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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1996. 4. 15. (월) 07:00.
개마고원 내 수용소.

애써 좋게 보이려 노력하시지만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으셨다. 어제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오늘은 스승님의 안색이 좋지 못하시다.
‘걱정이구나.’
자신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누누이 말씀하셨는데, 걱정이다.
“뭘 그리 걱정하느냐. 감기가 걸려서 그런 것이라니까.”
“그래도…….”
“걱정하지 마라.”
“그래도 쉬면서 일하세요.”
“알았다, 알았어. 어서 나가자.”
아프신 것 같아 걱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을 쉬게 해주지는 않는다. 스승님은 막사를 나선 후 사람들과 함께 광산으로 향했다.
‘휴우, 쉬면서 하시겠지.’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 하기에 서둘러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 아침은 주방장의 지시로 내가 해야 한다.
어제 술을 많이 먹어서 오늘 준비하는 아침은 간단한 해장국이었다.
주방으로 가서 아저씨가 준비한 재료로 해장국을 끓이고, 식당으로 내갔다. 식탁을 차리자 호위총국에서 온 대좌와 소장이 나와 자리에 앉았다.
식사가 시작된 후, 옆에 서서 조용히 수발을 들었다.
어제저녁에 술을 많이 먹은 모양이다. 입맛이 없는지 몇 수저 뜨더니 둘 다 식사를 마친다.
‘젠장, 침 넘어가네. 안 먹을 거면 나나 주지.’
남겨도 손을 댈 수 없는 것이 수용소의 불문율이다.
수용된 사람들은 오직 배급으로 주는 것만 먹을 수 있다. 다른 것을 먹다가 들키면 거의 반 죽을 정도로 몽둥이질을 당한다.
주방장을 제외하고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주방장은 요리의 맛을 봐야 해서 제외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급식 이외에는 절대 다른 것을 먹을 수 없다.
혹시나 몰래 먹는 모습을 들키지 않는다고 그들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가는 오산이다. 경비병들이 귀신 같이 알아차린다.
아마도 정체 모를 재료로 만드는 검은색의 빵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것 때문에 다른 것을 먹으면 신체의 변화가 생겨 경비병들이 알아차리는 것으로 보였다. 스승님께서는 우리를 실험 재료로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으니 말이다.
‘그래도 난 먹을 수 있는데, 쩝!’
그렇지만 난 예외다. 다른 것을 먹어도 절대 들키지 않는다. 다음 주방을 맡을 사람으로 지정이 돼서이기도 하지만, 내 몸에 돌고 있는 특이한 내력 때문이다.
‘자, 처먹었으면 냉큼 일어나 가라.’
입맛이 없으면 일어나든지 해야지, 두 놈 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어제 밤새 술을 같이 마신 모양인데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감찰관님, 입맛이 없으신 모양입니다.”
“해장국은 좋은데, 입이 좀 텁텁해서 그렇소.”
“반주를 좀 드시면 좋아질 겁니다.”
“아니, 그만 먹도록 하겠소. 그보다는 아까 소장 동지의 말이 사실이오?”
휴지로 입을 닦으며 살벌한 눈초리로 대좌 새끼가 묻는다. 소장 새끼에게 뭘 들어서 저러는지 모르겠다.
“그렇습니다. 아직도 위대한 최고 지도자 동지를 비방하는 놈들이 있더이다.”
“미친놈들이군. 최고 지도자 동지의 은혜를 받아 벌레보다 못한 목숨을 지금까지 이어온 줄도 모르고 말이야.”
“아직도 교화가 덜된 모양입니다. 모두가 부덕한 제 소치입니다. 해서 이 기회에 한 번 대좌 동지께서 가르침을 내리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내가 말이오?”
“그렇습니다. 대좌 동지께서 나서주신다면 버러지만도 못한 것들이 마음을 다잡고 충성스러운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으음, 소장 동지가 그렇게 말을 한다면 좋소.”
잠시 고민하던 대좌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한 번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아주 재미있으실 겁니다.”
“그렇게 하시오. 사흘 후에는 이곳을 떠나야 하니, 본보기를 한 번 보여주고 가도록 하겠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앞으로 수용소를 관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오.”
“고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에는 제가 그곳으로 모시지요. 회포를 푸시기에 적당할 것입니다.”
“하하하, 오늘 말이오?”
“감찰하시기도 바쁘신데 그런 수고까지 해주신다니 당연히 제가 대접을 해야지요.”
“아주 좋소. 내 소장 동지의 마음을 기대해 보겠소.”
“하하하, 예.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아무리 봐도 둘 다 똑같은 놈이다. 사람 잡는 이야기를 한 후에 태연하게 즐기러 가자는 소리나 하다니 말이다.
‘그나저나 소장 새끼가 저러는 것을 보면 누가 밉보인 것 같은데 말이야.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재수 더럽게 없구나.’
