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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솔로 레이드!(2)





서거걱!

푸화하학!

다리가 여섯 개가 달려 있는 커다란 하마처럼 생긴 중위권 메카르가 목이 반쯤 날아간 채 그대로 땅바닥에 몸을 뉘였다. 어느새 쓰러진 메카르의 주변에는 세 마리의 중위권 메카르가 죽음을 맞이한 채 누워 있었다.

총 네 마리의 중위권 메카르.

유준은 양날 도끼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인벤토리에서 단검을 꺼냈다.

레이드는 순조로웠다. 사냥 구역으로 들어오기 전, 긴장했던 모습은 이제 완전히 과거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레이드를 즐기며, 여러 마리가 다가와도 손쉽게 해치우며 메카르들을 압도했다. 유준의 인벤토리에는 메카르의 부산물이 차곡차곡 쌓였다. 하위권과 중위권의 메카르들 중, 지금 사냥을 하는 메카르들의 해체법은 대충 헌터 사이트에서 알아왔었기에 해체에 문제는 없었다. 정밀 해체를 하는 메카르들은 애초에 잡지 않기 위해 목표지로 설정하지도 않았고.

대충 해체를 해도 되는 녀석들, 그것도 등급이 낮은 녀석이 서식하는 지역들만 골라서 사냥을 했다.

해체를 마친 뒤 유준은 인벤토리에 부산물들을 전부 넣었고, 마지막에 미라클 큐브를 굴리듯 넣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세시였다. 아까 챙겨온 도시락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세 시간이 지났다.

유준은 복귀를 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 있어서 좋을 건 없었다. 복귀하면서 유준은 두 마리의 메카르를 마저 잡았고, 알림음을 들을 수 있었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유준은 아침부터 오후 세시까지 사냥을 하고 나서야 30마리를 잡으라던 처음의 퀘스트, 그리고 똑같이 30마리를 잡으라는 두 번째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었다. 다행히 숫자가 늘어나지는 않았다.

홀브처럼 모여 있는 것도 아니고, 따로 떨어져 있으니 이 정도의 속도는 당연했다.

만약 공격대처럼 B급 이상의 헌터들이 모여 있다면, 마구잡이로 잡아 훨씬 더 많은 메카르와 더 높은 등급의 메카르를 망설임 없이 레이드 하겠지만, 유준은 혼자였다.

일단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했으니.

그렇다고 해서 유준이 소극적으로 움직인 건 아니었다. 1세대 사냥 구역의 공격대들처럼 빙빙 돌아서 안전한 곳을 향해 피해 움직인 것도 아니었다.

2세대 공격대는 1세대와 달리 적극적으로 움직였는데, 유준도 그들처럼 적극적으로 움직여 여러 마리의 메카르들을 사냥하곤 했다. 하지만 유준이 선택한 이 지역 자체가 애초에 메카르가 많이 없어서 다수의 메카르를 사냥하는 건 불가능했다.

개인이니만큼 공격대와 비교하면 수입은 조족지혈이겠지만, 공격대 소속의 개인 대원보다는 훨씬 많을 것이다.

이후 세 번째, 네 번째 퀘스트는 완료하지 못했지만, 유준은 나름 만족했다. 가장 큰 수익은 퀘스트와 돈이 아니라 ‘자신감’이었으니까.

2세대 사냥 구역에서 홀로 사냥을 마쳤다는 자신감. 바리케이드 근처에 도착하자 유준은 즉시 사냥 구역의 입구 쪽으로 향했다. 출구가 따로 없었으니. 입구가 곧 출구였다.

“하암.”

아까 유준을 말렸던 헌터는 다른 헌터와 함께 경계를 서며 하품을 했다. 근무 순서가 로테이션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아침 초번으로 근무를 선 그는 오후에도 초번으로 근무를 서야 했다.

하루에 근무를 두 번 서야 했기에, 내내 쉬다가 다시 서는 것이지만, 이상하게 온종일 근무를 선 것처럼 피곤했다.

그때 그는 누군가가 다가오자 왼쪽을 바라보았다. 이 시간이 되면 하나, 둘씩 사냥을 하고 복귀하는 헌터들이 나타나는 시기이다. 가장 바쁜 시기라는 소리다. 아침에도 그렇고 오후에도 그렇고 가장 바쁜 시간대만 근무를 맡아서인지 그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다가오는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응?”

그는 두 눈을 비볐다. 맞았다. 메카르의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분명 맞았다.

다친 곳도 전혀 없었고, 걸음걸이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비틀거리거나 절뚝거리는 건 전혀 없었다.

멀쩡히, 그것도 메카르의 피를 뒤집어쓰고 살아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혼자’.

비록 부산물로 보이는 어떠한 것도 없었지만, 살아 돌아왔다는 게 놀라웠다. 유준은 헌터 자격증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내 그는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며 헌터증을 받아 조회를 했다. 그리고 출입 기록에 다시 한 번 체크를 한 뒤 카드를 넘겼다

“고, 고생하셨습니다.”

“아… 예.”

유준은 어색하게 인사하며 그곳을 벗어났다. 헌터는 유준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늘이 도운 게 분명해.”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든, 유준은 즉시 거래소 안으로 들어갔다. 1세대 거래소와 달리 유준이 허공에서 부산물을 꺼내든 뭘 하든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이곳은 2세대 사냥 구역인 만큼 많은 강자들이 있을 테고, 지금 유준이 꺼내는 부산물은 적은 편에 속했기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세금을 제외하고 7000만 원입니다. 계좌로 넣어 드리겠습니다.”

