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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마스터는 사기꾼 1권 12화

흔한 GM의 게임 홍보법 (3)




“하하, 그게 무슨…….”

“저번엔 NPC로 식별됐는데, 지금은 식별이 안 되잖아요. NPC 정보도 안 뜨고. 그럼 플레이어라는 말이잖아요. 근데 그땐 NPC라 했잖아요.”

맘이시리네가 나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그냥 말해요. 님, GM이죠?”

“…아닌데요.”

“뻥치지 마요.”

“아닌데요. 그냥 유저인데요.”

“웃기시네, 누굴 속이려고.”

삑! 삑!

그 순간, 손목에 차고 있던 마나 폭주 감지기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헛!”

아차 싶어 얼른 들여다보니, 히드라 동굴에서 마나 폭주가 감지되었다는 표시가 떠 있었다.

“마나 폭주?”

어느새 옆에서 같이 들여다보고 있던 맘이시리네가 감지기에 떠오른 문구를 읽었다.

황급히 손을 뒤로 빼 마폭기를 가렸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뭔진 모르겠지만, 지금 뭔가 터진 거죠?”

젠장, 너무 방심했다.

아무래도 더 이상 발뺌하는 건 무리였다.

“맞아요. 저 GM이에요. 근데 섭종 후에도 님이 로그아웃이 안 됐길래 찾아온 거예요.”

“호오.”

맘이시리네의 눈빛이 위험하게 빛났다.

“영자님, 그거 아세요? 저 지금 녹화 중이에요.”

“…….”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이 그 화제의 영상을 올린 유저였지.

아까부터 맘이시리네를 찾고 있었던 것은 바로 영상을 통해서 체월을 홍보해 달라고 하기 위해서였다. 스폰 계약을 맺자고 하라며 배불뚝이가 닦달했던 것이다.

망할, 버그에 섭종에 마나 폭주까지 일어났는데 홍보는 얼어 죽을.

“그래서요?”

“그냥 그렇다고요.”

“아, 그렇구나. 그럼 이제 그만 나가주시겠어요? 어차피 여기 계셔봤자 혼자서 보스 몹도 못 잡으시고, 그렇다고 로그아웃은 더더욱 못하실 텐데. 님이 얌전히 마을로 가서 꺼주셔야 제가 문제 해결하고 서버도 켤 수 있을 거 같은데요.”

“흐음, 생각해 볼게요.”

이 또라이가?

“저기요. 저 GM이에요. GM 바쁜 거 아시죠? 지금 이거 말고도 신경 쓸 게 엄청 많거든요? 좋은 말로 할 때 마을 가서 게임 끄세요, 예?”

나는 그대로 뒤로 돌아 히든 스테이지 바깥쪽으로 발걸음을 뗐다.

당장은 마나 폭주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

하지만 맘이시리네는 또라이 중에서도 진짜 징그러운 또라이였다.

“헐, 지금 저를 내팽개치고 서버 문제 해결하러 가시겠다 이거예요? 너무하시네. 치사하게 그러지 말고 뭘 하는진 모르겠지만 같이 가요, 영자님. 내보낼 거면 왜 구해줬어요? 그냥 죽게 놔두지.”

나는 조용히 동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왜 그랬을까. 그냥 죽게 놔두지.

“뭐야, 왜 씹어요. 사람 기분 나쁘게.”

“좀 질문 같은 질문이어야 대답을 하지.”

“뭐라고요?”

“아, 들렸어요? 혼잣말이었는데.”

“…….”

구겨진 표정이 참 볼만하다. 누나들한테서 배운 비아냥이 이런 데서 쓰일 줄이야.

“죄송한데 제가 GM치고 성질이 좀 드럽거든요? 괜히 욕 듣기 전에 얼른 나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허,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나가라고요? 히든 스테이진데? 아, 제가 무슨 죄를 져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니고 버그 때문인데 억울하잖아요. GM이랑 파티 좀 해보자고요. 그냥 따라가기만 할게요. 저 있으면 어디가 덧나요?”

“네네, 덧납니다, 고객님.”

그러자 맘이시리네가 혐오하는 듯한 표정으로 쏘아보았다.

“나가시는 길은 저쪽입니다. 얼른 안녕히 가세요.”

“아, 그러지 말고 저 좀 봐 봐요. 잘 보라고요. 님, 한국인이죠?”

그러더니 들러붙으며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나는 혐오하는 표정으로 얼굴을 최대한 뒤로 뺐으나, 팔을 붙잡고 멈춰 세우는 통에 무산되었다.

“잘 봐요. 나 어디서 본 적 없어요?”

맘이시리네는 코앞까지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누구지?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응? 잠깐, 설마.’

설마 이 또라이 유저가 한국에서는 ‘엄마, 아빠’만 할 줄 알면 다 안다는 개인 방송인…….

“BJ시리.”

놀란 표정을 짓기도 전에 맘이시리네가 입꼬리를 올리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쩐지 영상 인기가 장난이 아니더라니.”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맘이시리네를 바라보았다.

