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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마스터는 사기꾼 1권 11화

흔한 GM의 게임 홍보법 (2)





흰 가운을 입은 대여섯 명의 연구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광경이었다. 아래 한구석에는 작게 배불뚝이의 모습이 비치는 화면이 있었다.

“뭐야, 영상 메시지 마법?”

“지구 측과 통신한 내용을 저장한 걸세. 일단 보게나.”

― 드라비라 님, 보고받은 대로 파라마스타 왕국 유저들의 접속기 신호를 모두 끊어 강제 종료시켰습니다. …다만, 아직 한 대의 접속기가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는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가운데에 있는 연구원이 말하자, 화면 속 배불뚝이가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다.

― 그게 왜? 그것도 끊어버리면 되잖나.

― 그게 되질 않아서 연락을 드리는 겁니다만.

― 되질 않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 그러니까…….

― 거참, 말귀 못 알아듣는 양반이네.

누군가 연구원의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연구원들의 뒤쪽에서 불쑥 나타난 그 사람은 흰색 후드를 푹 뒤집어쓰고 있어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연구원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양쪽으로 갈라져 길을 터주었다.

― 말 그대로야. 연결을 끊을 수가 없다고.

완전히 앞으로 나온 그가 후드를 벗었다.

흑색처럼 진한 보라색 머리카락이 후드에서 쏟아지듯 빠져나왔다. 같은 색의 눈이 배불뚝이를 쏘아보고 있었다.

― 나, 나이트님!

화면 속의 배불뚝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안절부절못하며 허리를 숙였다. 오더코르트에 온 이래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나이트? 누구길래 배불뚝이가 저렇게 바닥을 설설 기는 거지?’

― 됐고. 긴말할 시간 없어. 아직 파라마스타에 남아 있는 그 인간, 그 안에서 죽으면 진짜로 죽어. 뒤진다구. 여기서는 어떻게 해도 신호를 끊을 수 없어. 내 생각엔 그쪽 문제야. 그러니까 그쪽에서 어떻게든 해 봐. 싫으면 죽게 내버려 두던가.

― 예, 아, 알겠습니다! 바로 전하겠습니다!

배불뚝이는 푹 숙이고 있던 머리를 쳐들고는 급히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통신 영상은 거기서 끝이 났다.

중간부터 머리털을 쥐어뜯고 있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정리 좀 하자. 그 또라이… 아니, 맘이시리네라는 유저가 지금 섭종을 했는데도 남아 있다, 그런데 행여나 지금 걔를 누가 공격하거나, 걔가 어디 처박거나 해서 죽으면 진짜로 죽는다고? 게임에서 사망하는 게 아니라 리얼 참 트루 저승에 간다고?”

나와 배불뚝이, 깰룩이는 영상이 끝나 아무것도 떠 있지 않은 디스플레이 창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침묵했다. 이윽고 침묵은 내 입에서 깨졌다.

“이런 미친…….”

내 눈치를 보던 배불뚝이가 뒤뚱거리며 슬쩍 뒤로 가더니, 문을 열었다.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충격, 세계 최초 가상현실 게임 ‘체인지 더 월드’, 플레이 중 사망자 발생

‘체월’ 유저 사망, 접속기가 원인인 것으로 밝혀져… 접속기 판매량 급감

‘체인지 더 월드’ 이대로 무너지나… 플레이어 의문의 죽음



안 돼! 그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돼!

“그, 그럼 나는 이만…….”

퍼억!

나는 문으로 스물스물 빠져나가고 있던 배불뚝이의 엉덩이를 힘껏 걷어찬 뒤, 곧바로 파리톤 협곡으로 이동 마법을 시전했다.



* * *



“아이고, 나 죽네!”

걷어차인 드라비라가 바닥에 엎어지며 울부짖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깰룩.”

“으으, 하여간 저 성질머리 하고는. 뒤를 부탁하네, 깰룩 군. 난 하르코스탄을 만나기로 해서 이만 가 봐야 한다네.”

“…예.”

깰룩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돌아서는 드라비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근래 들어 드라비라가 카킹들과 만나는 일이 잦았다.

‘아니, 일단 이건 접어두고.’

세차게 고개를 저은 깰룩은 홀로 작업실을 왔다 갔다 하며 초조한 얼굴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석익에게선 소식이 없었다.

