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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마스터는 사기꾼 1권 13화

돌발 이벤트 (1)




히드라 동굴 사건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파라마스타 왕국 서버가 닫히고, 긴급 점검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엑스 어스 홈페이지에 사과 공지가 올라왔다.

파라마스타 왕국 서버를 이용하던 유저들은 점검 보상과 함께, 일시적으로 다른 왕국 서버를 선택하여 플레이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그사이, 나는 정확한 문제를 진단하기 위해 맘이시리네의 플레이어 로그 기록을 전부 검토하고 있었다.

밤을 꼴딱 새웠더니 골이 다 쑤신다.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깰룩이가 새 커피를 타서 갖다 주었다. 벌써 아홉 잔째다.

“제가 보기엔 그냥… 아, 아닙니다, 깰룩.”

“뭐야, 왜 말을 하다 말아. 사람 궁금하게. 네가 언제부터 내 눈치 보면서 말했냐? 뭔데, 말해 봐.”

“깰룩, 그러니까 그냥 순전히 제 생각이지만, 로그에는 아무 문제도 없는 걸 보면… 호, 혹시 전혀 생각도 못한 게 원인이지 않을까 하고…….”

“뭔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 알아듣게.”

이놈 뭔가 수상한데?

눈을 가늘게 뜨고 추궁하듯 묻자, 깰룩이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더욱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아니, 얘가 오늘따라 왜 이래. 더위 먹었어? 뭔 땀을 수돗물처럼 흘리냐?”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깰룩. 그러니까 크, 클로즈 베타 때 이런저런 일이 많지 않았습니까?”

“긴 말 필요 없어. 요점만 간단히.”

“…마르디노 님이 그 유저랑 클로즈 베타 때 처음 만나시지 않았습니까, 깰룩. 그때 왜 마르디노 님께 버그가 많이 일어났잖습니까? 그리고 그 유저도 클베 첫날부터 누가 진입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히든 던전에 들어갔구요. 그러니까 그때의 여러 자잘한 버그들이 서로 막 케미가 돋아서 이번 사태를 일으킨 게 아닐까, 뭐 그런…….”

“버그가 버그를 낳았다?”

비지땀을 흘리던 깰룩이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거참, 첨부터 그렇게 말하면 될 걸 가지고 뭘 그리 어버버거리냐?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다디?”

“죄송합니다, 깰룩.”

“됐어, 인마. 흠, 버그가 버그를 낳았다라. 근데 그게 가능한가?”

“다, 당연히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버근데, 깰룩!”

깰룩이가 갑자기 팍 곧추서며 외쳤다. 흰 털이 한껏 요동쳤다.

“아씨, 깜짝아. 죽을래? 누가 그렇게 귀에다 대고 소리치래! 귀 먹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죄, 죄송합니다, 깰룩.”

“후우, 암튼.”

그야 그 말대로 버그에 버그가 겹쳐 맘이시리네의 계정에 오류가 난 거라면 그렇겠거니, 하고 억지로 이해할 수는 있다.

비논리적이긴 한데, 뭐 어쩌겠어.

“나도 모르겠다. 이만큼이나 찾아봤는데 안 나오면 어쩔 수 없는 거지. 걍 개발 팀한테 가서 맘이시리네 계정 업데이트시키고 패치 작업 들어가라 해. 진짜 멀쩡한가 앞으로 꼼꼼히 체크하고.”

“정말요? 아, 아니… 네, 그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깰룩.”

깰룩이는 뭐가 그렇게 기쁜지 환해졌다가, 급히 정신을 차리고 메시지 마법을 통해 개발 팀과 분주하게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하여간 속을 알 수가 없는 녀석이라니깐.’

그래도 어찌어찌 하나 해결하긴 한 것 같다. 해결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그럼 이제 보살이인가.’

졸린 눈을 억지로 치켜뜨며 히드라 동굴의 로그를 켰다. 보살이가 있는 보스 방에서 왜 힐이 먹히지 않았는지를 찾아야 한다.

꼬불거리는 오더코르트어와 아라비아 숫자, 알파벳이 섞여 있는 로그는 이게 지옥인가 싶은 모습이었다.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은 상태라 시야가 두 개로 분리되는 것 같다.

