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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패시브 스킬(3)





협회 소속 헌터들은 협회 관계자에게 전송받은 지도로 공동 입구를 찾았다. 공동 입구는 멀쩡했지만, 주변의 바닥이 무너져 있었기에, 입구를 굳이 찾지 않아도 실험실의 위치를 금세 찾을 수 있었다.

헌터들과 함께 온 일반인 관계자들은 즉시 곳곳을 사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너져 내린 땅을 보며 관계자들은 턱을 매만졌다.

“이거 제법 힘들겠는데.”

보고를 받은 바로는 메카르를 실험으로 더욱 강력하게 만들고 조종을 했다고 했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질 않았지만, 그렇다고 거짓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큰일이었다.

과연 누가 그런 짓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조사해야 했고, 그 존재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야 했다.

분명 이런 곳에서 몰래 실험을 하는 건 필시 다른 목적이 있어서일 테고, 그 목적은 결코 올바른 목적이 아닐 것이 분명했다.

“메카르를 조종한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관계자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사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이미 이 사건은 그들을 넘어서 더 높은 상부까지 전달된 상태였다.

그들은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쳐놓은 뒤, 일단 산에서 내려갔다. 땅을 들어 올리려면 스펠형 헌터가 필요했는데 그들은 모두 육체형 헌터였다.

또한, 이곳에 주야장천 있다가는 어디선가 등장할 메카르에게 피해를 볼 수도 있기에 일단은 자리를 뜨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협회 소속 헌터들은 그렇게 모두 산에서 내려갔고 그들이 떠난 자리에 한 남성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190㎝의 키와 다부진 몸. 명품으로 보이는 정장과 구두, 그리고 금발 머리를 깔끔하게 잘 올린 서양인이었다. 마치 잘 나가는 샐러리맨처럼 보이는 그는 주변 배경과 무척이나 매치가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심각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주머니에서 손을 뺀 그의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있었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조용히 나직였다.

“H -1 실험실 폐쇄. 이유는 침입자. 나머지 실험실은 조속히 실험을 마치고 폐쇄하겠음.”

통화를 끊은 뒤 그는 조용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마치 귀신이라도 되는 듯, 조용히 그 자리에서 사라져 있었다.



* * *



목욕탕의 상태가 좋지 못했기에 유준은 빠르게 목욕을 끝내고 나왔다. 덕배와 소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개운하긴 하네. 자네들도 그렇지 않은가?”

메카르의 피와 살점에 절어 있다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으니 살 것 같았는지 덕배의 표정은 좋았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갈 생각에 터미널로 향하던 유준은 덕배의 배려로 차에 탈 수 있었다.

덕배의 차는 좋았다. 외제 SUV였는데, 유준도 잘 알고 있는 모델이었다.

“돌아가면 승급 시험은 꼭 볼 수 있도록 하게. 내가 볼 때 지금 자네는 C등급에 머무를 실력이 아니야.”

“…네.”

운전하면서 덕배는 유준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덕배는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혹시 자네 클랜이나 공격대에 소속될 생각은 없는가?”

“예?”

“내가 이번에 지인들과 함께 공격대를 만들기로 했네. 규모가 커지면 클랜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자네 정도라면 공격대에서도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 테고, 보장까지 해주지. 어떤가?”

유준은 어색하게 웃었다. 덕배가 보기에 유준은 아주 좋은 인재였다. A등급에 필적하는 전투 능력. 거기에다가 아공간까지 갖췄다. 아직 경험은 많이 없어 보였지만, 그거야 가르치면 될 일이며 말도 잘 듣게 생겼으니 탐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아직 헌터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천천히 생각을 해봐야 될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그런가? 아쉽군. 나중에라도 생각 있으면 연락 주게.”

그는 유준에게 명함을 건네줬다. 이로서 명함은 두 개를 받았다. 한 것도 없는데 괜히 받은 명함만 늘어나는 기분이었지만,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헌터로서 인정을 받는 것도 같아 괜스레 가슴이 뛰었다.

“자네는 등급이 어떻게 되지? C등급인가?”

덕배는 백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소한과 시선을 마주했다.

“아, 아뇨. B등급이요.”

“그렇군.”

의외로 B등급이었지만, 덕배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은근슬쩍 입을 열었다.

“자네도 혹시 소속이 필요하지는 않나?”