아무래도 소장 놈이 작정하고 말을 꺼낸 것 같다. 아무래도 오늘 뭔가 사달이 날 것 같았다.
최고 지도자를 비방하는 것은 정말 중죄에 속한다. 새로 수용소에 들어오는 사람 중에 몇몇이 그랬다가 자아비판 후에 교수형을 당하거나 경비병들에게 맞아 죽었다.
“오늘 저녁은 저녁이고, 다른 것은 어떻소?”
“지금 가시지요. 그렇지 않아도 말씀이 있으실 것 같아 그동안 채광한 것들을 준비해 놨습니다.”
“하하하, 눈치가 좋은 것 같소. 상부에서도 이곳에서 나오는 것들이 가장 순도가 좋다고 말씀들 하셔서 못내 궁금했소.”
“만족하실 겁니다. 이번에 제법 좋은 것들이 몇 개 나왔으니 말입니다.”
“그렇소?”
“수량이 전보다 조금 더 나와서 감찰관님께도 두 개 정도 선물로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석이기는 하지만 가공만 잘한다면 꽤나 흡족하실 겁니다.”
“고맙소. 내 것까지 챙겨 주다니 말이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원로에 수고가 많으신데 이 정도는 약과지요.”
“그런데 일정한 것이 아니고 가끔 가다가 발견이 된다니, 그것이 좀 안타깝소. 원광이 발견되었다면 아주 좋았을 텐데 말이오.”
“어쩔 수 없지요. 아시다시피 원광이 아니고, 그때 발생한 사건 때문에 생성이 된 것이라서 말입니다. 어쩌다 한 번씩만 발견되는 것이 저도 안타깝습니다.”
다이아몬드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뇌물로 쓰고 상납도 하고, 아주 재미있다.
여기에 있는 광산은 원래 석탄을 채굴하는 곳이다.
스팟이 생성된 후에 간혹 다이아몬드가 채굴되고 있을 뿐이지 원광 자체가 발견된 곳이 아니다. 스팟의 영향 때문에 가끔씩 다이아몬드가 발견될 뿐이다.
수용소 중에 이런 곳이 몇 군데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스팟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곳 중에서 이곳처럼 다이아몬드나 루비, 에메랄드 같은 보석류가 발견되는 곳이 더러 있었다.
“이곳에서 나오는 것들은 제법 높은 가격을 쳐준다고 해서 하는 말이었소.”
“다른 곳이나 원광이 있는 광산에서 채굴되는 것보다 가치가 높긴 합니다만, 그야말로 횡재수나 다름없습니다. 그래도 간혹 채굴이 되어 이렇게 선물로 드릴 수 있으니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이해하오. 그것이 사라지지만 않았다면 괜찮았을 텐데, 갑자기 사라져 버려서 그런 것이 아니겠소.”
“그렇기는 하지요. 그것의 발생 원인을 밝혀냈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감지가 되지 않는 것이오?”
“그때 이후로 새로운 감지기를 계속해서 가동시키고 있지만, 반응이 전혀 없습니다, 대좌 동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반응을 살펴야 할 것이오. 위에서 관심이 지대하니 말이오. 그리고 처음에 나타난 것처럼 새로 설치된 감지기에도 반응이 나타나지 않을지 모르니 세밀하게 신경을 쓰도록 하시오.”
“염려하지 마십시오. 지금도 그럴 것 같아 철저하게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소장이 신경을 쓴다니, 내 믿겠소. 자, 준비를 해두었다니 어서 봅시다.”
“그러시지요.”
호위총국의 대좌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소장도 곧장 일어섰다. 채광한 다이아몬드를 보러 가려는 모양이다.
‘어서 치우자.’
두 놈이 밖으로 나간 후에 곧바로 식탁을 치웠다. 주방에서 식기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끝냈다.
이후에는 사람들이 먹을 빵을 만들었다.
저녁 식사는 다른 곳에서 할 것 같으니 조금 빨리 막사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정진호는 일이 끝나고 난 뒤 막사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 무렵, 제자인 차훈으로부터 식당에서 오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손을 쓸 것이라고는 예상을 했지만 남의 손을 빌어 자신을 처리하려는 김형식의 행동은 예상 밖이었다.
능력을 모두 얻지 못한 것이 자신 때문이라고 원망하던 김형식이기에 직접 손을 쓸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니까… 차훈아, 최고 지도자를 비방한 사람들에 대해서 본보기를 보이겠다고 했단 말이냐?”
“예, 스승님. 소장 놈이 알랑방귀를 뀌는데, 속이 뒤집히는 줄 알았어요.”
“으음. 큰일이구나. 그놈 때문에 엄한 사람들이 죽어 나가게 생겼으니 말이다.”
