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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루 1권 16화

第五章 아버지의 마음(2)





일터로 가는 시장 길에 노점상이 진열해 놓은 꽃신 앞에 잠시 멈춰 선 고두식.

노점상은 고두식의 복장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인상을 확 찌푸리고는 외면해 버렸다.

고두식은 검게 탄 피부에 뼈만 앙상한 손에 힘을 주며 움켜쥐었다.

‘그래, 조금 더 열심히 일해서 저것을 사자.’

딸아이가 웃는다면, 행복하다면 고두식은 더 바랄 게 없었다.

이제 아홉 살 난 고미미는 제 어미가 죽고 나서 얼굴에 웃음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제 어미가 죽은 게 못난 아버지 탓이라며 엄마를 고생만 시켜서 죽었다며 원망했다.

‘다 내 탓이야, 내 탓이지.’

고두식은 때 묻은 소매로 눈가를 닦으며 일터로 향했다.



大抵婦人性

대저 부인의 성품이란

貧居易悲傷

가난하면 상심하기 쉬운 건데

嗟嗟我內子

불쌍한 나의 아내는

在困恒色康

곤궁해도 늘 안색이 온화하였지.



大抵婦人性

대저 부인의 성품이란

所慕惟榮光

영광 누리는 걸 좋아하는데

嗟嗟我內子

불쌍한 나의 아내는

不羨官位昌

높은 벼슬을 부러워하지 않았지.



그날 고두식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왔다.

늦은 밤이라 그런지 딸아이는 벌써 잠이 들어 있었다. 때문에 고두식은 아이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옷을 벗다가 낮에 가져온 누룽지탕을 담은 그릇을 보았다.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

메마른 고두식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낮에는 딸애가 그렇게 안 먹는다고 떼쓰더니 결국 저렇게 다 먹어 버린 것이다.

고두식은 일터에서 쌓인 피로가 날아가는 듯했다.

‘녀석…….’

벗어 놓은 옷가지를 옆에 놔두고 고두식은 조용히 앉더니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하구나.’

딸아이는 울었는지 눈가에 눈물 자국이 있었다.

그 모습에 고두식은 저도 모르게 손이 점점 떨려왔다.



* * *



이튿날 고두식은 그릇을 들고 낙화루를 찾았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두식은 딸아이가 먹은 것을 주동동에게 고마워했다.

“하하, 뭘요. 전 그저 손님이 맛있게 드셨다면 그걸로 감사할 뿐입니다.”

주동동은 칭찬받는 게 어색한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고두식은 인사를 하고 낙화루를 나왔다. 그런데 입구에 있던 천태성은 돌아설 때 아쉬워하는 고두식의 눈빛을 보았다.

별것 아니라고 넘겨짚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그날 영업이 끝날 때까지 천태성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후우, 왜일까? 왜 그것이 이토록 걸리는 거지.’

천태성은 낮에 본 고두식의 얼굴을 떠올리며 천천히 대로를 걸었다. 그러다가 서호가 멀리 보이는 한적한 마을에 도착했다.

‘후우, 나도 모르게 여기까지 왔군.’

그때 천태성의 상념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장장창.

“으아아아앙.”

천태성이 서 있는 바로 몇 걸음 앞 집에서 웬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집 안의 집기를 모두 부수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 하나가 땅에 퍼질러 울고 있고 남자 하나가 그들을 말리고 있었는데 혼자라서 역부족이었다.

“제발 좀 봐주시오, 말미를 주시오.”

“시일을 준 지 언제인데 아직도 안 갚어!”

결국 말리던 남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매질을 당하고 말았다.

퍼억. 퍼억.

“크윽!”

“어엉, 아버지, 아버지!”

멀찍이서 그 광경을 보던 천태성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저 사람은……?’

울고 있는 아이를 둔 채 매질을 당하고 있던 남자는 낮에 낙화루를 찾아던 그 남자였다.

천태성이 하루 종일 마음에 걸려 했던 남자.

아이는 맞고 있는 고두식에게 뛰어들었다. 그러자 고두식은 눈을 부릅뜨며 급히 아이의 몸을 감쌌다.

퍼억. 퍼억.

“컥!”

무자비하게 날아오는 발길질에 고두식은 아이를 감싸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엉엉엉, 아부지.”

아이는 그저 망연히 울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두식은 온몸이 멍들고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몸 구석구석에서 느껴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렇게도 몰아치던 사내들의 매질이 멈추었다.

겁에 질린 고두식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보았다.