희귀하다고 할 수 있는 치유 능력이었기에 그는 소한을 탐냈다. 성격이 유약해 보였지만, 그래도 지켜본 바로는 전투에 있어서 해야 할 일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봤기에 어느 정도 신뢰성은 갖추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덕배는 입맛을 다시며 소한에게도 명함 한 장을 건네줬다. 이윽고 그들은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운전기사처럼 집에 데려다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덕배는 근처에서 내려줬다.

“잘 가게, 생각 바뀌면 나중에 꼭 연락해주고!”

덕배가 떠나고 유준과 소한은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유준은 먼저 소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음에… 뵙죠.”

“네…….”

둘은 번호를 교환했다. 같은 용병이고, 능력도 괜찮았기에 유준은 인맥으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유준은 택시를 잡았고, 탑승하며 말했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밥이라도 한 끼 해요.”

“아, 알겠습니다. 다, 다음에 봬요!”

소한은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유준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휴대폰부터 꺼냈다.

꺼져 있던 휴대폰은 꺼내자마자 즉시 켜지기 시작했다. 유준은 망설임 없이 소프트부터 접속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 담겨 있는 아이템을 보자마자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유니크 뽑기권. 단숨에 유니크 아이템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이벤트성 캐시 아이템이다.

유준은 곧바로 유니크 뽑기권을 사용했다.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아이템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드랍한 아이템은 반지였다. 유니크 등급의 반지. 유준은 즉시 옵션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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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의 미학] 등급 : 유니크

내구도 : 50 / 50.

옵션 : MP 50% 증가, MP 회복 속도 30% 증가, 크리티컬 5% 증가.

착용자의 MP 수준을 상당 수준 올려주는 아이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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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옵션이었다. 유준은 기쁜 마음으로 얼른 착용부터 했다. 캐릭터의 장비창에 끼워진 아이템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유준은 생각했다.

‘이걸 팔면 얼마 정도 나올까?’

잠시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던 유준은 소름이 돋았다. 지금까지 그걸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프트는 유저간의 트레이드가 가능한 게임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더욱 사행성 과금에 빠져 있는 실정이었고.

유준은 지나가는 아무 유저를 붙잡고 거래를 신청해보았다. 혹시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안감은 언제나 적중하는 법. 그가 거래를 받아줬지만 에러가 뜨면서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쉬운 길 일 거라고 생각은 안 했기 때문에 좌절은 하지 않았지만, 실망은 어쩔 수 없었다.

게임 플레이에 앞서 유준은 물약부터 대량으로 구매했다. 현실에서 물약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HP와 MP 물약이 몇 개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물약을 살 수 있는 만큼 대량으로 구매하자 골드가 바닥을 보였다. 유준은 입맛을 다시며 퀘스트를 겸하며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시간은 지나가고 배터리는 바닥을 보였다. 그때 유준의 레벨은 35가 되었다.

‘스킬을 못 찍네.’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스킬이 5개였지만, 스킬 포인트가 부족해 두 개 밖에 레벨을 올리지 못했다. 캐시 포인트로 스킬 포인트를 구매하면 될 일이지만, 캐시 포인트도 없어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유준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다.

35가 되자 유준은 두 가지 새로운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투기장과 일일 던전.

투기장과 일일 던전은 하루에 한 번 이용할 수 있는 던전이었는데, 한 판을 이기고, 클리어를 할 때마다 장비 강화권이라는 아이템이 지급된다. 만약 지거나 클리어를 하지 못할 경우에는 횟수만 허비하고 강화권도 받지 못하게 된다. 투기장은 이길 때마다 승점이 올라가는데, 일주일에 한 번 씩 승점을 토대로 보상이 지급된다. 지급되는 보상은 ‘장비 뽑기’ 이외에 또 다른 사행성 시스템, ‘물품 뽑기’에서 지급되는 아이템들이 지급되었다.

물품 뽑기는 게임 플레이에 필요한 장비 강화권을 포함해 순간이동 이용권, 아이템 제작 재료, 서버 확성기, 등 여러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도박이었는데,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들을 랜덤으로, 수량도 한두 개가 아니라 랜덤으로 여러 개를 얻을 수도 있는 보상이었기에 많은 사람이 투기장 시스템을 이용했다.