“그러게요. 누가 그놈에게 밉보였는지 큰일이에요. 쉽게 끝나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그렇겠구나.”
“어차피 어떻게 할 방법은 없지만 기회가 되면 놈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마라. 벽에도 귀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손을 봐야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예, 스승님.”
“얼른 자도록 해라. 피곤할 텐데.”
“벌써 자요?”
“그래. 분위기가 수상하니 오늘은 그냥 자도록 해라. 전에도 말했지만, 새롭게 설치된 감지기는 민감하니 심법 이외에 어떤 수련도 해서는 안 된다.”
담요를 들추며 잠자리에 드는 차훈을 보며 정진호가 당부를 했다. 민감해져 있을 김형식을 생각해서였다.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그래, 알았다니 잊어 먹지 않도록 해라.”
“예, 전 이만 잘게요.”
정진호는 잠자리에 드는 차훈의 담요를 여며주었다.
‘후우, 빠져나갈 수 없겠구나.’
최고 지도자를 비방했다고 누명을 씌운 후, 자신을 처리하려는 것 같았다.
어제 공격을 당할 때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 못해 능력을 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 분명했다.
‘정말 영악한 놈이다. 내가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런 방법을 쓰다니. 아마도 내가 후인을 두지 않았는지 염려가 돼서 이런 방법을 썼을 것이다. 그놈을 제외하고 우리 사문의 특성상 스승이 당하는 것을 두고 볼 제자는 없을 테니까.’
스승을 부모처럼 여기는 사문의 특성상 치사한 방법이지만, 후환이 될 숨겨진 제자를 찾는 데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아침 일찍 말해두어야겠구나. 강신이라면 말려줄 것이다. 차훈이도 그의 말이라면 들을 것이고. 죽일 놈, 네놈이 어떤 방법을 쓰든 간에 원하는 것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나를 처리하려면 오늘 했어야 했다.’
오늘 마지막 안배를 끝낸 후 내일 강신에게 차훈을 부탁하기만 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끝난다.
안배의 끝에는 사문을 배신하고, 나라를 멸망시킨 사제의 최후가 있을 것이니 지금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다.
‘스스로 생을 끝낼 수 있는 시기를 맞출 수 있으니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 일이다. 문제는 차훈이 저 아이에게 무거운 짐을 맡겨야 한다는 것인데…….’
1차 안배는 끝냈고, 이제 마지막 봉인 작업을 하게 되면 자신이 생각한 대로 제자의 기억이 조작될 것이다.
위험성을 생각해 아주 일부만 조작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될 수도 있는 부분에 대한 조작이다. 어린 제자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미안하구나. 모든 것을 얻게 되면 자연히 알게 될 테니 그때까지만이다. 원망스러울 테지만 네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니 이해해라.’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알기에 정진호는 곧바로 차훈의 수혈을 짚었다.
파파팟!
“스…….”
갑자기 혈이 짚이자 놀란 차훈이 뭔가 말하려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차훈아, 이 스승이 너에게 뭔가 베풀었다는 것을 인식했을 테니 나중에 봉인을 푸는 단초가 될 것이다. 잊어 먹지 말도록 해라.’
잠이 들고 나서 수혈을 짚어도 되지만 일부러 깨어 있을 때 한 이유가 있다. 봉인을 풀어줄 열쇠를 심어두기 위해서다.
자신의 의식에 뭔가 봉인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의 인식하에 봉인을 풀어야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기에 취한 조치였다.
주변에 결계를 친 후, 정진호는 손바닥을 차훈의 정수리에 가져다 댔다.
번쩍!
봉인을 위한 대법을 베풀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눈에서 푸른 광망이 뻗어 나와 손을 통해 정수리로 스며들었다.
정진호는 그렇게 10여 분 정도 정수리에 손을 대고 있다가 손을 거두었다.
‘후우, 남아 있는 기력을 모두 썼더니 힘들군. 내일 남아 있는 원천지기까지 뽑아내서 쓰면 절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김형식은 사문의 모든 술법을 배운 것이 아니다.
성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스승께서 모든 것을 전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의 계획은 절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아 있는 것은 내일 얼마나 실감나게 죽을 것이냐는 것뿐이었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 원하는 대로 해줄 계획이기에 김형식은 절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어제 식당에서 의논한 대로 할 모양인지 오늘은 작업이 없었다. 소장 놈은 경비대를 동원해 수용된 사람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연병장에 모이도록 했다.
― 그동안 불만을 토로하던 자들이 적발되었다. 작업에 대한 불만은 아량으로 넘어가겠지만 감히 최고 지도자 동지에 대해 비방을 쏟아낸 자들이 있다는 고발이 들어왔다. 고발을 한 자들은 나와서 어떤 내용인지 말하도록 해라.
저 자식이 누군가를 회유한 모양이다. 스스로 나서서 고발할 자들을 만들어내다니 말이다.