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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첫 사냥(3)





한참 동안 작업을 하던 유준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혹시 그사이에 죽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아직 괜찮으시다면 대답하세요. 괜찮으세요?”

“으으…….”

목소리의 주인은 누군지 몰랐지만, 신음은 다시 울려 퍼졌다. 콘크리트 더미를 빠르게 치우자 철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진은 투구가 잔뜩 짓눌린 상태로 신음하고 있었다. 유준은 자신의 포션 하나를 꺼내 철진에게 뿌렸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아무래도 자신에게만 적용이 되는 것 같았다.

‘젠장…….’

“내 안쪽 주머니에 포션…….”

그때 철진이 뭐라고 중얼거렸고, 유준은 그 말을 듣고 그의 품에서 포션이 담긴 작은 병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 철진의 머리와 몸 곳곳에 발라주고 나머지는 입에 넣어주었다.

양이 정말 적었다. 부은 것도 아닌데 벌써 바닥이었다.

유준은 다른 콘크리트를 치웠다. 다른 대원들도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미 죽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처참히 망가져 있었다. 유준은 혹시 몰라 목의 맥박을 짚어보았다.

“…….”

그들의 맥박은 모두 멈춰 있었다. 이윽고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된 철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유준을 향해 말했다.

“모두… 죽었습니까?”

유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걸로 충분했다. 철진은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큭…….”

철진은 혼자 일어날 수 없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었으며 한쪽 다리는 완전히 돌아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홀로 일어나지 못하는 그를 유준이 부축했다.

철진은 죽은 헌터들의 물품을 챙겼다. 가족들에게 유품이라도 챙겨줄 요량인 듯싶었다.

“염치없지만,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그러니 저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유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으로서도 철진이 필요했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철진은 동료들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유준은 함께 그것을 보다 콘크리트를 무너뜨려 그들의 모습을 감춰버렸다.

나름 무덤을 만든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애도할 시간이 없었다. 유준은 그와 이동을 하면서 헌터들의 세계가 이제야 실감이 났다. 얼마나 참혹한 곳인지…….

둘은 부서진 도심 속을 조용히 걸었다. 혹시라도 메카르가 나타날까, 둘은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윽고 그들은 하위권의 메카르와 조우했다. 유준은 조용히 철진을 놔둔 뒤 긴장하며 홀로 메카르와 싸웠다. 하지만 너무나도 쉽게 처리했고, 이후 그들은 이동하면서 몇 차례나 더 메카르와 조우했다.

그럴 때마다 유준은 차근차근 메카르를 베어 넘겼고, 이내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었다.



[퀘스트를 완료 하셨습니다.]



유준은 인벤토리에서 휴대폰을 꺼낼까 하다가, 그냥 내버려 뒀다. 그리고 퀘스트 창을 확인했고, 새로 퀘스트가 갱신되어 있었다.

‘15마리?’

10마리였는데 이제는 15마리였다. 심지어 퀘스트 보상도 똑같았다.

유준은 승낙을 한 뒤에 걸음을 옮겼다. 철진은 이동하면서 자신의 휴대폰으로 지도 앱을 켜서 손수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줬다.

어디로 가야 강한 메카르가 등장하지 않고, 적게 출몰하고,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는지 알고 있는 그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최대한 조심을 하며 이동을 했지만, 메카르와 아예 마주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그들은 이동하면서 많은 메카르와 마주쳤다. 심지어 한 번에 세 마리의 메카르를 만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유준은 철진을 지키면서 싸웠고, 많은 포션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하위권, 중위권의 많은 메카르들과 만나 전투를 하다 보니 유준은 두 번째 퀘스트도 완료했다.

이제는 퀘스트가 갱신되지 않았다. 현재로서 하루에 완료할 수 있는 퀘스트는 2개인 것 같았다.

둘은 다시 이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바리케이드가 보였다.

“드,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다행입니다.”

철진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유준도 가슴이 벅찼다. 둘은 좀 더 빠른 발걸음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긴장이 다소 풀어진 둘에게 메카르 한 마리가 튀어나와 기습을 가했다. 유준은 즉시 철진을 밀어내고 본인의 몸을 내어줬고, 입고 있던 장비가 반쯤 부서지며 근처 벽에 고꾸라졌다.