이러한 투기장과 일일 던전은 하루에 한 번 횟수 이외에 또 다른 기회를 얻으려면 캐시 포인트로 ‘열쇠’를 구매해야 했다. 열쇠의 사용 횟수도 하루에 한 번이 제한이고.

장비를 강화할 수 있는 강화권을 캐시 포인트가 아닌 발로 뛰어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기에 유준도 남은 배터리로 즉시 투기장과 일일 던전을 돌았다.

가볍게 이기고, 클리어를 하자 두 장의 장비 강화권이 인벤토리로 들어왔다.

아직 장비 강화를 할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유준은 그대로 보관하기로 마음먹었고, 동시에 휴대폰이 꺼졌다.

“후우.”

휴대폰이 꺼질 때마다 항상 아쉬움이 컸다. 자기 자신이 강해지는 일이기도 했지만, 게임 자체도 재미가 있었다.

“목이 마르네.”

물을 마신 뒤, 유준은 외출을 했다. 전보다 몸이 좀 더 강해진 상태였기에 수련을 해야 했다. 비록 5레벨 이었지만, 5레벨의 차이는 제법 컸다. 강해지기 위해서가 아닌 적응하기 위한 수련이었지만, 유준은 이것도 강해지기 위한 수련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자신을 알아야 가진 능력을 어느 정도까지 발휘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테고, 그 한계를 토대로 계산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유준은 예전에 갔던 운동장이 아니라, 다른 공원으로 갔다.

제법 넓은 공원에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유준은 장비창을 열어 무기만 불러왔다.

무기를 잡자 무기에서는 은은하게 미라클이 흘렀다. 그리고 유준만 느낄 수 있는 영험함.

투신의 가호.

이번에 유준은 이 투신의 가호에 대한 효과를 톡톡히 봤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홀브를 사냥할 수 있었다는 게 가장 큰 효과였다. 또한, 흐르는 미라클도 MP를 소모하지 않았으니 정말 좋은 스킬이었다.

유준은 양날 도끼와 메이스를 휘둘렀다. 어색함이 없는 움직임. 유준은 나머지 두 패시브 스킬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투신의 손길과 투신의 기회. 이 두 스킬 역시 유준에게 큰 도움이 됐다. 특히 투신의 기회는 유준의 목숨을 한 번 살려줬으니. 유준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투신의 기회를 마음대로 발동할 수는 없을까?’

머리를 굴렸지만,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실험은 할 수 있겠지만 실험을 하다가 다치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고, 그때처럼 똑같이 발동이 될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진짜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어야만 발동이 될 텐데, 의도한 상황이라면 그게 발동이 안 될 것 같았다.

‘천천히 생각해보자.’

어차피 시간은 많았다. 거기다가 중요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메인 퀘스트.’

메인 퀘스트의 정체가 궁금했다. 더 나아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정체도 궁금했다. 도대체 이번에 만난 조직과는 무슨 연관이 있으며, 앞으로도 엮일 것인지, 거기에다가 메인 퀘스트는 언제 생성이 되는 건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메인 퀘스트를 깨면 어느 정도 비밀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머리만 더 아파왔다.

‘이것도 나중에 천천히…….“

한숨을 쉬며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한 유준은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한 유준은 씻고 티비부터 틀었다. 그리고 자정이 지나자 ‘수행 가능’이라고 적힌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2세대 30마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홀브도 2세대였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지금 여기서 2세대를 사냥하려면 2세대 사냥구역으로 가야 했고, 안전하게 사냥을 하려면 용병으로 공격대에 참여를 해야 했는데 지금 유준의 등급은 C등급이다.

보통 2세대는 B등급부터라는 인식이 깔려 있고,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공격대와 클랜 측에서는 절대 B등급 미만의 헌터를 2세대 사냥 구역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

이번에 홀브를 사냥할 수 있던 건 예외일 뿐이었다. 다급한 협회 측으로 인해 생긴 예외.

방법은 홀로 사냥을 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승급을 하는 것뿐인데, 지금 승급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승급은 무분별한 도전을 막기 위해서 한 달에 한 번만 가능했다. 불과 얼마 전에 헌터 자격을 얻은 유준은 자격이 없다는 소리였다.

‘그렇다고 주야장천 기다릴 수는 없어.’

자신에게는 물약 패드도 있었고, 약한 메카르만 상대하면 가능할 것 같았다. 일단 자세한 정보부터 알아내기 위해 유준은 헌터 사이트에 접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