본다고 뭐가 나오겠냐마는.

맘이시리네의 로그를 보면서 이것도 안 본 게 아니다. 지금까지 계속 들여다보던 건데 다시 본다고 뭐가 나올 리가…….

“있잖아?”

익숙한 코드 하나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뭐야.”

“오? 뭐라도 찾으신 겁니까, 깰룩?”

“야, 이거 봐. 여기.”

“어디요? 뭐가요?”

“여기, 이거 말이야. 안 보이지? 이렇게 되어 있으니 보일 리가 있나.”

보살이가 가진 회복 특성 데이터와 힐 스킬 데이터가 똑같은 명령어로 발생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둘 중 하나가 씹히는 현상이 발생하게 될 수밖에 없다.

곰곰이 생각하던 깰룩이가 문득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히드라 동굴 테스트 마르디노 님이 하시지 않았습니까, 깰룩?”

“그랬지. 파라마스타 쪽 1차 테스트는 거의 다 내가 했으니까.”

“그것 때문인가 봅니다, 깰룩.”

“엥?”

깰룩이의 주장은 이랬다.

나한테는 힐이란 게 의미가 없다. 아무리 죽기 직전까지 맞아도 게임상 데이터로는 항상 HP 만땅이니까. 애초에 고작 히드라 동굴에서 힐을 써야 될 만큼 다칠 일도 없다.

그러니 힐 스킬 테스트에 상대적으로 좀 소홀했을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스킬을 테스트했을 테니 분명 힐도 테스트하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보살이는 회복하기 전에 공격을 집중해 때려잡아야 하는 몹이다. 그리고 나는 보살이 정도는 대충 주먹질만 해도 녹여 버릴 수 있다. 아마 보살이의 회복 특성이 발휘되어 데이터가 충돌하기도 전에 보살이가 녹았을 것이다.

“망할, 그 생각을 못했네. 나 디버깅 작업할 때도 최대한 유저들 수준에 맞춰서 한다고 마법 하나 가지고 싸우고 그랬는데. 근데 왜 히드라 동굴만 그랬지?”

“회복 특성을 가진 보스는 파라마스타에 별로 없지 않습니까. 아마 히드라 동굴 말고는 같은 오류가 난 데가 없을 겁니다, 깰룩.”

투덜거리며 문제가 되는 데이터를 추출했다.

“지금 보내주는 로그들 전달해서 데이터 충돌 막아두라고 그래. 얼마나 걸릴지 물어보고. 되는 대로 서버 다시 오픈시켜 줘. 히드라 동굴은 일단 닫아놓고. 내가 다시 테스트할게.”

“알겠습니다, 깰룩.”

어쨌든 이렇게라도 해결해서 다행이다.

한숨을 내쉬며 다 식어버린 커피를 들이켰다.

이제 남은 건, 마나 폭주.

이게 가장 난제였다.

히드라 동굴에서 미미하긴 하지만 마나 폭주가 있었다. 나머지는 그렇다 쳐도, 이건 너무나 근본적인 문제였다.

왜 마나 폭주가 발생하는가? 그건 수천 년 전부터 오더코르트에서 연구되어 온 문제였다.

‘내가 진짜 할 수 있을까?’

배불뚝이한테는 동네 코 찔찔이들처럼 이야기했지만, 현 오더코르트 지식인 계층인 아란탈은 모두 마법의 창시자이자 학자인 고대 아란탈의 후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마나 폭주가 속수무책의 재앙이라는 뜻이었다.

다시 한 번 로그 기록을 쳐다보았다.

그곳엔 그저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히드라 동굴에 다녀간 자취와 섭종을 하면서 우르르 접속이 끊긴 기록밖엔 없었다.

“흐음.”

도대체 무엇 때문에 마나의 폭주가 일어났단 말인가.

‘마나라. 마나… 마나? 근데 마나가 뭐지?’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질문이었다.

“…….”

나는 조용히 머리를 쥐어뜯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를 완벽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쉽게 생각하자. 쉽게. 마나의 특징이 뭐지?’