“그건 SNS로 올린 미리 보기 영상이었죠. 저인 줄 모르셨나 보네. 그런데 엑스 어스는 미국 회사 아니었나? 한국인 GM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뭐, 어쨌든 절 알아보시니까 얘기가 빠르겠네요. 영자님, 저랑 거래 하나 하시죠?”

“예?”

“저한테 방송할 만한 재밌는 소재를 제공해 주시는 거예요. 그 구, 구울 던전처럼. 제가 그걸 방송하고. 그럼 자동으로 게임 광고도 되잖아요. 솔직히 자랑 좀 하자면 한국에서 제 방송 이상으로 영향력 있는 게임 광고 못해요. 체월에서 절 스폰해 주시는 거죠.”

맘이시리네가 은근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내 대답은 빠르고 간단했다. 고민 따위 조금도 없었다.

“에이, 제가 왜 그런 미친 짓을 하겠어요. 차라리 직접 방송을 찍고 말지.”

손사래까지 치며 말하자, 당연히 내가 받아들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던 맘이시리네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와, 진심? 저 구독자만 천만 명인데? 오해하고 계신가 본데 저 어디 가서 먼저 이런 제안하는 사람 아니거든요? 진짜 대박 기회인데 발로 차버리시는 거거든요?”

“그렇게 대단한 분이시면 굳이 제가 소재 만들어 바칠 필요 없이 알아서 방송 잘하시겠구만 뭐가 아쉬워서 그러세요.”

난 당신 있는 쪽으론 앞으로 오줌도 안 눌 거라고.

그러자 맘이시리네는 좀 열 받은 모양이었다.

“허,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죠? 아, 그럼 저도 어쩔 수 없네요. 지금까지 찍은 거 방송에다가 다 퍼트려 버릴 거예요.”

“뭐요?”

황당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날 너무 물로 봤다. 평생을 악마 같은 누나들 밑에서 보내온, 이 외계 행성에 혼자 뚝 떨어져서도 생존한 이 나를 말이다. 나는 금세 평정을 되찾고 미소를 지었다.

“하.”

짤막한 숨을 터뜨렸다.

“뭘 모르시네.”

역시 퍼트린다 어쩐다 한 건 그냥 으름장을 놓은 것뿐이었는지, 뻔뻔하게 나오자 맘이시리네는 꽤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안 했거든요. 이게 뭔 소린진 아시죠?”

“그게 뭐요. 저도 커스텀 안 했는데요.”

“거참, 알 만하신 분이 왜 그러시나. 맘이시리네 님이라고 하셨나요? 제가 촬영해도 된다고 허락한 적도 없는데 맘대로 제 모습을 상업적인 용도로 쓰시면 초상권 침해죠. 방송하시는 분이 제일 조심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네?”

“생각해 보십쇼. 제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모습으로 남아 있겠어요? 조각 같은 꽃미남으로 커스텀할 수 있는데. 다∼ 이런 상황이 있을 때를 대비한 조치죠. 제가 이쪽 일 하면서 님 같은 사람 한둘 만나봤겠습니까? 이런 범죄 쪽은 특히나 체월 오픈 초기부터 문제가 된 거라서요.”

사실은 매번 변신 마법을 사용해 모습을 바꾸기가 귀찮아서 그냥 다닐 뿐이지만.

‘범죄’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하자, 맘이시리네가 눈에 띄게 불안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촤, 촬영 중이라고 말했잖아요, 아까.”

“촬영하고 있다고 통보했을 뿐이지, 제가 찍어도 된다고 한 적은 없잖아요? 그걸 방송해도 된다고 한 것도 아니고. 전 아까 맘이시리네 님이 말해주기 전까진 BJ인 것도 몰랐고. 심지어 이건 실제 제 얼굴이죠. 그런데 님이 찍은 영상으로 저한테 명예 훼손을 끼치거나 그걸 악용하면 초상권 침해죠. 저 같은 경우는 후자겠네요.”

“뭔 소리예요. 악용할 생각은…….”

“구라치지 마세요. 아까 저 협박했잖아요, 퍼트리겠다고. 이제 와서 파일 지우셔도 소용없어요. 로그 뒤져 보면 다 나와요.”

맘이시리네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유명 BJ가 초상권 침해로 민사 소송에 걸리면 꽤 재밌겠네요.”

비꼬듯 툭 던지는 말에,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어, 어차피 님은 방금 얘기한 게 밝혀지면 폭망하잖아요!”

“그러는 님도 영상 업로드 못하잖아요!”

“그건…….”

말문이 막힌 듯 어물거린다.

지금이 기회다.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골든 타임.

“예예, 저 영자 맞습니다. 그래도 맘이시리네 님은 유저인데 진짜 막 고소를 때리고 그러기엔 저도 마음이 안 좋아요.”

조금 낚싯줄을 풀어주고.

“그런 의미에서 저랑 거래 하나 하시죠.”

“거래요? 무슨…?”

