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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메인 퀘스트(3)





이윽고 버스는 출발했다. 덕배는 상당히 말이 많았다. 그는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듯 유준에게 말을 했는데, 귀에서 피가 나올 지경이었다.

넉살이 좋지 않고, 오히려 조용한 성격에 가까운 유준은 그의 말을 다 받아주진 못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얘기를 계속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딱 말했지. 내가 구해주겠다고.”

그의 얘기는 마치 소설 속에나 나오는 헌터 같았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갑자기 손에 미라클을 발출했다.

“자네, 미라클을 어디까지 다룰 줄 아나?”

“예? 그냥 적당히…….”

“보아하니 자네도 육체형 헌터 같은데. 다른 스펠형 헌터 같으면 능력연습을 많이 하면 되겠지만, 우리 같은 육체형 헌터는 육체 수련도 해야 하고, 미라클 수련도 따로 해야 하지. 심지어 미라클 수련은 정말 중요해. 결국 미라클이 강해져야 경지가 올라가는 셈이니까.”

“아…… 네.”

유준은 입술에 침을 바르며 대답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단답형으로 맞장구쳐주는 것도 한계였다. 슬슬 잠이 왔다.

“자네도 나중에 이 정도 농도의 미라클을 발출할 수 있을 걸세.”

버스는 어느새 도착했는지 주차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고 유준도 함께 내렸다. 미리 와 있던 협회 관계자는 헌터들의 열을 맞추기 시작했고, 수를 셌다. 수가 맞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헌터 중에서 강한 힘을 지녔을 것으로 예상되는 한 명이 앞으로 나섰고, 협회 관계자는 그에게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내줬다.

“안녕하십니까. 임시로 만들어진 공격대지만, 공격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잘 해봅시다.”

자신의 이름도 말하지 않고, 상당히 건방지게 말했지만, 사람들은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보통 공격대의 대장은 공격대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맡기 마련이다. 유준이 느끼기에도 공격대장의 힘은 최소 A등급이었다.

그는 일부러 기세를 마음껏 표출했는데, 아무래도 대원들이 자신의 기세를 느끼고 알아서 기어들어 가길 바라는 마음 같았다.

“느껴지는 기세로 봐서 저 사람은 A등급이군.”

혹여나 유준이 기운을 느끼지 못할까 봐 덕배는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줬다. 유준이 가진 MP는 적은 편에 속했기에 그는 유준이 그 이상의 힘을 가졌을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공격대장은 조를 나눴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유준과 덕배는 같은 조였다. 그리고 양구로 올 때 함께 앉았던 사람 역시 같은 조였다.

조는 다섯 명씩 총 10개였다. 보통 한 개의 공격대는 총인원이 평균적으로 50명 정도였으니 인원은 딱 적당했다.

이윽고 다른 공격대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클랜 소속 헌터들인 듯 움직임이 제법 절도가 있었다.

“중형 클랜인가. 공격대장도 모두 B급이군.”

총 세 개의 공격대가 왔지만, 그들 중에 A급의 헌터는 한 명도 없었다.

유준의 조의 조장은 덕배가 맡았다. 경력도 많았고, 나이도 많았다. 올바른 선택이었다.

이윽고 각 공격대의 대장들은 협회 관계자와 회의를 했다. 회의를 마친 뒤, 각 대원들은 공격대장의 명에 따라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여자들도 있었기에 임시로 만들어놓은 탈의실에서 착복을 해야 했다.

유준은 탈의실에서 장비를 불러서 착용했다. 하지만 너무 빨리 나가면 의심을 받을까 싶어 오랜 시간 있다가 나갔다.

“장비가 제법 깔쌈한데?”

덕배는 유준의 복장을 보며 박수를 쳐줬다. 상의와 하의, 그리고 신발이 매직 등급의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생김새가 제법 괜찮았다.

“아티팩트는 아니겠지?”

“…예.”

