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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메인 퀘스트(2)





[퀘스트 수락까지 5초 남으셨습니다.]



유준은 황급히 퀘스트 창을 열었다. 메인 퀘스트가 떠 있었다. 그리고 즉시 메인 퀘스트의 내용도 보지 않고 수락했다.

내용은 어차피 같았다. 유준은 헛구역질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제정신이 아닐 것 같았지만 의외로 정신은 맑았다. 정신이 맑은 걸 확인하니 배가 고파왔다. 유준은 즉시 중국 음식 배달부터 시켰다. 엄청나게 많은 양을 배달시킨 뒤, 그걸 모두 먹어치웠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퀘스트 창을 열어 퀘스트를 응시했다. 어차피 처음 상황에서도 퀘스트를 열지 않았으면 지금과 똑같은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었다. 퀘스트 수락이 5초 남았다는 소리가 분명 떴을 테고, 뭔 소린가 해서 늦장을 피우다가 고통을 겪게 됐겠지.

유준은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정리를 해보려 했지만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일단 메인 퀘스트를 깨다 보면 조금이라도 자신의 능력에 대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창을 열어 위치를 터치하자 눈앞에 지도 홀로그램이 생성되었다.

장소는 강원도 양구였다. 지도에는 협회라고 적혀 있었다.

‘이번 퀘스트와 협회가 관련이 있는 건가?’

유준은 남은 군만두를 씹으며 헌터 사이트를 열었다.

현재 사이트에서는 강원도 여러 지역의 메카르 소탕에 참여할 헌터들을 모집 중이었다. 각종 게시판에서는 현재 이 모집을 가지고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었고, 그뿐만 아니라 포털 사이트 기사도 강원도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홀브.

2m 50㎝의 키와 커다란 덩치를 가진 이족보행 메카르로, 집단생활을 하며,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2세대의 메카르였고, 상대하기 정말 까다로운 메카르였는데, 이번에 강원도 곳곳에서 대량의 홀브들이 출몰했다는 소식이었다.

그 때문에 협회 측에서는 준 비상사태라고 생각하며 즉시 헌터들을 모집했다. 대형 클랜 측에서는 현재 소식이 없었지만, 많은 중형 클랜 측에서는 참가 의사를 내비친 상태였고, 소속이 없는 많은 헌터들도 용병으로 대거 참여를 신청한 상태였다.

참가 조건은 C등급 이상의 헌터라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했다. 2세대의 메카르였지만, 워낙 용병들의 숫자가 부족했기에 커트라인을 C등급까지 내린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등급의 헌터라면 목숨이 아까워서라도 지원을 하지 않을 테지만, 유준은 예외였다.

C등급의 보수는 하루에 500만 원이었다. 협회 측에서 주는 보수는 이게 다였고, 대신 레이드를 해서 나온 부산물은 모두 헌터의 몫이었다. 이걸 위해서 필요한 게 바로 헤드 캠이었다.

유준은 망설임 없이 지원을 했다. 지원을 하자마자 곧바로 승낙이 떨어졌고, 내일모레까지 양구 읍내의 헌터 협회 막사로 오라는 메일이 왔다.

준비물은 ‘헤드 캠’과 각자 필요한 물품. 유준은 필요한 물품을 날이 밝으면 구입하러 가기로 했다.



* * *



‘여긴 어디지?’

유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공간. 그리고 손을 흔드는 한 앳된 남성.

‘유환이?’

유환과 유준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유준은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도 뭔가 얼떨떨했다. 꿈은 꿈인데 왜 자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자각몽?’

이게 그 유명한 자각몽이라는 건가 싶었다. 유준은 왠지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유환을 만났기 때문이다.

똑같은 술집에 들어가고, 비슷한 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콰앙!

똑같은 전개.

유준은 즉시 유환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갔다. 상황이 전부 똑같았다. 그리고 무너진 콘크리트에 깔린 사람. 유환은 그를 도우려고 했고, 유준은 유환을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유준은 몸을 멈췄다.

‘나는…… 헌터잖아?’

유준은 유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즉시 콘크리트를 들어 올렸다. 너무나도 쉽게 들어 올리는 콘크리트.

유환은 유준을 놀란 눈으로 응시했다. 동시에 메카르가 다가왔고, 유환과 사람을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그때 유준은 장비창을 열어 즉시 장비를 불러왔다. 꿈인데도 장비가 몸에 입혀졌고, 아가리를 벌리는 메카르의 턱주가리를 향해 양날 도끼를 올려쳤다.