웬 검은색 무복을 입은 청년이 사람 하나의 목을 잡아 올리고 있었다. 그것도 한 손으로 가볍게, 그리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목이 잡힌 사람은 숨 쉬기 거북한지 고통스럽게 몸을 비틀고 있었다.

“커억, 커억!”

검은 무복의 청년이 나직이 말하였다.

“내 사정은 모르지만…….”

부리부리한 청년의 눈은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자고로 어린아이 때리는 놈은 사람 취급 받을 자격 없다.”

무리 중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칼을 뽑더니 외쳤다.

챙.

“쳐라!”

검은 무복의 청년 즉, 천태성은 손을 놓으며 들린 남자를 땅에 떨어뜨렸다.

그 순간 네다섯 명이 천태성을 향해 쇄도했다.

부웅.

모두들 온 힘을 다해 무기를 휘둘렀지만 천태성의 옷자락도 못 건드리고 허공을 치고 말았다.

그들의 눈은 재빨리 천태성을 찾았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등 돌리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언제 저기로 움직였단 말인가.’

뒷짐 지며 등 돌리고 있는 검은 무복의 천태성을 보며 그들은 똑같은 생각을 했다.

‘고수!’

처음 목이 잡혔던 사람은 눈을 까뒤집고 거품을 물고 있었다.

천태성은 아주 스산한 목소리로 뇌까렸다.

“내가 손을 쓰면 너희들은 다 죽는다.”

그들은 그 말이 절대 불변의 진리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은 온몸에 닭살이 돋기 시작했다.

‘죽는구나!’

“하나 누구나 한 번의 용서는 있는 법이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냉큼 사라져라.”

그들은 다급히 기절한 동료를 들쳐 업고는 도망을 쳤다.

실상 천태성은 그들의 팔다리 하나쯤은 내놓고 가게 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아이가 보고 있는 상황에서 그럴 수가 없었다.

성질 한 번 참았더니 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듯 천태성은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쓰으으!”

고두식은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고미미의 부축을 받고 천태성에게 다가왔다.

“누구신지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천태성은 등을 돌리며 담담하게 말을 하였다.

“아닙니다. 그것보다 무슨 사연인지 제가 알아도 되겠습니까?”

“…….”

고두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굳이 말하기 어려우시다면 말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천태성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대문을 나서기 전 걸음을 멈춘 천태성은 한마디를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만일 어려운 일이 있다면 낙화루를 찾아 주시오”

“낙화루!”

고두식은 고개를 들더니 가려는 천태성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오늘 낮에 제가 거기 갔었는데…… 휴, 안으로 드시지요,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두식과 천태성은 마당에 집기들을 대충 정리한 후 방 안으로 들어갔다.

“초면에 저희 사정을 말하기는 좀 그렇습니다만…….”

고두식은 어렵게 결심한 듯 그간 겪어온 집안 사정을 털어놓았다.

아내의 병환으로 돈을 탕진하고 빚을 내어 약을 구했는데 하필이면 빚을 낸 곳이 항주의 흑강파(黑剛派)였다.

흑강파는 항주에 있는 유일한 사파 세력이었다. 그들은 서호 변두리에 위치한 기루와 홍등가 위주로 세력을 뻗치고 있었다. 그리고 주요 사업은 도박, 사창가, 기루, 대부, 인신매매가 주된 일이었다.

고두식은 흑강파에게 처음 빌린 빚이 시일이 지나자 원금보다 몇 십 배나 불어나서 도저히 갚을 길이 막막한 상태였다.

고두식은 이 청년이 고강한 무공을 지녔다는 것을 알았지만 매우 미안했다.

왜냐하면 자신으로 인해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이 흑강파의 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안합니다.”

고두식은 고개를 푹 떨구며 천태성 앞에서 무릎 꿇고 앉았다.

“아닙니다. 제 걱정은 하실 필요 없습니다.”

천태성은 한사코 사과를 거절하며 고두식을 편히 앉게 했다.

“그렇군요, 흑강파라……. 제가 도움은 못 되 드리지만 따님과 낙화루에 오시면 음식은 공짜로 드리겠습니다.”

천태성의 작은 성의였지만 고두식은 그것조차 거절했다.

“아닙니다. 이렇게 도움 받았는데 또 신세를 지다니요.”

“어려워 마시고 찾아 주십시오.”

그렇게 천태성은 말을 끝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두식과 고미미는 대문 밖까지 나와 천태성을 배웅했다.

한데 미소 짓는 고두식의 얼굴은 맞아서 울퉁불퉁한 게 보기에 안 좋았다.

‘흑강파라…… 들어 보지 못했는데 신생 세력인가? 사파 세력이라면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현재 마교는 사파 세력의 독보적인 문파로써 지대한 영향을 뻗치고 있었다. 때문에 사파의 날고 기는 문파들은 천태성이 알고 있었다.

