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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루 1권 15화

第四章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6)





탁.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선우휘윤은 성큼성큼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사악한 웃음을 짓는 천태성.

‘아, 이거 재밌겠네. 구경가야지, 흐흐흐.’

같이 있던 검룡은 영문도 모르겠다는 듯이 눈만 껌뻑껌뻑 대었다.

주방에 들어선 선우휘윤 그의 앞에는 유장팔이 떡 하니 버티고 섰다.

“손님 여기는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선우휘윤은 유장팔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지나치며 걸어 나갔다.

솥을 잡고 있는 애송이 옆에서 등을 보이고 있는 큰 키의 곱슬머리 사내. 그가 선우휘윤의 목표였다.

아직 선우휘윤이 들어온 것을 모르는 듯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있었다.

살랑살랑 부채를 부치며 미소를 띠고 있는 선우휘윤, 실상 그는 웃고 있었지만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이 곱슬머리 사내에게 다가갈수록 사내의 등이 점점 커 보이는 것이 아닌가.

선우휘윤의 부채를 쥔 손은 땀에 축축이 젖어 있었다.

이윽고 선우휘윤이 지척에 이르자 북궁설은 천천히 등을 돌렸다. 그리고 선우휘윤을 바라보는 싸늘한 눈빛.

‘뭐지, 이 기분은?’

상대방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나 선우휘윤은 주눅들어 긴장하고 있었다.

선우휘윤은 이를 악물고 공력을 끌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북궁설의 눈동자에는 이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공력을 끌어올리고 나자 선우휘윤은 마음이 좀 편안했다.

“난 당신이 마음에 안 드오.”

듣고 있는 북궁설은 ‘왜’라고 묻지도 않았다.

“나가라.”

북궁설이 간단히 내뱉은 한마디는 지하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목소리 같았다.

그 한마디에 선우휘윤은 인상을 확 구기며 부채를 접었다.

“뭐라 그랬소?”

이제는 아예 상대 안 하겠다는 듯이 등을 돌리고 있는 북궁설.

“나가라고 그랬다.”

그런데 옆에 있던 주동동이 선우휘윤을 발견했는지 손을 닦으면서 몸을 돌렸다.

“어? 손님. 여기는 주방이라서 들어오시면 안 돼요.”

선우휘윤은 주동동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했다.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

주동동은 갑자기 주방에 들어와서 화를 내는 선우휘윤의 행동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저기 손님,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나가서 이야기 하시는 게…….”

“넌 빠져라!”

막고 있는 주동동을 밀친다는 게 그만 손에 공력을 실어 버렸다.

“헛!”

주동동은 갑자기 들이닥치는 기세에 놀라 미처 방비할 틈도 없이 어깨에 일격을 당해 버렸다.

“크흑!”

북궁설은 재빨리 돌아서서는 쓰러지는 주동동을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주동동은 어깨를 잡고 인상을 찌푸렸다.

“괜찮아요. 별로 안 다쳤어요.”

북궁설은 주동동을 잡아 일으킨 후 선우휘윤에게 한자한자 끊어서 말했다.

“나.가.자.”

한 글자만 바뀌었을 뿐인데 그 뜻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선우휘윤은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팔짱을 끼었다.

“그것 참 내가 바라는 바다.”

주동동은 어깨 부분의 옷을 내리자 시커먼 멍 자국이 보였다.

“으으!”

북궁설은 그것을 보고 나자 눈동자가 회색 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는 한마디를 남기고는 주방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잠시 밖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한편 입구에는 구경꾼들이 꽤나 몰려 있었다.

처음에는 천태성과 나예은 일행이었는데 사람들이 호기심에 하나둘 모이더니 객잔 사람들 죄다 모여서 보고 있었다.

“나온다!”

“싸운다! 자, 자, 걸어요, 걸어요. 얼음땡이에게 걸면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습니다.”

천태성은 속으로 쾌재를 외치며 자신감에 찬 미소를 지었다.

‘좋아 얼음귀신, 돈 좀 벌어보자.’



북궁설과 선우휘윤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객잔 밖으로 나왔다.

“옥룡이 결투를 벌인다.”

“어머? 꺄아, 진짜네. 옥룡 오빠 꼭 이기세요!”

밖으로 나오자 유리수호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둘의 결투를 보려고 구름 장막을 펼쳤다.

그리고 대다수 사람들은 옥룡의 승리를 점쳤다.