-크와아!

메카르는 턱에 큰 상처를 남기며 그대로 뒤로 물러섰다. 유준은 득달같이 메카르의 머리를 향해 진격을 사용했다.

콰드득!

-키에에에에!

메카르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유준은 즉시 참격을 사용했다. 메카르의 머리가 갈라졌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유준은 도끼와 메이스를 휘두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마치 그동안의 분노를 모두 표출하고 풀어내려는 듯 미친 듯이 휘둘렀다. 휘두르면서도 그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갑자기 왜 분노가 이렇게 치밀어 오르는지 유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때 유환이 다가왔다.

“형! 왜 그래? 정신 차려!”

유환의 목소리에 유준은 멈췄다. 그리고 무기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유환의 몸을 살폈다.

“너 괜찮아? 괜찮은 거지?”

꿈이었지만 꿈같지 않았다. 이제는 자각몽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유환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갑자기 시간이 멈췄다. 유환과 유준을 제외하고.

유환은 유준을 안았다. 그리고 조용히 읊조렸다.

“……까지…….”

“뭐?”

“……내 몫까지…….”

유환의 몸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유준은 당황했다. 그리고 유환이 모두 사라지고, 유준은 기대던 유환이 없어지니 중심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 * *



“헙!”

얼굴과 바닥이 부딪히기 직전에 유준은 꿈에서 깼다. 항상 똑같이 꾸던 악몽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극복… 한 건가?’

이제 완전히 트라우마를 극복한 건지, 아니면 극복을 하려고 발악을 한 건지는 몰라도, 뭔가 가슴 한편이 후련했다.

유준은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아홉시.

푹 잤기 때문일까. 며칠 동안 제대로 못 잤는데도 몸의 피로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어느 정도 육체가 뛰어나기 때문도 있겠지만.

유준은 씻고 외출 준비부터 했다. 오랜만에 나가서 준비물을 제외하고 필요한 물품도 좀 사고 머리카락도 자를 생각이었다.

가진 옷이 많이 없기에 유준은 대충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따사로운 햇볕이 유준을 비췄고, 유준은 기분 좋게 미용실부터 향했다.

“짧게 다듬어주세요.”

딱히 머리카락을 길게 기를 생각이 없었기에 유준은 짧게 머리를 쳤다. 그래도 얼굴이 되니 제법 괜찮았다. 이후 유준은 전자상가로 향했다. 화질이 제법 괜찮은 헤드 캠 하나를 구입 하고, 여러 준비물을 구입해서 인벤토리에 구비해놓은 뒤, 유준은 어머니의 계좌로 500만 원을 보냈다.

전화로 이 사실을 알릴까 하다가, 일도 바쁜데 괜히 전화했다가 피해를 줄까 싶어 문자를 남겼다.

집으로 향하면서 유준은 퀘스트 창을 열어보았다.

퀘스트는 여전히 한 개였다. 퀘스트는 한 번에 한 개밖에 갱신이 안 되는 듯했다.

집에 도착해서 청소를 한 뒤, 헌터 사이트를 뒤적거리며 여러 글들을 보고 있는데,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예전 같았으면 고민했겠지만 유준은 망설임 없이 받았다.

“여보세요.”

-유준이니?

“…응.”

오랜만의 통화였기에 유준은 어색하게 말했다.

-갑자기 무슨 돈이 있다고 보낸 거야. 너나 쓰지.

가족들은 유준이 편의점 알바나 하면서 살고 있다는 건 몰랐다. 다만, 유준이 유환의 사건으로 인해 가슴앓이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이 때문에 가족들은 항상 유준을 걱정했다.

한데 갑자기 돈을 보내니 놀랄 수밖에.

“그냥, 뭐… 목돈이 조금 생겨서. 사고 싶은 거 사고, 먹고 싶은 거 먹어요.”

-그것보다 너 괜찮은 거지? 잘 지내고 있는 거야?

“네. 잘 지내요. 그러니까 저는 걱정하지 마세요.”

-네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이 큰돈을 보내. 이것아. 돈 다시 보낼 테니까 너나 써. 잘 챙겨 먹고 잘 입고…….

“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받으세요. 그리고 조만간 한 번 내려갈게요.

유준이 고향에 내려간다고 하자 어머니는 조금 놀랐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유환의 사건 이후 단 한 번도 고향에 오지 않았던 유준이다.