대답하기 조금 뻘쭘했기에 유준은 짧게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덕배가 탈의를 마쳤고, 놀랍게도 덕배는 아티팩트를 한 개 갖고 있었다. 장갑이었는데, 스턴 능력이 있다고 했다.

“썩 크게 좋은 건 아니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한 번쯤 필요한 법이지. 만져 봐도 되네.”

“……괜찮습니다.”

그들은 출발했다. 한여름에 산을 타는 일이었기 때문에 스펠형 헌터들은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여성들은 더했다. 그럴 때마다 남성 육체형 헌터들이 여성들을 도와줬고, 그들은 안전하게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 각 조는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서유준, 자네는 왜 짐이 없는가?”

주변 사람들 모두 짐을 지고 있었는데 유준만 맨손이었다. 유준은 인벤토리에서 텐트를 꺼냈고, 이에 덕배는 놀란 눈으로 응시했다.

“아공간?”

“아티팩트는 아니고, 개인 능력이요.”

모두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그 이상으로 묻진 않았다. 유준은 자신이 가져온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공간이 제법 넓었기 때문에 개인 텐트를 설치해도 크게 문제는 없는 듯했다.

이윽고 각 공격대들끼리 다시 모였다. 일단 식사를 해야 했기에 경계 조를 정해야했다. 경계 조는 필수였다. 홀브가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 갑작스럽게 메카르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위험했다.

밥을 먹고 있다가 난데없는 메카르의 침입에 누군가가 희생될 수도 있는 일이고.

재수가 없게도 유준의 공격대에서는 유준의 조가 경계를 해야 했다.

가위바위보로 정하는 것 같았는데, 덕배는 첫판부터 패배해버렸다.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기에 조원들은 불만 없이 덕배를 따랐다. 유준도 마찬가지였다.

“이쪽까지가 우리가 경계하면 되는 구간이다. 서유준, 자네는 나와 함께 가지. 그리고 자네도.”

덕배는 유준과 소년으로 보이는 사람을 데리고 자리를 잡았다.

“그나저나 자네하고는 통성명을 안 한 것 같군. 이름이 뭔가?”

“유, 유소한이요.”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미성년자인가?”

“아, 아뇨. 스, 스물두 살인데요.”

소한은 말을 더듬는 게 버릇인 듯 꾸준히 말을 더듬었다. 덕배는 그런 소한이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는지 어깨를 다독였다. 다독이는 게 제법 세서 소한이 고통스러워했지만.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힐러인 건 알고 있어. 만약 전투가 벌어질 시에 자네를 최우선으로 지킬 테니 안심하도록 해.”

“그, 그게 무슨…….”

“쉿. 경계를 설 때는 원래 조용해야 하는 법일세.”

덕배는 검지를 대며 말했다. 유준은 덕배의 행동에 피식 웃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경계는 여유로웠다. 메카르의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교대 조가 왔고 그들은 돌아가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 역시 각자 가지고 온 식량으로 해결을 해야 했다. 모두 통조림이나 인스턴트식품을 꺼냈다. 유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유준. 자네는 전투가 벌어지게 될 시에는 소극적으로 행동을 하게. 딱히 전술적인 이유는 아니고, 가장 중요한 건 목숨이니 말일세.”

용병들로 이루어진 공격대는 전술이 따로 없다. 그냥 기본적으로 탱커나 근접 딜러가 앞으로 나서고, 원거리 딜러들이나 힐러, 또는 버퍼들은 뒤에서 보호를 받는, 정석적인 전술이 전부였다. 안에서 조끼리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다른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전술은 바랄 수 없었다. 오늘 급조된 공격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투가 벌어질 시 난전이 되는 건 뻔했다. 때문에 덕배는 유준에게 경고를 하는 것이다. 조원들이 지켜주지 못하니, 조 구분 없이 사이에 숨어들어 소극적으로 전투에 참여 하라고.

“예.”