“마나는 지구에서 쓰는 전기라든가 그런 것보다 훨씬 효율도 좋고 활용성이 무궁무진해.”



그 순간, 이 행성에 처음 왔던 날 배불뚝이가 했던 설명이 맴돌았다.

‘전기랑은 다른 에너지. …에너지?’

똑똑.

뭔가 떠오르려던 그때, 누군가 개인 작업실 문을 노크했다.

“아씨, 뭐야. 누구세요?”

문을 열고 나가 보니, 파란 피부의 도마뱀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크로키리?”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내 오더코르트 친구들은 모두 삼 년 전, 배불뚝이의 심복인 수상한 복면인에게 붙잡혀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 후로 도통 보이지도 않고 찾지도 못했다.

“여기가 엑스 어스 면접장인가요?”

하지만 보면 볼수록 정말 크로키리를 쏙 빼닮은 오더코르트인이었다.

“면접?”

“그게, 여기에 서류를 넣었더니 면접을 보러 오라고 서신이 왔거든요.”

“면접장은 여기가 아니라 W―1이다. 그리로 가.”

문을 닫으려는데, 닫히지 않았다. 문틈에 자그마한 파란 도마뱀 발이 보였다.

“저, 정말 죄송한데, 거긴 어떻게 가나요?”

“…저기 복도에 보이는 포탈에 서서 ‘W―1으로 이동’이라고 말해.”

“아,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 별거 아니지만 이거 드세요.”

그는 문틈으로 연신 고개를 숙이더니, 무언가를 건넸다.

“이게 뭐야?”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개구리 모양의 과자였다.

정말이지, 착해빠진 것까지 크로키리를 쏙 빼닮았다.

“불쌍한 놈.”

“예?”

“나 같으면 여기 안 다녀. 차라리 똥을 푸고 말지.”

쾅.

얼빠진 표정으로 굳어 있는 파란 도마뱀에게서 눈을 떼며 문을 닫고 돌아섰다.

그러자 곧바로 깰룩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마르디노 님, 20분 후부터 서버 열 수 있을 것 같답니다, 깰룩.”

“그래? 잘됐네. 그럼 되는 대로 서버 오픈하라고 해. 보상 지급도 잊지 말라 하고. 아, 그리고 준비했던 이벤트도 같이 실시하겠다고 전해줘.”

“예? 이벤트도요?”

“왜? 뭐 문제 있어?”

“아, 아닙니다, 깰룩. 그렇게 전할게요.”

깰룩이는 다시 메시지를 보내러 사라졌다.

똑똑똑.

그 순간,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 진짜. 뭐야, 자꾸. 누구세…….”

“사긱 군, 얘기는 들었네…….”

쾅!

재빠르게 문을 닫았다.

“난 아무것도 못 봤어. 아무것도 못 봤다고.”

그러나 작업실 안에는 포탈이 있었다. 빛과 함께 나타난 배불뚝이의 면상을 보자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껄껄껄, 재미있구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문을 닫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하마터면 손가락이 다 잘려 나갈 뻔했지 뭔가.”

“그래, 나도 설마 문이 닫혔다고 포탈을 타고 들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음부턴 차단 마법을 써야겠어.”

그러자 배불뚝이 새끼는 꺽꺽거리고 웃으며 뱀처럼 엎드려 스물스물 기어 오더니, 보란 듯이 내 의자에 앉았다.

“얘긴 들었네. 결국 그 여자랑 협력하기로 했다지?”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나가.”

얼마나 할 일이 없으면 여기까지 와서 난리인지……. 저 소린 대체 누구한테 들은 거야? 깰룩이는 아닐 테고, 설마 맘이시리네와의 대화 기록을 관음한 건가?

“그래도 좀 놀랐네. 난 광고비를 주고 계약을 할 셈이었는데, 자네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섭외했지 않나. 역시 자네는 우리들의 영웅이네. 진정한 용사지.”

영웅, 용사,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였다.

하지만 난 그것이 이놈이 아쉬울 때마다 하는 소리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지 오래였다. 괜히 지난 3년간 개고생을 한 게 아니니까.

