만 게임을 많이 할 수 없는 유준이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새로운 스킬인가.”

80레벨이 되자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었는데, 유준은 어떤 스킬인지 확인부터 했다.

선쇄(旋碎)라는 스킬로, 그 자리에서 회전하면서 주변의 적들을 공격하는 일종의 ‘범위 스킬’이었다.

그동안 대인 스킬만 있어 소프트 안에서 사냥을 할 때 약간 답답한 감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범위 스킬이 생기자 유준은 미소를 지었다.

시험으로 사용해보려던 유준은 갑자기 폰이 꺼지자 좌절했다. 한숨을 내쉬며 유준은 일단 밥부터 대충 때웠다.

그리고 항상 수련하는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레벨이 올랐으니 육체에 적응도 하고, 새로운 스킬도 써볼 생각이었다.

공원에 도착한 유준은 주변을 살폈다. 역시나 사람이 많이 없었다. 유준은 즉시 무기를 불러왔다. 양날 도끼와 한 손 해머. 둘 다 무게는 크게 차이가 없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유준은 한 손 해머의 정보를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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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의 한 손 해머] 등급 : 레어.

공격력 : 800.

내구도 : 94 / 110.

옵션 : 근력 + 25. 체력 + 10.

뛰어난 전사들이 사용하던 한 손 해머.

상당히 위력적이기 때문에 조심히 다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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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공격력은 양날 도끼보다 낮았지만, 내구력과 옵션은 양날 도끼보다 훨씬 좋았다.

유준은 옵션을 껐다. 그리고 어깨를 풀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내 유준의 몸은 빠르고 격렬하게 두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묵직하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유준.

이제는 유준 자신이 느끼기에도 움직임의 수준이 달랐다.

헌데도 움직임이 제어가 됐는데, 그만큼 유준이 레벨이 오를 때마다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던 유준은 스킬 패드를 열었다. 그리고 새로 생긴 세 번째 스킬 아이콘을 눌렀다.

쐐애애애앵!

유준의 몸은 순간 그 자리에서 그대로 팽이처럼 회전했다. 심장 부근에 있던 MP가 미라클 로드를 통해 몸 곳곳으로 움직였고, 동시에 무기를 통해서도 분출되었다. 강력한 기세가 유준을 중심으로 폭발하듯 퍼져나갔고, 스킬이 끝나기가 무섭게 MP는 달팽이관 쪽으로 이동하여 어지럼증이 느껴지지 않도록 조율했다.

이래저래 MP의 쓰임이 많다 보니 MP 소모가 극심한 스킬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성장을 했고, 여러 아이템도 있으며, MP 물약까지 있기 때문에 MP에 대해 크게 걱정은 없었다.

그 뒤로 더 수련하던 유준은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TV를 보며 시간을 축내던 유준은 12시가 되자 퀘스트 창을 열었다.

어김없이 퀘스트가 갱신될 시기였기 때문이다. 현재 유준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100마리의 메카르들을 잡고 있었다. 2세대 사냥 구역인 점을 고려해서 숫자가 많이 늘어나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도 많이 늘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유준은 퀘스트 창을 응시했다.

“응?”

하지만 유준은 당황했다. 퀘스트 창에는 ‘수행 가능’이라고 적힌 퀘스트는 없었고, 메인 퀘스트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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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던전 공략에 참여하자!]

위치를 눌러 해당 위치에 존재하는 던전 공략에 참여하도록 하자.

보상 : 연계 퀘스트.

위치 : 터치.

수락 / 거절.

-수락까지 남은 시간 10초. 제한 시간 내에 수락하지 않으면 거절로 판명됩니다.

(거절 시 고통을 겪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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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은 일단 수락부터 했다. 그리고 퀘스트를 읽어보기 시작했다.

‘던전?’

저번에는 의뢰였는데 이번에는 던전이었다. 하지만 저번과 똑같은 것이 있다면, 연계 퀘스트라는 점이다.

‘도대체 메인 퀘스튼 언제, 그리고 왜 뜨는 거지?’

메인 퀘스트가 뜨는 공식이 무엇인지 생각을 했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알 수 없었다. 유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산.’

던전의 위치는 일산의 1세대 사냥 구역의 입구 근처였다. 퀘스트 에서 일단 던전 공략에 참여하라고 했으니, 아마도 던전을 공략하려는 클랜이 헌터 사이트에 게시글을 올려놨을 것이 분명했다.

유준은 일단 좌표부터 확인했다. 그리고 헌터 사이트에 접속했다.

“……응?”

헌터 사이트는 현재 난리가 난 상태였다.

12시 정각에 용병 모집 게시글이 하나 올라왔는데, 그 게시글로 인해 현재 사이트 내는 무척이나 반응이 뜨거운 상태였다.

“롤 모델…….”

롤 모델 클랜.

대한민국 대형 클랜 중에서 10대 클랜이라고 알려진 클랜 중 하나이며, 많은 스타 헌터들을 보유하고 있는 클랜이었다.

롤 모델 클랜에서는 현재 용병 모집을 하는 상태였는데, 용병 모집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이번에 새로 발견된 ‘어려움’ 등급 던전의 원활한 공략을 위해서.

던전의 등급은 총 네 가지로 나뉜다.

쉬움 -보통 -어려움 -위험한.

던전을 구별하는 기준은 던전의 입구인 ‘포탈의 색’으로 결정지었다.

쉬움은 녹색, 보통은 파랑색, 어려움은 빨강색, 위험한은 검정색.