유준은 곧바로 HP물약을 빨았다. 그리고 혹시라도 철진에게 어그로가 튈까 싶어 즉시 땅을 박찼고, 검술과 참격을 이용해 처리했다.

‘부서졌네.’

유준은 아공간에 부산물을 챙긴 뒤, 바리케이드로 향했다. 바리케이드에 도착한 그들은 일단 신원부터 알린 뒤에 여러 가지 사항을 전파했다.

둘은 군인들과 함께 초소로 향했다. 초소에는 협회 소속의 치유 능력을 가진 헌터가 와서 철진을 치료해줬고, 군인들은 둘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알겠습니다. 이만 가셔도 좋습니다.”

어차피 헌터들이 죽었다고 해서 딱히 조사도 할 수 없었고, 애초에 죽음을 각오하고 생활하는 직업이 헌터였기 때문에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피해자들의 처신은 군에서 협회 측에 연락하면 협회 측에서 차후의 상황을 알아서 해줄 것이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철진은 아픈 몸으로 군인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했다. 소규모지만 공격대의 대장이니만큼 본인이 직접 유가족들을 만나서 상황을 전하고 싶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럴 목적으로 유품도 챙긴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다만, 협회 측에 연락은 해야 합니다.”

그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 점은 철진도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초소에서 나왔다.

유준은 씁쓸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헌터들이 죽음 뒤에는 아무런 스포트라이트도 제대로 된 관심도 받지 못하는 것 같은, 마치 평범한 일상 대하듯 취급받는 것이 이 업계의 이면을 보는 것 같아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앞으로 더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

유준은 이런 일로 충격을 받고 헌터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볼을 두드렸다. 죽은 헌터들이 계속 생각났지만, 처음 동생이 죽었을 때처럼 크게 충격을 입지는 않았다.

한번 큰 충격을 받아서인지 그들이 크게 소중한 사람들이 아니어서인지, 아니면 ‘캐릭터의 정신’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쳐서 그런지는 몰라도 유준의 정신은 비교적 멀쩡했다.

“큭…….”

치료를 받았지만 완벽하게 받지는 못 했기에 철진은 옆구리를 부여잡았다. 하지만 혼자 걸을 수 있을 정도였는지 어색하지 않게 잘 걸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유준의 손을 잡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데려온 유준. 그는 정말로 유준에게 감동했다. 심지어 처음 만나는 사람이고, 초행인 사람이다. 평범한 사람 같았으면 지레 겁을 먹고 혼자 도망을 쳤거나 제대로 된 행동도 못했을 텐데, 유준은 달랐다.

“하하…….”

유준은 멋쩍어하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제가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철진은 진심이었다. 유준도 그의 눈을 보며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뿌듯해졌다.

‘나쁘진 않네.’

사람을 구한다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임을 처음 알았다. 어쩌면 자신의 동생, 유환은 진즉에 이 기분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헌터가 되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일단 부산물 판매부터 하시죠. 이쪽으로.”

부산물을 판매하려면 일단 ‘거래소’로 가야 했다. 초행이라 잘 모르는 유준에게 철진은 친절하게 안내를 해줬다.

거래소는 사냥 구역 입구 근처에서 커다란 건물로 존재하고 있었다. 둘은 즉시 거래소 안으로 들어갔고,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다음 분 오세요!”

쩌렁쩌렁한 목소리. 내부가 워낙 시끄럽고 정신이 없었기에 당연했다.

유준은 자신의 차례가 되자 냉큼 움직였다.

“어서 오세요. 부산물을 올려…… 응?”

직원은 유준이 맨손으로 다가오자 당황했다. 보통 부산물이 가득 든 배낭들을 검사대에 올려놓는 게 일반적인 사항인데, 유준은 맨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직원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부산물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도 모두 주목했다. 아공간. 겨우 1세대 메카르를 사냥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아공간의 존재는 희귀할 수밖에 없었다.