“하지만 그냥 혼자 돌아다니는 영상을 광고로 쓸 수 있게 해달라고만 해도 충분했을 건데, 정말 괜찮겠나? 같이 다니게 되면 그만큼 많은 제약이 생길 텐데.”

“신경 끄라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언제 내가 실패한 적 있냐?”

“뭐, 자네가 잘할 거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네. 다만, 앞으론 조금 더 조심해 달란 말일세. 혹여나…….”

“이 게임이 외계 행성의 현실이라는 사실이 밖으로 새어 나갈 일은 없어. 그런데 너, 방금까지 잡혀 있던 면접은 어쩌고 여기 온 거냐?”

나는 조금 전 파란 도마뱀에게 받은 개구리 모양의 과자를 입에 넣었다. 고소한 향이 나는 달콤한 과자였다. 초콜릿을 입힌 피스타치오 같은 맛이었다.

“아, 그거 말인가? 면접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기에 그냥 떨어뜨렸네.”

그놈은 대체 여기서 얼마나 헤맨 거야. 면접도 못 보고 탈락이라니.

속으로 혀를 차고 있을 때, 배불뚝이가 날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근데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사실, 배불뚝이는 그동안 나한테 모든 인사 내용과 스케줄을 철저히 감추어왔다. 나는 어떤 인사 과정에도 참여한 적이 없었다.

대체 왜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귀찮고 바빠서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배불뚝이 주제에 혼자서 뭐 얼마나 대단한 걸 꾸미겠냐 싶던 것이다.

“마법이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하자, 멍청하게도 바로 낚인 배불뚝이는 대경하며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버렸다.

“마, 마법이라고?”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날 관음한 대가다, 썩을 놈아.

“난 네놈이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두 실시간으로 낱낱이 훔쳐보고 있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황망한 얼굴을 하고 있던 배불뚝이는 대답도 못하고 곧바로 땅을 기어 쏜살같이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키킥, 멍청한 놈. 방금 그걸 녹화해 놨어야 하는 건데.”



* * *



― 파라마스타 서버 재가동 5초 전입니다, 깰룩.

깰룩이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00:00:00:00]

― 파라마스타 서버 오픈했습니다.

[체인지 더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서버가 다시 오픈되자,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 유저들이 앞다투어 로그인을 했다.

파라알은 1분도 채 안 돼서 순식간에 유저들로 북적였다.

― 서버 상태 어때?

― 아주 쾌적합니다, 깰룩.

― 보상은 어떻게 됐고?

― 모두 정상 지급되었습니다, 깰룩.

― 좋아, 좋아.

유저들은 모두 제자리에 서서 가방부터 확인하기 시작했다.

“오, 보상이다.”

“개이득.”

보상으로는 성향과 스킬의 획득 확률을 두 배가량 증가시켜 주는 칭호 ‘시련을 견딘 헌터(레전드)’ 30일권과, 보정 마법을 통해 이동 속도와 모션 속도를 올려주는 버프 ‘마르디노의 축복’ 30일권이 지급되었다. 물론, 오늘 자정까지 접속하는 사람들만 받을 수 있었다.

곧 그들의 머리 위에 자주색 문구가 떠올랐다. 지급된 레전드 칭호를 착용한 결과였다.

나는 조용히 ID카드를 들여다보았다.

현재 파라마스타 왕국의 접속자 수는 103,544명. 긴급 점검 전보다 무려 140만 명이나 모자란 수치였다.

시간대가 이른 이유도 있었지만, 아마 강제 섭종한 것이 크겠지.

반드시 이 위기를 다시 딛고 일어서야 한다.

그때, 알림이 ID카드에 스쳐 지나갔다.

띵!

[맘이Siri네 님이 접속하였습니다.]

우리 BJ님께서도 입장하셨군.

― 좋아, 지금쯤 멘트 띄우면 될 것 같다.

― 그럼 지금 띄울게요, 깰룩.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파라마스타 유저들의 ID카드가 목걸이 형태로 강제 소환되었다.

[파라마스타의 헌터 여러분들께 잠시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뭐야, 이게?”

“몰라? 갑자기 또 무슨 점검하는 거 아냐?”