유준은 갑자기 긴장됐는지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그들은 주변을 정리한 후, 각 공격대끼리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있는 베이스캠프는 홀브 부족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있다. 그러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고, 어떤 식으로 생겼는지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수색은 필수였다.

각 공격대는 지도로 구역을 정했다. 공격대 안에서도 조로 나누어져 구역을 찢었고, 그사이에 다른 메카르나 정찰을 나온 소규모 홀브들과 접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준의 조는 조용했다.

헌터들은 다시 베이스캠프로 모였다. 공격대장들은 정보를 모았고, 내일 총공격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회의를 했다. 회의가 끝난 뒤 그들은 헌터들에게 회의 내용을 전했고, 모두의 표정은 긴장감으로 물들어갔다.

이후 불침번과 경계 조를 정하기 위해 조장들끼리 얘기를 나눴다.

유준의 조는 경계는 없었지만, 불침번이 있었다. 휴대폰으로 알람을 맞춰놓은 유준은 자신의 텐트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이렇게 베이스캠프에서 텐트를 깔고 잠을 자니, 군대 생각이 났다.

추억이지만 아름답지는 않은. 그렇지만 그 안에서 제법 즐거웠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유준은 웃으며 눈을 감았다.

툭툭.

“일어나세요.”

잠깐 눈을 감은 것 같은데 벌써 시간이 됐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에 유준은 한숨을 쉬며 즉시 장비를 불러왔다. 그리고 적당히 시간을 버티다가 텐트 밖으로 나왔다.

‘그래도 춥지 않아서 움직일 만하네.’

군인 시절에는 이렇게 불침번을 서면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헌터들의 세상이라 그런지 전혀 없었다.

어느새 그들은 조금은 긴장된 표정으로 텐트에서 나와 주변을 살폈다. 목숨과 연관이 되어 있는 일이라 당연했다.

밤이라 그런지 덕배도 말이 많이 없었다. 유준은 여름이라 그런지 몰려드는 모기에 짜증을 내며 불침번 시간을 채웠다. 다행히 침입은 없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그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일단 텐트부터 접고, 식사를 한 뒤에 장비를 점검했다. 장비점검을 끝낸 그들은 각자 정해진 구역으로 향했다.

유준은 헬멧에 헤드 캠을 달았다. 그리고 긴장된 표정으로 공격대를 따랐다. 하지만 그때였다. 각 공격대가 헤어지려고 할 때 쯤, 멀리서 땅이 울렸다.

그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즉시 파악을 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홀브들이.

어제 정찰을 왔던 홀브들이 있었던 만큼, 녀석들도 눈치를 챈 것이다.

협회 관계자가 망원경으로 전방을 살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흩어지면 안 됩니다! 수가 많습니다!”

헌터들은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각 공격대끼리 진열을 다듬었다. 유준 역시 근접 딜러였기에 전방에 서 있었는데, 덕배는 유준의 근처에서 조용히 나직이었다.

“전투가 시작되면 뒤로 빠질 수 있도록 하게.”

그는 유준을 배려했다. 정말 고마운 배려였지만, 유준은 홀브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지금의 떨림이 긴장이 아니라, 흥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흙먼지를 피어오르며 다가오는 수많은 홀브를 보자, 유준은 이를 악물었다.

홀브들은 점차 가까워져 갔다. 덕배는 유준에게 말했다.

“지금, 뒤로 가게.”

하지만 유준은 덕배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듣지 못했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는지, 캐릭터의 정신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직업의 영향도 있는 건지 유준은 땅을 박차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유준을 비롯해 다른 몇몇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땅을 박차고 앞으로 뛰쳐나간 유준은 진격 스킬을 사용했다.

꽈앙!

꽈드득!

유준의 몸이 일순간 고무공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유준의 양날 도끼에서는 대량의 미라클이 폭사 되었고, 한순간에 선두에 있던 홀브의 가슴팍을 찍어버렸다. 하지만 찍어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양날 도끼는 거칠게 홀브의 몸 절반을 날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