유리봉황은 잔뜩 굳어 있는 표정이었고 남궁연지는 천태성의 얼굴을 보고 나더니 살짝 미소 짓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혈봉황은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남궁연지가 나예은에게 전음을 날렸다.

“예은아, 걱정 안 해도 돼. 저 사람의 얼굴을 보렴.”

그러면서 남궁연지는 턱짓으로 천태성을 가리켰다. 그러자 나예은은 실실 웃고 있는 천태성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굳었던 인상을 풀었다.

“대단한 고수인가 봐.”

“응.”

선우휘윤은 흰색 장포가 펄럭일 정도로 공력을 한껏 끌어올리더니 한바탕 춤사위를 펼쳤다.

“내 너의 그 오만한 콧대를 꺾고 말리라!”

선우휘윤은 화산파의 매화이십사검로(梅花二十四劍路)를 부채를 빌어 시전했다.

“매향번천(梅香藩天)!”

매화꽃의 향기는 하늘을 뒤덮고 그에 갇힌 상대는 취해서 헤어 나올 수 없으리.

실제 선우휘윤의 주위로 매화꽃 향기가 피어올랐다.

하늘하늘 춤추는 듯하지만 동작 하나하나에는 무서운 기세를 담고 있었다.

그 중심에 선 북궁설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검집을 들었다. 그리고는 검집째로 꽃의 파도를 향해 수평으로 휘둘렀다.

촤아아아악.

무서운 기세로 북궁설을 잡아 먹을 듯한 매화꽃들은 그 한 수에 죄다 두 동강 나 버리며 갈라졌다.

“크으으윽!”

털썩.

그리고 선우휘윤은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으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쿨럭쿨럭.

선우휘윤은 피를 게워 내며 자신의 가슴에 생긴 길다란 검상을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자신의 손바닥에 묻은 혈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당하고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입을 쩌억 벌리고는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그들에게 북궁설은 낙화루로 천천히 걸어들어 며 한마디 남겼다.

“광대 같은 놈.”

“……!!”

전 무림을 통틀어 가장 강하다는 후기지수 신진사룡 에 옥룡 선우휘윤.

절정고수 이상의 실력이라 평가 받던 그가 단 일합도 버티지 못했다. 그것은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무림에 절대고수 하나가 탄생했다.



냉혈무정검(冷血無情劍) 빙옥(氷玉) 북궁설.



천태성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북궁설을 뒤따라 들어갔다.

‘어쩐 일로 봐줬지? 죽일 줄 알았는데.’





第五章 아버지의 마음(1)



엊그제만 하여도 낙화루는 수많은 사람들이 웃고 마시며 내기 걸고 북궁설은 칼질하고 등등 정신없이 보냈지만 오늘 오후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한산했다.

낙화루는 이처럼 늘상 손님들이 북적거리지 않았다.

따뜻한 오후 봄날은 배부른 사람들의 눈꺼풀을 내리눌렀다. 그중 일편단심 민들레 유장팔도 예외는 아니었다.

차를 마시고 있는 유화영을 보다 졸음을 못 이겼는지 탁자에 엎어져 잠이 들고 만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본 장태봉은 혀를 차며 깨우려고 하였다.

“이런, 쯧쯧쯧.”

그런데 천태성이 장태봉을 잡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냥 자게 두십시오.”

점심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식당 안은 한산했기에 두 사람만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다행히 생긴 거와는 다르게 유장팔은 곱게 잠을 자고 있었다.

드르르륵.

차를 다 마신 유화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가려는지 입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가려나?’

한데.

‘아니!’

유화영이 자고 있는 유장팔의 머리를 슬쩍 한번 툭 치고 가는 것이 아닌가. 하나 아쉽게도 유장팔은 세상모르게 잠이 든 상태라 모르고 있었다.

천태성은 놀란 눈으로 유화영이 밖에 나갈 때까지 쭉 지켜보았다.

‘난 봤어!’

장태봉에게 고개를 돌린 천태성은 부지불식간에 말했다.

“지금 봤습니까?”

장태봉은 무슨 일이냐는 표정이었다.

“뭘?”

장태봉의 답변은 중요치 않은 듯 천태성은 등을 돌리더니 뭔가 생각에 빠졌다.

‘호오. 이거 다시 곰곰이 고려해 봐야겠는데.’

유화영이 무림삼봉 중 하나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만해도 유장팔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그런데 저 유화영의 단순한 행동 하나로 일말의 불씨는 당겨진 것이다.