‘뭔데 이렇게 오래 걸리지?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건가? 서, 설마 그 유저가 히드라 동굴에서 죽었다든가?’

만약 그렇게 되면 석익은 분기탱천하며 자신을 죽이러 오는 중일 것이다.

― 깰룩아, HP 포션 좀 줘! 지금 빨리!

“깨, 깰룩?!”

갑작스레 석익에게서 온 다급한 메시지 마법에 화들짝 놀란 깰룩이 뒤로 엎어졌다.

콰당탕!

‘아오, 아파… 씨.’

― 깰룩아! 멀었냐!

깰룩은 눈물을 머금고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 자, 잠시만요, 깰룩!



* * *



콰과과과과광!

보살이의 황금빛 주먹이 바닥을 강타할 때마다, 돌바닥이 5㎝씩 패이며 동굴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급히 점프해서 피할 때마다, 보살이의 여섯 개의 주먹이 내가 있던 자리에 무지막지하게 쑤셔 박혔다.

“흑흑흑! 후케드! 와이쿠푸 키아 카무페느! 아우 파루 아하우!(흑흑흑! 망했어! 회사에서 짤렸어! 난 쓰레기야!)”

“아오, 술 냄새. 대체 얼마나 퍼마신 거야!”

보살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콧물에 침까지 흘리며 우는데 고약한 술 냄새가 온 동굴에 진동을 했다.

콰과과과과광!

“이 미친놈아! 진짜로 죽일 셈이냐!”

띵!

[안방마 님이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달성했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획득한 ‘삼단 대쉬’ 스킬이 ‘기본’ 스킬로 등록됩니다.]



[획득 스킬 정보

삼단 대쉬 Lv.7(55%)

상세 내용을 확인하시겠습니까?]



“꺼져! 정신없어!”

힘겹게 손을 휘저어 창을 닫았다.

띵!

[안방마 님이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칭호 ‘대왕 바퀴벌레’를 획득했습니다.]



[획득 칭호 정보

‘대왕 바퀴벌레’(레전드)

피격 시 10초간 무적 상태가 된다.

물리 대미지 한정. 쿨타임 300초.

습득 조건: 밀폐된 공간에서 네임드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1시간 동안 한 번도 피격되지 않을 시 획득.]



“자꾸 시야 가리지 말라고?!”

메시지 창을 끌 시간도 없었다. 술에 잔뜩 취한 보살이가 맵이 무너지든지 말든지 막무가내로 온 사방에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계속 이대로라면 딱 둘 중 하나일 거다. 맞아 죽거나, 깔려 죽거나!

“흑흑, 나 페아 파이? 타토우 우푸나파레? 흐어어엉(흑흑, 이제 어쩌면 좋지? 우리 식구들은? 흐어어엉)!”

콰과과과과광!

보살이 이놈은 들어야 할 무기인 갈고리도 집어 던지고, RC 버전 때보다도 더욱 미친 듯한 속도로 땅을 두드려 대고 있었다.

술을 얼마나 먹은 건지 나도 못 알아보고, 대화도 안 통했다.

아마 아까 전에 나한테 정직 아닌 정직 통지를 받고 슬퍼하며 혼자 술을 퍼마시다가, 유저들이 동굴로 몰리는 바람에 강제 소환된 모양이었다.

“깰룩이, 인마! 아직이냐?!”

― 차, 찾고 있습니다, 깰룩! HP 포션은 쓰실 일이 없으니 어디다 짱박아놨는지 잘…….

원래는 포션을 마시면 유저 보정 마법과 연동되어 발동하는 회복 마법을 받을 수 있지만, 유저가 아닌 나는 붉은색 ‘+’ 모양 이미지 마법들을 전신에 휘감는 효과밖에 볼 수 없다. 회복 마법을 직접적으로 받더라도 마찬가지다.

유저들의 게이지 바는 여느 게임들처럼 남은 체력 양이라는 정보를 보여주는 ‘디스플레이’ 마법인 반면, 내 머리 위의 게이지 바는 그저 떠 있을 뿐인 ‘이미지’ 마법이었다. 내 상태와는 무관하게 언제나 만땅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살이의 주먹을 피해 뛰어다니며 포션을 내놓으라 외치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오, 더럽게 무겁네.”