직원 역시 1세대 사냥 구역 근처 거래소의 직원이었기 때문에 아공간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는 놀란 눈으로 유준을 바라보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정산을 하기 시작했다.

25마리의 분량. 1세대 사냥 구역에서 보통 하나의 공격대가 잡았다고 하기에는 좀 많은 분량이었기에 그는 계산기를 이리저리 두드리며 계산을 했다.

심지어 하위권, 중위권의 메카르의 부산물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계산은 제법 복잡했다. 하지만 이윽고 계산이 모두 끝났고, 직원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유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금을 제외하고 총 1000만 원입니다. 계좌로 보내드려도 될까요?”

1000만 원!

하루에 천만 원이라니!

“그, 그렇게 해주세요.”

유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든 1세대 사냥 구역의 헌터들이 하루에 천만 원을 버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안전하게 사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준도 제법 긴 시간이었음에도 실질적으로 대원들과 함께 사냥한 건 몇 마리 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헌터들은 그 돈을 서로 나눠 갖기도 해야 한다. 그러니 낮은 등급의 헌터들도 일반인들보다는 수입이 많겠지만, 일확천금을 벌수는 없었다.

다른 헌터들의 시선을 받으며 유준은 철진과 함께 거래소를 나왔다. 그리고 유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계좌 번호가 어떻게…….”

“아뇨. 괜찮습니다. 그 돈은 모두 유준 씨 돈입니다. 그리고 계좌 번호를 좀 알 수 있겠습니까?”

“네?”

“얼마 안 되지만 보상을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유준은 손사래를 쳤다. 보상금을 원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헌터로서, 더 나아가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그래야 자신이 편하다는 말에, 결국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이천만 원이라는 돈을 보내줬다. 생각보다 많은 금액에 유준은 당황했지만, 그는 여전히 못 미더운 듯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돈이 이 정도밖에 없어서…… 나중에 혹시라도 은혜를 갚을 기회가 생긴다면 망설임 없이 갚겠습니다.”

유준은 어색하게 손사래를 쳤고, 둘은 탈의실로 향했다.

장비를 벗으니 온몸에 메카르의 피가 묻어 있었다. 이 상태로 옷을 갈아입기도 찝찝했기에 둘은 주변 목욕탕으로 향했다.

“흡…….”

목욕탕에는 사냥을 끝낸 많은 헌터들이 있었는데, 곳곳에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상당히 좋지 않은 시설임에도 목욕비가 비쌌다.

그래도 위생을 위해 깔끔하게 씻고 나온 뒤, 인벤토리에 챙겨뒀던 옷을 입으니 기분이 제법 상쾌했다.

“다음에 식사라도 같이하죠. 제가 거하게 대접 한번 하겠습니다.”

헤어지기 직전에도 그는 유준에게 고개를 깍듯이 숙였다.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이는 사람이 그러니 유준은 부담스러워 자신도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둘은 헤어졌고, 유준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며 유준은 오늘 하루를 떠올렸다.

초행, 그리고 대원들의 죽음.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자신도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직업.

하지만 포기 할 순 없었다. 지금은 이 길만이 자신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길이고, 현재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길이니까.

집에 도착한 유준은 배달 음식을 시켰다. 딱히 요리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기분도 아니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두 개의 휴대폰을 꺼냈다. 새로 개통한 휴대폰과 예전 휴대폰. 예전 휴대폰이 인벤토리 안에서 켜져 배터리가 닳지는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인벤토리에서 꺼내자마자 휴대폰이 켜짐으로써 안에서는 꺼져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유준은 곧바로 캐릭터를 키우기 시작했다. 오늘과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이 강해지는 방법은 하나였다. 캐릭터의 육성!

100%의 배터리는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기에 한시가 급했다. 잠시 후 배달 음식이 왔고, 유준은 식사를 하며 캐릭터를 키웠다. 그러던 와중에 캐시 포인트 만원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유준은 캐시 포인트로 뭘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캐시 포인트로는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딱히 추가로 골드를 매입할 필요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사행성 뽑기였는데, 사행성 뽑기는 장비 뽑기와 물품 뽑기가 있었다. 그중에서 유준이 지금 해야 할 건 장비 뽑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