‘후후후후.’

“저기…….”

웬 사내가 탁자에 앉아 손을 들자 장태봉이 다가갔다.

“예에.”

허름한 옷에 까칠한 수염, 그리고 움푹 패인 뺨, 사내의 모습은 보기에 안쓰러웠다.

이런 차림새이었건만 장태봉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사내는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여기 음식을 싸 가지고 갈 수 있습니까?”

“물론입죠. 저희 낙화루는 돈을 조금 더 내시면 유지(油紙)에 음식을 싸드립니다. 탕인 경우에는 그릇을 가져가셔서 다시 가져오시면 됩니다.”

근처 객잔들은 시행하지 않는 일인지라 사내는 그 말이 믿기지 않는 듯 다시 물어보았다.

“정말로 그렇게 해줍니까?”

“물론입니다. 어떤 음식으로 싸드릴까요?”

“그렇다면 누룽지탕으로 해주십시오.”

“몇 분이서 드실 겁니까?”

사내는 미안스럽다는 표정으로 답변을 하였다.

“그게 일인 분으로 해주십시오.”

그러나 장태봉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미소를 짓고는 주방으로 갔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장태봉은 주동동과 천태성을 만나기 전에는 늘상 뭔가 눌린 듯 화를 내기 일쑤였으나 지금은 많이 달라진 상태였다.

영업이 끝나면 주동동에게 요리 기술도 전수 받고 유장팔과 노득출, 이 두 사람과 함께 남몰래 무공 수련도 하였다.

정말이지 장태봉은 요즘 살맛이 났다.

누룽지탕이 곧 나오고 사내는 몇 번이고 감사하다며 금방 그릇을 가져다 주겠노라며 낙화루를 나갔다.



사내가 나가는 모습을 본 후, 천태성은 낙화루의 뒤뜰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황보현중이 있었다.

지면에 나무 막대기를 꼽아 놓고 그 위에 올라서서 한 발로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넘어졌는지 그의 의복은 온통 먼지 투성이었다.

부들부들 떨면서도 용케 균형을 잡는 황보현중을 보며 천태성은 천천히 다가갔다.

“모든 무공의 기초는 그 다리에 있다. 하체가 약하다면 어떠한 무공도 익힐 수 없는 법. 간혹 다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신공(神攻)을 익힌다 하여도 기초가 되어 있지 않다면 신공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느니라. 네가 뜻이 있다면 이 정도쯤은 우습게 여기리라 본다.”

황보현중은 눈동자만 돌려 천태성의 말에 답을 하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천태성은 등을 돌렸다.

‘슬슬 다음으로 넘어가야겠군, 후후후.’



* * *



“그러지 말고 이거 먹어 봐.”

까칠한 수염의 사내는 그릇에 담긴 누룽지탕을 한 수저 떠서 소녀의 입에 가져다 댄다. 그러나 이제 아홉 살 남짓한 소녀는 전혀 먹을 생각이 없는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싫어요, 그딴 거 안 먹어요!”

결국 소녀는 숟가락을 손으로 쳐내 버렸다.

쨍그랑.

소녀의 이러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화를 내지 않았다.

조용히 그릇을 내려놓더니 착잡한 표정으로 나갈 채비를 하였다.

“일 다녀오마.”

“흥!”

집을 나서는 사내의 어깨에는 곡괭이가 얹혀져 있었다.

그런 사내가 사라지자 어린 소녀는 그릇에 담긴 누룽지탕을 보더니 침을 꿀꺽 넘어 삼켰다. 그리고는 이내 숟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

낙화루에서 누룽지탕을 사간 사내의 이름은 고두식.

올해 마흔 살로 삼 년 전에 마누라와 생이별하고 홀로 딸 하나를 키우고 있었다. 소작이 주업이었으나 그것도 이 년 전부터 일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요즘은 나라에서 주관하는 성벽 보수 일에 나가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고 있었다.

오늘은 딸아이의 생일이었는데, 아이가 원하던 꽃신을 사주지 못했다. 그래서 누룽지탕을 들고 간 것이었는데 어림도 없었다.

고두식은 정말로 딸아이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었다. 하나 가난이 무엇인지 그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소작을 해서 조금 벌어 놓은 돈은 병에 걸린 아내의 치료비로 모두 탕진하고 끝내 아내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허름한 작은 집과 빚 그리고 딸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