한순간에 계좌에 칠천만 원이라는 돈이 찍혔고 유준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공격대의 수입에 비해서는 적지만, 그 공격대의 1인 수입에 비해서는 많다고 할 수 있는 금액.

보통 B등급의 헌터들이 평균적으로 하루에 얼마를 버는지 알고 있었기에 유준은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거래소를 나왔다.

그리고 탈의실에서 장비를 해제한 뒤에 즉시 근처 목욕탕으로 향했다. 목욕탕에는 역한 냄새가 덜했지만, 그래도 역시나 났다.

메카르의 피 냄새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샤워를 하고 나온 뒤, 유준은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때 유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돈이 입금됐다는 알림이었다.

협회 측에서 지급된 돈이었는데, 유준은 즉시 조회를 했다.

‘헉…….’

지급된 돈의 액수를 보며 유준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급된 돈의 액수는 무려 5억.

돈이 좀 많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무려 5억 원이나 돈이 들어오니 유준은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이걸로 뭘 하지?’

택시를 타고 가며 유준은 이 돈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마음 같아서는 부모님께 전부 드리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헌터인 것을 말씀 드려야 했다.

아직은 아니었다. 적어도 B급의 헌터가 되어,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는 위치가 되었을 때 말씀을 드려야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유준은 휴대폰부터 꺼냈다. 그리고 TV를 켜고 침대에 누워 소프트 앱을 실행했다.

캐시 포인트가 만 원이 있었기 때문에 유준은 스킬 포인트부터 구매해서 스킬의 레벨부터 전부 올렸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는 인벤토리를 늘렸다. 점차 캐릭터의 레벨이 높아질수록 인벤토리의 칸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총 100칸이 된 인벤토리. 별다른 소득은 없는 지출이었지만, 원활한 플레이를 위한 지출이었기에 유준은 만족하며 즉시 사냥에 돌입했다. 에피소드 퀘스트를 깨며 사냥을 하자 레벨은 쑥쑥 올라갔다. 아직은 높은 레벨이 아니었기에 사냥은 어렵지 않았다.

레벨 40을 찍고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자 유준은 투기장과 일일 던전을 시작했다.

두 개의 장비 강화권이 주어졌고, 이윽고 휴대폰이 꺼지기 시작했다.

‘강화권은 좀 더 모아야겠다.’

지금은 크게 필요가 없으니 나중에 한꺼번에 강화할 때 사용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강화권을 모을 생각이었다. 식사 시간이 다 되었기에 외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육체도 성장했으니, 수련을 좀 하다가 밖에서 밥을 먹고 들어올 생각이었다.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유준은 즉시 집을 나섰다.



* * *



어둡고 지저분한 골목. 간혹 깜빡거리는 가로등만이 유일한 빛인 이곳에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전신을 감싸는 검은색의 전신 갑주와 쇠로 만들어진 검은색의 복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헤어스타일은 긴 곱슬머리였는데, 키가 상당히 커서, 어두운색의 복장으로 어두운 골목을 지나니 상당히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야심한 시각에 특이한 복장으로 골목을 지나는 남성. 그는 갑작스럽게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미라클을 운용해 주변에 기감을 퍼트렸다. 혹시라도 다른 존재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거나, 근처에 다른 생명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희미한 빛을 뿜는 구둣방이 나타났고, 그는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구둣방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은 구두를 만지고 있었는데, 쳐다보지도 않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통신.”

남성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노인은 아무 대답 없이 구두만 만졌고, 남성도 노인의 대답을 기다린 건 아닌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구둣방 안쪽에 티가 안 나게 어딘가와 연결된 바닥 입구가 있었고, 강성우는 그것을 단숨에 열었다.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는 남성.

아래로 내려오자 미약한 전구와 함께 하나의 통로가 드러났다. 그는 망설임 없이 통로를 걸었다. 이윽고 닫힌 철문이 나타났다.

그는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벽 전체에 설치된 모니터가 존재했는데, 남성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모니터가 갑작스럽게 켜졌다. 모니터에는 한 남성이 정장을 갖춰 입고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어두워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잘 관리된 흰색 턱수염뿐이었다.

남성은 즉시 고개를 숙였다.

“기사단장님을 뵙습니다.”

그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리며 복면을 벗었다. 그리고 그의 정체는 놀랍게도 대한민국 헌터 협회의 본부장이자, S등급의 헌터, 강성우였다.

기사단장은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강성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강원도 양구 쪽에서 ‘점령’으로 예상되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강성우는 있었던 일을 그대로 보고했다. 보고를 들으며 기사단장은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보고가 끝나고 기사단장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강성우는 조용히 기다렸다.

이윽고 기사단장은 굳게 닫혀있던 입을 열기 시작했다.

“메카르의 강화와 조종이라. 가벼운 일이 아니군.”

기사단장에게서 흘러나오는 언어는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였다. 하지만 강성우는 알아듣는 것이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가 착용하고 있는 반지, 통역 아티팩트 덕분이었다.

“일단 우리 쪽에서도 조사를 해야 하니, 사체의 일부를 우리 쪽으로 양도하고, 자네는 일단 기사단원이 아닌, 대한민국 헌터 협회 본부장으로서 조사를 해주게. 자칫 잘못하다가 우리 기사단의 큰 전력인 자네의 신변이 드러날 수 있으니.”

“알겠습니다.”

“그럼…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수고해주게. 자네는 자랑스러운 기사단의 단원임을 잊지 말도록…….”

모니터는 그렇게 꺼졌다. 강성우는 다시 복면을 착용했다. 그리고 즉시 몸을 돌려 아무렇지도 않게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