바로 등에 업고 있는 이 또라이 유저 때문이었다.

히드라 동굴에 도착했을 때, 맘이시리네는 이미 결정타를 맞아 스턴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일단 여기서 내보내야겠다 싶어 집어 들었는데, 그 후로 계속 이 꼴이었다.

보살이의 전투력을 생각해 보면 저랭인 맘이시리네는 벌써 죽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아직 살아 있다는 게 가장 미스터리한 일이다.

‘팔라딘 성향 때문인가?’

콰과과과과광!

보살이의 주먹이 날아들자, 거센 풍압마저 느껴졌다.

“너 이 새끼, 술 깨면 보자!”

나는 이를 북북 갈며 다시 땅을 박찼다.

보살이 정도는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저 면상에다 매직 미사일 하나 날리는 것만으로도 깔끔하게 처리가 가능했다.

문제는 등에 업고 있는 이 짐 덩어리가 보살이 들숨에 스쳐도 죽을 수 있는 상태라는 거였다. 양손이 자유롭지 못한 현재, 내가 아니라 맘이시리네에게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쨌든 숨은 붙어 있다는 것. 게임인 이상 회복만 시키면 살릴 수 있었다.

― 차, 찾았습니다, 깰룩!

나이스 타이밍.

“창고에 넣어, 빨리!”

나는 순간적으로 마나를 운용해 발밑을 폭파시켰다. 그대로 붕 떠 거의 20m 이상을 날아갔다. 그 와중에도 간당간당한 맘이시리네의 체력이 닳지 않도록 주의하는 걸 잊지 않았다.

― 넣었습니다!

보살이로부터 멀리 떨어지자, 타이밍 좋게 깰룩이가 외쳤다.

재빨리 맘이시리네를 바닥에 내려놓고 소환 마법으로 깰룩이가 창고에 갖다 놓은 포션을 불러와, 거의 쏟아붓듯이 먹였다.

뒤에선 보살이가 눈물을 흩뿌리며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으으.”

드디어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나는 재빨리 꿈틀거리는 맘이시리네를 도로 들쳐 업었다.

콰과과과과곽!

그러고는 보살이가 휘두르는 주먹을 피해, 그대로 앞에 보이는 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꺄아아아악!”

정신을 차린 맘이시리네가 비명을 질렀다. 우리는 그대로 좁고 긴 구덩이 안을 미끄러지며 아래로 떨어졌다.

털썩!

한참을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을 때는 저 위에서 울부짖으며 쿵쾅거리는 보살이의 소리가 작게 메아리쳐 들려왔다.

들어온 곳은 또 하나의 좁은 동굴. 보이는 거라곤 달랑 낡은 보물 상자 하나 있는 게 다였다. 그마저도 열쇠 없인 열지도 못하게 되어 있지만.

띵!

[히든 스테이지를 발견했습니다.]

[‘탐험가’ 성향을 획득했습니다.]

[‘탐색’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탐험 키트’가 지급되었습니다.]

[성향 정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그때까지도 등에 업혀 있던 맘이시리네를 바닥에 내려놓자, 맘이시리네는 비틀거리며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가는가 싶더니 결국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님은…….”

날 알아보는 건가? 하긴, 클로즈 베타 때 모습 그대로니 못 알아볼이유가 없다.

띵!

이번엔 맘이시리네의 ID카드에서 푸른 빛이 쏟아져 나왔다.

[맘이Siri네 님이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맘이시리네는 자신 앞에 나타난 메시지 창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서 후들거리는 다리로 한 걸음 다가왔다.

“…하하, 또 보네요.”

“왜 NPC가 여기 있어요?”

“네?”

말을 끝마치자마자 맘이시리네는 혼자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아니, 섭종 한다고 한 지가 언젠데 난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거지?”

“…….”

맘이시리네는 그 이후로도 계속 정신 나간 사람처럼 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가 다시 정리했다가를 간헐적으로 반복하며 혼잣말을 연신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잠시 후, ID카드를 불러내 내 쪽으로 들이밀었다.

“…….”

당연히 NPC 식별음은 나지 않았다.

“그러면 그렇지.”

그러고는 확신에 찬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클베 때부터 뭔가 수상하더라니.”

“네? 뭐가요?”

“뭐긴 뭐예요. 솔직하게 말해요. 님 GM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