그중에서 위험한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몇 번 등장도 하지 않았고, 공략도 몇 개 안 된,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 극악의 등급이고, 어려움은 대형 클랜을 기준으로 어느 정도 성공 가능성이 높은 등급이었다. 출몰하는 메카르도 대부분 2세대 메카르였다.

현재 롤 모델 클랜에서는 선착순으로 용병들의 모집을 하고 있었다. 용병들의 등급은 최소 C등급이었는데, 인원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다른 헌터들의 반응을 확인하니, 분명 커리어에도 도움이 되고, 롤 모델이라는 대형 클랜과도 함께 할 좋은 기회였지만, 대부분 참가는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려움이라는 등급이 위험하기도 했고, 던전에서 많은 헌터들이 죽기 때문에 소속이 없는 헌터들은 용병으로 참여를 대부분 꺼렸다.

롤 모델에서도 이 정도를 예측했는지 인원에 제한을 두지 않은 듯했다.

유준은 신청을 하고 나서 보수를 보았다. 보수는 적었다. 높은 보수는 B등급부터였는데, 애초에 C등급의 헌터는 형식상 달아놓은 것이지, 진짜 참여를 할 거라고 생각 자체를 안 했기 때문에 보수가 엄청 적은 듯했다.

다만 사냥을 해서 나오는 부산물들은 헤드 캠으로 지분율을 파악해서 분배를 한다고 하니. 수입이 아예 없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번 퀘스트는 무엇과 연관이 되어 있을까.’

저번에는 정체 모를 실험실이 등장했다. 과연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정체는 무엇인지 유준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 평범한 존재들은 아니었다. 메카르를 조종하고, 강화하고. 유준은 이 메인 퀘스트라는 게 뭔가 어두운 부분들과 어느 정도 연관이 되어 있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메인 퀘스트. 그저 자신의 능력의 일부인 메인 퀘스트와 그들이 왜 관련이 있는지 유준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자신의 능력의 일부이니, 분명 자신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건 앞으로 메인 퀘스트가 뜨고, 그것들을 클리어 하다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유준은 생각했다.

“마감 뒤 바로 출발인가?”

모집을 마감하면 그다음 날 바로 출발이었다. 용병들을 따로 훈련시키거나 하는 건 없었다.

애초에 주 병력은 잘 훈련이 되어 있고 진즉에 던전 공략에 대한 대비를 다 해놓은 클랜 소속의 공격대였기 때문에 용병이 따로 뭘 하는 건 없는 것 같았다.

유준은 아쉬웠다. 만약 마감하고 며칠 뒤에 출발한다면 그사이에 승급 시험을 볼 수 있는 날짜가 된다. 그럼 승급을 하고 출발을 하게 되면 보수가 더욱 좋을 텐데, 그게 아니니 아쉬웠다.

‘혹시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지원하는 사람이 많이 없긴 했지만, 겨우 C등급이다. 유준은 불안 했다. 일단 밤이 늦었기에 유준은 침대에 누웠다. 메인 퀘스트 때문에 당장 내일부터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니 뭔가 공허했다.

사냥을 가도 됐지만, 유준은 이왕 이렇게 된 거 푹 쉬었다가 던전 공략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었다.



* * *



유준은 평소와 달리 조금 느긋하게 눈을 떴다. 의도치 않게 며칠 휴가가 주어졌기 때문에 빨리 일어날 이유가 없었다.

뒤늦게 일어나 티비를 보는 유준. 현재 유준이 보고 있는 프로그램은 헌터들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기획된 프로그램이었다.

헌터들의 화려한 삶을 보여주고 그 뒤에 숨겨진 고충들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써, 고충이라고 해도 그저 힘들도 위험한 정도였고 너무 잔인하거나 잔혹한 부분들은 다 편집을 하기 때문에 고충보다는 화려함에 더 눈길이 가는 프로그램이었다.

TV에 나오는 헌터들은 모두들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가격을 보지 않고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구매를 했다.

스타 헌터들은 아니었으나 B급 이상의 헌터들인 듯 고민이 전혀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유준은 아직은 적응이 안 된다는 표정으로 응시했다. 이윽고 헌터들은 헌터 마켓에 들렀다. 그리고 헌터 마켓에서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백화점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쇼핑이나 해볼까.’

혼자서 하는 쇼핑은 처음이었지만 못할 건 없었다. 유준은 샤워부터 했다. 빠르게 샤워를 하고 나온 뒤 청바지와 반팔 티셔츠를 입은 뒤에 집을 나섰다.

유준은 오늘 혼자서 쇼핑이라는 걸 제대로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유준의 통장에는 십억이 넘는 돈이 쌓여 있지만, 아직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 상황이었다.

‘백화점부터 가자.’

택시를 타고 유준은 백화점으로 향했다. 백화점 앞에 도착하자 유준은 고개를 들어 백화점 건물을 훑었다. 가족들, 혹은 친구들과 와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혼자 쇼핑을 하러 온 적은 없었다.

‘생각해보니…….’

다른 물품들에 비해 값싼 물품들이었지만, 친구들과 자주 와서 지갑이나 시계를 사곤 했었다.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아 이제는 왕래가 끊겨버린 고향 친구들의 얼굴이 아른거려, 오랜만에 보고 싶었다.

‘조만간 연락 한번 하자.’

이제 과거와는 달라진 자신이다. 연락을 해서 솔직하게 말하고 그동안 연락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싶었다.

백화점에 들어온 유준은 일단 던전 공략에 필요한 헤드 캠의 칩부터 사기 위해서 전자 제품 코너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