“님 말대로 방송 소재 주고 그러는 거에 협력해 줄게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저도 방송에 출연하겠습니다. GM이라고 나오진 않겠지만요. 어떤 소재를 줄진 아직 모르지만, 맘이시리네 님하고 다른 유저들과의 형평성을 맞춰야 하니까, 보호이자 감시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맘이시리네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어주다가, 험악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하나 더. 지금 당장 로그아웃하세요. 진짜 빨리 버그 고치고 서버 열어야 하니까.”

“진짜요?”

사실상 저쪽이 내건 조건에서 별 달라진 것도 없다. 다만 이런 거래에선 주도권을 누가 쥐냐가 가장 중요하기에, 내가 선심 쓰는 것처럼 다시 제안했을 뿐이다.

하지만 맘이시리네는 대번 화색을 띠었다. 아까 우리 측과 협력하여 방송을 하고 싶다고 한 건 진심인 듯했다.

“왜요? 싫으세요?”

“누, 누가 싫다 그랬어요?”

“그럼 하는 거죠?”

“콜! 콜!”

나는 보이지 않게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맘이시리네와 악수를 나누었다.

“자, 그럼 이제 빨리 마을로 가서 로그아웃하십쇼.”

손을 떼고 손가락으로 출구를 가리키자, 맘이시리네가 다시 내 손을 붙잡았다.

“네, 데려다 주세요.”

“…지금 저랑 장난합니까? 로그아웃하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손이 없어요, 발이 없어요? 혼자 가십쇼.”

“에이, 또 그러신다. GM인데 슝 보내줄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여기서 마을까지 가려면 한참 걸어야 하잖아요. 귀환서도 던전 다시 돌아 나가야 쓸 수 있는 거고. 물약 먹었어도 저 HP 간당간당해서 가다가 죽을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그리고 구덩이로 한참 내려온 거 같은데 저길 어느 세월에 기어 올라가요.”

조용히 밝은 갈색에 웨이브진 맘이시리네의 머리카락을 노려보았다.

저걸 확 쥐어뜯어?

“아니, 그건 님 사정이구요. 제가 왜 그런 귀찮은 짓을 해야 하죠? 이럴 거면 거래는 왜 한 겁니까?”

“아, 정말 쪼잔하게. 거래도 한 사인데 그 정돈 좀 해줘요. 돈 드는 것도 아닐 텐데. 제가 빨리 나가야 고친다면서요. 빨리 나가는 데 협조 좀 해줘요.”

“…….”

클베 때도 느꼈지만, 이건 정말 보통 또라이가 아니다.

“알겠습니다. 하, 씨. 이거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되는데……. 저 동굴 앞에 호수 하나 있거든요? 거기 들어가서 바닥 부분 잘 보십쇼. 포탈 하나 있어요. 됐죠?”

맘이시리네가 코웃음을 쳤다.

“내가 한 번 속지, 두 번 속을 것 같아요? 누굴 바보로 아나.”

“지금 제가 농담 칠 기분 같아 보이십니까?”

“응, 안 속아.”

“칫.”

아깝다. 익사시키려 했는데.

이대로 무시해 버리기엔 혼자서 얌전히 마을로 돌아갈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더더욱 로그아웃을 해줄 것 같지도 않다.

“어휴, 진짜 무슨 이런 진상이……. 업혀요.”

마지못해 등을 허락했다.

결국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거지.

그러자 맘이시리네는 펄쩍 위로 뛰어올랐다가 등허리에 철썩하고 찹쌀떡처럼 들러붙었다.

“어억!”

“와, 출발!”

허리 나갈 뻔했다. 하지만 맘이시리네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탄 것처럼 등 뒤에서 힘차게 몸을 뒤흔들었다.

‘이대로 협곡까지 끌고 간 다음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일까? 아니, 역시 화산인가?’

진짜 쥐도 새도 모르게 확 죽여 버릴 수도 없다는 게 제일 억울했다. 여기서 죽으면 이 또라이는 정말로 죽어버린다.

‘나중에 꼭 절벽에서든 화산에서든 다이빙시킨다, 내가.’

나는 이를 갈며 구덩이 위쪽으로 뛰어올랐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보살이를 지나쳐, 마나 폭주가 일어난 히드라 동굴을 벗어나자마자 곧장 이동 마법을 썼다. 수도 근처까지 도착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와, 엄청 빠르네요! 역시 GM.”

“…….”

성문 바로 앞까지 와서야 내 등에서 내려온 맘이시리네가 ID카드를 내밀었다.

“자요, 친추요.”

진짜 너무 싫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별수 없이 ID카드를 불러냈다.

[맘이Siri네 님을 친구로 추가했습니다.]

카드끼리 접촉하자, 서로의 계정이 친구 목록에 자동으로 추가되었다.

“안방마? 특이한 닉이네요.”

“…….”

“그럼 담에 봬요.”

“얼렁 좀 가십쇼.”

카드를 뒤적이던 맘이시리네는 천연덕스럽게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태워다 줘서 감사요. 다음부턴 그냥 시리라고 부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