불안함을 느낀 유저들이 서로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게임마스터와 함께하는 던전 개막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게임마스터?”

“던전 개막식?”

깰룩이와 내가 야심차게 준비한 추가 던전이 오늘 오픈된다.

사실 언젠가 유저들에게 깜짝 이벤트 형식으로 선보일 생각이었는데, 마땅한 시기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차였다.

근데 때마침 긴급 점검으로 툴툴거리는 유저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딱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패치를 진행한 것이었다.

[안내가 끝나는 대로 모든 파라마스타 유저 분들은 파라알 중앙 광장으로 강제 이동됩니다. 게임 이용에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 광장 진입 5초 전입니다, 깰룩.

― 어.

조용히 벤치의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아공간에 미리 준비해 뒀던 가면과 황토색 로브를 소환 마법을 통해 꺼내 들었다.

[광장에 진입합니다.]

안내 음성이 종료됨과 함께, 한순간 눈부신 빛이 쏟아지며 10만 명의 유저들이 모두 파라알 광장으로 제각기 소환되었다.

하지만 다른 유저들과는 달리, 나는 광장 중앙의 시계탑 꼭대기로 이동되었다.

재빨리 빛이 사라지기 전에 몸에 로브를 걸치고 후드를 푹 눌러썼다. 가면을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헐, 뭐야?”

“이런 이벤트도 있었어?”

시계탑 아래 광장에서는 유저들이 휘둥그레진 눈을 하고 두리번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광장은 10만 명 이상이 있음에도 공간이 상당히 남아 있을 정도로 넓었다.

“저거 뭐야? 저 위에 누가 서 있는데?”

누군가 내가 서 있는 광장 중앙의 시계탑 꼭대기를 가리켰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유저들의 고개가 도미노처럼 시계탑을 향해 돌아갔다. 익숙한 모습의 유저 하나가 나를 향해 슬쩍 손을 흔들었다. 맘이시리네였다.

차례차례 전후좌우로 허리를 숙여 유저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뭐야?”

“NPC인가?”

[존경하는 헌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확성 마법이 걸린 내 목소리가 광장 전체에 울려 퍼지자, 유저들이 떠드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던 광장이 조용해졌다.

[GM 마르디노입니다. 반갑습니다.]

쥐죽은 듯 조용해졌던 광장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헐, 들었어? GM이래.”

“체월에도 GM이 있구나. 근데 GM이 여자야?”

“엉? 저거 여자야? 남자 아니야?”

저거라니…….

유저들의 만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저거 보라고, 가슴이 엄청 튀어나왔잖아.”

가슴 아니라고, 흉갑이라고.

“뭐래. 저 정도 가슴은 남자도 튀어나와.”

안 나와, 왜 나와.

“내기할까? 여자라는 데 만 코른 건다.”

“콜! 그럼 난 남자에 만 코른.”

“오, 나도 할래!”

유저들은 내 성별을 놓고 내기까지 하기 시작했다.

인당 만 코른이라, 꽤 쏠쏠하겠는데? 맘이시리네한테 남자 쪽에 올인하라고 한 다음 성별을 밝히면…….

― 마르디노 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깰룩?

― …아니, 없어. 망할, 쟤들 땜에 자꾸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잖아!

[자자, 모두들 진정해 주세요. 원활한 이벤트 진행을 위해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때, 아래에서 두 명의 유저가 두 팔을 흔들어 보이며 외쳤다.

“영자님! 템 좀 뿌려주세요!”

“돈도요!”

그러자 다른 유저들도 본색을 드러내며 목이 터져라 외치기 시작했다.

“어어, 저도요!”

“저도 템 좀요! 제발! 맨날 사냥하다가 죽는단 말이에요!”

“제 닉네임은 쁘로뽀뽈입니다! 영자님! 쁘로뽀뽈! 템 보내주세요!”

그 외침은 수많은 사람들의 거지 근성을 일깨우는 스위치가 되었다. 결국 동냥아치들의 폭주로 순식간에 광장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유저들은 일제히 시계탑이 있는 중앙으로 몰려들더니, 급기야 서로를 발판 삼아 시계탑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좀비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