-그, 그래. 내려오면 연락 주고.

“네… 잘 지내세요, 아프지 말고.”

유준은 어머니와의 통화를 끊었다. 자신은 변했다. 헌터가 되면서 자신감이 생겼고 트라우마도 어느 정도 극복했다. 그러니 이제 그동안 틀어진 것 역시 다시 제자리로 돌려놔야 했다.

갇혀 있던 세상에서 한 걸음뿐만이 아닌, 나머지 한 걸음도 완전히 옮길 준비가 유준은 되어 있었다.



* * *



유준은 점심이 되기 전에 강원도 양구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메인 퀘스트 창에 표기된 위치는 강원도 양구 부근이었다. 그래서 협회 신청을 할 때도 양구로 했다. 짧은 머리를 매만지며 유준은 자신이 앉을 자리를 찾았다. 다행히 창가 자리였다. 옆에 누가 앉을지는 몰랐지만, 최소한 남자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올라타기 시작했고, 유준의 옆에도 누군가 앉게 되었다.

남자였다. 관심을 껐다.

“저, 저기…….”

유준의 옆에 앉은 남성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네?”

남성, 아니 소년에 가까웠다. 하얀 피부와 앳된 얼굴은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된 어린 소년 같았다. 키는 170㎝ 정도였는데 많이 소심한지 유준에게 말을 걸면서도 긴장한 상태였다.

“죄, 죄송한데 커, 커튼 좀…….”

“아, 예.”

유준은 커튼을 쳤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동영상 스트리밍 어플을 실행해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보는 동영상은 당연히 헌터 영상이었다. 예전에는 대리 만족을 위해서 봤다면, 이제는 다른 헌터들의 움직임을 보기 위해 보게 되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각성이라는 건 유준의 많은 부분을 바꿔 놓았다.

영상을 보던 유준은 멀미를 하기 직전에 폰을 끄고 잠을 청했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터미널에서 내린 유준은 택시를 타고 헌터 협회 임시 막사로 향했다.

조립식 벽으로 만들어놓은 임시 막사 근처에는 헌터들로 붐비고 있었다.

또한, 그들의 치안을 맡기 위해 각 부대에서 파견된 군인들도 있는 상태였다. 이곳에 있는 대다수의 헌터들이 평균적으로 B등급인 이상 그들의 파견은 큰 의미가 없었지만, 민간인들을 통제하기에는 충분했다.

유준은 막사 안으로 들어가 줄을 섰다. 이윽고 본인의 차례가 되자 헌터증을 내밀었다. 헌터증을 스캔하자 신청서가 모니터에 떴고, 협회 관계자는 옆쪽 문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네.”

문을 열고 나가자, 그곳에는 버스가 한 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협회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유준에게 버스에 타라고 말했고, 유준은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 안은 고요했다. 공기마저 무겁게 깔린 것 같았다. 유준은 사람들을 한 명씩 훑어봤다. C급의 헌터들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B급의 헌터로 생각되는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유준은 적당히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이윽고 여러 명이 더 탔고, 그중에 턱에 수염이 가득한 남성이 유준의 옆자리에 앉았다.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하지요.”

남성은 유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유준은 고개를 숙였다.

“김덕배요. B급 헌터지.”

“서…유준입니다. C급 헌터입니다.”

“C급?”

덕배는 놀란 눈으로 유준을 응시했다. ‘감히’ C등급이 참여 신청을 할 것이라고 생각도 안 한 듯했다.

다른 몇몇 헌터들도 유준을 응시했다.

“어휴, 씨발.”

그들 중에서 몇 명은 욕설을 날리는 경우도 있었다. 유준은 기분이 나빴지만, 현재 이 버스에 탑승한 사람들은 협회에서 임시로 지정해준 공격대의 일원이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한 공격대라는 말이다. 당연히 개개인이 강할수록 공격대의 생존 확률과 레이드의 안전이 보장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유준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 한 명이 더 탑승했다. 마지막이었는지 버스의 문이 닫혔다.

‘응?’

마지막으로 탑승한 사람은 유준이 양구로 올 때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이었다.

“C급이라. 나도 불과 얼마 전까지는 C급이었지. 곧 B급이 될 수 있을 걸세.”

덕배는 유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난데없이 반말하고, 난데없이 위로하는 그였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많았고 자신을 위해 해주는 소리 같았기에 유준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 인사를 해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