천태성은 빠른 시일 내에 흑강파를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천태성이 대로변에 들어서자 그를 기다리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저놈입니다!”

좀 전에 고두식의 집에서 당한 패거리들이었다.

그들은 웬 노인을 대동하고 대로변에서 천태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키에 감고 있는 듯한 실눈, 그리고 번쩍이는 반백 머리를 하고 있는 노인이었다.

“네놈이 이 애들을 손봐줬느냐?”

매우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천태성의 귀에 상당히 거슬렸다.

“그렇소.”

“호오. 배짱이 매우 좋구나, 어디 실력도 배짱만큼 있는지 보자.”

노인은 뒷짐을 진 상태로 보법을 전개하며 천태성과의 거리를 단숨에 줄였다.

스으으윽.

천태성은 노인이 지척에 다가오는 순간에도 뒷짐을 진 채 얼굴의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것 때문인지 분노한 노인은 눈을 크게 뜨며 한 번에 오 장(五掌)을 퍼부었다.

“흑사열장(黑邪熱掌)!”

광분한 노인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퍼퍼퍼퍼펑.

대로에 박아 놓은 돌들이 모두 날아가며 순간 천태성이 있던 자리는 먼지로 뒤덮였다. 그런 후 노인은 손을 내리며 득의 웃음을 지으려는 찰나 천태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 했소? 끝이오?”

“……!!”

천태성은 처음 그 자리에 그대로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그것도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였다.

“끝이라면 내가 갑니다.”

노인의 얼굴은 순식간에 공포로 물들었다.

천태성은 몸을 앞으로 날리며 노인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그러자 노인은 자신의 공력을 있는 힘껏 끌어올리더니 장력을 무차별 난사했다.

파파파파.

천태성과 노인 사이에 기류(氣流)가 휘몰아치고 노인이 뿜어낸 장력들이 천태성의 손바닥을 중심 삼아 회전하며 한곳으로 뭉쳤다.

‘아니, 이럴 수가.’

노인은 자신이 쏘아낸 장력들이 더 이상 전진을 못하고 한 데 뭉치자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노인은 뭔가 떠올랐는지 소리쳤다.

“이것은!”

천태성은 펼쳤던 손바닥을 한번 움켜쥐더니 흩뿌리듯이 노인을 향해 다시 펼쳤다.

한 데 뭉친 장력들이 날아들자 노인은 절망적으로 외쳤다.

“천마신공(天魔神攻)!”

콰아아아! 쿠콰콰쾅!

“크아아악!”

장력은 노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는데 그 뒤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세력권 안에 들었는지 모두들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쓰러졌다.

“으아아아악!”

두두두두.

자욱한 먼지와 떨어져 내리는 돌 부스러기 그리고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

지나다녔던 행인들은 겁에 질려 모두 도망간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대로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는 이제 천태성밖에 없었다.

살랑이는 봄바람으로 인해 천태성의 검은색 무복 앞자락이 한들거렸고 천태성은 팔짱을 끼며 눈을 살짝 내리감았다.

반백의 노인이 비틀비틀 일어나며 천태성에게 물었다.

“당신은…… 당신은 천마님과 어떠한 관계요?”

천마의 독문 무공인 천마신공.

이것은 마교비전(魔敎秘傳)으로써 사파에서는 경외의 대상 중 하나였다. 그리고 천마신공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바로 흡수의 묘미에 있었다.

상대방의 내공을 빨아들인다거나 공격을 받아서 되받아치는 특성들이 있다. 혹자는 이화접목과 혼동하는 경우도 있는데 천마신공과 이화접목은 근본원리부터 달랐다.

이화접목은 상대방의 힘을 이용하지만 천마신공은 상대방의 힘을 완전 자신의 지배하에 두었다.

천태성은 노인의 물음에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그건 알 거 없다. 그리고 네 주인에게 가서 고하라. 내가 조만간 들른다고.”

쿨럭, 쿨럭.

천태성은 내상을 입어 각혈을 하는 노인을 내버려 둔 채 천천히 낙화루를 향해 걸어갔다.

마교의 인물이 이 상황을 봤다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마교라면 절대 자신을 공격한 인물을 살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심할 경우에는 상대방의 집을 찾아가 가족들을 몰살시키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한데 천태성은 유별나서 그런지 손속에 사정을 너무 많이 두었다. 그 증거로 노인 옆에 쓰러져 있던 사람들이 가슴이 들쑥날쑥하는 것으로 보아 숨이 붙어 있는 게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